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이제 9월의 소리가 들린다지만, 한여름이나 다름 없는 햇살이 가차 없이 내리쪼여 냉방된 지하철에서 내린 남자의 체온을 상승시킨다.
역에서 직장까지 도보 5분.
그 사이에 있는 소공원에서는 여름을 끝내지 않으려는 것처럼 성대하게 매미가 울고 있다.




출근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
남자는 건너편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서 그늘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조금씩 부는 바람과 손에 들고 있는 찬물에서 땀이 약간 식는다.
그러나 주위의 공간은 매미 소리에 압도되어 있어 심적으론 여전히 무덥다.

벤치 뒤에서 한마리의 자실장이 남자를 보고 있다.
꾀죄죄하고, 비쩍 말라 있다.
눈꼽이 많이 껴있다.
들실장이다.

이 일대에는 직장인 손님을 겨냥한 술집이 많다.
들실장에게 음식점이 내는 음식물 쓰레기는 귀중한 식량이 되지만
그건 도둑 고양이, 까마귀에게도 마찬가지라서 치열한 밥그릇 다툼을 벌여야 한다.
동족 간에도 같은 역학이 작용한다.
친실장 없이 자실장이 살아남을 정도로 달콤한 세계가 아니다.

이 자실장이 말라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자신의 세력권을 가진 들실장들은
수거차가 올 때까지 쓰레기를 뒤지다가 해 뜰 무렵에는 빌딩 그늘에서 잠을 잔다.

남자는 시선을 깨닫는다.
아무 생각 없이 손짓해 보자, 자실장은 슬슬 다가온다.
뭔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매미 소리가 시끄러워서 들리지 않는다.
배를 곯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음식은 없다.
남자는 물을 자실장의 머리 위로 부어 준다.
깊은 의미는 없다.

갑작스런 일에 놀란 자실장의 머리 속에서 경보가 울렸다.
하지만, 차갑고 깨끗한 물은 마르고, 더러워진 피부에 상쾌할 뿐.
양손으로 물을 받아 얼굴을 씻는다.
두건을 벗고 직접 두피에서 물을 받아 본다.
그리고, 입을 열고 물을 마신다.
구정물밖에 마셔 본 적 없는 자실장에게 그것은 맛에 가까웠다.

이정도에 기뻐하기 까지 하다니... 하고
남자는 페트병의 나머지 물을 자실장에 주기로 한다.
조금이라도 길게 주려고 조금씩 물을 떨어뜨린다.
자실장은 부랴부랴 옷을 벗고 샤워를 즐긴다.
몸에 묻은 얼룩이 조금씩 벗겨져 간다.
오물이 묻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물에 씻기며
조금은 볼만한 모양이 된다.

그러나 500 밀리리터의 물로는 한계가 있다.
도중에 샤워가 중단돼 유감인 듯한 자실장.
젖은 앞머리가 얼굴에 달라붙어, 슬픈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남자는 일이 있다.
빈 페트병을 가지고 자실장을 남긴 채 회사로 향한다.


※


다음날 아침 남자는 조금 빨리 지하철에서 회사로 향한다.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두개 산다.
캔 커피와 작은 종이 상자에 든 우유.
그리고 1리터 반 사이즈의 물도 산다.

여전히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남자는 같은 벤치에 앉아 아침을 벌린다.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자실장이 남자를 보고 있다.
남자는 손짓을 한다.
자실장은 이번에는 남자 앞으로 뛰어나온다.

남자는 자실장에 흥미를 가진다.
남자가 살고 있는 곳은 실장 사육이 허용된 임대 아파트이다.
실장석을 키울 생각은 없었지만 집세와 위치를 봐서 선택했다.

실장석 따위는 개와 고양이의 연장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인상이 달랐다.
생각보다 불결하고, 시끄럽다.
위층은 여러 마리를 키우는 듯 연일 연야 운동회다.
야근에 지쳐 돌아와 밤중에 데- 와- 하면 가벼운 살의를 느낀다.
그 사육주의 맹목적인 애호도 지긋지긋 하다.
이름마다 "짱"을 붙여 부르고, 아기한테 하듯이 말을 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돌보지는 않는다.
남의 현관 앞에 예사로 대변을 보게 하고, 뒷정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앞의 자실장은 달르다.
들실장인데도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태도.
오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든다.

