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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타입

마치 피를 가득 삼키는 듯한 맛이었다.
원래 알코올에 강한 편이 아닌 내 주위엔 고급 브랜디 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맛에 취하고 싶은것은 아니다
단지 알코올에 취하고 싶을 뿐이다.

늘어지는 몸에 비례해 뇌수는 시릴 정도로 아려 온다.
난로 앞에 그녀의 육체가 있다.



낡은 목련으로 만든 의자에 내가 선물했던 녹색 빛의 드레스를 입고 갸날픈 몸을 앉히고 있다
눈부신 흰 다리. 얇은 실크의 장갑을 끼고 손가락을 모으고 가만히 있는다.

밖의 비는 변함없이 거세게 내리고 있다.

으슥한 이 산속 별장... 까딱하면 교통로가 마비되고 산사태를 일으켜서 발이 묶이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고 느끼고 있다.

시간조차 멈추는 듯한, 공간마저 잘라내는 듯한.
아마색의 카펫은 털이 난로의 열에 조금씩 그슬려 거칠어지고 있다.

나는 살아있는 건가.. 아니면 죽은 건가.
그녀는 살아있는 것인가. 아니면 살아날 것인가.
억양이 돌지 않는 혀로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듣지 못한다.
대답을 하는 것도 하지 못한다.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웃지도 못한다.

왜냐면.
그녀는 목이 없으니까.
그것은 은유도 비유도 아니다.
사적인 의미도 없다
다만 물리적으로
그녀의 목은 없다.

내가 절단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새로운 목이 자라나올 것을.





-Protetype-






내가 그녀를 만난건 지금부터 2년 전이다.
아마 쓰르라미가 울던 초가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나는 아내를 여의고 우울증에 시달려 두번정도 자살 미수를 반복한뒤 친구인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그 대합실에서 였다.

시선을 느꼈다.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딘가 열띤. 먼 옛날을 생각하는 듯한 눈.
그 시선을 알았을때 내 가슴이 설레인 것을 강하게 기억하고 있다.

젋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닌가.

왜 그렇게 단정할수 있냐 하면 그 두 눈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요정의 눈동자.
페어리즈 아이.
적색과 녹색의 두가지의 색을 가진 두 눈동자.
한번 본 것만으로 절대 잊을수 없었다.

그 젋은 아름다운 여성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시선을 돌렸다.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가슴이 설레여 버린 것을 알아채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별한 아내를 생각하고 괴로워 했는데, 아내를 저버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요정같은 그 모습은 내 눈에 강하게 남아 버렸다.
진찰은 그녀쪽이 조금더 빨리 끝났다.
그 다음이 나였다.

[오 그래 어서와라]
환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아닌, 방문한 옛 친구에 대한 어투로 친근하게 웃었다.
백의에 위로 모아올린 머리는 어찌보면 매드 사이언티스트같은 외관, 하지만 이 정신과 의사는 내 대학 친구였다.

[어때 대학쪽은]
[글쎄다. 아무래도 요즘들어 학생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것 같아. 박사 논문에서도 제대로 적는 애들이 없어. 애초에 방법서설(方法序説)도 불어 원문으로 읽지도 못하는 놈들이 왜 철학과에 있는 건지]
[어이 그렇게 치면 나도 낙제생인데. 뭐 독일어로 읽어보라면 할수 있겠지만]

가볍게 대화를 나눈뒤 문진을 한다.
잠은 잘 자고 있는가, 불안하지는 않나. 요즘 집중력은 어떤가 같은 문진을 받은 뒤.

[뭐 느긋하게 할까]
하며 이이시마(飯島)는 의료비 청구서를 내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없이 말이 입에서 툭 나오고 말았다.

[내 전의 환자, 그 사람 어떤 사람이지?]
순간 실수했다고 깨달았으나 이미 내뱉은 말은 되돌릴수 없다.
의아한 듯이 이이시마가 잠시 나를 바라보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는 말할수 없는데. 하며 장난스레 웃었다.
[그래 꽤 귀여운 아가씨 아닌가? 한번 보면 눈에 남지. 근데 헌팅을 하려면 병원 밖에서 하지 그래]
하며 웃었다.

[아 아니 그런게 아니고]
나는 방금 그녀가 날 바라보고 있었음을 말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와는 여기서 처음 만난 것이고 그녀와 나는 초면이라는 것도.

[처음 아닐 텐데. 네 강의를 들은적이 있다고 했는데? 즉 네 대학의 학생이라고.
불면과 두통에 시달리는것 같던데. 뭐 그 나이때는 흔히 있는 일이지]
[그럴리가... 그런 모습을 보고 잊을리가 없을 텐데]
[가장 앞자리에 앉지 않으면 대학 교수가 학생 개개인을 외우긴 힘들지. 적어도 난 그렇더라]

반박되었고, 그것을 다시 반박할 자신도 없었다.
확실히 강의의 학생 개개인을 모두 기억하는건 무리기는 하다.
자신의 전공이 이쪽이라면 몰라도, 일반 교양으로 한두과목쯤 듣는 학생이면 외우기는 힘들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시선을 몰랐을 리는 없다.
...아니 그거야말로 이쪽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열띤 시선을 이런 중년에게 향하는 경우는 별로 없겠지

나는 물러나서 면접실을 나왔다.
접수처에서 수속을 한 뒤 10분정도 후 자동 정산기로 지불을 마쳤다.
이전에는 같은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겠지만,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 청구서를 가지고 근처의 약국에 가서 약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약국의 자동문을 들어왔다.

