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의 실장석 -후편-


장녀들이 빈집에 들어오고, 2주 후. 11월 초중

‘오늘은 와타시들이 은행을 모아온 테치’
‘수고한 테치! 와타시와 차녀짱은 물을 긷는 테치’
‘삼녀 오네챠 까마귀를 조심하는 레치’
‘오네챠들 잘 다녀오는 레치~와타시들도 붉은 열매 줍기에 힘내는 레츄’
‘구더기짱들도 집지키기에 힘내는 레후~’

현재로서는 월동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까마귀도 잡초의 그늘에 숨어 있으면 덮쳐오지않고, 뜰에는 건물과 피라칸사스 나무 천연방벽을 형성하고 있어 다른 포식자들도 오지 않는다.

장녀들은 빈 거실의 방석 위를 거처로 정하고 걸레와 천조각으로 이부자리를 만든다. 옆에는 엄지와
구더기 실장의 침대인 슬리퍼를 두었다. 케이지에서 사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엄지와 구더기 실장이
자력으로 출입할 수 없는 데다 인간이 돌봐주지 않는 한 케이지에서 사는 건 의미가 없어서 포기했다.

'빨리 큰 페트병으로 물을 뜰 수 있는 만큼 커지고 싶은 테치'
'왜 닝겐은 작은 페트병을 이것밖에 두지 않은 테치? 글러먹은 닝겐인 테치'

세 마리의 자실장들은 최근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한 마리는 월동을 위한 식량조달에 전념.
그 사이 나머지 2마리는 250cc패트병에 물을 길어오고, 그것이 끝나면 식량조달에 합류.

자실장의 사이즈와 힘으로는 500cc 패트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운반하는 것은 어려워, 현재는
250cc페트병만을 쓰고 있다. 덕분에 매일같이 물을 길러야 한다.

‘은행나무가 가득한 테치. 오늘은 도토리도 좀 갖고 가는 테치~♪’

장녀와 차녀가 서로 푸념을 늘어놓는 사이에 삼녀는 은행을 정신없이 줍고 있다. 이따금씩 새들이
주워 먹었는지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많은 수가 남아있다. 여유가 되면 도토리를
주울 예정이다.

'붉은 열매 또 한개 나르는 레치~♪'

그리고 자실장들이 일하는 동안 엄지 실장은 죽은 구더기의 포대기를 봉투삼아 오늘의 먹을
피라칸사스 열매를 모은다. 뒷마당은 제법 안전하여, 피라칸사스 가시만 조심한다면 엄지실장도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다. 피라칸사스 열매는 얼마든지 떨어지니, 엄지로도 모두가 먹을 열매를
모을 수 있었다.

‘레후~오늘도 침입자를 경계하는 레후’
‘아무 일도 없는 곳에서 뭘 경계하는 레후?’

그리고 구더기 실장은 삼녀가 깔아놓은 신문지 위에서 구루구루 기어 다니며 꼬리를 긁거나
그것이 질리면 잔다거나 한다. 신문지 위라면 똥을 싸도 괜찮고 이 집에는 빈집이라 바퀴벌레나
쥐의 종류도 없어서, 습격당하는 위험이 없으므로 안전이다.……구더기 실장이란 것은 아무런
위험이 없어도 전혀 터무니없이 죽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평화롭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월동준비를 하는 실장석들. 그런 그녀들에게 오늘 반가운 일이
있었다. 그것은 만성적 영양부족으로 인해 정체되어 있던 몸이 드디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장석들 평균에 비해 왜소한 크기였던 자실장, 엄지, 구더기실장들은 약 20~30%정도 성장하였다.
자실장은 이제 13cm, 엄지는 6.5cm, 구더기는 3.5cm로 성장하였다. 수치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그녀들 입장에선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한 것에 크게 기뻐한다.

여태껏 손이 닿지 못한 곳에 있던 물건을 집을 수 있었고, 그것은 곧 자신감 충전으로 이어졌다.

‘겨울 전까지 도토리를 깨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테치’
'와타시도 봄에는 훌륭한 성체실장이 되는 레치~♪'

정신붕괴 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실장석. 자실장과 엄지들에게 있어 정신적 안정은 중요한 생존
과제다. 그 과제를 자매들은 순조롭게 클리어 하고 있다.

'그렇지만 겨울은 언제부터 테치? 이제 낮에는 따뜻하지만 아침과 밤은 꽤 추운 테지'
'모르는 테치. 음식이 적어지거나 하늘에서 하얗고 차가운 눈이 내리고 오면 겨울이라고 들은 테치'

지금 유일한 문제점은, 월동 경험이 있던 친실장이 없는 탓에 겨울의 구체적인 기간을 모르는 일일까.
비교적 현명한 장녀도 겨울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얼마나 추운지, 그리고 얼마나 긴 것인지는
모른다. 다른 동물은 본능에서 겨울을 깨닫지만, 실장석의 본능은 자연에서 살아남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음식은 되도록 많이 쌓아놓는 테츄. 와타시들이 봄을 맞이할 수 있을지 여부는 지금의
분투에 걸린 테치'
『 텟츄~!』

피라칸사스의 열매로 건배하고 기운을 차린 자매들은 덥석덥석 베어먹는다. 배를 열매로 빵빵하게
채우곤, 연못의 물로 목을 축인다.
다음 날도 자매들은 급수와 식량조달을 위해 집을 나선다.

'오늘도 빨간 열매를 모으는 렛츄'

언니들의 집을 비운 사이에 엄지 실장은 평소처럼 피라칸사스 열매를 운반하기 시작했다.

'레에에? 왜 이런 레치? 왜 오늘은 이렇게 적은 레치?'

웬일인지 이날은 흉작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구더기의 포대기가 퉁퉁할 정도로 열매를 담을 수
있었는데, 이날은 몇 개밖에 담지 못한다. 자신과 구더기 실장은 이것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언니
자실장들에겐 부족하다.

당연한 것이, 피라칸사스도 무한으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매일 수거했으니 줄어드는 것이 도리다.

'이걸로는 모두가 배가 부르지 않는 레츄……'

피라칸사스의 열매가 없어지는 속도가 빠른 것은 엄지 실장의 말대로 자매들이 배가 부를 때까지
열매를 먹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보통의 성체실장이라면 월동 때문에 식량을 절약한다. 새끼가 있어도 엄격히 식량소비를
통제하여, 최대한 비축하고, 평소는 잡초 페이스트로 참도록 가르친다. 하지만 친실장은 이제 없다.
그래서 식욕의 리미터가 전혀 설정되지 않은 것이다. 자매들은 전혀 식욕을 줄이지 않고 맘껏
먹고 또 먹고 배부르면 변을 누어 배를 비운 후 또 먹는 것이다.

장녀는 물론, 차녀를 포함한 모든 자매들은 비교적 현명하다. 장녀는 특히나 더 영리하지만 다른
들실장에 비해선 딱히 특별한 것은 없다. 다른 자매들을 모으는 리더십은 뛰어나지만 월동기술이나
마음가짐을 배우지 않고 스스로 깨치는 정도의 천재는 아니다.

애초 그녀들은 추자들로, 친실장에 의해 겨울 초입에 먹힐 운명이었다. 친에게서 겨울에 관한 기술은
전혀 전수받은 것이 없다. 그런 자매가 이런 축복받은 환경에서 ‘음식은 열심히 모으면 얼마든지 손에
들어오는 테치‘ ’그래서 실컷 먹어도 괜찮은 테치. 그게 와타시들이 공부했던 것인 테치‘라고 믿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 반응이다.

사실은 열심히 모아도 절제해야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채.

‘붉은 열매가 없으면 오네챠들의 끼니를 찾아야 하는 레치...그러면 보존식이 모이지 않는 레치’

얼마나 서투른 생각인지. 그렇게 생각한 엄지실장은 필사적으로 피라칸사스 열매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고작 엄지가 탐색할 수 있는 범위 내 열매들은 진작 수확되었다. 아직 찾아보지 않은
곳에 가려면, 화장실을 넘어, 나뭇가지를 기어 올라가야 한다.

'레에에에……레츄!? 아직 나무에 붙어 있는 레치!'

그 때 위를 올려다본 엄지 실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지에 다닥다닥 열려있는 피라칸사스의 열매.
저 가지의 열매를 손에 넣으면 일단 오늘 식사는 충분할 것 같다.

그러나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다. 성체실장에게도 조금 버거운 높이다. 아무리 올려다보고 있어도
열매가 떨어지는 기색은 없다.

'레...레츄~웅 ♪'

곤란한 끝에 혼신을 다한 아첨을 해도 당연히 피라칸사스는 열매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엄지 실장에게 현명함, 위기 감지 능력, 자신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혜가 있었다면 지금
당장 열매를 손에 넣는 것은 포기하고, 언니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함께 오늘 끼니를 찾는 일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지실장에게는 그러한 지혜가 없다.(애초 기대하는 것부터 틀려먹었지만), 대신 최근 자신은
커졌다는 자신감, 그리고 봄을 맞이하기 때문에 자신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만 가득 차 있었다.

'와타시가 이 나무를 기어 올라가면 열매를 딸 수 있을 것 같은 레치!‘

엄지 실장은 포대기를 내려놓고 당장 피라칸사스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그녀를 말릴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본래 실장석은 나무를 타기에는 신체구조가 절망적으로 부적절하다. 손가락 없는 막대 모양의
손으로는 가지나 줄기를 제대로 잡을 수도 없고 팔다리의 길이와 근육량도 현저히 낮아 지탱을
몸무게를 할 수도 없다. 차라리 일찌감치 실패했다면 엄지실장도 조금 따끔한 맛만 보고 포기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침 피라칸사스 나무줄기는 가늘었고, 엄지실장의 신체구조로도 충분히 좌우를 끼고 올라
갈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동물에겐 위협적인 가시는 오히려 몸집이 작은 엄지실장에게는 발판과
손잡이로 구실한다.

‘점점 올라가는 레치~♪’

엄지실장은 그대로 30cm 정도 가까이 피라칸사스 나무를 오르며 열매가 달려있는 가지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오늘 분의 열매를 떨어뜨리고 무사히 내려오기만 하면, 미션 성공. 해피엔드다.

