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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산 실장석

공원에서 멍하니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돌연, 누군가 다리를 두들겼다.
아프잖아, 뭐야?
눈을 돌리니 주름 투성이의 못생긴 실장석이 내 다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건방진놈이다. 딱밤이라도 먹여주자고 생각했지만 깨끗한 목걸이를 차고있는 것을 눈치챘다.
사육실장인가... 가까이에 주인이 있을수도 있겠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안보인다.
걷어차버릴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실장석이 신이나서 지껄이기 시작했다.
데스데스데슷 데스데스...
무언가를 어필하는 듯 했지만 뭔 소린지 알수가 있어야지. 그래, 폰에 린갈 기능이 있었지.
데스데스데스데스데슷 데슷 ------ 닌겐, 어이 닌겐. 내 말이 안 들리는 데스?

오마에, 와타시를 기르는데스.
지금 내 주인은 심한 학대파인 데스.
그녀석은 와타시에게 하찮은 식사만 바치고있는데스. 스테이크가 먹고싶다고 말해도 [건강]이라나 뭐라나 이해가 안가는 소리만 지껄이면서 다른걸 주질 않는 데스. 게다가 와타시의 자매나 딸까지 와타시보다 먼저 죽어버린 데스.
많은 죽음을 봐온 데스. 반드시 그녀석이 무슨 짓을 한게 틀림없는 데스.
그리고 그녀석은 누군가 죽을때마다 와타시에게 오래살라고 말한데스.
누군가 죽는 꼴을 더 보게 할 속셈인 데스. 그런건 이제 싫은데스!
그러니 오마에, 와타시를 기르는 데슷! 와타시를 구해달라는 데슷!

한바탕 지껄인 후, 그 못생긴 실장석은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실장석 치고는 꽤나 나이를 많이 먹은 듯 하다.
사육주가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준 덕택이다. 그런데도 이놈 말하는게 참..

[어이구, 이런데까지 와 있던거니?]
점잖은 신사의 목소리.
나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이 아이의 말상대를 해주고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실장석을 안아들었다. 그리고 날뛰는 실장석.
[하하, 날뛰면 위험하다 욘석아!]
[실장석을 몇 마리고 키워봤지만, 이 아이가 제일 오래 살았어요. 아직도 건강하죠?]
[이젠, 딸아이나 다름 없다니까요]

실장석은 신사의 품 안에서 더욱 날뛰기 시작한다.
데스웃! 데스웃! 데스 ------ 이거 놔라 바보 닌겐! 평생 원망해주는 데스!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데스!
폰에는 실장석의 한이 담긴 문자가 떠오른다.
내 폰에 무언가 뜨는걸 신사가 눈치 챘다. 나는 화면을 기울여 신사에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이거 실례, 린갈입니까. 세상 참 편해졌군요. 저는 쓸줄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오랜기간 같이 있으면, 린갈같은게 없어도 서로 무얼 생각하는지 정도는 통하는법이랍니다.]
[그럼, 슬슬 가보겠습니다.]

데엣! 데데엣스! 데에.... 언젠가 죽여버리는데스! 죽이는데스! 죽이는데스! 죽이는데스! 죽이는데스!
신사에게 안긴 채 멀어지는 실장석의 외침이 폰에 기계적으로 번역된다.
나는 잠시 화면을 보고있다가 폰에 실장석이 하는 말이 뜨지 않게 되자 린갈을 껐다.

저 멀리에서, 실장석의 외침이 들려온다.

댓글 4개:

  1. 신사집에 린갈하나 보내줘야되겠데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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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ㅋㅋㅋ 쟤는 그냥 오래오래 살게 해줘야지 그게 괴로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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