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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이라는 종

주의 : 가치관에 따라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공원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수풀.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게끔 위장한 골판지 상자로부터 한마리의 성체실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한 이른 새벽.
낙엽이 떨어지는 이 계절에는, 인간조차도 추위를 느끼는 이른 시간대다.
그런데도 추위에 몸을 떨면서 이 성체실장은 동족들이 깨어나기 전에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최근에는 들실장에 대한 인식도 나빠져, 지방자치단체들도 대책을 세우고 있다.
인간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또 뒤져놓은 쓰레기장을 정리하고 감추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른 시각부터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성체실장은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안녕하신데스]
[안녕하신데스. 닝겐상들이 오기 전에 서두르는데스]



쓰레기장에 도착해 둘러보면 오늘은 벌써 선객이 와 있다.
낙담을 감추고, 망을 보는 실장석에게 인사한다.
그리고 쓰레기를 뒤지는 대열에 합류한다.
인간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수확은 정해진 시간에만 하게 되어 있다.
늦게 일어나면 그만큼 시간도 모자라게 된다.



이곳에 모인 실장석들은 알고 있었다.
인간이 쓰레기를 버리는 날은 정해져 있지만,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인적이 드문 새벽이지만, 들킬 가능성은 결코 제로가 아니다.
딱히 세세한 규칙까지는 없어서, 수확의 시간은 처음 도착하는 실장석이 정한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시간이 언제인지 알 방법도 없고,
지각한 동족을 기다려줄 여유 또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기 때문에 횡적인 동료의식도 거의 없다.
단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거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 정도로만 본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세워진 엄격한 규칙을 지켜, 그것을 어기면 처벌한다.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쓰레기장에서 서로 돕는 일 따위는 거의 없다.
어느 개체라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고작이다.
그들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서로 잡담을 나눌 일도 없이 입을 다물고 쓰레기장을 뒤지는 실장석들.
성체실장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자실장을 데려오는 개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좋게 바라보는 이는 거의 없다.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질러 인간의 주의를 끌거나,
고집을 부려 시간이 되도 쓰레기장을 떠나려고 하지 않거나,
정신적으로 미숙한데다 판단력도 없는 자실장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방해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를 데려온 성체실장은 쓰레기장의 변두리에 있는 것들만 주울 수 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실장을 데리고 오는 것은 견학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무질서하게 쓰레기를 뒤지는 실장석들.
찾고 있는 물건은 각자 다양하다. 방한도구로 쓸 인간의 옷이라던가.
똥 이외에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없는 실장석들에게는 있어 이곳은 보물의 산이다.
최근에는 길냥이나 까마귀, 들실장에 대한 대책으로 쓰레기 위에 그물을 덮어놓지만,
앞의 둘보다 지능이 높은 실장석에게 그런 것은 무의미하다.



비교적 늦게 도착한 성체실장인 미도리는 얼마 남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를 추려서,
그나마 깨끗한 야채 찌꺼기들을 열심히 모은다.
집은 여러 개의 골판지를 써서 보강해놨기 때문에 비와 추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여기서 쓰레기를 줍는 대부분의 들실장은 월동 준비를 꼼꼼하게 하고 있다.



결국 미도리가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한지 10분정도 지나, 모두가 돌아갈 준비를 한다.
각자 어질러놓은 것을 정리하고 흔적을 최대한 없애, 마지막으로는 그물을 다시 덮는다.
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좀더 수확물이 많아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통이 나서 인간들이 본격적으로 대응한다면 몹시 곤란해진다.
얼마 전에는 맹목적인 애오파가 기르는 사육실장이 습격당한 일도 있어서,
그 애오파가 들실장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없어졌다.
어리석은 동족이 저지른 죗값을, 같이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망을 보던 실장석에게 보수로 자신의 수확물을 조금씩 나눠준다.
공원으로 돌아갈 때도 함께 모여서 가지는 않는다.
자실장을 데리고 온 이들이 가장 멀리 빙 둘러 돌아가고,
고참들이 가장 가까운 길로 곧장 귀가한다.
실장석이 몇 마리 모이면 악취가 심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만일 발각되었을 때를 위한 리스크 분산도 필요하다.