[아...]
그녀가 있었다.
열린 문에 시선을 돌리자 내 시선이 그녀와 맞물렸다.
운명적이 아닌 절반은 필연적인 재회인 것이, 뭔가 인연 같은걸 느끼게 했다

[쿠죠(九条) 교수님이시죠? 아 역시!]
앉아있던 자리에서 절반 허리를 띄우고 관심거리를 찾은 고양이처럼 고개를 갸웃하고 그녀가 말했다.
[역시 그렇군요! 저, 교수님 강의 들은적 있어요. 저 기억나지 않으세요?]

머리가 하얘져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철학과의 쿠죠 교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캠퍼스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
손목에 옛 상처가 숨어 있는것을 들키지 않도록 왼손의 손목시계를 오른손으로 덮었다.

[교양부 때에는 항상 교수님 강의 듣고 있었는데... [철학사] 예요. 기억나지 않으세요?.....아닌가보군요... 하기야 수강생들 많았으니까요..]
내 침묵을 뭐라고 생각 했는지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아직 어리벙벙하지만 어딘가에서 묘한 설레임을 느꼈다.

[아 아직 제 소개를 안했네요. 저는 사카마키 라고 해요. 사카마키 토와(坂巻永久). 네. 영원이라는 뜻의 토와예요]
여자라기엔 아직 소녀같은 앳된 모습에 요염한 웃음을 띄운다.
[불문학전공 3학년이예요. 헤헤 이제 제 얼굴 기억해주세요]

그래 얼굴도 이름도 잊을리가 없다.




우리는 사랑하게 되었다.
만난지 두달쯤 되어 갈때쯤 마침 대학이 여름방학에 들어갔고
그녀의 집은 혼자살기에 너무 넓다며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게 되었다.
가을엔 내 차로 대학에 통학하기도 했다.
남녀의 관계를 내가 장황하게 이야기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설명하진 않겠다. 어떻게 생각하든 좋다.

열을 훌쩍 넘기는 나이에 걱정도 됬지만 내가 그걸 얘기하면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하며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웃었다.

아내를 잃은 것, 그리고 그녀를 쫒아 손목을 그은 것도
[옛날 일이잖아요?]
하며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처음 토와를 품었을때, 그녀는 내 품안에서 격하게 흥분했다.
이미 남자를 잘 아는 몸임에 의심할 여지는 없었으나 내 과거를 캐묻지 않듯이 나 역시 그녀의 과거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질투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먹어도 좋아요]

그런 그녀의 말을 잊을수 없다.
너무나 선명히, 내 골수까지 사무쳐 온다.
내가 토와의 손가락을 입으로 빨고 애무하며 먹어버리고 싶다 같은 지지부진한 소리를 하고 있을때였다.

[괜찮아요 먹어 버려요]

그녀는 다시 말했다.

[먹으면 없어져 버리는데 곤란하잖니]

[괜찮아요 다시 자라나니까요]

농담치고는 너무 안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토와도 어딘가 허전한 눈을 하며 웃고 있었다.
강하게 손을 감아 끌어안고 그리고 큰 한숨을 그녀의 가슴에 내쉰다.
나는 토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결혼이라는 말을 꺼낸건 연도가 바뀔 무렵이었다.
토와도 4학년이 되었고 슬슬 졸업후를 구체적으로 고려할 때가 왔다.
그녀는 딱히 되고 싶은 직업을 말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대학원으로 진학할 의사도 없음을 지금까지의 친분때문에 알고 있었다.

[우리 결혼할까]

세기 힘들정도의 횟수의 어느 데이트의 귀로, 핸들을 쥐고 평정을 가장하며 나는 토와에게 물었다

[...진심인가요?]
라는 답변

[저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알고 있어 우리 대학에서 불어 전공의 학생, 성적은 중상, 생일은 8월 8일, 부모님은 별세, 10이상 나이차이의 연인에 대해 아직도 경어를 쓰며, 종종 두통이 있고, 엄청난 대식가, 하지만 살은 안 찌는 체질, 스콘*을 만드는걸 잘하지만 요리는 대개 잘 못해]
*역주: 스콘(スコーン):영국전통빵

의외로 떠들어대고 있는 나를 보니 왠지 수줍다.

[철이 들기 전 어머니를 여의었고 어머니 이름도 토와. 아버지는 의사셨지만 고교 졸업때 타계, 다행히 저축을 물려주셔서 그 돈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지]

[그것뿐이잖아요...]

[달리 더 필요하니.]

[...옛 남자라던가]

[관심 없어, 질투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는건 지금의 너지 과거의 네가 아니란다]

어둠속에서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틀림없이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을 것이다.
반대편 차가 없기에 전조등을 상향등으로 돌린다.

[그..그래도..더 엉뚱한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결혼따위 하면 후회하실지도...]

[내가 전 결혼에 실패한것 때문에 그러니]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고...]

