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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위의 자실장

이사하다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사주신 '비행기 대백과사전'이라는 두꺼운 책을 발견하고 추억에 젖어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데,
갈색으로 변색된 큼직한 녹색 얼룩이 묻어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

"이, 이건...."

그리운 날들이 플래시백한다.



그날 나는 아버지에게 졸라서 산 꿈에 그리던 책을 읽고 있었다.
집에서 기르던 자실장 리사가,

"테츄우?" (뭐 하고 있는 테츄까?)

그렇게 말하며 책에 올라가 한 손을 입에 대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고양이도 주인이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으면 곧잘 올라오는데, 주인의 주목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 한다.

주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정도는 고양이 이상인 실장이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애완동물의 이런 행동에 매몰차게 대할 주인은 별로 없다.

"리사도 책 같이 볼래?"

"텟츄우!"

나는 리사를 책에 올려놓은 채 한동안 함께 사이좋게 책을 보고 있었는데,

"밥이다ㅡ! 내려와!"

어머니의 목소리.

"응ㅡ 지금 갈게ㅡ."

반사적으로 책을 쾅 덮는다.

"치갹!!?"

"..."

창백해지는 나. 책에서는 적과 녹의 액체가 뚝 뚝 배어 나온다. 무서워진 나는 그대로 못 본채 방을 나갔다.
식사 후, 리사의 체액으로 더러워진 마루를 닦고, 책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내 책장에 되돌려놓았다.
얼마 후 리사가 보이지 않자 가족이 다 같이 찾았지만 나는 찾는 시늉만 하고 자기가 죽였다는 것은 함구했다.
그로부터 한동안은 매일 밤 책에서 리사의 신음이 들려오는 것 같아 정말 무서웠다.
(무엇보다 실장의 강한 생명력으로 볼 때, 리사는 실제로 얼마 동안 살아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그 책은 무서워서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지금 리사는 납작하게 눌린 적과 녹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 당시에는 자실장 한 마리를 죽이고 충격을 받았다니 상당히 순수했구나.

"그때는 미안했어 리사. 다음에는 화장실 휴지로라도 다시 태어나렴."

그렇게 말하며 헌책 다발을 묶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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