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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

어느 날 저녁, 나는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문득 뭔가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귀를 기울여본다.
현관 쪽에서 콩콩...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또 실장석이 구걸하러 오거나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내버려 뒀더니

"뎃데로게ㅡ, 뎃데로게ㅡ."

포기하기는커녕 왠지 노래하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겠다.

돌아갈 기미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뎃데로게ㅡ, 뎃데ㅡㅡ."

"시끄러워, 무슨 짓이야?"

현관 앞에는 비닐봉지를 든 실장석 친자가 있었다.

"데스ㅡ, 데스ㅡ."

"테치이!"

"무슨 소린지 모른다고. 좀 기다려봐."

갖고 있던 링갈을 켜서 실장석에게 향한다.


"닝겐상, 뭐든지 좋으니까 먹을 것을 주세요 데스."

"주세요 테치!"

"아앙? 멋대로 기분 나쁜 소리로 노래해놓고 그 대가를 요구하는 거냐? 까불지 마."

받는 대신에 뭔가를 하려는 것은 그저 '물건을 내놔라'고 말하기만 하는 놈들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실장석, 현관 앞에서 데스데스 떠들어도 민폐밖에 안 된다.
당연하지만 먹을 것 따위의 대가로는 부족하달까.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다.

"너희 같은 분충은..."

"아, 아닌 데스! 이건 노래가 아니고 '탁발' 데스!"

"......뭐? 탁발?"

또 묘한 말을 꺼낸다.

"그런 데스! 현관에서 경을 읊는 탁발인 데스우!"

"탁발하면 밥을 먹을 수 있는 테치!"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설명하는 친자.

"으, 음. 잘 모르겠지만 탁발이라면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분충은 아닌 것 같고, 너무나 필사적이길래 불쌍해졌다.
애호파는 아니라서 적극적으로 실장석을 도울 마음은 없지만 조금 정도는 원조해주자는 기분이 된다.

"별 건 아니지만 가져가라."

낮에 먹다 남은 도시락, 눅눅해진 스낵 과자 등을 비닐봉지에 넣어준다.

"대단한 테치, 진수성찬이 가득한 테치."

"이만큼이나? 정말 받아도 되는 데스?"

"부담 갖지 마. 그냥 놔두고 있던 참이라, 어차피 버릴 거야. 사양 말고 가져가."

"가, 감사합니다 데스! 이렇게 기쁠 수가 없는 데스."

감격해서 반 울음 섞인 실장석을 보니 가끔은 이런 것도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데스. 정말로 감사합니다 데스."

몇 번이나 꾸벅대는 실장석에게 말을 건다.

"응...... 아니 잠깐!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다."


어리둥절하는 실장석의 앞머리를 잡고 단숨에 뽑는다.

"뎃!?"

뿌직! 하고 소리가 나고 별다른 손맛도 없이 시원스레 뽑혔다.

"다음은 뒤야."

"데기익!"

뒷머리를 가차 없이 뽑아나간다.

대머리가 된 친을 보고 자실장이 웃음을 터뜨린다.

"테프프! 마마 이상한 얼굴 테치, 털이 없는 테치!"

"너도 그렇게 될 거야."

"테챠아아아아아!!"

이렇게 해서 대머리 실장친자가 생겼다.

"어......어째서......"

"그럼 이만. 여러모로 힘들겠지만 몸 성히 잘 살아라."

머리를 탁탁 만지며 멍하니 중얼거리는 실장석을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데갸ㅡ?!"

다시 떠들기 시작한 실장석을 무시하고 링갈 스위치를 끈다.
더 내놓으라고 하는 걸까? 그렇지만 그 정도로 호구는 아니다.

"데, 데갸아! 데갸아!"

좀 시끄럽지만 조만간 포기할 것이다.
실장석의 힘으로 현관을 부술 수도 없고, 그다지 해를 끼치지도 않을 것이다.

"데갸아ㅡ 데갸, 데......데에에엥, 데에에엥!"

그나저나 정말 묘한 실장석이다.

탁'아'(託児)를 하는 실장석은 자주 보지만 하필이면 탁'발'(託髪)이라니.
뭐 이왕 맡았으니 어딘가에 장식해놓을까.

"데샤아아아ㅡ!!"


-끝

댓글 6개:

  1. 스님으로 만들어주려고 뽑은줄알았는데 터럭발이어서 뽑은거였네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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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탁발 멍청아ㅋㅋㅋㅋ 인간이 멍청해서 의도치 않게 저지르는 일도 재밌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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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실장석보다 무식한 닌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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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무상의 행복 따위는 없으니 정당한 거래지. 인간도 밥 먹으려면 돈 벌어야 하는데 하물며 똥벌레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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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ㅋㅋㅋㅋ시발 병신같은데 귀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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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 탁발이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정당한 거래는 했으니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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