[결혼하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아니예요..아니예요..]

운전중이라 그녀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토와의 시선은 내게 느껴졌고
그녀의 얼굴에는 무언가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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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춤추는 인형] 을 알고 있는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이다
중학 무렵이었나 그 작은 인형들의 행진이 암호로 되어 있었다니 처음 읽었을때 굉장히 설렜었다
홈즈가 그 인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동작을 찾아 그에 대응하는 숫자가 알파벳 E라니, 굉장히 멋진 논리에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암호를 만들 필연성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매우 어렵다
암호라는 것은 확실히 [한정된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것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단순한 암호가 좋지 않았을까? 아무 이유없이 단순히 홈즈에게 전달만을 위한 편지였다면
좀더 극단적으로 말해보면 그냥 한번 보고 태워버릴 편지라도 만드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의사 소통만 할수 있다면 좋은 그것이 자신들 이외에 통할수 없다면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루브 골드버그의 작품에서 그는 그랬다. 너무 심한 암호화라는 것은 더이상 그 자체가 단순히 [풀기 위한 로직],
즉 다시 말해 [작품을 위한 암호]로의 가치밖에 가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게 맞다. 셜록 홈즈도 물론 코난 도일의 창작이기 때문에 그런것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암호가 단순히 [작품을 위한 암호]임을 아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걸 느꼈었다
그게 흥분이랄까, 관심이랄까 다시말해 세계적인 명탐정 셜록 홈즈는 사실 단순히 수수께끼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라는 것.
이것은 그냥 단지 웅장한 스케일의 [여흥용] 암호에 지나지 않았던 거라고
창작 작품이라는 것은, 판타지라는 것은 결국 그런 정도의 것이라고 어릴 무렵에 깨닫고 말았다.

아니 그냥 단순히 이해해 버린 걸까? 나는 암호의 아름다움에 반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필연성 없고 오직 독립된 즉 아무 실용성 없는 수수께기용 암호라는 것은 환멸하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일주일 후,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며 나는 말했다.
토와에게 만나고 싶다고 해서 온 것이다.
답을 재촉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침묵으로 기다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내용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나는 토와의 얼굴을 살폈다.


[...역시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와인이 다 떨어졌을 부렵, 토와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더이상 숨길수는 없으니까...]
[무슨 말이니?]

나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그녀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체질이라도 나는 상관없다 생각했다
어딘가에 숨겨진 딸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라고도 생각했다
토와의 모든것을 인정하고 싶었다

[저는...]
두 팔로 어깨를 품고 가슴을 꽉 껴안듯이 몸을 굽히는 토와

[실장석이예요...]

무슨 이야기인지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실장석?]

[들어본적 없나요? 저와같은 눈을 한 작은 생물로 대단한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고, 손발이 찢어져도 바로 자라나고, 암컷만 있으며 수컷과 관계여부와 무관하게 자식을 낳고 몸 중심에는 위석이 있어 그것이 부서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살수 있는 슬픈 생물..]

굥교롭게도 나는 그런 생물을 본적이 없다.
그기 무슨 소리인가.. 이상한 전설 같은 것인가.

[미안하다 모르겠구나, 그래 내가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도록 할게, 하지만 나는 네가 그런 괴물같은게 아닌걸 가장 잘 알고 있단다]

농담으로 이야기를 흘리려 하지만 토와의 얼굴의 그림자는 가시지 않는다
이런 시시한 일로 그녀가 고민하고 있다고 하면, 그런걸 이전까지 감지하지 못한 나는 연인으로 실격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곧 그녀의 배우자가 되고 싶은 나로서는 결점을 빨리 찾을수 있어 좋은 일이었다.

토와의 인상적인 좌우의 눈동자가 그 실장석이라는 것과 아주 닮은 바람에 그녀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 이걸 봐 줄래요]
내 마음을 꿰뚫어보던 토와가 쓱 왼손을 내 눈앞에 내밀었다.

[처음에는 이 손가락이었어요. 제가 유치원 때 요리를 한다며 칼을 잡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당연히 어리니까 감자도 잘 벗기지 못했고 이윽고 칼이 빗나가. 제 검지를 잘라 버렸었죠]

[잘렸다고?]

놀라서 그녀의 손가락 끝을 본다.
손가락은 모두 다 나란히 있다. 당연히 검지도 그대로.

[있잖니 검지]
[나았어요]

토와는 말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손가락 접합 수술도 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지혈을 하고 붕대를 감을 뿐이었다.
그러나 몇일 지나지 않아 상처가 낫고 새로운 검지가 돋아 나왔다는 것이다.
2주도 지나지 않아서.

[도마뱀 꼬리 같죠? 손톱까지 제대로 제자리로 돌아간 거예요]
무심코 말을 잃었다. 믿을수 없다
하지만 토와의 어조에는 뭐라고 말할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안 믿기죠? 하지만 거짓말 아니예요. 모두 진실]
좌우의 색이 다른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뭔가 시험되고 있다고 느꼈다.
믿을수 있는지를.

[그래 토와같은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 4배체의 염색체를 가진 사람은 재생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 간도 삼분의 일만 남기고 잘라낸다 해도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하고...]