미도리가 포함된 것은 3번조.
여기 모인 실장석들의 커뮤니티에서 비교적 고참에 속하는 미도리는,
다른 곳에 비해 안전한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위가 올라간 것은 다른 실장석들이 죽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지위가 높아질 방법이 없다.
있다면 자실장을 데리고 와서 스스로의 지위를 떨어뜨린 경우 뿐일까.



거기까지 생각해낼 수 있는 미도리는 평범한 들실장이 아니다.
전(前)사육실장.
펫숍에서 혹독한 훈육을 받아, 주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도록 만들어진 개체.
쓰레기장에 있었던 실장석들은 대부분 이전에 사육실장이었던 것들이다.
주인에 대한 헌신도 헛되이, 주인의 변덕으로 인해 쫒겨나, 공원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는 성체로 자라서 귀엽지 않게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버려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언젠가 다시 주인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그저 굳게 믿고만 있다.
그것은 실장석 특유의 행복회로가 원인일까.
미도리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하는 주인과의 재회를 갈망하여, 공원에서의 혹독한 생활을 견디고 있다.
전사육실장의 긍지를 가지고 어떻게는 살아가는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라도 그나마 덜 더러운 것만 가려서 먹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탁과 목욕으로 몸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주인과 마주칠 것에 대비해, 수면을 거울삼아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기까지 했지만,
오늘도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이미 버려진 지 반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말로 좋아했던 주인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애정을 쏟아, 자신을 길러준 주인을.



[다녀온데스. 얌전히 잘 있었던 데스카?]
[마마, 어서오시는테치]
골판지 상자로부터 어미를 마중나온 사랑스러운 자.
아직 자실장이지만, 엄격하게 훈육시킨 덕에 분충끼를 보이지는 않는다.
한 마리는 아직도 자고 있다.
자매를 깨우지 않기 위해 소리를 낮춰 말하는 것이 참으로 기특하다.
버려진 후에 공원에서 낳은 자이지만, 나름대로 사랑스럽다고 미도리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홉 마리나 있었던 자들도, 지금 남은 것은 두 마리 뿐이다.
다른 동족에게 습격당하거나 학대파가 죽인 것도 아니다.
모두 미도리가 솎아냈다.
태어나자마자 분충끼를 보이는 세 마리는 화장실에 방치했다.
동족의 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
몸에서 악취를 풍기는 것은 미도리로서도 싫고,
브리더도 동족식만큼은 결코 해서는 안될 금기라고 교육했기 때문이다.
이틀 후에는 두 마리가 더 줄었다.
분충은 아니지만. 머리가 너무 나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네 마리.
하지만 장녀는 미도리에게 주인 따위 그만 잊고 살자고 말했다가 살해당했다.
삼녀는 세탁까지는 어찌저찌 배웠지만 청소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살해당했다.
살아남은 것은 차녀인 미도와 8녀인 도리 둘 뿐.
미도리는 마음에 든 두 자에게 스스로의 이름을 나누어 주었다.



모성애가 넘쳐서 자들을 기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비상식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다.
미도리의 입장에서 자들은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실장석은 본래 홀몸으로 살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종.
그것을 견디기 위해, 미도리는 자들을 낳은 것이다.
일부 사육실장은 자들을 끔찍히 아끼는 경우도 있지만, 미도리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도리에게 있어서 세계의 중심은 주인님이기 때문이다.
주인의 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
자들조차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이런 성격을 가진 미도리를 분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호화로운 생활을 바라지도 않고, 오로지 주인만을 생각하는 미도리가.



