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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 애호공원 괴멸사건(ふたば愛護公園壊滅事件)은 1990년 8월 18일에 「」현 후타바시 니지우라虹浦마을(현재・니지메이虹鳴마을)의 후타바공원 안에서 발생한 실장석 대량사멸사고와 이를 원인으로 한 부차적 사건의 총칭이다.
지금도 각 방면에서 의논되고 있는 실장석문제를 취급함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과제를 남긴 사건으로, 현재의 실장석에 대한 인상을 결정지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건의 내용과 피해규모・원인에서 애호공원 전멸사건과 실장석 대량사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목차
1 개요
2.사건현장의 성립
3 후타바 공원
4.실장석 커뮤니티
4-1.커뮤니티의 내정
4-2.실장석의 주거
4-3.실장석의 식량
4-4.커뮤니티의 자주관리체계
5.사건발생
6.커뮤니티의 현실
7.테이프 내용
8.사건의 원인
9.공원 내의 상황
10.학대파의 존재
11.진범(용의자)
12.또 하나의 문제점
13.후에 지적된 맹점
14.사건 후의 영향
15.사회적 영향
16.관련항목
17.참고문헌
[편집] 1.개요
1990년 8월 18일 새벽, 「」현 후타바시 니지우라마을에 있는 시영시설 「후타바 공원」에서 생활하고있던 약 2만 마리에 이르는 실장석이 대량사망하는 이상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공원 안의 일부시설이 넘어지고 「공원탈주자」에 의한 인근가옥의 피해가 속출했다.
게다가 19일 새벽에 발생한 화재사고를 시작으로 크고작은 사건이 각지에서 동시다발한 영향으로, 니지우라마을은 거의 3일에 걸쳐 일반생활이 곤란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21일 새벽에는 일단 진정화되었지만, 이 사건에 의한 사망자는 8명, 부상자 다수, 행방불명자는 3명으로 집계되었다.
상상을 한참 뛰어넘는 피해규모때문에, 한때는 「니지우라마을 전멸」이라는 오보가 나가기도 했다. [출처 필요]
[편집] 2 사건현장의 성립
당시의 후타바시청은 근교의 호칸코帆観呼산에서 대량이주하여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실장석에 대한 구제대책을 둘러싼 의논을 하고있었다.
호칸코산은 한때 실장석을 포함한 소형야생동물에 있어 이상적인 생활환경을 갖추고있어, 인근에서는 "동물들의 최후의 이상향"이라고 불리고 있었으나, 근년의 벌목과 후타바시의 베드타운화에 따른 주택지 확장을 목적으로 한 무리한 토지확장공사의 영향으로 환경이 악화.
그때문에 “산실장”이라고 불리는 비교적 현명한 실장석들이 산림부에서의 주거를 포기하고 조금씩 니지우라 마을과 그 인근으로 유입되게 되었다.
들실장이 된 실장석들에 의한 식료품 강탈과 쓰레기장 어지르기, 주민에 대한 위협・공격(주로 돌이나 쓰레기, 분변의 투하)・음식의 요구 등의 피해가 한꺼번에 증대했다.
90년 초까지 시청에 접수된 피해보고와 민원은 무려 1만건에 달했고, 당시 시장이었던 토리츠키 스레아키(鳥付擦明)씨는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이에 대응하고자했다.
당초에는 보건소에 의한 대규모 구제활동으로 실장석의 전멸과 시 외부로의 축출을 수행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점했지만, 후에 제출된 실장석의 생태에 관한 보고서가 방향성을 바꾸었다.
실장석의 구제와 필요한 인원・인건비를 포함한 예산 등의 비율, 그에 대한 실장석의 출산증가율・생활권 확대능력, 또한 극단적인 체격차로 인한 탐색에 드는 시간과 노력의 비용, 호칸코산에서 후타바시로 이어지는 산림부 주변의 특수한 지리형상이 약물살포와 인원에 의한 구제효과를 현저히 저하시킬 가능성 등에 의해, 이래도라면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거라는 견해가 강해졌고, 구제에 의한 철저섬멸안은 일단 암초에 부딛혔다.
이것은 시장을 필두로하는 당시의 회의참가위원의 거의 모두가 실장석의 생태에 관한 기초지식을 갖고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규모구제의 대안으로, 당시 시장보좌관이었던 스레케시 토시코(磨消敏子)씨에 의해 제안된 것이 「실장석을 시의 보호하에 두고 육성관리한다」라는 것이었다.
이 안은 당초에는 경시되었으나, 실장석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주면 큰 이동을 하지않게된다」라는 생태에 기반한 근거로, 한 마리 내지 한 가족 단위의 실장석이 생활에 필요로 하는 점유면적, 그리고 육성에 필요한 사료와 그 조달・예산 따위의 다양한 포인트를 짚는 추가자료가 좋은 평가를 얻었고, 또한 구제활동에 드는 비용보다도 저렴하게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밝히고있었기에, 십수회에 걸쳐 행해진 회의의 방향성은 역전되었다.