남자는 비닐봉지를 땅바닥에 두고 그곳을 가리킨다.
자실장이 그 위에 정좌한다.
빵을 조금 찢어 무릎 앞에 둔다.
빵과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는 자실장.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쑥스러운 듯 시선을 돌려 샌드위치를 조금 먹는다.
자실장도 빵을 입에 넣는다.
입 안의 수분을 빵에 빼앗기니 목이 메인다.
둥둥 가슴을 두드린다.
그것을 보고 남자는 우유 팩을 열고 페트병의 뚜껑에 우유를 부어 자실장에게 준다.
자실장은 단숨에 마신다.
남자는 한잔 더, 우유를 부어 준다.

남자는 아침으로 먹던 샌드위치의 속을 조금씩 자실장에게 나눠 준다.
상추, 햄, 삶은 계란.
자실장은 정좌하고, 나온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모두 처음으로 맛보는 음식이다.

자실장은 결코 스스로 음식을 찾지 않는다.
이전에 닝겐들에게 먹이를 조르다, 발로 채인 동족들을 보았다.
닝겐의 도시락에 손을 대다 뭉개진 실장들도 있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도 없다.
자실장은 그동안 닝겐들로부터 위해를 가하지 않았지만 먹이도 얻을 수 없었다.

아니면 생활권을 바꿔야 하지만 옆 공원까지는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한다.
부근은 교통량도 많아 자실장에게 자살 행위.
자실장은 부득이 이 작은 공원에 머물렀다.

샌드위치 한조각을 남기고 식사를 마친다.
다음은 샤워이다.
물의 양은 어제의 3배로, 충분하다.
이 공원에 화장실이나 식수대가 있으면 물을 사지 않아도 되는데, 어쩔 수 없다.

조금 물을 뿌리면 자실장은 무엇이 시작되는지 곧 이해해 옷을 벗기 시작한다.
먼저 얼굴을, 다음에 머리를, 그리고 몸을 닦는다.
이틀 연속인 샤워에 오랜 때가 떨어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득찬 배가 봉긋 커져 있다.

페트병이 다 비어서 샤워시간이 끝난다.
남자는 쓰레기를 모아 일어선다.
남겨둔 샌드위치를 비닐봉지에 넣어 자실장에게 준다.
자실장이 남자를 올려다보니 이미 공원을 떠나 있다.


※


자실장은 처음으로 닝겐에게서 호의를 입었다.
밥을 받는 것도 기쁘고, 목욕도 기쁘다.
그리고, 그 닝겐은 아무것도 자신에게서 구하지 않았다.

점심 시간,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는 OL과 직장인들이 있다.
귀여움을 선보인 자실장들은 그들에게서 도시락 잔반을 탄다.
이 자실장도 똑같이 해왔다.
하지만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자실장은 이유를 몰랐다.
자신이 닝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응하지 못하는 이상 닝겐과는 관계를 갖지 못한다고 포기하고 있었다.

마마를 잃고 쓰레기장에 못가고, 잔반도 못받는 자실장이
오피스 거리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가까운 장래에 죽음이 확정된 상태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자실장에게 살아갈 희망이 생겼다.


※


다음 날에도 남자는 일찍 집을 나선다.
편의점에서 어제와 같은 상품을 산다.
다만 물은 오백ml짜리 페트병.
보금자리 수풀 속에서 남자의 모습을 발견한 자실장은 공원 입구까지 가서 영접한다.

약간 기세는 누그러 들었지만 아직 매미는 시끄럽다.

어제와 같은 벤치에서 어제와 같은 아침을 먹는다.
자실장은 울지도 않고, 소동도 없이 정좌하고 남자가 주는 식사를 그냥 기다린다.