[오늘은 그다지 가져온게 많지 않은 데스]
[하지만 있다가 편의점에서 뭔가 사올테니 조금 참는데스]
[괜찮은테치. 내일부터 와타치도 돕고 싶은 테치]
[와타치는 충분히 배부른레치. 마마도 무리하지 않는게 좋은 레치]



엄지실장인 8녀 도리가 깨어나, 세 마리는 식사를 시작한다.
모처럼 손에 넣은 야채 부스러기도 셋으로 나누면 한 끼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낮에는 풀이나 열매 또는 벌레를 먹어 견디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도리는 화폐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서,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예전에 주인에게 배운 것이지만 지금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으며,
혹독한 공원 생활을 견디는 요령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살 수 있는 것은 항상 뻔하다.
자극적인 맛의 과자가 아닌, 양이 많고 싸구려인 최저 수준의 실장푸드.
한번 인간의 먹을 것에 손을 대면 돌이킬 수 없다.
펫숍에서 받은 교육을 미도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잘먹었습니다 레치]
[와타치도 잘먹었습니다 테치. 마마, 밥을 찾아보는 테치]
[안 데스. 잠깐 쉬고 같이 밥을 찾아보는 데스]
미도리가 엄격하게 훈육시킨 보람도 있어서, 예의바르게 잘 자라고 있다.
역시 두 마리의 수준은 미도리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사육실장으로 오해받을 만한 수준은 된다.



예의바른 자들과 따뜻한 집.
평온하다거나 풍족하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견딜만한 삶.
여기에 주인만 존재한다면 미도리의 생활은 완벽하고 지극히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한번 버린 사육실장을 다시 주워와서 기르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도리는 지금의 생활이 눈꼽만큼도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도리는 알지 못한다.
지금 자신의 삶이, 모든 실장석들 중에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을.
마실 물과 먹이조차 충분히 얻지 못해 굶주림에 시달리는 실장석은 수없이 많다.
주인과 다시 만날 일만 학수고대하는 한 그녀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이것도 실장석의 숙명인 것일까.
지금 가진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그럼 나가서 같이 밥을 찾아보는데스. 도리는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데스요]
[...다녀오시는레치]
[그런 표정 하지 않아도 괜찮은테치. 금방 돌아오는 테치]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고, 밥을 찾아서 밖으로 나간다.
뭔가 만족스럽지 않는 표정을 한 채 고개를 숙인 도리를 달래고,
친자 두 마리는 골판지의 집을 나와 간이식 자물쇠로 문을 잠근다.



공원이라고 해도 공터에 놀이기구만 있는 수준의 작은 것은 아니다.
중앙에 분수가 설치된 있는 제법 커다란 공원이다.
이 공원에서 사는 실장석의 숫자는 200마리쯤 된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개체는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은 벌레나 풀, 낙엽 등으로 겨우 허기를 달래고 있다.
그리고 공원 중앙의 분수에는 여름만 되면 수많은 실장석이 물을 마시려고 모여,
그때마다 지자체에서는 들실장들을 구제했다.
공원에 오면 분수가 온통 녹색으로 덮여 있다는 불만이 많아,
분수의 철거를 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지금 이야기하고는 관계없어서 생략한다.



의기양양하게 집 밖으로 나온 두 마리였지만, 얻을 수 있는 먹이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인간이 버린 물건은 경쟁이 심하고 리스크도 높기 때문에 제외.
인간에게 아첨해서 먹이를 조르는 것은 전 사육실장인 미도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주인에게조차 한번도 아첨해본 적이 없다.
알지도 못하는 인간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선택지는 뻔하다.
풀을 뜯어 허기를 달래던가, 아니면 벌레를 잡아서 먹던가.
그러나 마침 계절은 겨울. 벌레 한 마리조차도 찾기 어렵다.
결국 낙엽과 잡초가 두 마리의 식사가 된다.
그래도 낙엽 중에는 그나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존재하기 때문에,
비교적 나은 물건을 찾아 두 마리는 방황하는 것이다.