하지만 훗날, 스레케시씨에 의해 제출된 연구자료에는 맹점이 상당히 많았고, 실장석의 돌발적행동이 미치는 악영향이 전혀 고려되어있지 않았던 점, 또한 개체별 생활필요면적과 사료의 분량 따위는 잘 사육된 특수환경대응형 실장석(이른바 사육실장)만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 등이 지적되었다.
게다가 본 사건 후에 사임한 스레케시씨가 그 다음달에 일찌감치 실장석애호운동협회에 소속된 점에서도, 이 자료는 소위 「애호주의자에 의해 형편좋게 편집・정리된 일방적인 견해에 의한 내용, 또는 날조였던 것이 아닌가」라고 분석되고있지만, 사후 확인된 방대한 관계자료에서는 왠지 해당 자료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고, 어느 직원이 개인적으로 복사한 자료의 극히 일부밖에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는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다.
어쨌든간에, 이 회의의 방향성이 구제활동으로 결정되었다면 나중의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각 방면의 전문가는 분석하고있다.
(메이소우冥送출판 간행・후타바시의 비극은 어째서 일어났는가)
사건 후, 시청은 「사고조사위원회」를 독자적으로 설립하여 본 사건의 추적에 나섰다.
이것은 본 사건의 수많은 의문을 해명하는 목적으로, 항공기와 철도 관계의 사고발생시에 활동하는 사고조사위원회의 존재를 참고로 조직되었으며, 기간한정으로 경찰로부터의 자료제출권과 사건대책본부 참가권을 가지고, 또한 공원시설관련의 조사에 관해서는 경찰에 준하는 조사권한을 특별히 허가된 것이었다.
멤버는 보건소 직원・시청직원만이 아닌 경찰관계자, 사고연구전문가, 실장석전문가, 저명 브리더 등의 실력파가 모였고, 또한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의 운영・조사진행방식을 잠조하여 2005년12월에 실제 해산에 이를때까지 크나큰 활동을 하였다.
또한 이 위원회는 시영이라 하더라도 조사를 위해서라면 상급기관인 시청이나 경찰측의 부주의・문제점도 용서없이 지적・발표한다는 철저한 스탠스를 유지하고있었기에, 수많은 의문점을 해명하는것 만이 아니라 훗날의 실장석 관련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이 활동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높은 평가를 얻고있다.
[편집] 3.후타바 공원
후타바시는 당시 니지우라 마을에 있던 광대한 부지에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대공원을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후타바 공원」이라 이름지어진 이 시설은 총면적 142,523.31 평방미터에 이르는 규모로, 이것은 도쿄의 히비야 공원日比谷公園에 필적하는 면적이다.
또한 각 설비와 경관 따위도 히비야 공원의 규모에 미치지못하지만 상당히 참조하고있다.
부지 안은 복수의 블록으로 나뉘어 각각에 아동용 놀이도구, 벤치, 장애인의 이용도 고려한 공중변소, 커뮤니티센터, 관리사무소, 재해시의 피난설비 등이 설치되었고, 또한 많은 수의 수목과 잔디를 풍족히 심었으며, 초기단계부터 공원미화를 전제로 청소활동을 철저히 하였기에 무척 아름답고 쾌적한 공원으로 높은 평가를 얻었다.
당초에는 지역주민들의 휴식처로 설립계획을 세웠지만 상술한 「실장석의 보호관리」를 효율좋게 진행할 장소가 달리 없었기에, 후타바공원은 개원과 거의 동시에 실장석을 받아들이기 위한 전문시설로 취급되게 된다.
하지만 이 사실은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공원이용자에 의한 시청에의 클레임이 다수 발생했다.
이에 대해 시청은 공원에 사는 실장석들이 지역주민과 공존할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는 활동을 개시한다.
공원관리사무소에는 본래의 업무에 더하여, 실장석의 생활관리와 방범대책 등의,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일거리가 주어졌다.
후에 공원관리사무소는 사고발생요인을 미연에 발견・예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 유족단체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지만, 사건 당시 관리사무소에 근무・순직한 직원들이 정리했던 운영계획 및 긴급대응책의 내용은 꽤 이상적인 것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나중에 사고조사위원회에 의해 발표될 즈음에는 많은 피해자 유족이 직원유족・관계자에 사과를 하였다.
[편집] 4.실장석 커뮤니티
후타바시는 구제해도 단성생식으로 무진장으로 증식하는 들실장 대책으로 「실장석을 관리하에 두고 동시에 생활을 보호한다」라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이것은 굉장한 고난이 따르는 기나긴 길이었다.
시장은 시청 내에 공원실장석 커뮤니티 관리부를 설립하고, 원 사육업자와 보건소 직원, 사육실장 브리더 경험자 등 실장석의 생태에 밝은 인재를 다수 모집했다.
관리부는 실장석관리확립을 위해 몇 개인가의 과제를 성공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 또한 당초는 어느 정도의 구제도 어쩔수 없다고 주장하며 일단 악질적인 성격의 개체의 배재와 「인간에게 형편이 좋은」 실장석 커뮤니티 설립을 준비에서 실행까지 하기로 결정했다.
