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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라 자실장 다섯 자매 -후편-
“케... 케아아아...”
가슴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덜덜 경련을 일으키며 차녀는 떨리는 팔을 간신히 움직여,
뾰족한 유리에 꽂혀있는 막내 자실장을 유리에서 뽑아냈다.
“테.... 테에....”
아직 정신은 있는 차녀와 달리 등에서 가슴으로 유리가 튀어나와 차녀까지 찔렀을 정도로 관통당한 막내는 이미 입에서 적록색 체액을 줄줄 흘리면서 눈을 뒤집고 있었다.
그래도 차녀가 유리에서 빼내자 희미하게 꿈틀거리면서 아직 살아 있었다.
매우 날카롭고 길쭉했던 유리는 역으로 깔끔하게 살을 뚫고 나가 오히려 짓밟히거나 떨어져 박살나는 것보단 상처가 간단해 실장석이라면 가사에 빠지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테.. 테치.....”
자실장의 가슴까지 오는 강변의 얕은 물속에 선 채 막내를 끌어안은 차녀의 눈이 주위를 둘러봤다.
같은 때.
막내와 차녀가 흘러간 곳 보다 더 위쪽의 강변에도, 물 흐름을 따라 살색의 덩어리가 밀려 올라왔다.
물가에 흔히 보이는 쓰레기로 착각 될 만한, 아니면 실제로 실장석의 익사체라는 쓰레기로 보이던 그 살색의 물체는 얕은 물속에 반쯤 잠겨 있다가 갑자기 움직였다.
“.....테학! 테켁! 테게웨에에에엑-!!!”
“테웨에엑!!”
코와 입으로 들이치는 물에 가사에 빠졌던 장녀와 삼녀가, 깨어나자 폐와 배에 가득 찬 물을 토해내며 괴로워했다.
“켁! 켁!”
“테.....”
한참동안이나 몸부림치던 장녀와 삼녀는 간신히 진정이 되자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건너온... 테치?”
“살은테치! 와타치들 살은테치!”
친실장과 함께 공원의 무리에 속해 있을 때 절대로 오면 안 된다고 배운, 다리 건너편의 공원.
난생 처음 와 보는 그 곳의 광경은, 익숙한 반대쪽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테치! 살은테치!”
“어서 빨리 차녀 오네짱과 막내를 찾는테치!”
살아났다는 안도감에 갑자기 없던 희망이 솟아오르는 걸 느끼면서 장녀와 삼녀가 일어섰다.
장녀와 삼녀는 리더 실장의 손을 벗어난 이곳이라면 독라인 자신들도 살아갈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확신에 차서 일단 걷기 시작했다.
젖은 알몸에 해가 져 가는 저녁의 차가운 바람이 사무쳐도 자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텟치! 텟치! 텟치! 텟치! 텟치!”
마치 구령을 붙이듯, 자실장들이 달릴 때 항상 내는 소리를 내며 달려가던, 애초에 차녀와 막내가 자신들보다 상류에 있는지 하류에 있는지 생각조차 안 해보고 그냥 달려가던 장녀와 삼녀의 눈에 어두워져 가는 강변의 저쪽에 살색의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테! 차녀테치!”
“차녀 오네짱!”
“...........”
그것이 애타게 찾던 자매중 하나인 차녀라는 걸 알아차린 독라 자실장들이 뛸 듯이 기뻐하면서 달려가다가.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
차녀는, 축 늘어진 독라 자실장을 하나 안고 흔들거리는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차녀짱! 어떻게 된 테치!”
“테... 오네짱. 와타치가 떠내려 온 곳에... 뾰족한 게 있던테치... 와타치도 막내도 찔린테치.... 테...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자매를 만난 안도감에 울기 시작하는 차녀를 다독이다가 장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막내의 시체를 안아들었다.
“막내짱... 이제 여기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테치... 어째서 이런 일이 되어버린 테치....”
온몸에.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상처가 가득해 너덜너덜한 막내 자실장의 시체는 말없이 고개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방금 전.
막내를 안은 차녀는 일단 물에서 벗어나려 강가로 올라가려 했다.
옷이 없는 독라이기에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에 잠겨 있는 건 급격히 체온을 뺏기는 일 이었고 작은 자실장으로선 금세 저체온증을 일으킬 수 있었다.
저체온증이란 개념을 모르는 차녀라도 물에 잠겨 추운 건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가뜩이나 가슴에 난 상처도 물에 닿아 적록색 체액이 물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차녀는 앞의 강가에 있는 깨진 유리조각들을 피해 옆으로 돌아 강가로 올라가려 했지만.
“테칙-!!!”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발에 날카로운 아픔을 느끼고 뒷걸음질 쳤다.
“테....”
물 아래의 발에서도, 적록색 피가 조금 퍼지고 있었다.
아래의 모래와 흙들 위에서 반짝이는 유리조각들을 본 차녀는 유리조각을 피해 발을 내디뎠지만 보이지 않게 묻혀있는 조각들을 밟고 다시 비명을 지르면서 물러날 뿐 이었다.
“테치... 어떻하는테치...”
옆은 산 같이 쌓인 깨진 병들, 뒤는 자실장의 힘으론 올라갈 수 없는 부유물 쓰레기의 더미.
그리고 앞은 깨진 유리조각이 있는 바닥.
유리조각이 그다지 멀리 퍼져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걸 안 차녀는 참고 건너려 했지만 맨발로 유리를 밟는 그 고통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또다시 상처만을 입었을 뿐 이다.
“테... 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차가워지는 몸을 덜덜 떨면서 조금이라도 온기를 취하기 위해 막내 자실장을 꼭 끌어안던 차녀의 눈이, 막내를 향했다.
‘와타치는 살아야 하는 테치이이이이이이이-!!!!!!!!!!!!’
방금 전 자신이 외쳤던 대로.
와타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와타치를 살리기 위해 죽은 마마의 뜻.
어느새 살아야한다는 의지가 와타치만은 살아야한다는 걸로 바뀐 걸 깨닫지 못 한 채, 차녀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중얼거렸다.
“그런테치...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만 하는 테치!”
“마마를 위해서 테치-!!!”
“그러니까, 와타시만은 살아야만 하는 테치이이이이-!!!”
-첨벙!
그리고 미친듯이 주절대던 차녀는, 품안에 안고 있던 막내를 물속에 던졌다.
“테챠?!”
차가운 물에 던져지는 순간 그 충격에 정신이 들었는지 막내 자실장이 울음소리를 냈지만 차녀는 막내의 등을 짓밟으며 올라섰다.
“!! ........!!!”
정신을 잃었다가 갑자기 물에 던져진 막내의 몸 여기저기를 유리조각들이 파고들면서 물 아래서 막내가 질식과 고통에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첨벙첨벙
“!!!!!!!!!!”
“..........”
-푹!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차녀가 막내를 밟으며 유리 조각들이 있는 곳을 통과하면서 마지막으로 머리를 내리밟자 모래에 처박힌 막내의 얼굴에 깊숙하게 유리가 박히면서.
“............”
막내는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고 물 아래에서 축 늘어졌다.
“테치....”
막내를 밟고 건넌 곳에 유리가 없는걸 알자 차녀는 그제서야 막내를 돌아봤다.
아까 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색과 녹색이 물 아래에서 가득 퍼져나가고 있었다.
“와타시만은 살아야하는 테치.........!”