[저 주변의 낙엽은 별로 맛이 없으니 가져가서 집에 깔아놓는데스네]
[그럼 와타치가 이쪽의 맛있는 낙엽을 들고 갈테니 마마는 그것을 드는 테치]

다행히 제법 멀리까지 나온 보람이 있어, 어느정도는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미도의 말처럼 되지는 않지만.
미도는 아직 15cm 정도의 자실장.
들 수 있는 양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
평소에는 제법 우수하지만, 어미를 도울 수 있다는 달성감에서 오는 행복회로가
미도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친자는 낙엽을 들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오래 있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
집 밖은 위험한 것들로 가득하니까.



[데덱...!? 미도, 빨리 숨는데스!]
[마마- 무서운테치!]

기분좋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두 마리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한 명의 소년.
초등학생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실장석에게는 아주 위협적인 존재다.
부랴부랴 근처의 수풀로 숨지만, 계속 근처를 서성이는 소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떠는 미도를 달래며,
미도리는 필사적으로 주인에게 기도했다.



"얼레... 이상하네? 참피들이 여기 있었던거 같은데, 어디로 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풀로부터 멀어지는 소년을 보며, 두 마리는 겨우 마음을 놓았다.
저 소년은 들실장들에게는 제법 유명한 존재다.
자신들을 길러주는 하인으로서.
소년은 공원에 올 때마다 적당한 들실장을 골라 데리고 갔다.
그것을 보고 다른 들실장들은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제법 머리가 도는 미도리는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정말로 소중히 길러준다면 그렇게 몇 마리나 거듭 데리고 갈 리가 없다.
아마 학대파이거나, 그럴 마음은 없었는데 실수로 죽여버렸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노리개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미도리는 주인님 이외에는 길러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겨우 사라진 데스. 미도. 괜찮은데스카?]
[무서웠던테치... 저 닌겐상은 와타치들을 잡아가는 테치]
[잡혀가면 마마나 도리와 같이 살지 못하는 테치...]
미도의 피눈물을 닦으며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미도리.
미도리의 교육이 잘못됐는지, 아무래도 미도는 인간을 무서운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다.
아무래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들실장이 학살당한 현장을 목격한 것이 트라우마가 된 탓일 것이다.
머리가 나쁘다면 금방 잊어버렸겠지만, 나름대로 기억력이 좋은 미도에게는 무리였다.
훈육 덕분에 빵콘은 하지 않았지만 이정도로 두려워한다면 아무래도 곤란하다.



[마마, 저쪽에! 동전이 떨어져 있는 테치!]
[아까 그 닝겐상이 떨어뜨린 것 같은 데스네...]
겨우 울음을 그친 미도가 길에 떨어져 있는 은색의 물체를 발견하고는, 흥분해서 외친다.
틀림없다. 100이라고 쓰여진 숫자가, 미도리에게는 확실히 보였다.
미도리는 주변을 살피고, 아까의 소년이나 까마귀가 없는지 거듭 확인한다.



[빨리 주워서 집으로 가져가는 데스!]
떨어져 있는 것은 100엔짜리 동전.
신장 40cm의 미도리는 간단히 주울 수 있는 물건이다.
동전 한 개만으로는 별로 살 것이 없지만, 여러 개를 모르면 꽤 괜찮은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동전을 낙엽으로 감싸, 미도를 재촉해서 집으로 서둘러 돌아온다.