보건소 직원과 실장석 브리더 유지, 그 밑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계약직이 후타바 공원에 파견되어 간단한 테스트를 행하여 악질이라 판단되는 개체를 선별・구제했다.
병행하여 사전선별된 특별히 현명한 개체와 팔리지 않아 펫숍에서 처분대상이 된 노령 사육실장을 모아, 전문브리더에 의한 재교육・훈련을 행했다.
이들은 악질개체 구제활동 후에 공원에 방사되어 들실장들의 리더적인 위치에 서도록 했다.
동시에 구제반으로는 일일히 대응하기 어려운 분충개체의 처리는 리더 실장석들의 판단에 맡겼다.
당초에는 브리더가 리더 실장석을 보조하는 형태로 커뮤니티 안의 실장석을 호출했지만, 서서히 개입을 줄여 자주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유도했다.
여담이지만, 이 때에 행해진 「노령의 재고 사육실장을 다른 개체의 교육계로 채용한다」라는 아이디어는 좋은 평판을 얻어, 현재에도 각 방면에서 폭넓게 채용되고있다.
또한 후타바 공원 안에 설치된 「공원관리사무소」에 실장석의 실질적 관리대응이 위임되었다.
실장석을 둘러싼 트러블의 대응과 실장석의 육성감독・관리가 아닌, 커뮤니티 안의 일부 문제해결, 공원환경의 변화기록, 그것들의 통합기록의 제출이 명령되었다.
관리사무소는 기본 2인, 최대 4인의 직원이 교대로 근무하고, 24시간 체제로 운영되었다.
사무소 시설은 공원 남동부 블록에 있는 인공연못 부근에 건설된 2층 조립식건물로, 1층은 사무소, 2층은 직원의 휴게실과 그 관련시설로 쓰여졌다.
2007년 현재, 이 건물은 철거되어 철근콘트리트제의 동규모 설비로 바뀌어있지만, 이것은 본 사건에서 직원이 시설 내에서 사망・순직했다는 예상외의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편집] 4-1.커뮤니티의 내정
공원의 실장석의 수가 너무 많았기에 커뮤니티 관리부는 공원관리사무소와 협력하여 공원을 4개의 블록으로 나누고 각각 다른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했다.
이것은 하나의 커뮤니티 안에 개체수가 증가하면 그 중추에 서는 리더 실장석들에 걸리는 부담이 커지는데다 관리가 닿지않게되어 공원의 치안(이 경우에는 일반 공원이용자도 포함한 의미)가 나빠질 위험을 고려한 대책이었다.
앞서 리더 실장석으로 선별된 개체는 일시적으로 재회수되었고, 커뮤니티 관리부에 의해 충분한 지식이 주어진 뒤 다시 각각의 블록에 방사되었다.
동시에 각 커뮤니티 블록 안에는 몇 개인가의 암시가능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상시관찰이 행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장의 활동을 1년 가량 행한 결과, 악질 개체는 공원에서 서서히 도태되었고, 또한 실장석들의 생활수준・청결도・인간과의 공존의식이 향상되었다.
한편, 공원관리사무소는 실장링갈을 이용한 리더 실장석과의 밀접한 커뮤니케이션을 취하여 인간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범위의 생활상 만족・불만족의 확인과 실장석 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세심히 체크하고 그 대응을 하였다.
그 덕분에 리더 실장석과 관리사무소 직원은 꽤 이상적인 관계가 되었고, 어느 직원이 남긴 업무일지의 한 켠에는 특정 리더 개체에 대한 애착이 깊게 느껴지는 기술도 있었다. [출처 필요]
후타바 공원에는 실장석의 생활을 지키기 위한 수 많은 엄격한 규칙이 설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다른 동물을 들이지 않을 것」 「실장석에게 먹이를 주지 말것」 「실장석을 무단으로 데려가거나 상처입히거나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일견 평범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규칙의 철저함은 평범하지 않았다.
공원관리사무소는 공원에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보면 그 자리에서 퇴출시켰고, 애호파의 인간이 먹이를 무단으로 뿌리면 엄중히 주의를 주고 그럼에도 되풀이하면 벌금을 부과할 정도였다.
당연히 학대현장 따위가 발견되는 경우에는 보다 엄했고, 사건 발생까지 수십명의 사람이 엄벌에 처해졌다고 한다 [출처 필요]
또한 공원에 사는 노숙자에 대한 대응도 강경했고, 관리사무소는 실장석에의 악영향을 고려하여 개원 직전에 철저히 추방하는데 힘썼다.
이로 인해 인권단체로부터 「사람보다 동물의 생활이 우선인것인가」라는 격렬한 비난을 받게되었지만, 당시 후타바시 곳곳에서 노숙자 유입에 의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기에 후타바시는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며 대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관리사무소에 보고된 범위에서 「노숙자에 의한 실장석의 피해」는 마지막가지 발생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공원 안에서 실장석학대로 신병이 구속된 사람 가운데에는 실장석에의 반격(대량의 투분)을 받고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구했다는 경우도 몇 건 있었다.