[그런게 아니예요! 그래요 저도 찾아봤다구요! 보통 사람이라도 손끝 정도면 재생하는 경우가 있다고 알아봤어요! 하지만 저는 그것과 차원이 달라요!]

그리고 나를 넘어 저 멀리있는것을 보듯 저 너머로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제가 손가락이 다시 났을때 아버님은 놀라워 하지도 않으셨죠 단지 이렇게 말씀하실 뿐이었어요
그런 신체구나 너는?]

새 손가락을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역시 너는 영원한 네 엄마의 환생이구나! 하시던 아버지는 마치 동화에 나오는 악마 같았어요]

[....]

[그 다음은, 제가 초등학교 오학년 때였어요.
가을 소풍 가던 중 버스가 산길에서 뒤집어져 많은 친구가 죽어 버렸었죠.
저도 심하게 다쳤구요. 오른팔이 어깨부터 납작해져 버려서 병원에서도 걷잡을수 없는 상태였대요
의사가 제게 팔을 절단할 수밖에 없다며 요즘은 좋은 의수가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며 격려해 줬었죠]

하지만 내가 보기에 토와의 오른손은 의수가 아니다.
백옥의 아름다운 백자같은 멀쩡한 팔이 제대로 붙어 있다.

[..그 팔도 자랐다는 거니?]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물론이에요]
토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봐요]
토와는 옷을 약간 풀어 어깻죽지를 내게 보였다.
쇄골의 약간 앞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다

[여기 보면 약간 색이 다르죠?]
그런건 없다라고 말할뻔 했지만 다시 보면 확실히 그런것 같이도 보였다.

[삼개월쯤 정도였나... 손가락까지 전부 재생한거예요. 그런지라 사고후 정신후유증이 있다. 라고하고 학교 전학해 버렸으니까.. 아무도 몰랐죠. 아는건 단지 아버님만]

[아무리 그래도.. 담당 의사가 널 그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수술후 경과를 보려고 하지 않았니?]

[아버님이 했어요 의사셨으니까요. 제게 그 몸의 비밀이 들통나면 아마 실험 동물처럼 다져진다 라고 하시기에 무서워서 그 후 병원에도 다니지 않았어요]

[그런 일이...]

[그 무렵부터예요. 아버님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 정말 깊은 끈적한 눈으로 구석구석 핥듯이 보시던 거예요. 술도 마시게 되셨죠.]

[정말 너는 네 엄마를 닮았구나. 아니 네 엄마 자체인데? 그렇게 말하시곤 하셨지요]
잠시 그녀는 말을 멈추고 공허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네 엄마의 화신
그러니가 이제부터 네 이름은 [토와]다.
그러니 네 몸은 내 것이다.

이 저주받은 몸은...
모멸하도록, 찬양하듯, 통곡하듯, 사랑하며.
실장석아, 너는 아무리 잘려도 다시 자라난단다.
이 손가락도 네 팔도. 이마도, 이 다리도
눈을 도려 내고도 재생할 거야.
네 엄마와 마찬가지야.
똑같아, 넌 엄마 그 자체니까.

[실장석이란 생물은 자신의 아이를 낳는데, 그건 완전한 자신의 카피라고 해요.]
토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중학교 이학년의 방학이었죠. 추운 날이었어요.
내가 요리를 하고 있을때 아버님이 온 몸을 이리저리 쓰다듬었어요.
그만두라고 했는데 제발 그만두라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저항했죠. 그때 튀김을 하고 있었는데.
팔팔 끓고있는 기름이 뒤집어져 왼발에 떨어져서 심한 화상이 되어 버렸어요
아팠어요 정말 아팠어요. 뜨겁고 붉게 달아올라서는.]

화상은 안돼! 실장석은 결코 화상만은 낫지 않아
이 아버지에게 맡기렴, 바로 치료해 줄테니.
그렇게 지껄이며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자신의 수술실에 데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취를 걸어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눈을 떴을때 몽롱한 의식 속에서 토와는 자신의 왼 무릎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고 한다.

[당분간은 고열이 나고 자거나 깨어 있을때도 그냥 기분이 나쁠 뿐이었어요.
약이 떨어지면 너무 아팠고 그렇다고 깨어 있으면 너무나 기분이 나빴죠
지금 제 두통도 그때부터 시작된 거랍니다
하지만 제 다리는 몇달간 잘 자랐어요. 하지만 그것도 몇개월인데. 몇년을 자라지 않았죠]

그러며 잠시 그녀는 말을 멎는다.

[그건..매일밤 아버님이 저를 범했기 때문...]

다리가 없으니 달아날수도 없다.
약 때문에 폭력을 거부할수도 없다.
매일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몇번이고 미온적인 힘을 뱃속에 집어넣을 뿐이었다
몇번이나 몇번이나
토와라는 이름을 부른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의 대상이 자신이지 아니면 어머니인지 그녀는 끝까지 몰랐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상담도 못했죠. 돕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기 시작한다. 떨리는 어깨를 두 팔로 껴안고 있었다

[다리가 나으면 도망가려고 생각도 했었어요.. 하지만 아버님은 제 다리가 나아갈때마다...
[잘라야지? 어디가 좋으냐?] 하며..]