그러고 나서 실장석의 머리로도 딱 보면 살해당한 게 뻔 한 모습의 막내의 사체를 뽑아내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발걸음을 옮겼던 차녀는, 울면서도 곁눈질로 장녀가 안고 있는 막내를 흘끔흘끔 살피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내는, 완전히 죽어 탁해진 눈동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걸로, 와타시가 막내를 죽인 게 알려질 위험은, 없다.
“테에에에엥! 막내가 죽은테치!”
“테치.....”
막내의 사체를 강가에 둔 독라 자실장들은 잠시 뒤 공원 안쪽으로 향했다.
이제 친실장뿐만 아니라 사녀와 막내도 잃어 반수 가까이 줄은 자실장들이 갈 곳이 없기는 강의 동쪽이고 서쪽이고 마찬가지였다.
“...일단 마을을 찾는테치. 마을엔 아줌마들이 있을테니 같이 사는테치.”
울음을 그친 뒤엔 왠지 말이 없는 차녀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지친 삼녀를 이끌고 터덜터덜 걸어가던 장녀의 눈에, 골판지가 하나 들어왔다.
“집 테치! 저기에서 도움을 받는테치!”
“테? 집 테치?”
삼녀가 의아해 한 것은, 그것이 익숙한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풀 속이라도 햇빛이 잘 드는 양달을 골라 가능한 빛을 잘 받게 내놓아진 건너편의 집들과는 달리, 눈앞의 골판지는 크기도 작았고 납작한 모양에 위에는 나뭇가지나 풀을 얹고 있었다.
“테치... 볼품없는 집 테치. 분명 무능한 아줌마가 사는 테치....”
“별 수 없는 테치. 빨리 와타치들을 돌보게 하는 게 우선테치.”
삼녀와 차녀가 투덜대는 동안 장녀는 골판지로 다가가 구멍이 난 부분을 막아 문으로 쓰이는 플라스틱 조각을 두들겼다.
-탁 탁 탁 탁
“텟치! 여는테치! 도와주는 테치!”
“..........”
분명히 안에선 기척이 느껴 졌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탁 탁 탁 탁 탁
“여는테치! 도와테치!”
“............”
-퍽
“텟칙!!!”
조용한 주위에 텟치텟치텟치 울려 퍼지던 장녀의 울음소리는, 갑자기 플라스틱 조각이 치워지면서 날아든 손에 맞으면서 멈췄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해진 실장옷을 입은 들실장 한 마리였다.
어두컴컴한 안에서 혼자 나온 들실장이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곤 독라의 볼품없는 자실장들 세 마리만 있는걸 보자 낮게 으르렁대며 이빨을 드러냈다.
“조용히 하는 데스...! 미친데스?”
“테... 테에에! 테에에에엥!! 테에에!!!”
멍하니 들실장을 올려다보다가 맞았다는 걸 그제서야 실감한 장녀가 울기 시작하자 들실장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 졌다.
“조용히 하는 데스....! 조용히 하라고 한 데스우!”
“테에에에-!!!”
“데! 어떤 바보 같은 녀석이 아이 하나 제대로 못 가르친데스!”
“...마마는 바보가 아닌 테샤아아아-!!!”
친실장을 욕하는 말에 차녀까지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주위는 자실장들의 울음소리로 시끄러워졌다.
“데....!!! 데.......!!!”
얼굴이 창백해 진 들실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주먹을 치켜 든 순간.
-푸욱!
“케엑........!!!”
들실장의 가슴에서, 적록색으로 물든 길쭉한 뭔가가 튀어 나왔다.
“데... 데케에에엑!!!”
등에서 가슴으로 뚫고 나온 그 물건-장대 끝에 달린 뾰족한 철침을 양 손으로 부여잡고 뽑아내려 헛된 애를 쓰고 있는 들실장의 뒤에서 그 장대를 찌른 인간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이. 역시 한 놈 있다.”
“갓 성체가 된 녀석일까요? 무슨 배짱으로 새끼들을 꺼내놓고 시끄럽게 개기는건지....”
“글쎄...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꽤 커다랗고 실장옷이 낡은 성체와, 왠지 모르게 독라가 되어있는 작은 자실장 세 마리를 보던 남자가 장대를 들자 들실장이 꿰인 채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데......! 데케에......!!!”
공중에서 발버둥 치던 들실장의 눈이, 아래에서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독라 자실장들과 마주쳤다.
“....너희들 때문 데스!!!! 네놈들이 와서 와타시가 들킨 데...데케엑...!!”
다른 남자가 들고 있던 적록색으로 물든 마대 자루를 펼치는 걸 본 들실장의 눈이 남자들과 독라 자실장들의 사이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다.
“와타시가 아닌데스! 저 놈들 데스! 와타시는 조용히 산 데스! 시끄럽게 하지 않은 데스우!!! 와타시 대신 저 놈들을 죽이는데스! 저놈들을 죽이는 데....”
들실장의 울음소리는, 안에 이미 죽은 들실장이 가득한 마대자루에 던져 넣어지며 들리지 않게 되었다.
“테... 테치이이이이?!”
그 모습을 보고서야, 독라 자매는 상황을 파악 했다.
푸른색 옷을 입은 인간.
가끔 오는 나쁜 인간과 달리 무서워 할 필요가 없는 인간이.
강 너머의 이곳에선, 무서운 걸 들고 와타치들을 죽인다는 걸.
“테쟈아-!!”
“텟치이이-!!!”
그걸 뼈저리게 깨달은 순간, 자매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
그렇지만 남자들의 입장에선 발밑을 아장아장 걸어가는 작은 벌레일 뿐.
-푹
“텟치잇!!!”
가장 뒤쳐져 있던 삼녀가, 비명을 지르면서 뒹굴었다.
남자가 들실장이 필사적으로 들키지 않으려 위장을 했던 골판지를 짓밟아 납작하게 만들며 한 손으로 대충 찌른 것이기에 방금 전의 들실장처럼 몸통이 관통 되진 않았지만 자실장 한 마리의 다리를 부수기엔 충분한 위력이었다.
“테! 테아아아!!! 와타치의 다리가! 다리 아픈테아아아!!!”
무릎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서 꺾이듯이 떨어져 나간 왼쪽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며 비명을 질러대는 삼녀를 본 장녀가 발을 멈췄다.
“테! 삼녀짱...!!!”
“..............”
하지만, 차녀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장녀를 제치고 계속 도망갔다.
“테.....”
그 차녀의 뒷모습과 바닥에 쓰러진 삼녀.
그리고 작고 누추하긴 했어도, 실장석들에겐 말 그대로 집인 골판지를 순식간에 짓밟아 쓰레기로 만들고 있는 크고 무서운 인간들의 모습을 보던 장녀도 눈을 질끈 감더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거 냅둬요?”
“내버려둬. 어차피 오래 못가. 봉투나 잘 벌려봐.”
“네.”
“테... 테치....”
남겨진 삼녀는 다리에서 올라오는 끔찍한 고통에 쇼크 상태에 빠져 드러 누은채 가쁘게 호흡만 하고 있었다.
“테......”
삼녀의 눈에서 흐르는 적록색 액체가 더욱 많아졌다.
친실장을 잃고 삼일 째.
단 두 번의 밤으로 보낼 동안 자매들이 반이나 사라지고 그 동안 상상도 못 하던 독라의 자괴감과 굴욕, 다른 비참한 꼴을 겪고 또 겪은 후에 결국은 이런 꼴.
아니, 그 전부터 와타치의 삶은, 생각해 보면 무의미하고 비참했다.