이 때의 실장석은 딱히 처벌을 받지 않았기에(주:시 및 관리사무소는 정당방위로 판단), 나중에 각 방면에서 행해진 실장석의 취급을 둘러싼 의논에서 문제시되었다.
[편집] 4-2.실장석의 주거
한편, 공원내 보호대상인 실장석도 안정된 생활을 지내기 위해 나름대로의 리스크를 짊어졌다.
최대의 문제인 「주거확보」 「먹이・수분보급」 「동족간의 치안유지」 중에서 전자 두 가지는 공원관리사무소가 담당하고, 후자 하나는 실장석 커뮤니티에 일임되었다.
이것은 어느 수준 이상의 치안・풍기 유지의식이 없는 한 어떤 환경을 주어도 무의미하다는 브리더 경험자로부터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이다.
실장석의 주거로 비닐로 싸서 방수성과 내구성을 향상시킨 대형 골판지상자와 발수도장처리를 한 낡은 나무상자 따위가 주로 주어졌는데, 이것은 가족단위가 아닌 개체수 얼마에 대해 하나씩 배분되었고, 말하자면 내무반식 공동주택이었다.
또한 공원의 경관을 유지하기위해 주거의 위치는 엄격히 결정되었고, 그 이외의 장소에 배치・이동시키는 일은 일절 불가능했다.
각 주거시설은 물리적 파손이 발생하지 않는 한은(실장석의 힘으로는)절대로 움직이지 않도록, 바닥에 폐자재 등의 무게추를 심어두었다.
다만, 이 주거시설은 특정 체적마다 파티션으로 나뉘어져있지만 대형이었기에 거의 모든 개체를 수납할 수 있었다.
또한 리더 실장석을 포함한 특수한 위치의 개체는 별도의 주거가 주어졌고, 이것에 의해 커뮤니티 안에 명확한 상화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에 따른 의식개선을 촉진했다.
그 배치는 주로 식수부의 안쪽과 공원 울타리 근처, 또는 커다란 나무 뒷쪽 등 공원의 일반이용자의 눈에 띄지않도록 공을 들였다.
또한 배색도 짙은 녹색과 갈색, 검은색이 사용되어 특정 계절을 제외하면 눈에 띄지 않도록 배려했다.
어떤 이유로 주거에서 퇴출된 실장석도 방치되지 않도록 일부 오래된 놀이도구를 개방해서 일시적으로 비를 피하고 휴식에 이용할수 있게 한다든가, 가능한 범위에서 주거를 증설하여 대처했다.
한 칸의 주거는 당초에는 자실장 이하의 개체를 제외하면 최대 50마리 전후를 수납가능한 1층 구조였지만, 수가 늘어난 나중에는 높이 1.5미터 정도의 복층구조가 되어 약 1백마리 단위의 주거가 가능해졌다.
사건발생 당시에는 이것이 공원 안에 약 200〜250칸 배치되어있었고, 계획으로는 95년 까지는 보다 큰 타입의 것을 200칸 추가할 예정이었다 [출처 필요]
다만, 이 주거는 당시 실장석들에게 살기 좋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는데, 신장 50cm 이상에 이른 성체 클래스에게는 꽤 좁았던 모양이고, 자실장 이하의 개체가 어미나 동료의 뒤척임이나 발걸음에 밟혀죽는 사고가 많았다.
이것은 리더 실장석도 마찬가지로, 개별주거라는 점 이외에는 이점이 거의 없었고, 넓이는 일반주거보다 약간 낫다는 정도밖에 되지않았다.
공원관리사무소의 기록에 의하면, 이것은 「잘 때가 아니면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라고 한다.
당시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공원의 틈새나 그늘에 주욱 늘어선 녹색의 상자 무리에 복잡한 감회를 느꼈다고 한다.
(후타바시청 발행・후타바 통신 제82호「사람들의 목소리」)
실장석의 생활에 따르는 다음 문제점 「배변처리」에 있어서, 시는 공원 내에 전용 화장실을 둔다는 전대미문의 대응을 하였다.(※1)
이것은 곳곳에 설치된 공중화장실에 인접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높이 1미터 폭 3.5미터 길이 2.5미터의 입방체 모양으로, 간단한 시멘트 구조였다.
안에는 폭 50cm로 구획된 12개의 방이 있고, 각각에 수세식 좌변기가 설치되어있었다.
변기의 주위에는 4개의 소형 의자가 놓여져 여기에 걸터앉은 자실장의 똥은 그대로 변기에 떨어지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이 특수한 형상으로 인해 성체는 변기에 올라타는게 아니라 끝부분에 엉덩이를 대는 모양으로 배변하는 스타일이 강요되었지만, 한번에 복수의 개체가 용변을 본다는 점, 그리고 구조상 방에서 장시간 앉아있어도 곤란하지 않아 이용성이 높았고, 지금까지 자주 보이던 「인간용 변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사고」는 대폭 감소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인간용 변기는 남성용 일부를 제외하고 양변기로 사용되었기에, 실장석들은 이것을 이용하지 않게되었고 화장실 안에서의 트러블도 경감되었다.