초인적인 재생 능력을 가진 자신의 딸의 육체를 매일 저지른 아버지.
너무 무자비한 광경이 뇌리에 떠올라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나는 당황했다.
그녀의 모습에 거짓은 없다.

[대학의 합격이 결정된 밤, 언제나처럼 아버님이 저를 범하러 왔지요.
대학에 가도 인생은 바뀌지 않아, 그런 사실이 너무 무서워서...
취해있는 아버님을 계단에서 내던졌어요.. 사고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경찰도 주변 사람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모두 동정했죠. 그렇지만..
제가 아버님을 죽인 거예요..]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모습은 내 앞에 있는데도 너무 작게 멀리보였다.

[실장석은 저주받은 생물이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것 사람이 아니잖아요?
괴물일 뿐이예요. 어디를 잘라도 다시 자라나요. 자라버리고 말죠.
다리를 자르건 팔을 자르건 다시 자라나요. 아마 목을 베도 자라겠죠
그래요 아버지와 함께 널브러진 딸 따위, 애초에 사람이 아니였어요. 그냥 짐승이죠. 게다가 살인이예요!]

뚝뚝 굵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말했다.

[제가 싫어졌죠? 이런 괴물 싫겠죠? 아니면 전혀 믿지 않고 계시죠? 머리 이상한 여자의 망상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죠?]

술 탓이 아니다. 나는 만취하고 있었다.
마른 입술 끝을 혀끝으로 몇번이나 축였다.
쭈뼛거리며 토와가 나를 올라다보았다.
요정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믿어. 그리고 너를 싫어하는 그런일 따위 되지 않아. 너를 사랑해 세상 누구보다 더.
실장석이니 그런일은 아무래도 좋아. 다만 그런 체질일 뿐야. 아니 오히려 축복이란다]

[축...복?]

[남다른 재생 능력이라는것은 결코 저주받은 능력이 아니고 신의 선물이지]

무서운 것을 보듯. 기이한 것을 보듯, 토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눈은 너무나 예쁜 한쌍의 보석 같았다

침묵이 시간을 지배하고..
그리고..

[토와.. 나와 결혼해 주지 않겠니]

조금 시간을 두고, 내 말을 새기듯, 그리고 너무나 수줍게.

[...네..]

오늘 처음보는,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없는 토와의 행복한 미소였다.
그해 가을. 우리는 토와의 졸업을 기다리지 않고 결혼했다.
내가 재혼이라는 사실과, 그리고 교수와 그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이라는 것도 있어서 식이나 피로연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토와도 그걸 원치 않았다.



단지 혼인 신고만 하고 우리는 이웃 현 산간의 별장에서 둘만의 일주일을 보냈다.
이 별장은 내 아버지가 내게 유산으로 남긴 것이다.
나는 형과 남동생이 있지만, 내 형은 의사로 아버지의 병원을 잇고 있고 동생은 NASA의 우주 비행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장 덜떨어진 나와 다르게 둘다 성적이 남달랐다.

둘은 현금을 원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유산 자체는 둘이 나누었고 나는 부동산. 이 별장을 받은 것이다.
이 별장은 정리된 논문을 쓸 때나 가끔 혼자의 고독을 씹고 싶을때 자주 이용했다.
죽은 전처를 이 별장에 데려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전처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단지 이제 한가지, 토와가 내게 부탁한 것은 둘만의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연두 빛깔의 드레스였다.
우리는 행복했다.

그래, 이때까지는..


일년이 지났을 무렵부터 토와는 자주 두통을 호소하게 되었다.
이이시마에게 부탁해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도록 토와에게 권했지만 토와는 애매한 대답만 할뿐 잘 따르지 않았다.
자신의 특이 체질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는지는 모른다.

2월초 졸업 논문을 쓰고 발표하여 무사히 학점 따는것을 끝냈을 무렵. 토와는 무언가 자주 잊어먹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되었다.
지갑이나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
처음엔 나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나날이 그것은 악화되어 갔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던 2월 하순 무렵이었다.

[뭐야!! 당신 누구예요!!]

아침. 벌거벗은채 자던 나는 토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누구야 당신? 누구야]

옆에 있는 내 얼굴을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토와!]

[그게 누구죠? 아니 그것보다 당신은 누구죠?]
[토와?]

나는 겨우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을 것을 깨달았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은 계속 무언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장난치는 것은 아니다

[나야 나! 토와! 왜 이러는거야!]
[당신 누구?]

남색 머리를 흩뜨리며 그녀는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뺨이 창백했다.
[왜...당신 뭐예요?]
[토와!]

일어나 그녀를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순간,토와의 눈에 이성의 빛이 돌아온다.

[아..아아.. 그.. 그래요 당신 있었군요..]

결혼하고도 그녀는 나를 당신(貴方:아나타)이라 부른다. 하지만 지금의 당신과 아까의 울림은 확연히 달랐다
[왜 이러는 거지...나...]

내 품 안에서 토와가 힘을 떨어뜨리던 그녀가
갑자기 그 몸이 내게 묵직하게 올라타며 포효한다.
내 가슴에 뺨을 비비며 그녀가 말했다.