미도리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습격해 오는 까마귀들도 동전을 모은다는 것을.
또 인간도 동전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것을.
물론 인간이 만든 것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까마귀나 인간과의 쟁탈전이 되면 승산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
허둥지둥 자신을 쫒아오는 미도를 힐끗 보고는, 미도리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이걸로 약간 저금이 생긴데스. 안심하고 겨울을 보낼 수 있을거 같은 데스네]
[오네챠, 괜찮은레치? 얼굴이 파란 레치]
[ ───── ]
간이 저금통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미도리.
있는 힘을 다해 달린 미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것을 본 도리는, 등을 문질러주고 있다.
정기적인 수입이 있을 리 없고, 돈이 들어오는 것은 운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놓쳐서는 안된다.
조금은 미도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미도리였지만, 이것은 미도를 위함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세 마리는 낙엽을 갉아먹고, 가져온 것은 바닥에 깔아 낮잠을 잔다.
먹이 모으기도 끝난 덕분에, 세 마리는 다른 실장석들과는 달리 비교적 여유가 있다.
밖에 나가서 위험에 스스로는 노출시키거나, 함부로 체력을 소모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한창 놀고 싶을 때인 미도나 도리도 유혹을 참아, 얌전하게 미도리를 따른다.
왜냐하면 두 마리에게 있어 어미인 미도리는 절대 복종해야 할 존재이며,
거역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욕 시간인데스. 발각되기 전에 서두르는 데스요]
[마마, 와타치 하고싶지 않은테치. 지금 목욕하면 얼어 죽어버리는테치]
[...알겠는데스. 마마만 하는 데스. 하지만 미도와 도리도 따라오는데스]
오후 8시 반. 들실장들은 대부분 잠드는 시간이며, 미도리 일가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골판지 하우스에서 걸레 조각을 꺼내들고, 미도리는 주위를 경계하며 공원 중앙의 분수로 향한다.
목욕과 세탁은 같이 한다. 역시나 이렇게 추운 날씨에 찬물에 들어가는 실장석은 거의 없다.



미도리는 분수에 도착하자 옷을 벗고 그것을 미도에게 맡긴 후, 찬물에 몸을 담근다.
분수에 고인 물은 미도리의 상상 이상으로 차갑고, 사람이라도 주저할 수준의 냉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도리에게는 목욕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마마, 괜찮은 레치?]
[마마는 괜찮은데스. 주인님을 위해서... 언제나 몸을 깨끗하게 해야만 하는데스]
추위로 몸을 떨면서도 웃는 미도리를, 미도는 싸늘한 눈으로 보고 있다.
미도에게 있어 미도리는 무섭지만 그 이상으로 상냥하고 의지가 되는 어미다.
하지만 왜 여기 있지도 않은 인간을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들실장이 미도리를 '버려진 분충' 이라고 욕했던 것을 미도는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나 들실장들보다도 훨씬 머리가 좋은 미도리가,
아직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아직도 미도리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
그것은 그녀가 한때 사육실장이었다는 틀림없는 증거.
그것만 있으면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한 들실장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킨 물건이다.
똑같이 행동하는 다른 전사육실장이 많아서인지 지금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지만.



미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미도리는 이미 주인에게 버려져, 다시는 그 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것을 입밖에 낼 수는 없다.
장녀가 같은 말을 했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미도는 기억하고 있다.
자들의 훈육을 할 때도 냉정침착했던 미도리가, 불같이 화를 냈었다.
씨근덕거리며 평소에는 말하지 않던 온갖 욕설을 쏟아내고,
장녀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두들겨 맞은 끝에 죽었다.
걸레 조각으로 담담히 몸을 닦는 미도리를, 미도는 아무말 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럼 마마는 편의점에 갔다오는데스. 집에서 얌전히 자는 데스요]
[다녀오시는 테치]
목욕이 끝나고, 미도리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아침식사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사과하는 의미에서 실장푸드를 사오는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한정된 돈을 아껴써야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수입이 들어왔으니 이 정도 소비는 괜찮을 것이다.



미도리는 전봇대 뒤로 숨으면서 편의점으로 서둘러 이동한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나 사람은 얼마 없지만, 주위 경계를 잊지 않는다.
도로는 공원보다도 위험이 넘쳐나는 곳이다.
조금만 긴장을 끈을 놓쳐도 즉시 죽음이 찾아오는데다 몸을 숨길 곳도 마땅찮다.
이렇게 해서 꽤 시간이 걸려 편의점에 도착했지만,
편의점 앞의 주차장 곳곳에는 적록의 찌꺼기가 붙어있다.
아마 어리석은 동족이 탁아를 시도하거나, 인간에게 먹이를 조른 결과일 것이다.



그것을 본 미도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면 실장석 전체가 댓가를 치르게 되어 있는데도,
왜 멍청한 짓을 해서 화를 자초하는가.
동족의 무모한 행동에 미음속으로 화를 내며, 미도리는 자동문 앞에 섰다.