실장용 화장실의 배수는 안쪽 벽에 있는 버튼을 두 번 누르면 행해지는 구조였는데, 이것은 변기가 출산으로도 사용된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오작동을 막는 구조였다.
버튼을 두 번 누르는 것은 리더 실장석과 풍기실장들에 의해 조작법이 전파되었고, 가끔씩 흘려보내는걸 잊는 일은 있었지만 대부분 제대로 이용되었기에 들실장이 쓰는것 치고는 청결한 상태를 유지했다.
또한 일반 이용자의 영향도 고려하여 실장용 화장실은 반드시 산책로에서 사각에 놓이는 위치에 설치되었고 탈취처리도 만전을 기했다.
화장실은 지붕을 들어낼 수 있어 간단히 청소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는데, 접합부를 특정 순서로 누르지않으면 해제되지않는 장치가 되어있어 악의가 있는 일반 이용자에 의한 장난을 막도록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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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각주
※1:기술제공・설계는 후타바시의 의뢰를 받은 로젠사 일본지부에 의한 것.
[편집] 4-3.실장석의 식량
커뮤니티 관리부와 공원관리사무소가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실장석 특유의 동족식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먹이의 공급이 끊기는 것은 최대의 금기였고, 가장 주의를 많이 기울였다.
실장석의 먹이는 공원관리사무소 직원이 오전7시〜9시와 오후 5시〜7시에 두 번에 나누어 실장푸드를 배급했다.
주어지는 것은 일반 사료로는 중급〜하급의 대용량 클래스가 대부분이고, 영양가는 중시되었지만 실장석의 기호에 맞다고는 절대 말할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예산상 어쩔수 없는 것이었고, 최성기에는 가장 저렴한 실장 드라이푸드(성체 1끼에 100g 환산할 경우)를 써도 당시 가격으로 하루 평균 40만엔 전후의 비용을 필요로 하였다.(※1)
이것은 각 방면에서 커다란 문제로 제기되었고, 동물애호단체들은 배급먹이의 질의 향상을, 커뮤니티 관리부는 예산의 절감을 주장했다.
또한 납품하는 사료업자도 너무 큰 납품수에 재고가 떨어지는 일이 많았고, 한끼라도 먹이를 거르면 맹렬한 기아감을 느끼며 폭주할 가능성이 있는 실장석의 성질을 고려하여, 보다 적확한 대응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었다.
커뮤니티 관리부는 「공원 안에 과실이 열리는 수목의 식재」 「폐기가축의 고기(를 가공한 것)의 배급」 그리고 「채소재배의 교육」이라는 세 가지의 대책을 내놓았다.
공원 안의 한켠을 개방하여 밭을 만들고, 각종 채소(계절에 따라 종류가 바뀐다)를 재배시키기 위한 노하우를 알려주고, 어느정도 자급자족을 유도했다.
이로 인해 실장석은 토마토, 감자, 가지, 오이, 호박, 당근, 무, 미니양배추 따위의 육성을 행하게 되었고, 그 중에는 인간이 키운것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것을 키워내는 개체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실장분을 발효시켜 비료로 만드는 기술도 전수되었다.
채소는 어느 정도 보관이 가능한 종류를 골랐고, 계절에 따라 자라기 쉬운 과일과 건조시켜 섭취하기 적합한 들풀류도 주어졌다.
나중에는 자실장들의 오락 목적으로 식량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꽃과 풀따위의 씨앗도 주어지게 되었다.
이 대책의 결과는 실장석 생태연구가들의 주목을 모았고, 실장석이 높은 수준의 식물재배능력을 가졌다는 의외의 면이 알려지게 되었다.
식수에 의한 과실의 제공은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감・보리수・황매화・도토리・소귀나무・굴거리나무 등이 선정되어 각지에 배치되었다.
실장석은 인간이 식용으로 쓰지 않는 열매도 먹기때문에, 그 후에도 여러가지 수목이 심어졌다.
이것은 후에 공원의 수목에 화사함을 더한다는 부차적 효과도 있었기에 일반 이용객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또한 이것과 병행하여 서늘하고 그늘진 곳을 이용한 식용버섯의 육성노하우도 전해졌고, 이것도 실장석들의 자급자족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수목에 모여드는 곤충류 일부도 실장석의 먹이가 되었다.
원래 축산업자가 많이 살던 후타바시에 있어 폐기가축의 고기를 실장석들에 준다는 것은 일석이조의 대책이었다.
고기는 주로 나이 많은 폐기소・돼지・닭이 간이해체된 상태로 사용되었고, 공원에 잔류할 가능성이 큰 뼈 등은 주어지지 않았다.(※2)
고기류는 일정 간격을 두고 주어졌고, 부패의 문제로 보존은 엄금되어 풍기실장들에 의해 엄격히 점검되었다.