저쪽 공원은 인간상 들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됐지만, 결국 행복해 보이는 인간들과 달리 선심 쓰듯이 땅에 던져진 자투리 먹을 것 아니면 썩어 역겨운 쓰레기를 올라오는 구토를 참으며 배에 우겨넣어야 하는 신세.
인간들은 저리도 행복해 보이는데, 와타치는 이렇게나 괴롭고 비참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생명.
생명....
사실 다리 한쪽정도의 상처는 돌봄을 제대로 받고 영양 상태도 좋은 자실장에겐 시간만 있으면 회복 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 했지만 계속되는 비극과 당장 다리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삼녀는 자포자기해 스스로의 생명의 마지막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치 죽기 전에 필사적으로 생각하다 실장석에게 기적과도 같은 선택을 이끌어 낸 친실장처럼, 오히려 맑아진 머리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테... 테치...”
무릎부터 없어진 한 쪽 다리를 질질 끌며 몸을 일으키는 살색의 작은 독라 실장석.
“응?”
마침 골판지를 정리한 참이던 젊은 관리인이 좀 있다 처리하려던 자실장이 일어서는걸 보곤 몸을 돌렸다.
“테치!”
자신의 열배도 넘는 그 거대한 인간의 앞에서.
삼녀는 한쪽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도,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인간에게 손을 들이댔다.
마마의 마지막에 보고 배운 것.
인간에게 구걸도 애원도 통하지 않는 다는 것.
그렇다면 와타치... 와타시도. 그때의 마마처럼.
설령 죽더라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와타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설령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도.
인간이 알아듣지 못 해도.
실장석인 와타시가.
한 생명으로서 세상을 향해서 외칠 말.
그 말을 외치기 위해서 와타시는 태어난 것 이라고.
와타시가 이 세상에 맞섰다는 사실.
와타시가 이 세상에 존재 했다는 증거.
“와타시도 살아있는 생명인 테체에에에에에에-!!!!”
“....................”
그 마음은 설령 통하지 않더라도, 삼녀의 그 모습에 젊은 관리인의 발이 멈췄다.
그 앞에서 삼녀는 봇물이 터진 듯이, 친실장의 죽음과 그 이후의 불행에서 깨달은 한 가지, 단 한 가지를 필사적으로 외쳤다.
“죽이면 좋은테치? 괴롭히면 좋은테치? 와타시들도 생명테치! 설령 죽을 이유가 있다 해도 생명인 테치! 살아있는테치! 거지 보듯이 먹을 걸 땅에다 던져주는 테치?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를 먹는다고 더럽게 여기는테치? 그렇지만 와타시도 인간들과 같은 살아있는 생명테치!”
“...............”
“어째서 괴롭히고 죽이냐고 묻지 않는 테치.... 물어본다고 와타시들이 행복하게 될 리 없는테치! 인간들은 결국 와타시들을 깔보고 무시하는테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테치.... 그건 알고 있는테치. 그렇지만.... 그렇지만....”
마지막이라는 듯이, 숨을 크게 들이쉰 삼녀는 눈앞의 인간에게 손을 들이대며, 아니 그 너머의 세상의 모든 것을 향해 크게 외쳤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와타시들도 생명인 테치이이이이이이이-!!!!!! 너희 인간들이 아무리 죽이고 괴롭히고 비웃어도... 와타시들이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 건, 변하지 않는 테치이이이이이이이-----!!!!!”
그 외침을 마지막으로, 삼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거친 숨을 몰아 쉬어 어깨를 들썩이면서, 땀투성이가 된 얼굴로 눈앞의 인간을 노려보았다.
아마 이제 이 인간은 들고 있는 길고 무서운 무언가로, 아까 아줌마처럼 와타시를 죽일 것 이다.
그렇지만.
와타시는 만족한다.
인간들이 무시하는 다른 실장석 처럼, 아무런 의미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의미 없이 죽는게 아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모든 걸 걸어 와타시들을 구해 주었던 마마처럼.
와타시도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
설령 인간이 알아듣지 못했어도, 바로 다음 순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아무도 알 지 못하게 되더라도.
와타시가 세상을 향해 외쳤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 가슴 벅차게 차오르는 충만감을 느끼면서 삼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뭐야. 아직도 정리 안 했어?”
“아. 네......”
그때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눈을 감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려던 삼녀의 귀가 움찔거리더니 눈을 떴다.
“테치이이이....”
어느새 다른 자실장, 도망간 장녀나 차녀가 아니라 옷을 입고 있는 들자실장 한 마리를 봉에 꿰어 돌아오던 나이 든 관리인이었다.
“이 녀석 갑자기 다른 녀석들 하고는 달리 뭔가 끝도 없이 울어대서 무심코... 마치 연설이라도 하는 듯 하던데요.”
“테...”
역시 인간은 알아 듣지 못 했다는걸 알았지만 삼녀의 충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애초에 알아듣고, 뭔가가 달라질 거라 기대한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와타시는 다른 실장석들과는 달리 당당하게 생명이란 걸 주장했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이 벌레들 하는 말이야 항상 똑같지. 목숨구걸 아니면 길러라, 스테이크, 초밥, 콘페이토, 사육실장....”
“......테프프.”
관리인의 말을 들은 삼녀가 작게 웃었다.
모든것에 낙관한 듯한, 만족한 듯한 조소였다.
“결국 인간들은 와타시들을 그렇게 보는테치? 아닌테치. 와타시는 인간들이 깔보는 그런 존재가 아닌테치. 살아있다고 마지막으로 외친 테치. 생명인 테치...”
하지만.
“.......아니면 좀 길게 울어대는 녀석들도, 개나 소나 똑같아.”
“테?”
“자기들도 생명이라느니 살아있다느니 그러지.”
“................!!!!!!!!!!!!!!!!!”
차녀의 마음에 가득했던 마지막 충만감과 만족이.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갑고 소름끼치게 박살났다.
“테......? 무슨 말테치.....? 와타시는 와타시의.....”
“테...테햐아아악!”
그때, 관리인의 봉에 꿰여있던 자실장이 깨어나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햐아아아!! 아픈테치! 아픈테챠아아아!!!!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테치...! 와타치들도....”
“테....!”
“...와타치들도 생명인테치이이이!!!! 살아있다 테치!!! 살 권리가 있는테샤아아아아아-!!!!”
“테에에에에에에에에-!!!!!!”
와타시의 주장.
다른 들실장과는 달리, 와타시만이 당당하게 외친.
와타시만의 특별한 주장이.
다른 실장석들도 개나 소나 외치는 ‘평범한’ 말 취급 받고.
실제로 다른 실장석이 그 말을 외치는 광경을 눈 앞에 들이대진 삼녀의 등에 차가운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아... 아닌테치! 아닌테치! 와타시는... 와타시가 외치는 말 테치! 와타시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던 것 테치! 와타시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 테치-!!!!! 인간들에게 와타시들도 생명이라고 당당하게 외치.... 테.... 테에에에에에!!!!”
그토록 마음에 가득 찼던 만족도, 충만감도 모두 결국엔 비참한 자기만족이었다는 사실이, 현실이 눈 앞에 들이대지자.
삼녀는 아까의 당당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미친듯이 흔들다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텟치! 텟치! 텟치! 텟치! 텟치! 텟.....”
와타시는 특별하지 않았다는 증거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돌아서서 도망친 방향은, 젊은 관리인이 있던 쪽 이었다.
관리인이 천천히 봉을 들이대는걸 본 삼녀가 미친듯이 울어댔다.