‘피곤하지만 힘내는 레츄. 레치. 레치. 레치. 빨리 떨어지는 레치~’

렛치렛치 구령을 넣어가며 가지 끝으로 이동하는 엄지실장. 짧을 팔을 뻗어 열매를 흔들어 지면에
떨어뜨린다. 구슬구슬 땀이 맺히지만, 피라칸사스 열매는 차례로 지면에 떨어진다.

‘짹짹’
'레에!?'

그 엄지 실장 앞에 나타난 것은 참새였다. 까마귀보다 훨씬 작지만 엄지실장 입장에선 충분히
거대한 괴물이다.

'어째서...왜 새가 있는 레치? 뒤뜰에는 새가 다가오지 않는 레챠아'

공포에 빵콘을 하며 목소리를 떠는 엄지실장. 자매들은 잊고 있었다. 뒤뜰에 까마귀가 오지 않는
것은 피라칸사스 나무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라칸사스 나무와 같거나 그 이상의 높이에
있으면 새가 올 가능성이 있음을.

그리고 몰랐다. 피라칸사스 열매는 참새 등의 새의 먹이인 것을.

'짹. 짹짹!'

참새가 겁에 질려있는 엄지실장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지만, 먹기엔 너무 크다고 여긴
것은 확실하다. 엄지에게 두 번 눈길을 주지 않고 가지에 앉아 피라칸사스 열매를 쪼아 먹는다.
참새는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두 발로 가지를 꽉 붙들고, 부리로 열매를 쥐어 잡아당긴다.
엄지실장과 열매, 그리고 참새까지 올라탄 가녀린 가지는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레히이이!! 흔들지 않으면 좋은 레칫~!! 떨어질 것 같은 레치이이~'

참새가 피라칸사스 열매를 먹을 때마다 가지가 심하게 흔들리고, 엄지실장은 필사적으로 가지를
꼭 붙들며 참새에게 애걸한다.
그러나 참새가 엄지실장의 사정 따위는 고려할 이유가 없다. 가지에서 가지로 뛰어다니며 열매를
따먹는다.

'레...레츄~웅~♪'

잔뜩 부풀어 오른 속옷은 엄지 신체와 가지로 전해지는 진동으로 미친 듯이 떨리며 녹색국물을
뚝뚝 흘린다. 다급해진 엄지는 생존본능에 의해 참새에게 오늘로 두 번째 혼신의 아첨을 한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 리는 만무.

반대 효과는 있었지만.

'레히이이이!!!!'

아첨포즈를 취하기 때문에 오른팔을 입가에 붙이는 바람에, 가지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대로
낙하하는 엄지실장. 높이 30cm 정도지만 아래는 딱딱한 흙바닥. 곧장 떨어지면 다소 성장한
여린 엄지의 신체는 산산조각 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가지가 제법 우거져 있었다.
엄지실장은 추락하며 몇 개의 가지에 막혀 부딪치고 팅겨 나간다.

'레벳! 치잇!! 레치이이잇!!!'

그 덕분에 낙하 속도는 늦어졌다. 그러나 피라칸사스 나무에는 가시가 자라고 있다. 그 가시가
엄지실장의 작은 몸에 사정없이 박고 찌른다.

데굴데굴 떨어지는 엄지실장은 가지에 부딪칠 때 마다 피와 살점을 뿌리며 회전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가지의 찔려 멈추는 듯싶었지만...

'레햐아아!'

그만 엉킨 머리카락이 걸리고 말았다. 떨어지는 가속도와 몸무게 때문인지, 뒷머리는 모근부터
살점까지 찢어지고 말았다. 엄지는 그대로 1바퀴 회전하며 지면에 격돌했다.

'레치!...이……레에……레츄우……'

이리저리 가지에 걸려 속도가 줄어든 탓에 즉사하진 않았다. 그러나 지면에 추락한 왼쪽부분은
머리의 1/3이 우그러졌고, 왼팔과 다리는 뒤틀려 뼈와 살점이 마구 뒤엉켰다. 어쩌면 위석에도
타격이 갔을 지도 모른다.

엉터리 재생능력을 지닌 실장석이라지만, 이곳에선 자력으로 부활할 수가 없다. 이대로 죽음만
기다릴 뿐이다.

문자 그대로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것이다.

'레에……레휴우……'

엄지실장의 작은 가슴은 가냘픈 호흡에 따라 조그맣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혼란스럽다.

『와타시 어떻게 된 레치? 절반밖에 안 보이는 레치. 왼쪽 손도 발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왜인 레치? 빨간 열매는 어떻게 된 레치?』

몸의 감각이 급속히 둔화되고 반쪽이 된 시계도 희미해진다. 그 시계는 빨간색으로 물든다.

『빨간 열매 레치. 한 알의 빨간 열매 레치. 한 알 레치. 와타시, 오늘도 밥을 모은 레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장밋빛 미래.

자매들이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수북이 쌓인 빨간 열매. 식탁 주변엔 온 일가가 행복한 얼굴로
둘러싸고 있다. 거기에는 왠지 죽은 가족들도 보인다. 학대파에게 살해당한 마마, 이 폐가까지
따라오지 못하고 죽은 자매들, 익사해 버린 구더기 실장, 그리고 까마귀에게 잡혀간 엄지실장까지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 엄지짱은 붉은 열매 모으기의 천재인 테치! 』
『 여동생짱은 가족의 자랑인 테치! 』
『 엄지짱 덕분에 오네챠들은 더욱 열심히 분발하는 텟츄웅~ 』
『 그런 데스. 오메아는 자랑스러운 자인 데스. 가족의 자랑인 데스. 』
『 오마에에게 맡기길 잘한 레츄~ 』
『 대단한 레치! 』
『 레후~엄지 오네챠가 해주는 프니프니가 제일인 레후~』
『 레후~프니프니후~』
『 레퍄퍄 ♪ 』

제각기 자신을 칭찬해주는 가족들. 거기에 장기 출장 집을 비우던 인간도 왠지 돌아와 있었다.

『우와 정말 행복하고 영리한 실장석 가족이구나! 귀여우니까 내가 사육실장으로 키워주마』

그리고 엄지실장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다른 동족도, 개도, 고양이도, 까마귀도, 그리고 무엇보다
학대파도 오지 않는 안전한 집에서 인간과 산다. 식사는 매일매일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를 수북이
받고, 밤에는 따뜬따끈 거품목욕을 하고, 기분 좋은 푹신푹신 침대에서 잠을 잔다.

그런 매일이 앞으로 기다리고 있다.

'레...레츄~웅 ♪'

그것이 생존을 포기한 뇌와 위석이 보여주는 환상이었다. 자기 주위에 흩뿌려져 있는 것은 붉은열매가
아니라 자신의 피인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엄지 실장은 아첨을 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썼다.

엄지 실장의 마지막의 아첨도, [파킨!]하는 작은 소리도,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았다.
꽃처럼, 피라칸사스의 열매 한 알이 엄지실장의 시체 위에 떨어졌다.

'운치를 하니까 늦어진 테치'
'빨리 옮기고 삼녀짱과 합류하는 테치'

연못의 물로 가득 찬 250cc 물병을 짊어지고 가는 장녀와 차녀. 둘은 빨래터 옆을 터벅터벅 걷는다.
처음에는 삼녀도 함께 들어 않으면 굉장히 시간이 걸리던 일이었다. 성장한 자실장들은, 이제
2마리만으로도 페트병을 순조롭게 나를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커서 와타시 혼자서 페트병을 옮기는 테치'

특히 차녀는 자신의 완력의 향상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최초, 자신의 눈높이보다 위에 있던
패트병 캡이 지금은 가까이 보인다. 인간 입장에서 보면 10㎝에서 13㎝로 성장한 것은 사소한
차이지만 자실장 본인에게는 상당한 변화다.

‘그렇게 되면 장녀짱은 뭘하는 테치?’
‘그 때면 월동의 먹이비축이 전념하는 테치’
‘그런 테치! 그게 좋은 테치’
'……?'

어딘가 황급히 둘러대는 듯한 차녀의 어조에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을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뒤뜰에 한발 들여놓는 순간, 비극을 목도하였으니깐.

'어...엄지챠? 엄지 챠아아아앙!!‘

셋째 딸이 달려갔을 때는……아니, 장녀와 차녀가 발견했을 때에는 벌써 엄지 실장은 싸늘히
식어 있었다.

'엄지챠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테치……'
'삼녀짱 위를 보는 테치
'저것은 엄지짱의 머리인 테치!'

위를 올려다본 삼녀는 피라칸사스 가지에 엉켜있는 엄지실장의 뒷머리를 깨닫는다. 땅을 걷다가
걸릴 리가 없는 높이이다.

'엄지에는 나무에 오른 테치. 틀림없이 오늘 먹을 붉은 열매를 따기 위해 그런 테치. 그리고
미끄러 떨어졌던 것인 테치'
'엄지짱은 와타시들 때문에...!'

구더기 실장과 엄지실장의 죽음을 이겨내고 평화로울 것이 틀림없던 나날에 다시 찾아온 비극.
자실장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장녀짱...돌맹이를 드는 테치’

차녀는 장녀와 삼녀에게 돌맹이를 내민다.

'차녀짱, 돌을 주워서 뭐 하는 테치?'
'엄지짱을 먹어주는 테치'
『 테에?』

'엄지짱은 와타시들 안에서 하나가 되어, 봄이 되면 와타시들이 마마가 되어 낳아주는 테치.
죽어버린 구더기짱과 다른 엄지짱들도 모두 마찬가지인 테치! 그것이 죽어간 자매들의
숙원이기도 한 테치!‘

과거 골판지 하우스 시절, 구더기가 사고로 죽었을 때, 구더기를 먹으며 그녀들의 친실장이 말한
것과 같은 것을 주장하는 차녀.

이 빈집에 도착한 다음날, 웅덩이에서 익사한 구더기 실장을 먹을 때와 똑같이.

모두의 먹이를 위해 목숨을 잃은 엄지실장의 숙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그녀를 먹는다는 것은
제법 설득력 있었다. 게다가 어차피 봄이 된다면 살아남은 자신들이 엄지실장을 새끼로 낳는다.
꽤나 올바른 논리다.