고기의 배급은 실장석들에 있어 주말의 즐거움이 되었고, 각 커뮤니티는 고기의 배급일이 가까워지면 활기를 띄었다.
고기는 피와 불순물, 노폐물을 흐르는 물에 씻고 자르기만 한 것으로, 조미료나 조리는 전혀 처리하지않았다.
또한 양이 제한되어있었기에 반드시 모든 개체에 돌아가는건 아니었고, 공원관리사무소는 블록마다 배급 타이밍을 다르게 하여 대응했다.
하지만 뒷날, 사고조사위원회는 이 대응이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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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각주
※1:2007년 현재의 환산으로는 상품가격 인상으로 보면 50만엔 정도 된다.
※2:처음에는 먹다 남긴 고기에 의한 부패피해가 발생한다는 걱정이 있었지만, 고기에 집착하는 실장석이 이것들을 남기는 일은 거의 없었고, 실제로 보관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요가 높았다.
[편집] 4-4.커뮤니티의 자주관리체계
생활권을 확립한 실장석들에는 엄격한 자주관리체계도 필요로 했다.
상술한 리더 실장석들의 지시와 교육에 의해, 분충의 솎아내기와 흉폭한 마라실장의 배제,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 외부로부터 온 실장은 커뮤니티에 들이지 않는다는 규칙이 주어졌고, 위반하는 자는 용서없이 제재를 받았다.
이것은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부외자를 불러들여 생기는 동족간 혼란을 피하기 위함이고, 실장석간에 빈번히 발생하는 「집단의식의 악화(악의가 있는 개체의 성질에 선량한 개체가 동조해버리는 것)」의 예방, 예상외의 트러블(기생충 침입, 생활주관・윤리관의 차이에 의한 의견대립)을 미연에 막기 위함이었다.
사육실장의 공원내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것도 이것이 이유이다.
규칙에 기반한 처벌・배제와 자연사로 발생하는 실장석의 사체는 특정 장소에 모여져 정기적으로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회수되는 시스템도 있었다.
또한 직원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배급되는 사료와 커뮤니티 안에서 재배된 작물, 공원의 과실 이외의 먹이는 먹지않도록 금지되었고, 구역마다 정해진 것 외의 수돗가와 화장실 사용도 금지외었다.
또한 항상 청결하게 있을수 있도록,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개체는 빨래와 몸을 씻는 스킬을 몸에 익히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도록 의무화되었다.
이러한 세세한 규칙은 인간측에서는 충분히 관리할 수 없었기에, 리더 실장석을 정점으로 한 「풍기실장」 십 수 마리(최대 1백 수십마리까지 이르렀다고 말해진다)에 의해 점검되었고, 위반자는 동족에 의한 용서없는 제재가 시행되었다.
기본적으로 벌은 엄중한 주의→생활환경의 격리(영역으로부터의 추방)→신체적 손상을 동반한 제재→정신적 손상을 동반한 제재→공원추방→처형이라는 단계를 밟았다.
무려 인간의 감옥과 비슷한 시설까지 만들어져, 깊게 파인 구멍 안에 떨어진 개체도 다수 존재했다.
다만, 이러한 제재행위는 일반 실장석의 눈 앞에서는 절대 행해지지 않았고, 특정 격리구역 안에서만 행해졌으며 벌을 주는것을 전문으로 하는 실장석도 존재했다.
또한 제재행위를 밖에서 훔쳐본 개체에도 같은 벌이 주어졌다.
이것은 동족의 불행을 비웃는 실장석의 성격과, 그로 인해 공원거주 실장석들에게 걸맞지않은 사고가 감염되는 가능성을 고려한 대응이다. 그 결과 실장석들 사이에는 「죄와 벌의 무거움」이라는 개념이 충분히 스며들었고, 그 중에는 벌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도중에 위석이 자괴해버리는 개체도 있었다.
또한 처형은 실장석 간에는 절대로 행해지지 않았고, 살아있는 채로 사체취급으로 보건소로 보내진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실장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벌칙이었다.[출처 필요]
한편, 철저한 규칙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영향도 고려하여 일부 구역에는 실장석 전용의 놀이기구가 설치되었고, 특정 간격으로 별사탕 따위의 과자도 균등하게 분배되었다.
또한 리더 실장석에게는 대량의 별사탕이 맡겨져, 커뮤니티 안의 공로자에의 특전・포상으로 준다는 시스템을 만들어 「리더의 카리스마」의 육성・발달에도 배려하였다.
이런 세세한 특전은 공원관리사무소가 예상했던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여, 포상을 얻기위해 일부의 실장석 그룹이 결속, 협력하여 공원미화에 힘쓰거나 구역내의 동료의 주거수리를 돕는다든가, 채소의 재배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한다든가, 어미를 잃은 새끼를 받아들여 키우는 장소를 만든다든가 하면서 지금까지의 실장석관을 크게 흔드는 모습을 보였다.