“테... 안 되는테치!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테치! 와타시는 특별한테치! 다른 실장석들과는 다른테치! 와타시의 주장이 흔한 말 이라니 그런 리가 없는테치! 와타시는 특별... 특별테치!!! 이렇게 죽을 리가 없는테치! 와타시는... 와타시는.....!”
-푸욱
“...와타치들도 생명인테치이이이!!!! 살아있다 테치!!! 살 권리가 있는테샤아아아아아-!!!!”
철침이 배를 꿰뚫는 순간 삼녀가 최후로 외친 말은.
삼녀가 바란, 특별한 와타시만의 이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한 생명으로서의 마지막 항의였지만.
방금 전의 자실장이 외친 말과도.
완전히 같았다.
“테치이이이이..... 테치이이이이이......”
“.....................”
멀리서 희미하게.
삼녀의 마지막 절규가 들려왔다.
장녀와 차녀 자실장은 꽤 멀어진 수풀 속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곳도 지옥인 테치....”
장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중얼거린 말에, 차녀가 말했다.
“....그래도 와타시만은 절대로 살아남는 테치.....”
“............”
장녀는 차녀의 말이 와타치에서 와타시로, 그리고 와타시만으로 바뀌었다는걸 눈치 챘지만, 마음을 파고든 절망감에 아무래도 좋았기에 내버려 두었다.
‘오히려 와타시보다 차녀짱이 살아남는게 좋을지도 모르는테치.... 와타시 이제 지친테치....’
몸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장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장녀의 앞에서, 차녀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와타시는 살아야하는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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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반으로 나뉜 한쪽, 자실장 다섯 마리와 친실장이 살던 그곳의 룰은,
너무 크게 학대행위를 벌이지 말 것.
관리인이 직접 구제나 실장석 살해를 하지 말 것.
애호파가 먹이를 뿌리러 오는 걸 묵인 할 것.
어디까지나 강제력은 없이 그저 분위기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실장석들에겐 그야말로 환상의 천국까진 아니더라도 이상적인 안주의 땅임엔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강의 반대쪽, 독라 자매들이 목숨을 걸고 건너간 곳은 말 그대로, 정반대.
너무 크게 학대행위를 벌이지 말지 말 것.
관리인이 직접 구제나 실장석 살해를 하지 말지 말 것.
애호파가 먹이를 뿌리러 오는 걸 묵인 하지 말 것.
“데쟈아아아아아-!!!”
관리인들이 들고 다니는 철침 박힌 봉에 배를 찍힌 들실장 한 마리가 절규하고 발버둥 치며 공중으로 찍혀 올라가, 마대자루에 털어 넣어진다.
-피우우우웅
“테치이이이--------이이이이이------익!”
-펑
총배설구에 로켓 폭죽이 쑤셔 넣어져 꼬치가 된 자실장의 비명이 점점 위로 멀어져 가다가 작은 폭발 소리와 함께 끊어진다.
“테.... 테.....”
“...............”
그런 활기 넘치는 지옥의 광경을, 독라 자실장 두 마리가 돌 아래에 기어들어간 채 떨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강을 건넌지 일주일 째.
단 두 마리만 남은 장녀와 차녀는 이곳의 룰을 싫어도 뼈저리게 배운 후였다.
파란 옷을 입은 인간은 건너편처럼 도망칠 필요가 없는 인간이 아니라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마주치면 안 될 무서운 대상.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비참하게 주워와 집이라 부르던 골판지조차 여기선 큰 걸 가져오지도 못 하고 웅크리고 들어가기도 비좁은 작은걸 필사적으로 풀과 나뭇가지로 위장하거나 아예 돌이나 수풀에서 노숙을 하는 생활.
“테.... 테....”
“.............”
같이 인간이 주는 밥을 먹거나 돌아다니던 ‘이웃 아줌마’ 들이 여기선 와타시들과 같은 자실장을 구석에 웅크려 인간의 눈을 피하며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다.
그나마 장녀와 차녀가 살아 있는 건 이곳의 들실장들이 자실장이라는 먹을거리를 얻는 득보단 소란을 피워 인간의 눈에 띄는 위험이라는 실이 많다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과 불리한 상황의 가능성이 둘 다 있다면 당연히 세상 모든 것이 와타시에게 좋게만 돌아갈 거라 믿는 것이 사육실장 같은 여유 있는 실장석에게서 드러나는 본성이지만 이곳의 현실은 그 본성조차 누르고 위험을 느낄 정도.
그렇지 않다면 자매는 이곳에 건너와 처음 만났던 그 들실장에게 네 마리 전부 잡혀 먹혔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이곳의 상황인 것이다.
당연히, 애호파의 먹이 뿌리기도 있을 리가 없어 자매는 들실장들이 새벽에 몰래 뒤져낸 쓰레기의 떨어진 조각을 주워 먹거나 잡초와 벌레로 연명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활과 친실장과 자매들을 차례로 잃은 충격에 피폐해진 장녀는 힘없이 테... 하는 소리만을 흘리며 돌 아래에 웅크리고 있을 뿐, 날이 갈수록 생기도 의지도 사라지고 있었다.
“............”
차녀는 정 반대로, 깨어 있는 동안엔 눈을 희번덕거리며 끝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뭔가 먹을 수 있는 걸 발견 하면 미친 듯이 달려가 입에 우겨넣고,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위험을 느끼면 바로 쏜살같이 도망가 다시 주위를 살피는 등 광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 두 마리가 같이 지내는 것은 가족의 정 때문이라기 보단 그저 버릇처럼, 여러 마리가 있던 시절에 익숙해서라고 보일 정도였다.
먹이를 발견해도 서로 나누지 않는다. 차녀는 뭔가를 보면 즉시 혼자 먹어 치웠고, 장녀는 계속 웅크리고 있다가 가끔씩 잡초를 우물거릴 뿐 이었다.
아직 추운 밤의 냉기만이 두 마리의 자실장을 서로 다가붙게 하던 날들이 그저 무의미하게 지나가던 어느 날.
“레후?”
“테치?”
그날도 여기저기를 들쑤시면서, 그러면서도 인간과 성체 들실장의 눈이 닿지 않는 으슥한 곳을 골라 돌아다니던 차녀와 그 뒤를 터벅터벅 따라가던 장녀의 앞에, 구더기 실장 한 마리가 나타났다.
“테! 구더기짱 테치!”
“.............”
이쪽의 공원엔 구더기 따위를 보육하는 정신 나간 들실장은 없다.
구더기 실장이 보인다는 것은 비상식량 겸 변소충으로 보관되던 것이 우연히 대변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것이거나 인간에게 잡혀 강제출산을 하다 말라 죽은 사체 옆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구더기는 그래도 몸이 통통하고 옷이 낡아 해진 것을 보면 변소충이었을 것이다.
깨끗한 옷 이란 건, 목욕은커녕 필요 최저한의 수분을 섭취 하는 것조차 버거운 이곳에선 갓 태어난 실장석들에게만 있는 시한부의 행복일 뿐 이니까.
하지만 그런 가혹한 현실도, 마음을 좀먹어 가던 절망감도 잊은 채 장녀는 구더기에게 다가갔다.
“레후? 레후?”
“테치....”
구더기 중에서도 저능한 편인지, 아니면 태어나 점막이 사라진 후에도 손발이 나지 않는 아이... 아이였던 물건을 변소 구덩이에 던져 넣고 제대로 가르치거나 돌보지 않은 친실장의 탓인지 의미가 있는 소리를 구사하지 못 하고 그저 레후레후 거릴 뿐 인 구더기.