‘맞는 테치...’
‘엄지짱, 구더기짱. 봄에 다시 만나는 테치’

장녀와 삼녀는 차녀가 내민 돌을 집어 들고 엄지실장의 시체를 내리찍는다. 질척한 소리를 내며
찢어지는 엄지의 시신. 세 자실장들은 순식간에 엄지실장의 시신을 먹어치운다. 엄지는 확실히
자매들의 오늘 분 식사를 조달임무를 완수하였다.

장녀일행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구더기를 위해 엄지실장의 찌꺼기를 갈무리하고, 주위에 떨어진
붉은 열매도 모두 회수하여 돌아간다.

‘레후? 엄지 오네챠는 어디에 있는 레후?’
‘엄지챠는....마마가 있는 곳으로 간 테치’
‘엄지 오네챠도 마마 곁으로 간 레후? 구더기짱도 가고 싶은 레후!’
‘구더기짱은 아직 못 가는 테치’
‘레후...엄지 오네챠들, 구더기짱을 따돌리는 레후...’
'외로운 레후...와타시들도 마마가 있는 곳에 따라가고 싶은 레후...‘

함..함...거리며 엄지실장의 고기와 붉은 열매를 부지런히 먹는 구더기들. 자신이 먹고 있는 것이
그렇게 찾는 엄지라는 사실도 모르는 구더기의 머리를, 삼녀가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엄지실장이 죽은 다음 날부터 자매들은 급수임무와 보존식 조달을 더해, 오늘 먹을 식량까지 찾아야만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정은 좀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피라칸사스 열매는 거의 고갈되었고, 잡초는 시들기 시작하여, 남아있는 것은 너무 딱딱하거나
푸석푸석해졌다. 무거운 돌을 뒤집으면 벌레들을 몇 마리 얻을 순 있지만, 그닥 배를 채울만한
요기는 되지 않는다.

며칠 동안은 꼭대기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피라칸사스 열매를 수거하고, 벌레들을 열심히 사냥
하며 버텼다. 하지만 곧 피라칸사스 열매는 완전히 고갈되었고, 폐가의 정원 안에서 실장석
세 마리들의 동선이 닿는 범위 내 모든 먹이는 고갈되었다.

또한 은행나무 열매도 다 주운 것인지 더 발견되지 않았고, 도토리 열매도 찾는데 점점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낮에도 추위에 떨기 시작하였다.

'...겨울이 온 테치. 이제부터는 밖에 나가는 것은 물을 뜰때와 운치를 하러 갈 때 뿐인 테치.
오늘부터 밥은 지금껏 모은 보존식을 먹는 테치...‘

그렇게 장녀가 늦은 결단을 내린 것은 12월 중순 무렵.

‘구더기짱~공 가는 테치~’
‘레후~슛 레후!’
‘골대는 와타시가 지키는 레후~’

다섯 마리로 줄어든 자매들은 본격적인 동면을 시작한다. 자매들은 매일 빈집에서 즐겁게 지낸다.
자실장 세 마리는 모두 16cm 정도로 성장하였고, 구더기들도 4cm를 넘어섰다.

구더기들이야 어쨌든, 자실장들의 성장이 통상보다 훨씬 늦어지는 것은 탄생한 후부터 쭉 이어진
만성적 영양부족 때문.

폐가의 방들은 커튼이 쳐져 낮에도 너무 어두웠다. 오직 거실만이 자실장들의 주된 생활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루할 것으로 예상한 월동은 예상 외로 제법 즐거운 나날이었다.

‘테에...빛나는 테치!’
‘이 가느다란 건 비닐봉투는 아니지만 예쁜 테치’
‘장난감 발견인 테츄~’
‘이 옷 이상한 테치....손과 발 외에 꼬리도 들어가는 곳이 있는 테치’

키가 1.5배로 성장한 덕분에 최초 침입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발견하는 것에 재미 들린
자매들은 적극적으로 수색을 재개한다.

그 결과, 전지가 들어있던 라이트펜, 색색의 비닐끈, 실내 골프용 스펀지 공, 목장갑 등의 물품을
발견했다.

그 물건들은 장녀들의 생활에 투입해 이용했다. 라이트팬을 밤의 조명에 이용하고, 비닐끈은 가위로
잘라 멋으로 두르고 다니고, 스펀지 공은 장난감으로, 목장갑은 방한구로 사용한다.

이 외 여러 가지 오해한 물건들도 많다. .

'테햐아아!? 이 차가운 물을 닦아내는 테치이!'
'테끅...왠지 들뜨게 되는 테치……텍'
'독 테치, 독이 스며드는 테치! 어서 물로 얼굴을 씻는 테치!'

소독용 알코올이 들어 있는 스프레이를 오발하고 독으로 오해하는 사건이나...

'이것 뭐인 테치? 단단하고 무거운 테치‘
'꼭 어른용 집짓기 놀이 블록같은 테치'
'예쁜 그림이 그려진 테치~♪'

자신들이 꿈에만 그리는 맛의 식량을 품은 통조림들을 단순히 블록쌓기 놀이에나 쓰거나...

'테히이이이, 얼굴만 인간인 테치이이이!!!'
'테햐아아아!!! 화 내고 있는 테치...무서운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는 테챠아아!!!'
'테...테츄~웅♪ 테...츄웅~♪ 와...와타시의 귀여움을 보아 목숨만은 살려주는 테치~‘

선반에 반쯤 파묻혀 있던 도깨비탈에 기겁해여 혼비백산하는 등의 사건도 일어났다.
그러나 그 이외는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었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추위를 참으며 밖의 화장실에서 운치를 하는 것으로 시작.
아침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자실장들이 페트병을 끼고 연못까지가 물을 긷는다. 물론
외출 시에는 항상 자투리 천을 옷 속에 넣어 방한대책을 강구한다.

낮에는 폐가의 탐색을 하거나 구더기짱들과 스펀지 공으로 놀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밖이
어두워 지기 전에 두 번째 화장실을 다녀오고, 밤에는 라이트팬의 불빛을 둘러싸고 저녁식사.

배를 채우면, 자실장은 방석 위에 올라가, 낡은 수건을 이불삼아 눕는다. 구더기들은 슬리퍼로
만든 전용 침대에서 취침.

보통 들실장들은 맛 볼 수 없는 즐거운 월동의 나날. 행복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큰 문제점이 두 가지 있었다.

'요즘 집 안에서도 추위가 심한 테치...‘

그 중 하나는 방한대책의 미비. 지은 지 수십 년이 넘어가는 폐가는 여기저기 틈이 생겨, 바람이
세어 들어온다. 난방 기구는 진작 치워졌고, 전기도 가스도 멈춘 지 오래다.

‘모두 꼭 붙어도 추운 테치...’
‘골판지 하우스보다 안 따듯한 건 왜인 테치?’
'역시 이 집의 인간은 글러먹은 닝겐인 테치, 분명 멍청할 것인 테치’

무엇보다 방의 공간이 너무 넓어, 자실장들의 체온으론 덥히긴커녕, 오히려 체온을 빼앗긴다.
작은 골판지 하우스의 한정된 공간이었다면 실장석의 체온으로 충분히 내부의 공기를 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자실장 3마리, 구더기 2마리로는 어림도 없다.

이대로는 겨울 내내 추위에 떨며 보내거나...상황이 나빠진다면 동사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다면 방한대책을 생각해보는 테치. 케이지를 가져와 최대한 꾸며보는 테치. 더 작은
곳으로 들어가면 골판지 하우스 때처럼 좀 따듯해 질수도 모르는 테치‘

나름대로 경험을 통해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장녀. 자실장들은 즉시 이행한다.

일단 케이지를 방안까지 옮긴다. 쇠격자로 된 바닥에는 신문지를 두텁게 깔아 구더기의 낙하를
방지하고, 단열재 역할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위에는 쿠션으로 구실할 수건과 천조각
들을 가지런히 깐다. 격자 모양의 천장과 주변 벽도 모두 신문지와 천조각을 쑤셔 넣거나 덮어서
최대한 차가운 공기를 차단한다.

'이것으로 완성인 테치'
'큰일이었던 테치'

이렇게 빈 집 속에 새로운 하우스를 만드는 일로 장녀들은 문제점 중 하나를 해결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점은 장녀들이 손댈 수도 없으면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다.

바로 자매들의 정신적 문제.

'오늘도 배부르고 행복한 테치~♪'

절제력의 부재.

친실장과 함께 있던 때의 자매들은 공터에 얼마든지 널려있던 잡초 페이스트를 배불리 먹어왔다.
애초 잡초 페이스트는 열량이나 영양가가 부족해 최대한 다량을 섭취해야만 했고, 무엇보다 애초
친실장의 목적은 최대한 자들을 살찌워 특식으로 먹을 생각이었던 탓에, 식욕을 절제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이런 마인드는 지금도 그대로인 상태. 가만히 반-동면상태에 빠진다면 간신히 겨울은 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제법 괜찮은 환경 덕에 활동량은 다른 계절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자매들.

필요한 음료수 확보와 화장실은 물론, 매일 새로운 폐가 탐색, 공놀이 등 활발하게 움직이며 에너지를
소비한다. 거기에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한 자매들의 몸은 더욱 많은 에너지를 열망하게 됬다.

통상 월동 중 들실장은 낙엽이나 신문지로 감싼 집에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며 에너지를 절약하려
하는데...

엄지실장이 전멸하고, 구더기도 1마리 죽어 입은 덜었지만, 폭풍성장하는 자실장들의 식욕 상승
페이스에 비하면 사소한 것.
일단 지금은 모은 은행이 많이 있지만, 이 페이스로 꾸준히 먹으면 새해가 오기도 전에 은행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그 이후에는 도토리를 먹게 될 것이며, 1달이 끝나기 전에 고갈되어
맛없는 토끼사료와 국수를 갉아먹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2월 초 전에 바닥날 것이다.

폐가가 위치한 지역은 그렇게 폭설이 내리지는 않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수북이 쌓이는 일이 있다.
만약 식량이 다 떨어져 새로 밖에 먹이를 구하려 나갈 때, 폭설의 시기가 겹친다면...장녀들의
운명은 결정난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엄동의 날씨를 감안해봤을 때, 이번 봄이 오는 시기는 제법
늦춰질 것 같다. 아무리 똥먹기까지 실시한다 해도 자매들의 생존 가능성은 썩 좋지 않다.