이 「유능한 실장석 그룹」의 발족은 다른 구역의 실장석들에도 전파되어, 착한일을 스스로 행하려 하는 실장석이 다수 발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남서부의 실장 커뮤니티 블록은 청소활동에 열심이었고, 한 때는 「쓰레기통이 필요없다」라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활동했다. 불이 붙은 담배꽁초를 회수・소화・처분하는 자실장들의 활동이 영상기록으로 남아있다(또한 꽁초를 버릴때의 실수로 옷과 머리털에 불이 붙어 타죽어버린 개체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꽁초를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실장석 애호가 사이에서 오랫동안 미담으로 회자되었다).
실장석 연구가로 이름높은 우지하라 후니오(氏原腑仁雄)씨는 이 특이한 현상에 주목하여, 시의 허가를 얻어 공원 안의 실장석을 1년간 연구・기록하여 「실장석은 악의만이 아닌 선의도 전파하여 널리 행하게 할 수 있다」라는 견해・증명을 보고서로 모아 애완동물잡지「실과 장実と装」에 발표, 각 방면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이 포상 시스템은 리더 실장석이 풍부한 먹이를 대량으로 비축하고 있다는 것을 크게 어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가끔씩 이를 탈취하기 위해 커뮤니티 안에 반란도 발생했다.
그 대부분이 풍기실장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83년에는 북동부의 커뮤니티 거의 전체가 반란을 일으켜 리더와 풍기실장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기에, 공원관리사무소는 대책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결과, 극히 일부의 풍기실장에게 무장을 주고, 반란의지가 생기기 쉬운 「잠재적 분충성질」을 가진 개체의 철저한 선별이 행해졌다.
이러한 대책으로 인해 후술할 동북부 커뮤니티의 사건 직후, 공원 전체의 약 1/10에 이르는 개체가 추가로 처분되었고, 한 때 후타바시는 동물애호단체와 보호계획 지지자들로부터 커다란 반발을 샀다.
또한 이 때 주어진 무장은 인간에는 위해를 주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어야했기에 금속류와 예리한 것은 없었고, 나무젓가락과 나무막대를 가공한 곤봉, 가는 로프와 그물, 약한 실장코로리, 블랙잭(끝에 모래를 채운 가죽주머니)등이 주어졌다.
이런 무장은 실장석들에 주어지기 전에 세심히 체크하여 「실장석의 능력으로는 복제할수 없다」 「인간(특히 어린이)에게 향해도 부상을 입히지않는다」 「여러번 공격하지 않으면 실장석의 전의를 상실시키지 않는다」 라는 성능을 갖추게되었다.
부상당한 실장석의 치료는 실장석의 생명력・회복력을 감안하여 커뮤니티 안에서 처치하도록 했지만, 중요간부 클래스의 개체의 생명유지와 전염병 발생의 가능성, 또는 회복이 곤란하다고 판단된 개체에 있어서는 전문 수의사의 진찰・치료를 받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물론 이를 받기 위해서는 엄중한 심사가 필요했고, 실제로는 매우 한정된 개체만이 치료를 받았다. [출처 필요]
이것은 자신의 몸에 근거없이 불안을 느낀 개체가 쇄도할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수의사의 진찰을 받기 전에 커뮤니티 안의 “의료계 실장석”의 진찰을 받고 허가를 얻지않으면 안되었다.
이 의료계 실장석은 실장석의 신체문제를 판별하기 위해 전문교육을 한 개체로, 굉장히 수가 적어 공원 전체에서도 겨우 수 십 마리 정도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의료계 실장석에는 매수행위에 대한 엄격한 벌칙이 따로 준비되어있어, 숨겨간 먹이에 낚여 허위허가를 내준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후타바공원의 실장 커뮤니티는 각 구역간에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것이나 꽤 고도의 독자생활권을 형성했고, 또한 모랄과 규칙의 자주적 준수도 있었기에 이상적인 「인간과 공존하는 자」가 되었다.
일반 이용객도 점차 실장석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어, 개원 1년반이 지날 즈음에는 실장석과 노는 아동과 가족의 모습 따위도 자주 보이게 되었다.
현재에 있어서도 후타바 공원의 실장석 정도로 대규모로 우수한 커뮤니티가 형성된 사례는 없다는 설도 있고 [출처 필요], 실장석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는 각 방면의 기관은 후타바시의 대응과 아이디어, 공원관리사무소가 정리한 연구보고서를 크게 참조하고있다.
하지만 그 내용의 일부는 반면교사적인 의미로 참조된다는 결과가 된 것이 현실이다.
[편집] 5.사건발생
1990년 8월 17일 오후 22시 15분 경부터, 후타바 공원 부근의 주민들로부터 「실장석이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고있다」라는 신고가 경찰에 쇄도했다.
후타바시 경찰서는 후타바 공원에 가장 가까운 니지우라 제2초등학교 앞 파출소에서 두 명의 경관을 파견하여 공원관리사무소의 상황을 확인시켰다.
당시 근무하고있던 카코노 토시아키(過去野敏明)경장과 시오호 아게로타(塩穂上郎太)경위는 신고에서 약 10분 후에 현장에 도착했다.