하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금씩 꾸물꾸물 기어가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드러누워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푸니푸니를 조르는 그 모습에 장녀의 눈에 조금 눈물이 고였다.
“테치....”
지옥 같은 이곳의 현실과 동떨어진, 마치 저 건너편의 구더기 짱들과 같은 모습.
그 모습에 친실장과 자매들과 지내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장녀는 구더기를 안아들었다.
“구더기짱. 이제 와타시가 길러 주는 테치. 가족 테치. 행복하게 사는 테....”
-와작
순식간에 옆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든 차녀의 입이 구더기 실장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얼굴이 사라진 구더기는 갑자기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과 쇼크에 장녀의 품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꿈틀대며 적록색 체액을 뿌리다가, 멈췄다.
“테......?”
살색 알몸에 적록색 체액이 가득 튄 장녀 자실장은 멍하니 서 있을 뿐 이었다.
그 앞에서 가득 물어뜯었던 고기를 쩝쩝대며 추접하게 씹어대던 차녀가 손을 내밀었다.
“장녀 오네짱. 먹지 않을 거면 와타시한테 주는 테치.”
“테.... 테..... 테치아아아아아아아아-!!!!!!!!!!!”
이미 그저 고기일 뿐인 구더기 실장의 몸통을 꽉 끌어안고 무릎을 꿇은 장녀의 비명이 주위에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차녀를 향해, 장녀가 울부짖었다.
“무슨 짓 테치! 구더기짱 테치! 아직 어린 테치! 아무 잘못도 없는 테치!”
“와타시는 살아야 하는 테치. 구더기 따위 기를 여유는 없는테치. 그저 고기테치!”
“테.... 테치이....”
구더기의 몸통을 끌어안고 적록색 눈물을 줄줄 흘릴 뿐인 장녀의 모습에 차녀의 눈에 경멸의 기색이 어린 순간.
-부스럭
“!!!!!!!!!!!”
“테.......?”
두 독라 자실장의 뒤쪽에서 뭔가 소리가 나면서.
두 마리를 전부 덮고도 남을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인간테치..............!’
돌아보지 않고도 인간이 다가 온 걸, 부주의 하게 소리를 질러대어 찾아온 위험을 직감한 두 마리의 마음에 공포와 절망이 치솟았다.
그렇지만 장녀는 그 절망의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 지는 걸 느꼈다.
방금 전 까지 말싸움을 하던 것도 상관없이, 마음속엔 차녀를 살려야 한다는 단 한가지의 생각 뿐.
이미 절망에 맞서기를 포기한 지친 자신이 희생이 되어 차녀를 살릴 수 있다면 헛된 죽음은 아닐 것이다.
각오를 굳힌 장녀가 차녀를 돌아봤다.
“차녀짱. 와타시가...”
-퍽!
“테치익?!”
돌아본 장녀의 얼굴을.
무언가가 세게 후려쳤다.
그때까지도 안고 있던 구더기의 몸통과 함께 나뒹굴다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든 장녀의 눈에.
이미 저 멀리 달려가는 차녀의 등이 보였다.
“차녀짱.........”
와타시의 목숨을 대가로 동생이 도망 칠 시간을 벌 생각, 희생의 각오는 있었지만.
최후의 최후가, 지키고 싶었던 자매의 배신이라는 형태로 찾아온 절망에 장녀는 멍하니 그 등을 눈으로 쫓았다.
“테...........”
모든 행복도 희망도 의지도.
그리고 절망과 원망마저 사라진 채 그저 적록색 눈물만을 끝없이 흘리는 탁한 눈동자에, 이쪽을 바라보곤 몸을 숙이는 거대한 그림자가 비췄다.
“테....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 차녀 짜아아아아아아앙-!!!!!”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장녀의, 혈육의 비통한 절규를 들으면서도.
차녀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텟테로케... 텟케로체에에에.....”
여름이어도 밤은 추운 시기를 지나, 찌는 듯이 뜨거운 날씨도 지나간 이후의 나날.
들실장에게도 나름 풍요의 계절인 가을이 오자 차녀는 자실장이면서도 임신을 해 강가의 수풀 속에 숨긴 작고 썩어가는 과자상자 안에 비좁은 듯이 웅크려 들어가서도 어설프게 태교의 노래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먹이가 풍족한 상황의 경우엔 성체가 되지 않았어도 새끼에 대한 욕망이 생기는 것이 실장석.
특히 의식주가 보장되는, 영원히 보장 될 거라 생각하는 사육실장들에게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 욕망은 결국 사육실장의 자리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결과가 되듯이, 실장석이 새끼를 낳는다는 건 욕망은 충족 되지만 행복은 따라오지 않는 행위.
그렇지만 자실장이면서도 성체가 나간 사이에 골판지에 들어가 남아있던 자실장들을 모두 때려 죽여 잡아먹어가며 악에 받혀 살아온 차녀가 미친 듯이 집착하는 한 가지.
마마가 와타시를 위해 죽었으니 와타시는 살아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그 집착은, 자연스럽게 변하여 학대를 받는 실장석들이 흔히 주장하는.
“와타시는 마마의 몫까지 살아 행복해지고 아이를 많이 낳아 가족을 만들 의무가 있는 테치...”
라는 생각으로 변해 이제 차녀는 새끼를 낳아 수를 늘리는데 집착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족을 다시 만드는 테치. 마마 대신 아이를 많이 낳아 이 공원을 지배해 주는 테치...”
셀 수 없이 늘어난 와타시의 아이들이 공원을 가득 메우고 그 한 가운데서 당당하게 마마처럼 서 있는 와타시의 모습을 상상하던 차녀는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고아가 되어 인간에게 빌붙으려 시도해 공원의 무리 전체가 미움을 사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쫓겨났던 반대편의, 낙원.
하지만.
“테... 이젠 와타시 고아가 아닌 테치. 훌륭한 마마테치!”
고아는 인간에게 기생하려들어 제거해야 된다는 주장이라면, 이제 고아가 아닌 와타시는 건너편으로 돌아갈수 있는게 아닐까.
곧 태어날 와타시의 소유물들에게 태교의 노래조차 마음껏 불러주지 못 하고 작게 중얼거려야만 하는 이곳보다는 건너편의 낙원이 와타시가 지배하기에 합당 할 것이다.
“테치...”
그렇게 생각이 들자 와타시에게 유리할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손에 넣기 위해, 차녀의 결단은 빨랐다.
공원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강.
옛날에 목숨을 걸고 떠내려 왔던 그 강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앞을 배가 부푼 살색의 독라가 우왕좌왕 돌아다니는 그 모습은 관리인의 눈에 띄었으면 바로 살처분 이었지만 운 좋게도 차녀는 관리인의 눈에 띄지 않고 다리를 건너는데 성공했다.
“테... 돌아온 테치...”
계절이 바뀔 동안, 실장석에겐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온 건너편의 공원.
마마와 함께 모든 게 풍족했다고 미화되어 있는 기억 속의 그 고향을 감개무량하게 바라보던 차녀는 다리를 완전히 건너 반대편의 공원에 발을 내디뎠다.
큰 아줌마가 온다 해도 이제 와타시는 이곳에서 살 권리가 있다.
차녀의 마음이 희망으로 부푼 순간.
“데, 데쟈아아아악-!!!”
-철퍽!
“테!!!!”
하늘에서 비명소리 같은 게 점점 가까워지더니, 차녀의 앞에 성체 들실장 한 마리가 떨어지며 습기 찬 소리와 함께 산산 조각나 사방으로 튀었다.
“테.....?!”