남자는 집에서 카페오레용 큰 컵을 가져왔다.
선물 받은 것이지만, 프랑스인처럼 큰 컵으로 카페오레를
마시는 습관이 없는 남자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자실장에게 옷을 벗고 거기에 들어 가도록 몸짓으로 알린다.
자실장이 그릇에 들어가자 천천히 물을 부어 준다.
생각한 대로 자실장의 목욕에 적당한 크기다.
이러면 샤워와 달리, 낭비가 없다.
게다가 천천히 물에 잠겨 있을 수 있다.
자실장은 기분 좋아 컵안에서 몸을 비비꼰다.

남자는 나머지 물로 옷을 빨기로 했다.
그러나 똥 묻은 옷을 가급적 만지고 싶지 않다.
손 끝으로 조금 따서 쓱쓱 비빈다.
처음엔 자신의 옷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되 제정신이 아닌 자실장이었지만
더러워져 짙은 녹색 빛이던게 생생한 녹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얼굴을 빛낸다.

자실장은 보고 흉내내며 옷을 빨기 시작한다.
컵의 물은 금새 탁해졌지만 그만큼 옷은 깨끗하게 되었다.
남자는 컵을 들어 구정물을 버린다.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옷을 짠다.
날씨가 좋으니 옷은 금새 마르겠지만 벌거벗겨 두는 것은 딱하다.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토가처럼 둘러 씌운다.

젖은 옷은 떨어져 있는 잔가지에 걸어서 자실장에 들려 보낸다.

매미가 시끄러운 탓인지 자실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남자가 떠나면 자실장은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하지만,
더 있어 달라든가 데리고 가 달라든가 하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
남자는 그게 마음에 든다.
친실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혼자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엄청난 행운이 없는 한 오래 살수는 없다.

이 녀석을 키우자, 그렇게 마음먹는다.
아파트에 있는 그런 실장석이라면 사절이지만 이 녀석과 함께라면,
이 차분하고 현명한 자실장과 함께라면 괜챦을 것 같다.

내일은 휴일이다.
차로 여기까지 와서 데리고 가자.
남자들은 자실장에게 이별을 고하고 회사로 향한다.


※


자실장은 행복했다.
사흘 연속 몸을 씻을 수 있었고,
게다가 오늘은 옷까지 깨끗이 해 주었다.
남자가 입혀 준 옷은 스르륵 흘러내려 입고 있을 수 없지만
옷을 입힐 때 닿은 손의 따듯함을 잊지 못해
남자의 냄새가 나는 이 옷을 좀처럼 벗 수 없었다.

아침 뿐만 아니라 더 오랜 시간 그 닝겐과 같이 있고 싶다
─ ─ 그 닝겐과 함께 살고 싶다.
현명하게 있으면 그 닝겐의 아기로 해 줄까?
마마는 자매들과 먹이를 가지러 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마마는 이런 때 어찌해야 할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


다음날 남자는 차로 그 공원에 간다.
집에 데리고 가려 하면 그 자실장은 싫어할까.
아니, 들실장의 꿈은 사육실자이 되는 것.
분명히 기뻐할 것이다.

도로를 낀 반대편에 차를 세우고 차를 내린다.

오피스 빌딩의 에어컨이 휴일 모드가 된 탓일까.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매미 소리도 사라진 것을 남자는 깨닫는다.

자실장은 공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남자가 차에서 내린 것을 보고 도로로 뛰어나온다.

"위험해, 오지마!"

남자는 손을 뻗고 고함을 지른다.
오늘은 매미 소리에 묻혀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자실장에는 역부족이다.

자실장은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말도 못 했다.

그래서, 생존 경쟁이 치열한 오피스가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판단한 친실장에게서 버려졌다.
다른 자실장들 흉내를 내도 귀엽게 울지 못해
닝겐에게서 먹이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순간의 일이다.
트럭이 달려가는 도로에 녹색과 빨강의 얼룩을 만든다.

자실장은 자신이 죽은 것마저 몰랐다.
그냥 길 건너 편에 그 닝겐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밖엔 못봤다.

자실장이 가지고 있던 편의점의 비닐봉지가 남자의 발밑에 날려 온다.
안에는 어제 입혀 줬던 손수건이 예쁘게 접혀 들어 있다.
그리고,
자실장이 배고플 때 먹으라고 남자가 일부러 남겼던,
또 자실장은 남자와 함께 먹으려고 손을 대지 않았던,
샌드위치가 들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