"어머 오늘 밤도 쇼핑이니? 후훗, 어서오려무나"
미도리를 보며 포니테일의 여성 점원이 자동문을 열어 주고, 미도리를 안쪽에 들인다.
원래대로라면 들실장을 가게 안으로 들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사육실장이라도 주인 없이 가게 안으로 들여서는 안된다.



[항상 감사한데스]
"천만에요, 혼자서 물건을 사러 온다니 기특하구나"
링갈을 통해 미도리의 한 말을 알아들은 점원은, 기쁜 듯이 미소지었다.
아직 목걸이를 하고 있어서인지, 아무래도 미도리를 사육실장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미도리가 들실장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녀의 대응은 같았을 것이지만.



"맞다, 오늘은 뭔가 덤으로 얹어줄까?"
점원의 말에 눈동자가 빛나는 미도리.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미도리는 쓸쓸하게 고개를 저으며, 점원의 호의를 거절했다.

[사양하는데스. 주인님께서 다른 사람이 주는 물건을 함부로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신데스]
"아~ 역시 주인님이 화를 내실까? 아쉬워라. 하지만 좋은 주인님인것 같구나.
내가 굳이 뭔가 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해 보여"



주인 이외의 사람이 주는 물건을 받아서는 안된다.
주인이 학대파로부터 미도리를 지키기 위해서 내린 지시였지만,
들실장이 된 지금도 미도리는 그 지시대로 따르고 있다.
아쉬운 듯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점원에게 감사를 전하며,
미도리는 언제나처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물건을 들어 계산대로 옮겼다.



점원의 착각에 마음이 아픈 미도리는 속으로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스] 라고 중얼거렸다.
풍족한 먹이, 실장석의 한계를 넘은 지능, 귀엽고 똑똑한 자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주인이 없는 한 미도리가 행복할 일은 없다.

게다가 미도리는 알고 있었다.
눈앞의 친절한 점원도 분충에게는 무자비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동족의 시체를 옮기면서 "어서오세요~"라고 웃음짓고 있었던 모습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자 그럼, 또 와주렴]
[친절하게 대해줘서 감사한데스]
그렇게 말하고 미도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거의 자신의 몸만한 크기의 실장푸드를 안고 편의점으로부터 나왔다.
그것을 집까지 옮기는 것은 매우 힘든 중노동이지만,
자들이 기뻐하는 모습과 자신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참고로 미도리는 거스름돈은 받지 않는다.
십엔이나 일엔 동전은 필요하지 않고, 점원의 친절함에 보답하는 의미도 있었다.



이정도로 똑똑한 미도리지만, 아직도 자신을 버린 주인이 다시 찾아올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좀더 지능이 낮고 주인에 대한 애정이 덜했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뒷편으로부터 어지러운 발소리가 미도리의 귀에 들어온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자 뒤를 돌아본다.
멀리서 얼굴이 시뻘겋게 된 남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핏발선 눈이 예사롭지가 않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전력으로 도망가는 미도리.



그러나 결국 그래봤자 실장석.
그것도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상태라 인간 입장에서는 멈취있는 것과 큰 차이도 없다.
상대와의 거리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싸늘한 감각이 미도리의 머리를 꿰뚫었다.
아픈 정도가 아니다.
남자가 힘껏 걷어찬 부위에서 피가 쏟아진다.
머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새도 없다.
미도리의 눈앞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편의점의 비닐 봉투를 내던지는 남자.

"너냐? 내 봉투에 자실장을 탁아한 씨발새끼가"
봉투 안에서 흘러나오는 적록의 찌꺼기와, 머리가 쪼개진 자실장의 시체.
미도리는 겨우 이해했다. 남자는 자신과 다른 동족을 착각한 것이다.
탁아라는 어리석은 행동은 한 동족을.



"이건 씨발 또 어디서 훔친거야?
어디 사는 개새끼인지는 몰라도 이딴 쓰레기들을 기르는 미친놈들이 있어?
이딴 씨발 좆같은 새끼들을 애호한다고? 아오 개 씨발 진짜..."