[이상하죠? 저 갑자기 머리속이 새하얗게 되서는, 왠지 점점 무언가에 빠져드는것 같은...]
[아니야... 아니야 토와]
흩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아이처럼 무서워하는 토와를 나는 포옹했다.

이튿날 이이시마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바로 병원에 데려오라고 호통을 쳤다.
싫어하는 토와를 달래며 병원으로 데려가 정밀 검사를 받는다.
그 동안 나는 이이시마에게 아내의 상태를 말한다.

[물건을 두고 몇번이고 같은것을 묻곤 해. 그게 정도는 있지만 종종 일어나긴 했는데.
근데 이제 남편인 내 얼굴도 잊기 시작했어]

정밀 검사 결과는 더 최악이었다. 벅벅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이시마가 설명했다.

[미안하다... 최악이라고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일이야?]
[그.. 뇌의 한복판에 그림자가 있다 호두 크기쯤 되는. 종양이라고 볼때 매우 큰 상태야
하필 이게 위치가.. 뇌하수체 위.. 아니 중심인가]
[뇌하수체?]
[그래 뇌의 한복판이다. 네가 가르치는 데카르트가 말한 사람의 의식을 관장하는 뇌의 중앙이야]

눈앞이 어두워졌다.
토와가 그렇게 되다니.

[그것뿐만 아니야..]
[또 무슨 일이?]
[대뇌랑 소뇌가 해면 상태가 됬어. 클리오 반응도 있어.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일지도 몰라.]
[크로이츠펠트 야콥...? 광우병 말인가?]

[그래 백만명에 하나 나온다는 괴질병이야. 안타깝지만 완치 사례가 없어]
[그럴리가! 토와는 아직 스물안팎이야 왜 그런 걸...]
[그러게 말이다. 원인을 알수 없어. 솔직히 말해 뇌의 종양도 없애기 힘들다..]
[어떻게든 해줘! 돈.. 돈이라면 얼마든지 낼 테니까]

[그건 단지 연명할 뿐이야. 현대 의학으로 완치는 불가능해. 그리고 고통도 크게 따른다.
종양만으로도 이미 살아있는게 기적이야. 게다가 치매도 계속 나갈 거고. 진행도 굉장히 빨라]
[...결국 죽는다고..?]
[아아]
[아직 그렇게 젊은데?]
[유감이다]

이이시마는 내게서 시선을 돌린다. 이 남자가 결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님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일단 좀더 검사를 하게 할게. 다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라]
자신의 호흡이 시끄럽게 들릴 정도로 의식이 멀어져 갔다.



삼월 초.
진단된 병명은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단지 두통때문에 일시적 기억상실이라고 안정을 취하면 나을 거라고만 말해주었다.
이이시마는 항성 신약과 수면제 그리고 진통제를 처방했다.
입원을 권하지 않은 것은 나를 배려해서인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곁에 있고 싶었다.

봄이 되고 그녀의 병세는 눈에 띄게 나빠져 갔다.
여기는 어딘가요 나는 누구죠? 지금이 언제죠?
나침반을 잃은 난파선처럼 모든 것은 지침을 잃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거나 10분이 넘게 그냥 웃기만 하기도 했다.
갑자기 화를 내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괴로웠다.
살을 저미는게 더 편할 것이다.
그렇게 불행을 보았던 그녀의 눈을 나는 행복하게 만들수 없다.
그녀의 뇌는 과거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사고 능력, 인식 능력을 잃고 말하는 법도 잊고 보행이나 배설조차 할수 없게 되었고... 그리고...
나도 이상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내 우울증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단지 토와를 지키고 싶다는 그 생각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다행인 것은 대학에서 내 휴직을 인정해준 것이었다.
첫 아내가 먼 여행을 떠나고 두번째 아내마저 떠나려 하는 나를 배려해준 것이었겠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났다
병은 확실히 우리의 시간을 좀먹어 간다.
토와가 정상으로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토와는 나를 매번 격려했다
잊지 말아 주세요 라고 몇번이나 불렀다.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라고

내게 있어서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자신의 무력함에 그녀와 함께 하고 싶어졌다.
악마가 있다면 영혼이라도 도려내 주마. 토와를 구해줘
내 심장을 도려내고 토와를 구한다.
그런 것을 몇번이나 꿈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꿈에서 깰 때마다 그것이 꿈이었다는것을 자각하는 저주의 나날이었다.


[그 별장에 가고 싶어요]

10월 중순이 지났을 무렵 토와가 그런 말을 꺼냈다.
치매가 진행되는 가운제 간간히 이성을 되찾는 토와는, 억지로 해맑게 웃고있어 마치 유령 같았다.
그 유령이 죽음을 깨닫듯이 필사적으로 내게 호소했다.

[그래.. 그래 가자 토와]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결혼 직후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그 별장에 찾아온 것이었다.

이전에 실장석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다.
거의 도시 전설에 가까운 오컬트적인 생물이었다. 생물이라기 보다 요괴에 가깝다.
그것과 토와를 동일시 할수 없었다.

분명 그 특징적인 눈은 같다. 그것뿐이라면 이해는 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못된 갓난아기 같은 외모, 마치 도깨비 같이 더럽게 생긴 생물이었다.
다만 한가지 궁금한 것은.