'오늘도 은행 달고 맛있는 레후~♪'
'별미 레후~♪ 오네챠, 만들어 주어서 고마운 레후'
『 테츄츄 ♪ 레퍄퍄 ♪ 』

은행나무열매를 으깨, 구더기들은 즙을 삼키고, 자실장들은 경단을 만들어 먹는 행복한 저녁식사.
그녀들에게 식량위기는 천천히...하지만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허나...그녀들의 운명의 수레바퀴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으니...

인간의 내습이다.

'여기다, 소문대로 빈집 맞는 가보군‘

빈 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뭔가 돈이 될 만한 것을 찾으러 온 도둑이다.

‘장례식 이후 1년 가까이 방치됬다라....뭐 그래도 뒤지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도둑은 지난 달까지만 해도 도시의 대학에 재학하며 ‘실장석 시리즈 전문샾’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남자. 하지만 사적으로는 실장석의 학대를 즐기는 학대파였다. 취미로 얻은 지식과
기술을 적극 시연해 보여 점장과 선배들에게 어필해, 대학 졸업 후에 정규직 제안까지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 어느 날 그는 애오파 손님에게 클레임을 받던 중 점점 거친 말이 쏘아붙이더니
인격모독까지 당하게 되었다. 손님에게 욕을 얻어먹어 가면서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굽신거리는 것
까진 견딜 만 하였다. 하지만 손님이 데리고 온 사육실장에게 ‘데프프프’하는 비웃음과 바지에
똥칠을 당하자, 격분하여 복수를 결심했다.

애오파가 집을 비운 사이, 집으로 들어가, 혼자 남아있던 분충을 도둑의 소행으로 꾸며, 코로리로
죽이는 것이다.

간단한 범행이었다. 링갈을 들고 가, 창문을 두드린 후 ‘실장석님께 극상의 콘페이토를 헌상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창문을 열어 달라 부탁한다. 그러자 그 분충은 ’번거로운 똥닝겐인 데스..
하지만 기꺼이 받아주는 데스. 다음엔 와규 스테이크도 가져오는 데슷!‘ 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
준다.

보통 애호파라면, 사육실장이 창문이나 문을 못 열도록 손을 봐두지만, 일부 애오파들은 실장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아무런 장치를 안 해놓는 경우도 많다.

남자는 들어갔고, 코로리를 분충의 입에 쑤셔넣었다. 똥을 지리며 몸부림치고 뒹구는 모습을
관람한다. 그리고 도둑의 소행으로 보이기 위해 시체의 머리를 비싼 항아리로 내려쳐 증거를
인멸하고, 발견할 수 있었던 현금과 귀중품들을 챙겼다.

‘거기서 마쳤으면 좋았을 텐데...’

남자는 복수를 완료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매끄럽게 잘 풀린 범행의 임시수입에 맛 들리고 말았다.

그날부터 남자는 애완동물 가게에 오는 애호파 중, 예의범절이 안 된 사육실장을 데리고 다니는
집을 중심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애오파와 애호파 가릴 것 없이 멍청한 분충들을 이용해 가택에
손쉽게 침입하고, 사육실장은 죽인다. 분충의 단말마와 두둑한 지갑의 감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남자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어떤 애호파의 집에서 그만 그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 집의 사육실장은 남자가 생각하던
이상으로 현명했다. 남자가 콘페이토를 내보였지만 먹히지 않았다. 초밥과 스테이크를 먹여주겠다
하여도 전혀 듣지를 않았다.

'마마, 저 닝겐을 집에 안 넣어주는 테치?'
'들이지 않는 데스, 저 닝겐은 연극을 하고 있는 데스, 속아서는 안 되는 데스'
'나쁜 인간상인 테치, 저리 가는 테치이'

링갈에 표시되는 글자를 보자 남자는 자신이 바보취급 당한 것에 화가 났다. 그 순간
발작적으로 유리창을 부수고 강제로 침입하였다. 그리고 친실장의 애걸복걸하는 앞에서
천천히 자실장들을 잔인하게 죽였고, 끝에는 울부짖는 친도 끝내 죽였다.

하지만, 무리한 범행으로, 현장에 무수한 증거를 남겼고 결국 잡히고 말았다.

제법 과거 범행을 잘 감춘 덕에, 해당 건수만 저지른 초범으로 인식되었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감옥은 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민사소송을 당해 위자료를 내고, 대학도 퇴학처분. 펫샾에서도 정규직은커녕 아르바이트도
잘리고 말았다. 학대파 동료들도 전과자와 엮이는 건 위험하다 생각했는지 모두 연락이 끊어졌다.

게다가 부모님은 '남의 집에 도둑질 하러 들어간 것도 모자라 애완동물까지 죽이다니! 피해자의
자제분은 PTSD까지 앓아서 병원에 다니고 있는 건 아냐? 변호사 비용과 위자료, 치료비는 내주마.
하지만 이걸로 너와는 인연을 끊겠다!'며 의절 당했다.

그리고 현재. 남자는 훔친 스쿠터로 이리저리 일용직 단기 알바를 전전하며, 밤에는 방치된 빈집에서
거취를 해결하고, 이젠 제법 실력이 붙은 도둑질로 근근이 먹고 실고 있었다.

‘낡은 집이라면 자물쇠가 구형이라 제법 쉽겠군’

문따기 도구를 꺼낸 후 빈집의 잠금장치를 손봤다. 예상대로 몇 분도 되지 않아 쉽게 열었다.

‘자...뭐가 있을까~’

한 손에 라이트를 들고 폐가에 껴있는 어둠을 걷어낸다.

‘....생각보다 지저분하네...’

현관에 라이트를 비추자, 바닥에 멋대로 나뒹굴고 있는 소품들이 보인다. 바람이나 고양이 등이
실수로 떨어뜨린 물건이라 생각하곤 그리 주의를 주지 않는다. 가방을 열고 쓸 만한 물건을
주워 담는다. 방에 들어가자 여기도 뭔가가 헤쳐놓은 듯 물건이 흩어져있었다. 역시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탐색한다.

‘이건 수리 좀 하면 괜찮을 거 같고...오오 오백엔 짜리 저금통 발견! 있어있어! 상품권도 있잖아?
오옷! 기한 남아있네?‘

골동품으로 보이는 인형탈, 저금통, 낡은 시계 등 제법 수확이 좋다. 이 기세라면 장롱 속에 숨겨둔
예금도 있을지 모른다.

‘오늘은 꽤나 운이 좋군’

남자는 전리품들을 쑤셔 넣은 가방을 현관에 두고 옆방에 들어선다. 인기척이 뚝 끊긴 주택가에
위치한 폐가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계속 탐색을 하는 남자.

그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구더기 실장 중 한 마리가 눈을 떳다.

‘레후? 무슨 소리인 레후? 혹시 닝겐상? 오네챠들! 닝겐상이 돌아온 레후~’

침대 삼아 누워있던 슬리퍼 속에서 깨어난 구더기 실장은 언니들을 깨우려 외치지만, 자실장들은
낮의 먹이수집과 급수에 지쳐 푹 곯어 떨어져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또 한 마리의 구더기도
놀다 지쳐 기분 좋게 잠들어 있는 상태.

‘레후...할 수 없이 와타시만 먼저 인사하는 레후’

좋다. 영차하며 슬리퍼에서 기어 나온 구더기는 그대로 케이지 밖으로 나갔다. 케이지 주변은 방석을
깔아놓아 구더기도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레후레훗~ 구더기짱도 많이 커진 레후~열심히 노력해서 고치를 만드는 레후~’

남자가 찬장 속 내용물에 정신 팔린 사이, 구더기는 꼬물거리며 마루를 가로질러 인간에게 향한다.
그리고 인간의 발밑에 도달하자, 큰 소리로 정중히 인사한다.

‘안녕하신 레후~♪ 구더기짱인 레후~♪’
‘음..? 뭐지?’

순간 들려온 이질적 소리에 흠칫 놀라는 남자. 움직임은 멈추고, 숨은 죽여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다.
들고 있던 라이트를 잠시 끄고 눈을 감고 집중한다. 그러고 보니 이 냄새 톡 쏘는 냄새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친숙한 냄새다. 실장석 냄새.

음식물 쓰레기 대신 잡초를 먹고 살았던 장녀들은 다른 들실장들에 비해 덜 심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들생활에서 스며든 악취와 특유 실장취는 숨길 수가 없다.

‘이 냄새...익숙해...설마 실장석??’

그리고 순간 자신의 발밑에서 들려오는 왱알거리는 소리

‘닝겐상. 구더기짱과 오네챠들을 키워줬으면 하는 레후. 구더기짱들 여기서 쫒겨나면 죽어버리는
레후. 스테이크와 스시가 없어도 참는 레후...그...그래도! 콘페이토는 줬으면 하는 레후! 그리고
프니프니도 해주면 더 기쁠 것 같은 레후! 와타시와 오네챠들은 모두 좋은...레벳...!‘

자신을 키워주기 위해 돌아온 인간에게 전하려던 구더기 실장의 인사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목소리도 작아서 혼자 왱알왱알거리는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런 소음에 남자는
크게 놀라서 발을 이리저리 내딛었고, 구더기실장은 그 통에 간단히 짓밟히고 말았다.

'우왓!? 뭐야!? 내가 방금 뭘 밟은 거야? 가만...사이즈로 보면....구더기야 엄지야? 아니아니...
그게 아니지...여기 대체 왜 실장석이 있는 거지?‘

뭔가를 물컹한 것을 짓밟은 기분 나쁜 감각에 발을 통해 전해진다. 라이트를 다시 켜 비추면
납작한 녹색 얼룩이 있다. 평정을 잃은 남자는 순간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혼잣말을 더
크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통에 일어난 장녀들.

‘테휴...테치? 무슨 소동인 테치?’
‘닝겐인 테치! 닝겐이 온 테치!’
‘차녀짱 닝겐상에게는 제대로 존칭어를 붙이는 테챠아! 예의범절 있게 행동을 해야 하는 테츄!!’

장녀들은 모두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간단히 정리하고, 옷에 붙은 먼지를 톡톡 털어낸다.
그리고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예의바른 웃음을 활짝 지으며 인사하는 자매들.