분명히 낙원으로 돌아 왔을 텐데, 반대편의 지옥이나 다름없는 광경에 차녀가 얼어붙은 순간.
“데스! 데스데스!”
“데스우우우우-!!!”
화단의 수풀을 헤치고 여러 마리의 들실장들이 몰려 나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서로 밀치며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그 들실장들의 뒤에서, 산책을 하는 듯 한 걸음걸이로 남자 한명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테...............치...............?”
차녀는.
이미 적록색 액체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파이프를 든 그 인간의 반대편 손 위.
들실장은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사육실장들의 자리에 앉아있는.
장녀의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꿈에서나 입어 봤던 분홍색의 예쁜 프릴이 달린 실장옷을 입고, 옷과 같은 색의 커다란 리본까지 달린 두건의 아래로 바람에 찰랑찰랑 흔들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있었지만,
그건 틀림없이 장녀였다.
같이 친실장에게 소중한 머리카락과 옷을 빼앗기고 독라가 되었던 오네짱.
와타시가 살기 위해 인간의 앞에 내던지고 갔던 자매가.
지금은 무서운 인간의 손 위에서 사육실장이 되어 인간을 부리고 있다.
-퍽!
“데쟈아아아아아아악-!!!”
그 이해 할 수 없는, 증오스러운, 부러운, 혼란스러운 광경에 멍하니 서 있는 차녀의 앞에서 남자가 파이프를 휘둘러 들실장의 등을 후려쳤다.
비명을 지르며 공중에서 적록색 액체를 사방으로 흩뿌리는 들실장의 모습에 다른 들실장들이 더욱 필사적으로 달려갔지만 하나하나 파이프에 맞아 나뒹굴다가 남자의 워커에 짓밟혀 적록색 체액을 튀기며 바들바들 경련하다가 죽어갈 뿐 이었다.
“테... 테치...”
차녀의 눈이 그 화려하고 절대적인 강자가 된 장녀의 모습과, 독라인 자신의 모습을 교대로 왔다 갔다 하던 그 때.
“테....!”
사방에 이미 죽어있거나 쓰러져 신음하면서도 기어가던 들실장들 사이에서 리더 실장을 발견한 장녀가 놀랐다가 표정을 일그러트리자 남자가 파이프로 도망치던 리더 실장을 내리쳤다.
-퍽!
“데갸아아아아-!!!”
하지만 오른손에 장녀를 들고 있어 왼손으로 내리쳐서인지, 파이프는 이번엔 리더 실장의 등을 긁어 파내듯이 빗나갔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녹색의 너덜너덜하던 옷이 찢어지고 등뼈가 드러날 정도로 파인 상처에서 적록색 체액을 분수처럼 뿜으며 몸을 뒤틀던 리더 실장의 눈이,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몇 번이나 밥을 주었던 좋은 인간상들.
그 인간들을 본 리더 실장의 눈에 희망이 돌아오며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데스우우우-!!! 도와주는 데스우우우-!!!!! 나쁜 인간이 온 데스-!!!! 구해주는 데스!!!!”
“............”
“...........”
그렇지만, 온건한 이쪽의 공원에 대낮부터 나타난 학살파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주위의 사람들은 들실장이 자신을 부르는걸 보곤, 왠지 휘말릴 지도 모르는 귀찮은 상황이 되자 하나 둘 씩 떠나갔다.
심지어 사육실장을 데리고 있거나, 마침 들실장에게 먹이를 뿌리러 오던 참인지 실장푸드가 든 봉투를 들고 있던 사람들도 눈을 돌리며 멀어져 갔다.
“데.....”
손을 내민 채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리더 실장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째서 데스! 어째서 구해 주지 않는 데샤아아아아-!!!! 와타시는 인간상들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은 데스! 동족을 내쫓고 아이를 죽여서라도 인간상들의 마음에 들게 행동한 데스!!! 어째서 와타시를 버리는 데샤아아아악-!!!!”
“.......뭐, 네가 한 일은 실장석치고는 대단히 훌륭했다. 들실장.”
“데스.....?”
북받치는 배신감과 의문에 대한 ‘나쁜 인간’ 의 대답에 리더 실장은 천천히 뒤를 올려다봤다.
남자는 어느새 왼손에 바꿔 태운 장녀와 함께 리더 실장을 내려다보면서, 오른손으로 파이프를 치켜들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해온 일의 성과는, ‘구태여 구제 할 필요는 없다’ 라고 생각 되어진게 고작...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데....”
“인간이 ‘구태여 실장석을 지켜주는 일’ 을 기대한 건 헛된 망상이야.”
-철퍽.
이미 크게 상처를 입었던 등에 정확히 내리 꽂힌 파이프는, 비명을 지를 틈도 주지 않고 리더 실장의 몸을 좌우로 잡아 뜯듯이 갈라버렸다.
“.............”
장녀는 조용히, 자신과 자매들을 모두 죽이려 했었던 리더 실장의 고기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 이었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치아아아아아-!!!!!”
그때, 주변엔 이미 살아 있는 들실장이 없다고 생각되던 조용함을, 자실장의 절규 소리가 시끄럽게 깨트렸다.
“뭐야, 남은 녀석이 있었나. 시끄럽게.... 응?”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서던 남자는 손 위의 자실장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고 있는걸 알아차렸다.
공원에서 난데없이 다른 독라에게 자신의 앞에 밀쳐져 쓰러진 걸 주웠을 때 이미 심하게 마음에 상처를 입어 뭘 해주든 별 다른 반응이 없던 이 자실장이 방금 전, 복수를 해 주던 중에 들실장 중에 가장 원망스러울 리더를 찾아냈을 때보다도 심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복수를 해 주는 것이 마음의 상처를 달래 감정이 살아나는데 도움이 될까 싶었던 남자의 눈이, 이쪽을 보면서 적색과 녹색의 피눈물을 흘리며 울어대는 독라의 작은 실장석을 향했다.
‘.....응? 이 녀석은....’
그 작고 더러운 독라가, 배가 부풀어 있긴 하지만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한 남자의 손 위에서 장녀가 중얼거렸다.
“차녀짱.....”
그 작은 독라 자실장, 차녀는 눈을 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며 장녀와 인간에게 뭉툭한 손으로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테치! 어째서 너는 독라가 아닌 테챠아아아아-!!!! 와타시는 독라고 비참하게 살아온 테치! 아줌마들을 피해 숨어 다니고 아이를 죽여서 뜯어먹으면서라도 살아간 테치!!! 어째서 와타시와 달리 너는 행복하게 있는 테챠아아아악-!!!!”
“차녀짱...”
슬픈 듯이, 측은한 듯이, 원망스러운 듯이 와타시를 내려다 보는, 분홍색 옷을 입고 갈색 머리칼을 찰랑이는 장녀의 모습에 차녀의 가슴에서 위석이 삐걱이기 시작 한 순간 장녀가 조용히 남자를 올려다 봤다.
“...인간상. 차녀짱을 죽여주는 테치.”
“테...!”
주워진 이후 처음으로 뭔가 부탁을, 의지를 드러낸 장녀의 말에 남자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테! 안 되는 테치! 절대로 안 되는 테치! 와타시는... 살아야만 하는 테치이이이이이이이이-!!!!”
“..............”
배가 부풀어 무거운 몸을 돌려 어기적어기적 도망가는 차녀를 산책하듯이 따라가는 남자의 손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장녀의 표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알아보기 힘들었다.