위석이라는, 실장석의 본체.
위석을 감싸는 고깃덩이가 주가 아니라 사실 실장석이라는 존재는 그 돌을 칭하는 것인 것이다.
하지만 그 돌만 있다면 어떤 상태에서든 살아 난다는..

그렇다면..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이 사실이라면..

별장에 도착한 그날 밤 토와는 어딘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성을 회복했던 토와는 더없이 즐거워 하고, 어린아이처럼 웃고 그냥 단순히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그래. 그렇게 보였다
내를 글어안고 사랑의 말을 요구하고, 그리고 몸을 요구해왔다.
흐트러진 그녀의 모습이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한 마리의 짐승 같았다.
그녀의 병도 잊고 미친듯이 그녀를 탐닉했다.

[아..아아! 아아!]
가속도로 달아오르는 침대 위, 그녀가 내 등에 손톱을 세우고 헐떡이며

[잘라 줘요]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잘라요 제 손가락을 잘라요]

피부를 안에서부터 뒤집는 듯한 끔찍한 것을 느끼고 그녀를 보았다.
쾌락의 홍수에 떠내려가는 표정으로 그녀는 말을 잇는다.

[제 팔도 다리도 잘라줘요!]

[토와..]

[해 주세요 아버님.]

[!!!]

등뼈가 얼어붙는줄 알았다.

[뭐...뭐.. 뭐라고?]
내 목소리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뜬다.

[방금 뭐라고 했어 토와?]
다그쳐 물었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 요염한 미소를 띄고 대답했다

[처음 저를 병원에서 만났을때 제가 바라보던거 알고 있었나요? 그래요. 아버님을 닮았으니까요
강의때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당신의 옆모습은 정말 아버님을 닮았어요.
그래. 나는 그래서 당신을 좋아했던 거야...]

악마처럼 아름답고 또한 잔혹한 말이었다.
그 뒤 나는 토와를 거칠게 밀어 내고 나는 술에 빠졌다.
아버지가 별장에 모아둔 브랜디를 밤새 마셨다.
자존심과 모든것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렇구나. 하긴 처음부터 이해가 된다. 이 후줄근한 중년 남성에게 빠진 이유도
나는 그냥 단지 그녀의 아버지 대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애정이라는 것은 오직 일방적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애정을 쏟았다고 그만큼의 애정이 반드시 되돌아올거라 생각하는것은 오만이다.
그렇지만.

깨달으면 이미 4일 정도가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 동안 나는 토와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날이었다.
브랜디에 완취해 응접실의 쇼파에서 뒹굴던 내 귀에 갑자기 방의 공기의 이음이 날아들었다.
그때 이미 일은 일어난 뒤였다.

더러운 잠옷을 입은 토와의 몸이 난로 앞에 쓰러져 있었다.
불이 붙은 것은 난로 안에 그녀의 머리가 들어갔기 때문.
단백질이 타는 역겨운 냄새.
머리 살점이 타는 강한 악취가 난다.

[토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나의 부주의인가. 아니, 아니면....
난로에서 그녀를 끌어내고 파자마로 옮겨붙기 시작한 불티를 쳐냈다.
테이블 위의 꽃병을 쥐고 안의 물을 다 뿌린다

[토와! 토와!!]
여러 차례 불러보자 작게 신음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잃고 있다. 손발에 미미한 경련이 있다.
얼굴은 끔찍한 상태였다. 얼굴은 다 타들어가 수포가 크게 올라오고 있다.
요정 같은 그 아름다움은 이제 없다.

[토와!]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다.

[아아...토와아...토와..]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무너지듯 다리에 힘이 빠진다. 그녀의 손을 움켜쥐고 몇번이나, 몇번이나 이름을 불렀다.
그녀를 질릴 정도로 사랑했던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바늘방석 같은 지옥의 시간.
나는 그 방석에 계속 앉아있던 것이다.

그때 어딘가에서 악마가 웃었다.

[아마 목을 베어도 자라나겠죠]
[화상은 안돼, 실장석은 화상만은 낫지 않아. 아버지에게 맡기렴 바로 치료해 줄 테니]
[뇌에 호두 크기의 종양이 있다]
[종양이 상당히 크다 그리고 뇌 중앙이야]
[대뇌와 소뇌가 해면 상태가 됐어. 클리오 반응도 있어.]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인지도 모르지]

다양한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화상, 뇌, 목을 베도 재생한다. 재생..

그리고.
[토와 너는 축복 받고 있어]

그래 왜 지금까지 생각을 못했을까.
그녀의 몸은 예사롭지 않다. 축복받은 특별한 육체다.
머리니까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머리를 베도 곧 새 머리가 돋아날 것이다.
새로운 머리가 몸통에서 나올 것이다
나올 것이다.

나는 토와를 껴안고 욕실로 옮겼다.
계단밑 공구 상자에서 줄톱을 챙겼다.
탈의실에서 그녀를 옷을 벗겼다. 새하얀 아름다운 피부와 목 위의 대비는 너무 끔찍한 비극이었다.
적어도 아직 그녀의 심장은 뛰고 있다.