‘닝겐상~안녕하신 테치~!’
‘닝겐상! 와타시들을 키우는 테챠!’
‘차녀짱! 예의범절을 잊지 마는 테칫! 좀 더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테칫!’

차녀에게 눈치를 준 장녀는 다시 매무새를 가다듬고 소개를 계속한다.

‘닝겐상. 와타시들은 닝겐상의 사육실장이 되고 싶은 테치. 만약 그게 안 된더라도 봄이 오기
전 까지는 여기 있게 해주시는 테치‘
‘와타시를 키우는 테치!’
‘샤아아앗! 차녀짱의 입을 막는 테치!’
‘치이잇! 칫! 칫!’
‘뭐...뭐야....뭔가 더 나오고 있잖아?’

남자를 이 폐가의 주인으로 착각한 자실장들은 테치테치거리며 대흥분상태. 그토록 기다리던
주인님이 도착한 설레임과 벅참으로 가슴이 터질 지경이다. 텐션이 잔뜩 올랐다. 자신을 키우라며
손을 휘젓는 차녀와 그런 차녀의 버릇없음을 나무라면서도 꾸준히 인사말을 전하는 장녀. 구더기를
안아들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삼녀.

‘왜 빈집에 자실장이?! 그보다 이 녀석들 케이지도 있잖아? 설마...이 집에서 기르는 사육실장인가?’

당황하여 스마트 폰의 링갈앱을 가동한다. 자실장 세 마리가 저 마다 테치테치 각자 떠들어 내는
통에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고, 이따금씩 ‘와타시의 주인’ ‘사육실장’이란 단어만 자주 등장하는
것만 보인다.

남자는 심증을 굳힌다. 역시나 여긴 빈 집이 아니고, 이 녀석들은 이 집에서 기르는 사육실장이다.
분명히 학대파이지만, 그는 지금 절도범 신분.

이전 펫샾 근무 경험을 통해, 남자는 상당수의 사육실장들이 주인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실장폰이나 소형블랙박스 등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젠장! 여기서 또 잡히면 집행유예취소로 얄짤없이 감옥행. 거기에 동종 범죄 재범으로 형이
더 무거워진다!‘

방금 밟은 구더기는 의도하고 으깬 것은 아니지만, 아무렴 관계없다. 이미 불법가택침입죄에
명백한 절도행각을 더해 애완동물까지 해쳤다. 뭐라 항변해도 항변할 말이 없다. 남자 같은
재범자를 법원에서 봐줄 리가 없다. 게다가 이번엔 돈이 없어 변호사를 고용할 수도 없다.

입막음으로 자실장들을 모두 죽이는 것을 생각해봤지만 역시 무리. 사육실장을 모조리 죽인다면
주인은 격노할 것이고, 민사소송에서 죽자고 달려들 것이다. 거기에 검찰도 증거인멸시도죄에
악질적 특수강도죄까지 더 씌워질 수도 있다.

엄벌을 원하는 피해자. 재범과 더불어 주렁주렁 죄목을 추가하는 검사. 의욕 없는 국선변호사
그리고 그 이후 또 있을 민사재판.

안 된다. 안돼. 이번엔 끝장이다.

‘아...어...그러니까...너희 주인에겐 잠자코 있어라! 미안해! 알았지? 여기 이거!’

남자는 상의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장녀들에게 던지고, 황급히 현관으로 나가 스쿠터를 타고 도망갔다.

‘테에에에....니...닝겐상...왜 그런 테치?’

남자가 던진 주머니의 내용물을 얻어맞고 아픈 뺨을 문지르는 삼녀. 적잖이 당황하였다. 왜 남자가
도망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닝겐상이 주인이 아닌 테치?’
‘방금 전 닝겐은 아마 이 집의 주인이 아닌 것 같은 테치’

역시나 영리한 장녀답게 바로 추리를 한다.

‘그럼 그 닝겐상은 뭐였던 테치?’
‘도둑인 테치. 와타시의 보존식과 물을 훔치려고 했던 테치!’
‘닝겐상도 그런 일을 하는 테치??’
‘....아마 그런 테치! 도망가서 다행인 테치. 학대파였다면 와타시들은 전부 죽었을 테치’

확실히...월동의 보존식을 빼앗는 인간들은 있다. 다만 그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그냥 절망하는
실장석을 즐기고 싶어하는 학대파들이지만...뭐 실제 남자는 도둑이긴 했지만 도토리와 토끼사료를
훔칠 정도로 절박하진 않다.

'테츄~웅 ♪ 도둑 닝겐을 두들겨 쫒아낸 테치~'
'그것보다 차녀짱, 그 닝겐이 던진 물건을 모으는 테치'
'레후~ 이제 아침인 레후? 구더기짱 아직 쿨쿨인 레후'

그때 아직도 잠들어 있던 구더기 실장이 일어났다. 장녀들은 그제야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왜 1마리가 밖에 없지? ...어??

‘구더기짱 다른 구더기짱은 어떻게 된 테치? 아직 자는 테치?’

케이지에서 기어 나온 구더기 실장은 한 마리 뿐이었다.

'구더기 짱이 일어날 때부터 구더기짱은 없었던 레후. 오네챠들과 함께 있지 않는 레후?'
'테에? 구더기짱!! 우지챠아아아앙!!! 어디로 간 테치?'
'구더기짱!! 어디인 테챠아아아!?'
'함부로 뛰어다니면 안 되는 테칫!! 구더기짱을 밟는다면 어떻게 하는 테치!! 테에에!?
그 녹색 얼룩은……!'
'우....우지챠아아아아아앙!'

지금껏 살아남은 다섯 마리의 자매는 이번 비극으로 또 다시 수를 줄이게 됬다.

‘레훼에에에엥....구더기짱 혼자가 된 레후...외로운 레후....레훼에에에엥’
‘구더기짱이 울면 와타시도 슬픈 테치...테에에엥...테에에엥!!!’

구더기살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매들. 찌그러진 고기를 모아 나누어 먹는다. 포대기는 물에
잘 씻어 보존한다. 다음 날이 밝자, 장녀들은 남자가 주머니에서 꺼내 던지고 간 것이나 현관에
내던진 물건들을 둘러본다.

‘이건 뭐인 테치? 그 닝겐이 두고 간 테치?’
‘꼭 와타시들에게 바친 공물인 테치. 아마아마한 냄새가 나는 텟츄~웅♪’
‘쓸 만한 것이 없는지 찾는 테치’

남자가 주머니에서 꺼내고 집어 던진 것은 먹고 있던 초코송이였다. 실장생 최초로 단 것을
손에 넣은 자실장들은 만세 삼창을 외치며 기뻐한다.

그러나 남자가 두고 간 물건 중 가장 가치가 높은 물건은, 정작 장녀들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동전이 가득 채워진 쿠키깡통이 바로 그것. 근처 편의점이 있는 도시라면 이용가치가 약간이라도
있겠지만, 여기는 제대로 된 물건을 사려면 차를 타고 한참 나가야 하는 인구 과소지역.

‘이건 먹을 거인 테츄?’
‘먹을 거...같기도 한 테치’

자매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현관에 내던져진 남자의 가방. 통조림류는 역시 음식이라고
인식을 못하지만, 봉지가 투명했던 비스킷은 음식이라 깨닫는다. 그 외 생수가 들어있던
페트병도 감사하게 챙긴다.

'이것도 음식 테치! 좋은 냄새가 나는 테치!'
'테츄웅~♪ 바삭바삭하면서 싱겁지만 맛이 있는 텟츄웅~♪'

초코송이 다음으로 자매들을 기쁘게 한 것은 남자가 도망갈 때 걸려 떨어뜨린 열대어용 먹이.
역시나 사재기한 채 방치되고 있던 그것은 실장푸드는 아니었지만, 잡식성인 열대어에 맞추어
새우나 플랑크톤 등 동물성 단백질이 다수 함유되어있었다.

거친 들의 야생식물들만 먹어오던 자실장들에겐 최고의 별미.

약간의 추가식량을 얻은 일로 장녀들의 예상 수명은 조금 늘어난 듯하다.
하지만 장녀는 열대어용 먹이를 앞에 두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 섣달 그믐날이지만 달력을 모르는 실장석들에겐 그저 또 다른 겨울의
나날. 오늘도 여지없이 물병을 쥐고 폐가에서 나오는 자실장.

'드디어 혼자서 급수를 할 수 있게 된 테치’

그 자실장은 차녀. 작은 페트병을 안고 뜰의 연못으로 향하고 있다. 늘 하던 급수일이지만, 오늘은
차녀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와타시는 크고 강하게 성장한 테치. 이렇게 물을 뜰 수 있는 테치’

차녀는 20cm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자실장과 중실장의 중간 사이즈만큼 성장한 차녀는
패트병에 물을 가득 채워 혼자 운반할 정도로 힘이 커졌다. 그것은 겨울의 추위도 잊을 정도의
기쁨.

‘이젠 장녀 오네챠도 삼녀짱도 필요 없는 테치. 치프프프...’

지금껏 함께 동고동락해온 장녀와 삼녀의 살해를 생각하고 있는 차녀...!

차녀는 자매들 중에 특히나 성격이 나쁘다. 흔히 말하는 분충은 아니었지만, 차녀는 성미가
못 되고, 직설적이었다. 사육실장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도 그 훈육을 절대 견질 수 있는 개체가
아니다. 하지만 흔한 들실장 분충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힘이 강한 친실장을 순순히 따랐고, 장녀의 영리함도 인정한다.

하지만 친실장은 이제 없다. 그렇게 되자 ‘힘이 가장 강한 것은 와타시’라는 의식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또한, 빈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알게 된 동족의 고기맛....죽은 동생들의 고기맛은
너무나 감미로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처음에도 차녀의 마음속에는 죽은 자매를 애도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몸속에 품어 봄에
다시 낳아 주리라는 사명 하에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살면서 처음 맛보는 그 별미에 차녀는
매료되었다.