탁아당한 것을 눈치채고 집에서 뛰쳐나온 남자와, 이 자실장의 어미는 아마 중간에 엇갈렸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의 분노는 편의점의 가까이에 있던 미도리를 향한 것이다.
남자는 애호파도 학대파도 아니다.
하지만 먹을 것의 원한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아 좆같네 씨발! 내 저녁밥! 야근 마치고 겨우 집에 왔는데, 이 씨발 좆같은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불합리하기 짝이 없다. 미도리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인간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쓰레기를 줍고, 화폐를 사용할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데.
어리석은 동족이 저지른 일의 댓가를, 미도리가 치르고 있는 것이다.



남자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미도리의 옆구리에 꽂힌다.
피를 토하며, 두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미도리.
먹혀버린 저녁밥 때문인가, 아니면 화풀이인가, 양쪽 모두일 수도 있다.
남자의 폭력에는 전혀 봐주는 기색이 없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뽑힌 미도리의 양쪽 팔이 아스팔트 위를 굴러간다.



하지만 미도리는 결코 여기서 죽을 수 없다.
그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두 마리의 자가 아닌, 사랑하는 주인님의 모습.
주인님은 언젠가 반드시, 자신을 맞으러 온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죽을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비정하다.
남자의 구타는 그치지 않고, 이미 팔다리를 전부 잃은 미도리를 또 걷어찬다.
분노로 반쯤 이성을 상실한 남자의 눈에, 미도리의 목에 걸려있는 낡은 목걸이가 보일 리도 없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미도리는 생각했다.
이렇게 흉한 모습으로는 주인님을 만날 수 없다.
다친 부위의 재생이 끝날 때 까지는 주인님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자.
피가 잔뜩 묻은 옷도, 빨리 깨끗하게 세탁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인님께 미움받고 만다.



버려졌는데도 끝내 주인만을 생각한 미도리.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주인에게 너무 집착한 탓일까.
실장석치고는 너무 머리가 좋았던 탓일까.
밤중에 편의점에 간 것이 실수였을까.
아니면, 어리석은 동족이 탁아라는 한심한 짓거리를 한 탓일까.
편의점 앞의 주차장에 묻어있던 적록의 찌꺼기.
항상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라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이러한 형태로 자신이 그 댓가를 치르게 될 줄은 생각조차 못한 것이다.



[데...... 스.......]

이미 제대로 된 말조차 할수 없을 정도의 중태.
아무리 재생력이 우수한 실장석이라도, 위석이 부담을 견딜 수가 없다.
만약 미도리가 주인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면.
만약 오늘 편의점에 가지 않았다면.
모두 무의미한 가정에 불과하다.
지금 아스팔트의 바닥 위에서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실장석이 좋은 일을 하건 나쁜 일을 하건,
그 결과는 그 개체뿐만 아니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털의 색깔이나 종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개나 고양이와는 달리,
인간으로서는 실장석들을 쉽게 구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량하게 살아도,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실장석들은 불합리하게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실장석이라는 종의 숙명이다.
아무리 뛰어나고 우수해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피로 물든 족쇄.



괴로운 신음소리를 낸 그때, 미도리의 위석은 소리를 내며 깨졌다.
남자가 발로 걷어찬 곳에, 운 나쁘게도 위석이 있었다.
보답받지 못한 최후의 순간 미도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사랑하는 주인님의 모습.
환각 속에서도 끝끝내, 주인님이 자신을 맞으러 찾아오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미도리는,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절망을 떠올리는 일도 없이, 최후까지 주인님만을 생각했다.



지금의 행복을 외면한 채 더욱 행복해지는 것만을 원했던 미도리도, 역시 실장석이었을까.
다른 실장석들이 어디까지고 만족을 모르고 기어오르는 것처럼,
미도리도 결국 한 마리의 실장석에 불과했던 것이다...



-끝

댓글 1개:

  1. 주인공 참피보단 멍청한 분충들이 더 행복하게 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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