...어쩌면 그녀를 죽이는 것은 화상이 아닌 내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미쳐가는가.
그래. 그래도 이젠 상관없었다.

톱을 목에 댄다.
경부를 가르자 피가 크게 분출한다.
목을 잘라내면 그녀는 이제 죽을 것이다.
하지만 실장석은 재생한다. 위석인지 뭔지만 무사하다면 재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머리가 자랄거야.
그 아름다운 눈동자가 다시 나를 바라볼 거야

기억은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이런 불행한 기억따윈 잃어버려도 좋다.
다만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그녀가 얼마나 나를 사랑했던가.
그리고 둘이서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을 새로운 기억으로 살아가면 좋은 것이다.

약 한시간 동안 머리를 썰어 떨어뜨렸다.
튄 피와 기름을 샤워로 씻어 낸다.
몸을 깨끗히 씻어 주고 그리고 연두빛 웨딩 드레스를 입혀 의자에 앉힌다.
잘라낸 머리는 생각끝에 마당에 묻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이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침도. 낮도. 밤도 이제 모든것은 관계 없었다.
일년쯤 지났는지도 모른다.
밖에서는 비가 오고 있다. 차가운 비다. 이게 언제부터 내린 거였지. 나는 잘 모르겠다.

시간도 공간도 일그러지고 있다.
강한 중력은 시간도 공간도 왜곡한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는 블랙홀의 중심처럼 시간이 멈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기다린다

진열장의 브랜디를 열고, 다 마시고, 또 열고 , 또 마셔간다
의자에 앉아있는 토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목 없는 그녀가 대답하는 것은 없다.
아직인가.. 아직인가..
아직 새로운 목이 자라지 않은 건가.
난로의 불이 꺼져가고 있다. 장작도 다 떨어졌다.
빈 브랜디 병을 내던지고 융단 위를 기어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토와...]

아, 토와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는 거니.
계속 나 혼자 두는 거니?
빨리..빨리 돌아오렴.
그녀의 발에 뺨을 비빈다.
이미 그것은 온기도 탄력도 없다.

살과 껍질이 벗겨지는 감촉이 났다. 흙빛으로 변해버린 피부가 찢어져 걸쭉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썩은 냄새다.
썩고 있다.
그녀는 썩고 있다.

[안돼... 안..돼..]
절망이 나를 감싼다. 이전까지 몇번이나 절망해 왔다. 그리고 희망을 찾아 다시 절망에 빠진다.

저주 받았다는 몸
축복된 신체
어디를 잘라도 재생해
그것은 거짓말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이미 뇌 질병을 앓고 있던 그녀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고 있었다
그 순간.

[데..데데데데스우우우]

밖에서 무언가 목소리가 들렸다

[데에에.데데데..데스우.. 데승]

이미 내게 판단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무언가에 씌인 것처럼 목소리가 난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마비된 머리로 문을 열었다 강한 빗소리가 내 귀를 울린다.

기괴한 것이 보였다.
거기에는 토와가 있었다.
탄 얼굴은 피부가 벗져겨 새로운 피부가 돋고, 이전까지 가면처럼 무표정하던 얼굴에는 적색과 녹색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입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겨우 이해했다.

[그래 뇌의 한복판이다. 네가 가르치는 데카르트가 말한 사람의 의식을 관장하는 뇌의 중앙이야]

[실장석의 중심부위 그 녀석이 [위석] 이라는 것이다]

[실장석아, 너는 아무리 잘려도 다시 자라난단다.
이 손가락도 네 팔도. 이마도, 이 다리도
눈을 도려내고도 재생할 거야.]

[실장석이란 생물은 자신의 아이를 낳는데, 그건 완전한 자신의 카피라고 해요]

그래. 완전한 카피인가. 아무튼 본인 그 자체니까.
그녀는 옳았던 것이다. 목을 잘라서 새로운 것이 자라난다
완전한 새로운 동체가

내가 톱으로 절단한 목으로부터 지금, 태아같은 몸통이 나 있다.
그 일그러진 육체에서 아직 손가락이 나지 않은 손발이 달려있다.

그래 실장석이다.
이쪽이 재생의 본체였던 것이다.
나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당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해했다.

너는 네 엄마의 환생이다. 그래서 네 이름은 영원이라는 뜻의 [토와]란다
네 몸은 내 거야. 네 저주 받은 몸은...

나는 그녀가 말했던 그녀의 아버지, 아니 아버지였고 그리고 아마도 전의 남편이었던 사내에게 공감했다.
그리고 나도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 버리게 되는 것인가

그 생각에, 순간 나는 공포에 사로 잡혔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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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호러 소설의 짭이라는 소리도 있던데 뭐 어떻습니까....

댓글 8개:

  1. 너무나 흥분되는데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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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뭐랄까 실장석 이기 보다는 호러 만화 토모에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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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것도 띵작이라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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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실장석 설정 가지고 이런 소설을 뽑아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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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야츠지 유키토의 단편소설 재생과 참피의 콜라보군요. 집에 책이 있어서 함께 읽다보니 시간이 ㄷㄷ;; 그나저나 이 소설이 참피에 너무 어울리는 작품이었음을 알고 더 깜짝 놀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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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실장석 이름만 가져다 쓴 가짜 작품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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