지금껏 ‘귀여운 여동생짱’이 ‘맛있는 여동생’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피라칸사스 나무에서 떨어진 엄지실장, 도둑이 짓밟은 구더기실장을 먹을 때도 슬픈 동시에
너무나 즐거웠다. 동족의 고기맛을 기억한 차녀는 서서히 분충으로서 본능이 싹이 트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이 집의 인간이 기르는 것은 가장 강하고 귀여운 와타시 뿐’

이 집의 인간은 집도 따듯하게 못 하고, 아마아마한 것도 없지만 그것도 꾸짖어 버릇을 들이면 제대로
되겠다라고 생각한다. 주제 넘는 장녀. 심약한 삼녀는 방해다. 인간의 대접을 받는 것은 자신 혼자
충분하다.

‘그래서 여태껏 장녀와 차녀가 필요했던 테치’

음식을 모으는 것도, 물 긷는 것도 차녀만으로는 도저히 손이 부족했다. 특히 급수는 크게 성장하기
전까지는 엄청난 중노동이었다.

하지만 벌써 물의 확보는 혼자서 충분하다. 더 큰 페트병에 물을 길어 나르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250cc 물병을 차녀 혼자서 쓴다면 사흘은 간다.

'그래서 이제 필요 없는 테치~ 돌아오면 우선 장녀짱을 처리하는 테치~ 와타시의 명검으로(전에
주은 녹슨 못) 테치!테치!해서 구멍투성이로 만드는 텟츄웅~♪ 삼녀짱은 장녀짱만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멍청이인 테치~치프프프♪‘

빈집에서 주운 못으로 무력적 우세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녹슨 못이지만 여린 자실장의 우레탄
보디 정도는 충분히 찢어발기고도 남을 무기이다.

차녀의 계획은 이렇다. 장녀와 삼녀를 죽이고, 그 고기를 먹어치운다. 그리고 구더기짱은 비상식 겸
애완동물로 사육하다, 인간이 돌아오면 자신의 노예로 삼는다. 그런 장밋빛 미래에 히죽거리는 차녀.

‘이 연못에서 물만 긷고, 돌아오면....치프프프♪ 텟!’

하지만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탓인지, 연못의 물가에서 페트병을 기울이고 있던 차녀의 손이 미끌어
졌다. 페트병은 연못에 두둥실 떠오른 후 떠내려간다.

‘테! 테치! 테치이! 이리오는 테치이이!!’

연못의 물가에서 페트병을 향해 손을 뻗는 차녀지만, 그녀의 짧은 팔로는 조금 빠듯한 거리다.
얕은 여울이라 들어가서 낚아채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겨울 연못의 물은 차갑고, 가능한
젖기 싫다.

‘테에에에....어쩌는 테치...’

이 크기의 페트병은 이것밖에 없다. 이 페트병을 잃어버리면 더 큰 페트병을 혼자 들 수 있기 전
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안 된다. 더 이상은 못 기다린다.

각오를 정한 차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연못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빠질 걱정은 없다. 이 폐가에
처음 왔을 때 장녀가 연못이 있는 줄 모르고 발을 디뎠는데도 허리만 적신 수준이었다. 성장한
자신이라면 구두만 조금 젖을 것이라.

‘테...테히이!? 테보보보보...!?’

이라고 생각했건만, 내딛은 발은 신발만 젖긴 커녕 연못 바닥도 못 딛고 쑥 빠진다. 그대로
차녀는 중심을 잃고 연못에 빠졌다.

'테보보보보!? 테힛!! 테챠아아아!?'

얼음장 같은 물에 온몸이 젖고, 잠깐 사이에 체온을 맹렬하게 앗아간다. 빠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발을 움직였지만 균형이 나쁜 실장석의 체형이 그것을 어렵게 만든다. 머리를 이따금씩 수면 위로
내미는 것이 고작.

『왜 바닥을 딛지 못하는 테치!? 분명 얕았던 테치! 장녀짱은 괜찮았는데, 왜 와타시만 빠지는 테치!?』

쉽게 바닥을 디딜 수 있으리라 생각한 차녀는 더욱 패닉에 빠졌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바닥은
느껴지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차녀는 연못에 대해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이 연못은 자연연못이 아니다. 이 집의 주인이 생전에 설치한 조경용 연못. 플라스틱 연못의 본체를
인터넷으로 주문한 후, 그대로 뜰에 묻은 후 물을 채워 넣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자연연못에 존재하는 여울이 없었던 것이었다. 연못의 깊이는 30cm. 성체실장이 아니면
버거운 깊이.

그렇다면 왜 장녀가 10cm 자실장이었을 땐 빠졌어도 아무 일 없었던 것이었을까? 그것은 전날 내린
비 때문이다. 플라스틱 연못이 가득 차 흘러넘쳤고, 그 주변에 임시로 여울을 만들고 있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요즘 비가 내리지 않는 통에 그 임시여울은 도로 발라버린 것이다.

'테챠아아아!!! 살려주는 테치이이!! 치보보보!?‘

차녀는 연못에 떠있는 페트병을 잡으려 했지만, 당황하여 쭉 뻗은 손은 오히려 페트병을 쳐서
멀리 내보내기만 한다.

‘이야 테치!!! 죽는 건 이야 테치이이!! 와타시는 사육실장이 되는 테치!! 곧 사육실장의 꿈이
이루어지는 테치이이이이!!!‘

연못 기슭으로부터 제법 가까운 곳에 빠졌던지라, 침착하게 뒤로 조금만 팔을 뻗으면 도로 나올 수
있을 테지만, 패닉에 빠진 차녀는 그저 비명만 꽥꽥 질러대며 체력만 낭비할 뿐이다.

‘장녀짱!! 삼녀짱!!! 살려...테보보보....치잇!! 귀엽고 강한 와타시가 핀치인 테칫!! 와타시가...테보보...
죽...테보보...치에에에에에!!! 테에?! 테보보보보!! 테챠아아아아!!!! 치보보보....‘

물을 머금은 실장옷은 무거워지고, 머리카락은 온몸에 엉켜 손발을 구속한다. 절박한 차녀는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살해계획을 세우던 장녀와 삼녀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연못에 가라앉은다.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차녀를 걱정하는 장녀와 삼녀. 걱정 끝에 연못으로 상황을 보러
나온다. 그녀들이 발견한 것은 연못에 떠 있는 페트병과 연못바닥에 박힌 차녀였다.

‘테에에에에...왜 이런 일이 일어난 테치? 무슨 일이 있었던 테치? 차녀짱...’
‘마치 차녀짱은 연못에 빠뜨린 페트병을 잡으려다 미끄러진 것 같은 테치...차녀짱 페트병이라면
또 있는데 왜인 테치이....‘

차녀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이 두 마리는
진심으로 애도의 피눈물을 흘린다.

'테에! 하얗고 폭신한 물건이 떨어지는 테치'
눈물이 흘러넘치는 눈으로 하늘을 보자, 문득 두둥실 흩날리는 눈발을 발견한다. 손을 펴서
잡으면 매우 차가운 물방울로 변한다.

' 예쁜 테치~♪'
'삼녀챠 싫은 예감이 드는 테치. 빨리 급수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틀어박히는 테치!‘

삼녀는 하늘에 떨어지는 하얀 뭔가를 예쁘다고 철없이 말하지만, 장녀는 그 차가움에 위기감을
느꼈다. 이 위기감 덕분에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기 전에 다른 페트병에 물을 길어
확보하는 일에 성공했다. 강추위가 몰아닥친 가운데, 세 마리로 줄어들은 자매는 다시 평화롭게
일상을 보낸다.

집 속에서도 천조각을 잔뜩 뒤집어쓰지 않으면 못 견디는 추위지만, 그 덕분에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화장실과 급수 정도로만 줄어들어 하루 한끼만으로 식사를 때운다. 더욱이 차녀가 죽는
바람에 지출이 크게 줄었다.

의도치 않게 여유가 생긴 월동식량. 이 정도면 식량부족으로 자매가 전멸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물이었다. 몸이 커진 일로 도토리도 쪼갤 수 있게 되었고, 토끼사류, 국수, 열대어용
먹이 등 비교적 건조한 음식을 먹는 탓에 대량의 물을 섭취해야만 한다.

하지만 밖의 눈은 계속 쌓이고 있다. 무려 10cm의 적설량. 인간의 교통에도 조금 무리가 가는
수준인 이 적설량은 실장석 자매들에겐 그야말로 눈의 장벽. 꽤나 애를 먹어야 간신히 물을
길을 수 있다.

‘빨리 물이 되는 테치~’
‘기다리는 테치. 오로지 기다리는 테치’

결국 장녀와 삼녀는 쌓인 눈을, 집안 식기에 퍼 담아 안으로 들고 온 후 그것을 녹이는 작전을
취한다. 이거라면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시켜줄 것이다.

시간과 위험이 대거 동반되는 연못까지 가는 모험보다는 낫다.

고생은 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는 장녀들. 8마리였던 가족은 셋으로 줄어들었고
왁자지껄 시끄럽게 놀던 자매들은 전부 죽어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행복은 있는 법.

‘구저기짱 봄이 오면 나오는 테치. 꼭 귀여운 아기가 되는 테치’
‘엄지짱일수도 있는 테치’

바로 구더기 실장이 고치를 만든 것.

차녀가 죽은 다음날, 슬리퍼 속에서 구더기 실장은 고치가 되어있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많이
놀랐지만, 본능적으로 이 고치는 구더기실장이 성장하기 위한 것이라 이해했고, 지금은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할 뿐이다.

‘봄이 오면 즐거운 테치~♪ 봄이 오면 닝겐상도 반드시 돌아오는 테치~♪ 그러면 닝겐상에게
사정을 말해 키워지는 텟츄웅♪ 그리고 와타시들의 죽은 차녀오네챠와 엄지짱~구더기짱을
다시 낳아주는 테치~♪‘

봄이 되면 이 폐가를 상속할 인간이 찾아온다는 근거없는 망상을 기정사실화하며 노래하는 삼녀.
게다고 돌아온 인간이 자신을 길러주고, 자매들을 잔뜩 낳아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 모양이다.

그런 장밋빛 미래를 낙관하는 삼녀를 어둡게 바라보는 장녀. 뭔가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연다.

‘삼녀짱 할 말이 있는 테치’
‘뭐인 테치?’
‘이 집의 닝겐은 돌아오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는 테치’
‘테에?! 무슨 말인 테치! 장녀짱? 애호파 닝겐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와타시들의 사육실장의 꿈은
이루어 질 수 없는 테치!‘
‘그 닝겐이 애호세력이 아닐 수도 있는 테치’
‘테에에에에!?’