기껏 건너왔던 다리를 다시 오랜 시간을 들여 건넌 차녀가 강가를 달려 수풀속을 헤집으며 도망칠 동안에도 남자는 천천히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이미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어 공포에 질린 차녀는 필사적이었지만 남자는 너무나도 느린 그 도주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 했을 때야, 차녀가 목적지에 겨우 도착했다.
“테체아!”
공포에 질린 비명인지 이제 살았다는 환성일지 모를 소리와 함께 그 썩어가는 과자상자에 기어들어가는 독라 자실장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장녀가 말했다.
“그게 차녀짱의 집인 테치....?”
안에서 작은 손이 나와 뚜껑을 끌어당겨 닫은 상자 안에서 흐려진 테치테치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런테치! 와타시의 성 테치! 그러니 꺼지는 테치이이이!!! 와타시를 내려다보지 마라 테챠아아아-!!!”
“............”
손 위의 장녀를 힐끗 쳐다본 남자가, 발을 들어올렸다.
-툭
“테치?!”
기껏해야 신발 보다 조금 커다란 크기의 과자 상자를 가볍게 걷어차자 안의 차녀는 와타시의 성이 통째로 흔들리며 느껴진 충격에 놀랐다.
그리고 곧 인간이 와타시에게 무슨 짓을 할 지도.
“테... 테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방금 전에 필사적으로 기어들어 와 웅크리고 있던 것과는 달리 혼비백산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자의 입구를 열려 하던 차녀의 몸에 또다시 충격이 밀어 닥쳤다.
-쿵!
“테아아아아아악------!!!!”
기어나가던 차녀의 다리에 순간적으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곧 그 고통은 다리가 아니라 골반 근처에서 타고 올라오듯이 느껴졌다.
“테... 테... 테아아아아.....!!!”
뒤를 돌아보자 납작하게 눌린 종이 상자의 천장이 무너진 벽처럼 납작하게 내려온 아래에서 번져가는 적록색 액체와 그 아래 깔려 납작해지다 못해 떨어져 나간 다리가 잘려나간 격통에 몸부림 치던 차녀의 위로 다시 충격이 느껴진다.
-쿵!
“테챠아아아아아-!!!”
이번엔 왼쪽이 내려 않으며 공간이 더욱 좁아지는 동시에 왼 손이 뭉개졌다.
남자는 일부러 조금씩, 모서리부터 차녀의 작은 ‘성’ 을 짓밟고 있었다.
“테치이이이이이-!!!! 테치이이이이-!!! 와타시는.... 와타시는 살아야 하는 테치이이이-!!!”
“....헛수고테치. 차녀짱은 살 수 없는 테치.”
“테....!”
팔 다리가 뭉개지고, 이미 몸통과 머리가 간신히 들어갈, 다르게 말 하자면 몸통과 머리만을 남기고 짓눌린 과자상자에 갖혀 있던 차녀가 위에서 들려온 장녀의 목소리에 눈을 뒤집었다.
“너는 뭔데 와타시보다 잘난듯이 그러고 있는 테챠아아아아-!!! 네가 죽어라 테치!!! 너 같은것 보단 와타시가 길러져 살아가는 테치!!! 마마를 위해서 테치이이!!!! 와타시는 곧 마마가 되는 테치! 가족을 다시 만드는 테...”
-쿵
“테웨에에에에에에에엑-------!!!!!!!!!!!!”
그 순간 다시 충격과 함께, 악을 쓰던 차녀의 입에서 녹색의 점막에 쌓인 구더기실장이 밀려 나왔다.
“테... 게베에에에...”
코앞에서 꿈틀거리는, 점막에 쌓여 눈조차 뜨지 못 한 와타시의 아이를 응시하던 차녀는,
그 아이들이 담겨 있을 배가 이미 납작해져 있다는 걸 뒤 늦게 깨달았다.
이미 통각을 전달 할 기능조차 상실한 고기덩이가 된 머리와 가슴부위만이 남아도 실장석의 질긴 생명력으로 숨만은 붙어 있던 차녀가, 마지막으로 절규 했다.
“와타시는 살아야만 하는 테치이이이이이이이-------------!!!!!!!!!!!!!!!!!!!!!!!!!!”
-쿵!
-쿵!
-쿵!
-쿵!
“테치....”
절규를 마지막으로 몇 번이고 남자의 발에 짓밟혀 완전히 납작해진, 차녀가 집으로 삼았던 추레한 종이 쓰레기에서 적록색 액체와 흐물흐물해진 고기들이 비어져나와 천천히 퍼지는걸 보면서 장녀가 작게 울었다.
“만족 했나.”
“테......”
주워진 이후로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자실장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지어져 있는 걸 본 남자도 미소를 지었다.
따듯한 인간의 손 위에서.
옷도 머리카락도 돌아온, 독라였었던 장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세상엔... 이렇게나... 행복이 가득한 테치.”
“..............”
“그러니까.......... 죽기 싫은 테치.”
“...............”
“죽기 싫은 테치아아아아아아아-!!!!!!!!!!”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던 때.
공원을 걷던 남자는 자신의 앞에 밀쳐진 독라의 자실장을 주웠었다.
어차피.
그 날도 너덜너덜 해 질 때까지 학대하다 죽일 장난감을 찾으러 온 것이기에 마침 잘 됐다는 듯, 그 독라를 주워서 집으로 가져왔다.
“테치이이이이익-!!! 테아아아아아-!!!”
하지만 팔다리에 박은 전극에서 불꽃이 튈 정도로 전기를 흘려도, 뜨거운 물에 데치거나 몇 번이고 스펀지를 얇게 깐 벽에 패대기쳐도 재미가 없었다.
학대당할 동안엔 비명을 질러대긴 하지만, 학대가 멈추고 방치 되면 그 독라 자실장은 그저 좁은 수조에서 텅 빈 눈으로 멍하니 웅크리고 있을 뿐.
학대를 당할 때 인간에게 지지 않겠단 마음으로 비명을 참으며 버티는 실장석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재미있다.
이미 살 희망이 없다는 걸 이해해도, 마지막으로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의지.
그 알량한 의지를 차츰차츰 꺾어가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독라는 비명을 지르긴 해도 그건 고통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 인간에게 지지 않으려 비명을 참으려는 의지는커녕 살려는 의지도 없이 완전히 모든 걸 포기한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학대를 즐기는 인간들이 실장석에게 바라는 건 학대당하는 동안의 감정들.
공포 고통 절망 증오 원망 비탄 탄식 분노.
그리고 그 와중에도 속으로 내심 바라고 있는, 희망.
이 모든 것이 없는 텅 빈 존재를 학대해 봐야, 혼자 벽에 대고 떠들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기 싫다는 마음이 들게 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 날로 학대는 멈추었다.
대변으로 가득한 수조에 내던져져 멍하니 있다가 졸리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잠들던 장녀는 분홍색 마법의 성 세트가 들어가 있는 넓은 수조로 옮겨졌다.
실장 후사리를 먹여 머리칼도 다시 났고, 고급 분홍색 옷이 입혀졌다.
그렇지만 이제 독라가 아니게 된 그 자실장은 텅 빈 채였다.
한번 잃었던 머리칼이 돌아온다는, 실장석들에겐 꿈만 같은 기적이 일어나도, 들실장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질투하고 탐내는 분홍색 옷이 주어져도, 매끼 주어지는 사육실장용 미니 스테이크와 콘페이토의 산에도 흥분하지 않고 되는대로 입에 넣다가 남겨놓았다.
시험 삼아 썩어가는 음식물 쓰레기를 주어도, 어차피 상관없다는 듯 우겨넣었다.