놀라서 뒤로 젖히다 못해 그대로 자빠진 삼녀. 그만큼 장녀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사육실장도 행복한 생활도 모두 이 폐가의 주인이 애호파인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가 애호파가 아니라면 모든 전제가 뒤집어진다. 오히려 자칫하다간 끔찍한 최후도 가능하다.

‘어...어떻게 그런 테치!? 목걸이도 있고! 수조도 있고! 케이지도 있는데 애호파가 아닐 리가 없는 테치!’

항상 장녀의 말을 듣는 삼녀지만, 이것만큼은 수긍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장녀는 쓸쓸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삼녀짱...목걸이나 수조, 케이지는 실장석을 기르는 때 외에도 쓰는 테치. 목걸이는 개나 고양이를
기글 때도 사용하는 테치‘
‘테에?! 그럼 밖의 작은 집도, 목걸이도 모두 개나 고양이를 위한 것인 테치?!’
‘그런 테치. 그리고 그 수조는 물고기를 위한 것인 테치. 이 밥이 증거인 테치’

장녀는 삼녀에게 열대어용 먹이의 라벨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열대어용이라고 써져있었으나
물론 실장석은 글을 읽지 못한다. 그러나 라벨에 쳐진 열대어의 사진은 분명히 알아본다.

‘테에...물고기씨의 밥이었던 테치? 와타시들이 아닌...?’
‘그런 테치. 그리고 이 케이지도 토끼를 위한 케이지인 테치. 이 사료 포장지에 토끼그림을
보는 테치‘
'테에에에에……그건...그건...거짓말인 테치 와타시들은 사육실장이 되는 테치'
'삼녀짱……봄이 되서 닝겐이 돌아오기 전에 달아나는 테치. 아니면 죽을 수도 있는 테치'

오열하는 삼녀를 붙잡고 설득하는 장녀. 그녀는 애호파 외의 인간들은 실장석이 멋대로 집에
들어오면 비록 새끼라 해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동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장녀짱. 와타시들은 도망치지 않는 테치. 닝겐상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길러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테치. 많은 동물을 기르는 닝겐상이라면 분명 와타시들도 키워주는 테치!‘

그러나 삼녀는 막무가내. 확실히 동물을 좋아하는 인간은 실장석에게도 우호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오히려 자신이 키우는 개나 고양이에게 장난감으로 던져
주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은 실장석 이외의 동물은 사랑으로 기르면서, 실장석은 배척하는 일에 별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에게 실장석은 다른 동물과 전혀 다른 카테고리이다.

‘그건 위험한 생각인 테치 삼녀짱! 다시 생각하는 테치!’
‘아닌 테치. 와타시는 닝겐상들을 믿는 테치!!’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는 언쟁. 장녀는 몇 일간 설득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막내는 요지부동.

‘알겠는 테치. 그럼 봄이 되면 안녕인 테치’

장녀는 포기했다. 비록 가족이지만, 더 이상 안된다 라고 판단되면 가족이라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개체였다. 현명하면서도 냉혹한 성격. 들실장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특화된
재능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애초 출발한 8마리 중 5마리가 죽었지만, 실장석의 이주 치고는 대성공이다.

현명하고 애정깊은 친실장이 방한에 만전을 기한 골판지 하우스를 짓고, 저장음식을 풍족하게
비축해 두었다 해도 월동의 성공은 100%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 위험한 월동을 친을 잃은
자실장 이하 개체들 끼리 힘을 합쳐, 집도 보존식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여지껏 살아온
것은 정말 기적에 가깝다.

비록 많은 행운이 따랐긴 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충분히 대단하다. 그렇게 자매는 말없이
작별을 약속한다.


봄.

‘그럼 안녕인 테스’

세월은 흘러 흘러, 추위도 느슨해진 어느 날 아침. 폐가 앞에는 두 마리의 중실장의 모습이 보인다.
키는 30cm 정도로 성장하면서 어미는 테치에서 테스로 바뀐 장녀와 삼녀.

‘정말로 가는 테스? 여기서 닝겐들을 기다리지 않는 테스?’

장녀는 물자와 식량이 가득 든 포대를 매고 있고, 손에는 비닐봉투까지 들고 있었다. 보존식 중
잔여물과 물이 담긴 페트병 등 다양한 물자들이다. 장녀는 이주를 하려는 참이다.

‘가는 테스. 삼녀짱 마지막 기회인 테스. 같이 가지 않는 테스?
‘남는 테스.
‘...’
‘장녀 오네챠, 이곳을 떠나면 어디로 가는 테스? 와타시들이 태어난 공터인 테스?’
‘그곳에 돌아갈 생각은 없는 테스. 또 학대파가 올지도 모르는 테스. 와타시는 이주를 하는 테스’

타지로의 이주. 일설에 의하면 그 성공률은 5%미만이라고 한다. 장녀는 그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한다.

‘테에...행운을 비는 테스. 구더기짱은 와타시가 잘 돌보는 테스’

고치를 만든 구더기실장은 결국 삼녀가 돌보기로 했다. 앞으로 여정을 생각하면 자신 목숨도
불안한데 그곳에 구더기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모두의 목숨만 위협할 뿐이다. 삼녀와 남아
혹시도 모를 가능성을 노리는 것이 생존률이 더 높을 것이다.

‘삼녀짱. 닝겐상에겐 마마에게 하던 것처럼 말을 잘 듣는 테스야. 예의범절을 지키고, 집에서
운치하지 말고, 똥을 먹지만 않으면 예쁘게 길러질 수 있는 테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 장녀는 등을 돌린다. 그리고 돌아보는 일 없이 도로를 걸어 나갔다.

‘....장녀짱.......’

한참 말없이 장녀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삼녀.

‘자, 오늘도 밥을 모아보는 테스’

애써 목소리를 밝게 꾸미며 식량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봄이 완연하지 않아, 벌레는 별로
없지만 나무의 새싹과 풀들이 새로 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월동 중 먹었던 보존식들보단 영양이 적은 밥을 모으는데 그친 삼녀. 그래도 양은 많아
먹이를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자 반가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텟테레ー ♪’

탄생의 환호성과 함께 엄지실장 두 마리가 고치에서 튀어나온다.

'구더기짱!? 고치에서 부화하한 테스!?'
‘레츄~웅♪ 구더기짱은 더 이상 구더기짱이 아닌 레치~엄지짱인 레츙~♪’
‘축하하는 테스! 하지만 왜 두 마리 테스?’

자실장이 들어갈 만한 사이즈의 고치에서 나온 것은 엄지 실장으로 성장한 구더기였다. 그러나
묘한 일은, 엄지실장이 2마리나 나온 것이다.

‘엄지 오네챠들이 모두 없어지면서 와타시 쓸쓸했던 레치. 친구 구더기짱도 없어지고 점점
외롭게 된 레치. 그래서 와타시가 엄지 오네챠가 되면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한 레치~‘

예쁘게 두 목소리로 화음을 이루는 엄지실장들. 단순한 돌연변이인지, 실장석 특유의 제멋대로인
생리인지 모른다. 아니면 정말 친실장이 말했던 것처럼 자매를 먹어 고기에 섞인 위석이 체내에
저장, 고치화 했을 때 분화했는지도 모른다.

삼녀도 이 희귀한 현상을 잘 이해하지 못 하지만 아무렴 어찌되든 좋다. 귀여운 여동생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다. 삼녀는 오른쪽에 있는 엄지실장에게 노란색 비닐끈을, 왼쪽에 있는
엄지실장에겐 초록색 비닐끈으로 리본매듭장식을 만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는 테스 엄지짱들~’
‘레츄~웅♪’

노란색과 녹색은 예쁜 리본선물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 삼녀와 엄지들은 그날 저녁 간만에 행복한
식사를 즐겼다.

‘오늘부터 또 밥을 모아오는 테스’
‘도와주는 레츄’
‘와타시의 곁을 떠나면 안 되는 테스!’
‘하이 레츄~♪’

아직 쌀쌀한 날씨 속에 부드러운 햇살을 맞으며 삼녀와 엄지들은 폐가의 뜰에서 오늘 식량을
모은다. 중실장인 삼녀는 아직 성체는 아니었지만 이제 덩치가 커져 까마귀들이 덮치는 것을
주저하는 사이즈다. 특히나 나무꼬챙이와 못으로 무장하고 있는데다, 중실장부터는 자실장보다
살이 단단하고 퍽퍽하여 까마귀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빈 뜰은 고양이나 개가 침입하기 어려운 안전한 거처였다.

‘우와...정말 있네’

갑자기 들려온 사람의 목소리. 그것은 이 폐가를 상속한 인간, 토시히코였다.


토시히코는 최근까지 장기 해외 출장으로 해외에 전출을 가 있었다. 이 폐가를 상속한 것도
출장 중의 일이었다. 본래라면 아직 1년 정도 해외 근무가 예정되어 있었지만……부모님이
교통 사고를 당하고 타계했기 때문에 갑자기 일본으로 돌아온 것. 게다가 그 타이밍에
일본에 남겨둔 약혼자가 자신의 해외 출장 중에 상사와의 불륜관계에 있었던 일이 발각.

부모의 유산과 동시에 약혼파기위자료와 상사로부터 위자료를 받았으며, 쓸 곳을 잃은 결혼 자금과
내집마련 저축을 더하여 통장은 두둑해졌으나, 마음은 엉망. 우울증이 발병하여 회사도 그만두었다.

그런 토시히코에서 걸려온 전화. 첫 번째는 경찰서에서 ‘붙잡힌 절도범이 댁에도 도둑질을 시도했다고
했는데...뭔가 도난당한 게 있습니까?‘ 라는 것이었다.

‘도난이요?’
‘네. 하지만 댁에서 기르는 사육실장에 들키자 도망쳤다고 자백했습니다. 그 때 댁의 사육실장 중
한 마리를 짓밟았지만 불행한 사고라고 주장합니다. 어쩝니까?‘
'사육실장이라고요?‘

자신은 일본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육실장이라니? 뭐 도시에선 자주 보이는 게
실장석이다. 부모님들은 실장석에 별 접점이 없는 분들이셨다.

‘예...뭐...본인이 반성하고 있다면야...’
우울증을 앓고 있던 토시히코는 귀찮아하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전화가 왔다.

‘토시히코 씨.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것은 알지만 실장석을 키울 땐 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예?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현에서는 실장석을 기르는 경우, 신고를 하고 마이크로 칩을 박아 등록해야 합니다.
제가 방금 조회를 해봤는데 전혀 데이터가 안 뜨거든요? 원랜 이거 바로 벌금행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자실장 이하면 기르고 있다고 신고만 하시면 됩니다’
‘하아...’
‘이달 중으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토시히코가 등록비를 아끼려다 들켰다는 오해를 한 경찰은 막무가내로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제야 자신이 상속한 폐가의 존재를 떠올린 토시히코. 부모의 장례와 상속관련절차를 끝내고
잠깐 들렸던 그 집을 기억해낸다.

테스테스레치레치하며 즐겁게 재잘거리며 먹이를 모으는 중실장과 조그마한 엄지실장을 확인한
토시히코는 우선 링갈앱을 다운로드했다.

‘음...안녕?’

일단 말을 걸어봤다. 그러자 중실장과 근처에 있던 엄지실장이 ‘테테?’ ‘레엣?’하며 놀랐다.

‘니...닝겐인 테스? 이 집의 닝겐인 테스?’
‘레히이이....밟지 마는 레치...’
‘밟아..? 아 저번 도둑때 일인가. 아니야, 난 이 집의 사람이야...그니깐 주인이야’

그렇게 말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실장.

‘좋은 테스...또 가족이 줄어버리는 건지 걱정한 테스. 닝겐상의 집에 멋대로 들어가서 죄송한 테스.
그래도 와타시의 얘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테스‘
‘아주아주 슬픈 얘기인 레치!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울어버리는 레치!’

테스테스하고 말하는 중실장. 링갈에 표시되는 문자를 읽는 토시히코는 실장석 자매들을 관찰했다.

[도시에서 보던 놈들보단 더럽지 않는데? 냄새도 없고...]

그 동안 실장석과 별 연관이 없었다. 특히 들실장은 가끔 골목길에서 몇 번만 봤을 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삼녀들에겐 다행이게도, 토시히코가 나타난 것은, 삼녀가 따듯해진 연못의 물에서 옷과 몸을 깨끗이
다음날이었다는 것이다. 날씨가 따듯해져 하는 일종의 의례였다. 그리고 고치에서 갓 나온 엄지들은
때가 전혀 타지 않았고, 옷 색깔 또한 선명하였던 것.

게다가 똥냄새를 억제하는 성분이 포함된 토끼사료를 먹어서 냄새를 억누른 일도 다행이었다.

‘대충 이야기는 알겠다....’

실장석과 별로 관계되고 싶어하진 않는 토시히코지만, 그렇다고 사이좋은 자매가 말 하는 중에
바로 죽여버릴 정도로 싫어하진 않았다.

‘음....가능하면 키우고 싶네 이거’
‘테스!’
‘레츄!’
‘키울까....별로 그런 심정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곳은 다음 달에 계약이 끝나버리고...’

애완동물을 기른다. 지금 토시히코에게는 가볍게 내리는 결단은 아니다. 부모의 유산과 불륜으로
인해 받은 위자료를 합쳐, 주머니 사정은 여유롭지만, 부모가 살던 집은 혼자 살기에는 넓어
처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계약하고 있는 아파트는 펫불가. 더욱이 지금은 정신병원까지 다니고
있다. 친척관계는 소원하고 친구관계도 지금은 잠깐 거리를 두고 싶다.

자신을 돌보는 것도 힘든 시기에 중실장과 엄지실장들을 기르게 되면, 우선 애완용품을 사는 것부터
이것저것 정보를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 귀찮다. 게다가 실장석은 키우기 힘들다 들은 적도
있고...

‘키우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지만...그렇다고 내쫒지는 않을게. 뭐 됬다. 일단 집안부터 확인해야지’
‘물론 테스!’

삼녀는 양손에 엄지를 껴안고 토시히코의 뒤를 따라간다.

폐가는 1년반 넘게 방치했기 때문에 먼지가 얇게 쌓였다. 게다가 이 집에 거주하던 자매들이
여기저기 발자국을 냈다. 선반은 자매들이 물자를 꺼내 쓰느라 난장판이었고, 도둑이 든 이후에는
더욱 어지럽혀져 상당히 지저분했다.

방의 다다미에는 흙얼룩이 약간 붙어있고, 거실에 이르자 실장취가 강렬히 난다. 카페트에는
신문지인지 천조각인지가 잔뜩 깔려있었고, 케이지는 완전 실장석의 집이었다.

‘최대한 이쁘게 쓰고 있던 테스. 정리도 항상 하고 있는 테스. 닝겐상에게 최대한 폐가 안 가도록
한 테스‘
‘화내지 말았으면 하는 레츄’
‘부디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하는 레츄’

딱딱하게 굳어 긴장한 세 마리를 내려다 본 토시히코. 잠시 입맛을 다신 후 말을 건다.

‘음 괜찮아’

라고.

보통 집에 들실장이 들어온다면, 학대파가 아니어도 지옥을 보게 된다. 운이 좋으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죽임을 당하고, 운이 나쁘다면 고문당한 뒤 죽임을 당한다. 그것에 보통 평범한 대처.

그러나 토시히코는 화낼 생각이 없다. 애초 이 폐가에 살 생각이 없었다. 만일 살게 되더라도
건물은 한번 헐고 다시 세울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러워져도 별 상관없다.

게다가 이 폐가에 살았던 고인에게 전혀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실장석이 살고 있는 데다
도둑이 들어도 별로 상관없다.

‘똥도 싸지 않았고, 유리도 깨지지 않았고...말한 대로 비어있는 창문으로 들어왔다면 뭐
관리소홀 탓이지’

전혀 화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뭐...애완동물이라...참, 너 풀 뽑는 거 할 수 있냐?’
‘풀 테스? 물론 테스!’
‘음 그럼 됬어. 길러줄게’
‘테에? 그럼 사육실장이 되는 테스?’
‘조건만 지킨다면’

토시히코가 낸 조건은 삼녀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보였다.

변은 화장실에서 누는 것. 만약 새어버린 경우엔 가급적 깔끔하게 닦아낼 것. 본인을 포함한
다른 인간들에게 무례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 위협하거나 물어뜯거나, 투분하지 말 것.

'그리고 사치를 기대하지 말 것. 초밥과 스테이크는 나도 무리니까'
'알겠는 테스.…… 그래도 콘페이토는……테에, 아무것도 아닌 테스'
'콘페이토? 음, 그 정도야 가능해‘
‘정말 테스? 주인님 감사한 테스~’
‘레츄~웅♪ 주인님 잘 부탁하는 레치~♪’

정기적으로 먹이를 받고, 콘페이토까지 가끔 준다면 삼녀들에겐 충분히 좋은 대우이다. 토시히코는
고작 콘페이토에 기뻐하는 세 마리에 약간의 연민을 느꼈다. 실장생은 힘들구나...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매일 풀을 뽑는 일 부탁한다. 여기에 새 집을 지을 거야‘

이것이 토시히코의 계획. 우울증이 완화되면, 시골로 이사를 와 인간관계를 청산하고, 자기사업을
할 것이다. 그 동안 더욱 무성해질 마당의 잡초를 삼녀들이 뽑아주면 더욱 편리할 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좋은 테스? 알겠는 테스! 열심히 돕는 테스!’
‘와타치들도 도우는 레치!’
‘엄지짱들은 풀이 없어지면 까마귀들에게 붙잡히는 테스. 그러니깐 집보기를 하는 테스’
‘레에에....와타시가 도움이 못 돼 미안한 레치이...’
‘커지고 싶은 레치...’
‘그럼 일단 준비부터 할까나’

우선 이 세 마리를 깨끗이 씻긴다. 인간의 손길이 기분 좋은지 연신 감탄을 표한다. 그 후엔
동물병원에서 마이크로 칩을 삽입한 후, 시청에 신고했다. 그리고 녀석들의 먹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애완 동물 가게에……음 이건 나중에 하자. 여러가지 번거로운 것 같다.

‘방에서 약 먹고 멍하니 있는 것보단 낫지. 임시수입도 있었고’

도둑이 놓고 간 5백엔 짜리 저금통. 그리고 옷장 속에 있던 장롱예금도 찾아냈다. 이것만으로도
녀석들에게 사육실장 신분을 주기엔 충분하겠지.

‘뭐...가을까지 기르는 건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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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한 사람도 이 뒤가 있는지는 모르는 상태던데 이대로 끝이라 쳐도 될듯.

댓글 13개:

  1. 데에엣... 어째서 학대파가 아닌데스? 똥닌겐인데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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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럴리가없는데승 하면서 당황하고 생각해보니 아 이거 작가가 애호파구나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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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갑자기 죽여버리는 엔딩으로 억지스럽게 전개시키는 것보다는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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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가을까지 기르는건 괜찮다니.... 그 이후에는 어떤일이 벌어지는 데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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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데프프풋... 어째서 명확한 결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스우? 겨울이 오면 잡초도 자라지 않게 되는 데스. 그 전에 집도 다 지어질 것이 분명한데스. 그러면 무쓸모해진 삼녀쨩과 엄지쨩들은 버려질것이 당연하지 않은데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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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기존작품들 보면 영양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한두달이면 자실장도 성체실장 되던데 가을까지만 길러도 성체실장 되서 애도 깔 수 있으니 배드엔딩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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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억지학대나 학살이 없는게 명작인 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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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주확률 5% 저거 은근 많이 나오는 데스... 정형화된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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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분충들이 안 죽었네.. 쓰레기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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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분충도 안 죽고 여태 살아서 덧글다네 ㅋㅋ 쓰레기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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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연스럽고 재밌는 글이었는데 ㅋㅋ
      인분충 아직도 안죽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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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기분 나쁜 애호물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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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개좆같은 엔딩..멋대로 집에 들어앉아 부모의 유산을 더럽힌 씹새끼들을 기른다? 쪽바리새끼들 생각은 이해할 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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