음식을 먹기는 하는 건, 굶어 죽는 다는 어려운 행동을 할 의지도 없다는 것.
그렇다고 뭔가를 하며 제대로 살아갈 의지도 없기에 그저 먹고 멍하니 있다가 잠들었다 일어나면 다시 멍하니 있을 뿐.
화장실을 가려 청결하려는 의지도 없어, 기껏 입혀놓은 분홍색 옷과 새햐얀 사육실장용품 팬티를 입은 채 누워 있다가 그대로 대변을 싸 옷과 수조를 더럽혔다.
그래도 남자는 마치 공들여서 탑을 쌓아 올리듯, 자실장을 돌봤다.
매번 자실장을 따듯한 물로 목욕을 시켜 옷과 팬티를 갈아입히곤 수조를 청소 한 후에 접시에 스테이크와 콘페이토를 가득 담아 놨다.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자실장의 임신 이었다.
남자가 청소 후에 흩뿌려 놓은 꽃가루에 임신을 해 두 눈이 녹색으로 변한걸 알아차린 자실장은, 누워 있는 대신 앉아 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며 자실장이 겪어온 일을 알은 남자는, 거의 완성 된 탑의 끝마무리로,
자실장의 복수를 해 준 것이다.
설마 자실장을 밀쳤던 그 독라 자실장, 자매가 나타날지는 예상하지 못 했지만 어차피 자실장을 박해했던 리더 실장과 공원의 무리를 쓸어버려도 의지와 감정이 별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음 방법으로 찾아서 죽일 예정이었기에 수고를 던 것이다.
그래서 이걸로.
완전히 탑은 쌓아 올려졌다.
“죽기 싫은 테치! 세상에는 이렇게나 행복이 가득 했던 테치! 맛있는 스테이크도 콘페이토도 분홍색 옷도 있었던 테치! 와타시는 그런 행복 하나 못 누리고 살아왔던 테치!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이 있는 테치! 예쁜 옷이 팔랑팔랑 테치! 이렇게 행복이 가득한 세상에서 왜 와타시가 사라져야 하는 테치이이이이이이이----------!!!”
삶에 대한 집착이 생긴 자실장이라는 공들인 탑.
기다리고 기다리며 마침내 다 쌓은 탑을.
드디어 와장창 무너트릴 그 순간이 온 것이다.
그것은, 탑이라기 보단 하나하나 세워온 도미노를 완성해 내려다보는 충족감에 가까울 것이다.
무너트리는 순간을 위해 만든 작품.
복수를 해 주겠다는 남자의 말에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복수가 끝나면 죽여주겠다는 말에 부풀어가는 배를 한번 내려다보곤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던 자실장은, 지금은 남자의 손에 적록색 눈물과 함께 녹색의 대변까지 줄줄 흘려가며 외치고 있었다.
“뭐든지 하는 테치! 죽이지마는 테치! 와타시는 살면서 행복을 더 즐기고 싶은 테치이이!!! 죽기 싫은 테치!!! 와타시의 아이들에게도 가득 행복을 맛보여 줘야 하는 테치!!!”
남자가 반대편의 손으로 장녀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안 되는 테치! 소중한 머리칼 테치! 기껏 다시 돌아 온 테... 테챠아아아-!!!”
-우지직
머리카락에 이어 분홍색 옷 까지 찢겨,
다시 독라가 된 자실장이 날뛰며 옷 조각과 털을 그러모았다.
“테챠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
텅 비었던 자실장에게서 넘쳐흐르는 절망과 원망, 살고 싶고 계속 행복하고 싶다는 처절한 의지.
어차피 이 자실장은 절망을 스스로 벗어날 생각이 없기에 그런 죽지도 살지도 않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모든 걸 정리하고 깨끗하게 죽음을 맞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행복을 계속 맛 보여주고, 인간에게 길러져 편하게 살아간다는 좋은 미래가 손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헛된 미끼에 바로 미친 듯이 삶에 대한 집착을 보여 버렸다.
힘들고 절망적인 삶을 노력해 살아가긴 싫지만, 남에게서 행복이 주어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건 와타시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어차피 실장석의 생각인 것이다.
촤르르륵 소리를 내며, 쌓아 왔던 즐거움을 터트리며 무너져 가던 도미노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테지이이이이이.......?!”
몸을 움켜쥔 남자의 손에 몸이 눌려가자 장녀는 필사적으로 손을 밀어내려 했다.
손바닥에서 꿈틀꿈틀 느껴지는 그 삶에 대한 의지에, 남자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와타시는....”
-꽈아악
“와타시는 행복하고 싶은 테치이이이이이이-----------!!!!!!!”
-콰직!
“테갸아아아아아아아아악-!!!!!!”
손에 힘을 힘껏 주자 순간적으로 위 아래로 길쭉해진 듯이 보였던 장녀의 몸이 터져나오며 적색과 녹색의 동그란 안구가 허공으로 튀었다.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비어져 나온 더러운 체액 국물과 살덩이의 질척한 감촉이,
분대에 들어있던 점막에 쌓인 미숙한 구더기 실장이 집착과 욕망과 함께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잠시 응시하던 남자는 손을 털어 그것들을 바닥에 팽개쳤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주머니에서 꺼낸 물티슈로 몇 번이고 손을 닦은 후, 적록색으로 더러워진 물티슈를 자실장이었던 오물 위로 던졌다.
-툭
장녀의 조각 위에 부딪힌 물티슈 뭉치는,
조금 구르다가 납작해진 과자 상자 위에서 멈췄다.
어느 공원에서 어느 들실장이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한 심정으로 잔혹한 대가를 바쳐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벌어준 시간이,
끝나는 광경이었다.
그 시간 동안, 독라가 되어서라도 살아주길 바랬던 아이들은.
동족에게 박해되어 궁지에 몰려 인간에게 들이대다 결국 동족들의 손에 산 채로 꼬치가 되거나.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주길 바랬던 자매에게 밀쳐져 익사해가는 동시에 얼굴에 유리가 가득 꽂히는 처참한 죽음으로 소비 되거나.
그런 삶이라도 와타시가 태어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 믿음이 깨져 절망하며 청소되거나.
살아간다는 단 하나만을 바라다 가족을 재건해 함께 살아간다는 조금의 희망을 가진 순간, 독라라는 추악한 모습을 자매의 화려한 모습과 처절하게 대조당하며 몇 번이고 짓밟히며 죽었고.
가장 분충의 본성을 드러내지 않았던 장녀조차.
욕망이 없는 게 아니라 욕망을 달성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없이 달콤한 대가만을 바랬다는, 결국 실장석다운 본성을 드러내며 최후를 맞이했다.
그때 친실장과 함께 죽는 게 행복했을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조금 더 생명이 붙어 있던 것이 행복한 것이었는지 의문이라 해도.
어차피 이젠 그 의문을 가질 존재조차, 남아있지 않기에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끝-
보배로운 작품인 데스...
답글삭제명작이라는 보쿠우....
답글삭제주인공이 차녀였던데 비해 마지막 포커스가 장녀가 되버려서 조금 차녀의 죽음이 허무했던데스가 정말 보배로운 명작인데스..
답글삭제이 스크립트는 모든 실장석 이야기의 보배데스...
답글삭제해피엔딩!
답글삭제문학집에 실려야되는거 아닌데스?
답글삭제남자의 학대는 학대파의 귀감이 되는데숭! 이자는 학대파의 보배인데수!!!
답글삭제크 분충 장녀 사는건가 싶었는데 역시 띵작다운 훌륭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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