22시 58분, 두 명은 공원관리사무소에 도착.
23시 7분, 사무소 시설 안에 카코노 경장이 본부에 무전기로 연락.
「공원의 곳곳에 악취가 나고, 수많은 실장석이 짖고있습니다. 창문을 닫고있는데도 확실히 들릴 정도입니다」라는 내용이었지만, 이것이 이 시점에서 확인된 공원내 생존자로부터의 마지막 통신보고가 되었다.
그 동안 사무소 안에서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고, 또한 경관이 도착할때까지 관리사무소가 어떤 대응을 취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이튿날 16일 새벽(정확히는 오전 3시 전반), 근처를 지나가던 산케이신문惨系新聞 니지우라 판매소의 배달원이 공원에서 도주하는 실장석들에 휘말려 넘어져 부상당할때까지 공원 안의 상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오전 3시 경, 공원 부근의 주거지에 도달한 배달원은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린 직후, 도로위를 가득 메운 실장석의 파도에 휩쓸렸고, 자전거와 함께 넘어져 머리를 강타당하여 의식을 잃었다.
이 때 배달원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있었기에 실장석을 눈치채지 못했다.
실장석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공원 주위의 주택가에 침입, 창을 두드리고 툇마루 아래에 숨어들거나, 길 위에서 정처없이 방황했다.
이 소동은 취침중인 인근 주민을 일으킬 정도의 크기였지만, 탈주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되는 시각으로부터 약 1시간 후인 오전 4시 22분, 니지우라 3번지 부근의 교차로에서 23세의 여성이 운전하는 경차가 뛰어든 실장석들을 피하려다가 모서리의 인가의 벽에 충돌, 동승자인 25세 남성과 함께 즉사했다.
이 때의 충돌음으로 인근 주인의 대부분이 눈을 떴고, 사태의 이상함이 전파되었다.
후타바시 경찰서에 인근 주민으로부터의 최초 신고가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 늦은 오전 4시 52분이었다.
통보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달려갔을 때, 공원 주변은 엄청난 양의 오물과 실장석의 체액・사체로 더러워져있었고, 공원 안 곳곳에도 너덜너덜한 실장석의 사체가 흩어져있었다.
또한 공원관리사무소인 조립식건물은 완전히 쓰러졌고, 그 일부는 인공연못 안에까지 들어가있었다.
안에 있던 직원과 두 명의 경관은 모두 붕괴에 휘말려 사망했고, 그 주변에도 다수의 짓이겨진 실장석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이때문에 감시카메라에 의한 영상기록은 전혀 회수할 수 없었고, 공원에서 발생한 사태는 점점 알수없게 되었다.
경찰은 후타바 공원의 봉쇄를 결정하고, 추가 인원을 현장에 보내었다.
후타바 공원의 입구 4개소는 봉쇄되었고, 공원 안에 일반 이용객이 남아있지않은지 꼼곰히 확인했다.
한편, 민가에 침입한 실장석은 각자 기괴한 행동을 취했다. 주택침입을 시도하여 창을 깨는 놈, 자물쇠를 잠그는 것을 잊은 창과 문으로 침입하여 식료를 탈취하는 놈, 인간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놈(※1) 등이 나타났지만, 굉장히 겁을 먹거나 무척 화를 내거나 이상할 정도로 흥분한다든가 하여 보통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기묘한 반응을 보였다.
그 대부분은 몸에 부상을 입고있었으며, 어떤 놈은 손발과 귀, 실장복과 두발에 결손이 있었다. 그 중에는 완전히 두발과 실장복을 잃은 개체가 비교적 멀쩡한 개체 다수에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도 확인되었다.
오전 6시 7분, 경찰의 요청에 의해 긴급소집된 보건소직원은 실장석의 사체를 회수하여 몇 대의 트럭으로 운반처분했지만, 몸을 숨긴 실장석까지 회수하지는 못했고 아직도 명백히 살아있는 개체는 회수하지 않았기에 3시간 정도의 활동으로 일찌감치 물러나버렸다.
그 떄의 보건소의 대응에는 큰 의문이 남았고, 현재에도 다양한 억측이 난무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후타바시 측에서 아직 살아있는 실장석을 회수하는(=죽이는) 것이 금지되어있던것이 아닌가」
라고 말해진다.
하지만 후일 시청 및 보건소측은 그런 취지의 지시가 있었던 기억은 없다고 단언하였기에 최종적으로는 현장의 판단에 따른 결과였던 것으로 되었다.
오전 8시 41분, 보건소에서 추가인원이 파견되어 후타바 공원 안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 시점에서 공원에서 탈출한 “아직 살아있는” 실장석의 수는 도무지 확인되지 않았고, 각 가정 내에 숨어든 개체에 의한 피해는 진행중이었다.
현장의 경찰관은 각지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트러블의 대응에 쫓기고 있었고, 이 시각에는 공원의 봉쇄감시도 느슨해져있었다. [출처 필요]
또한 그 동안에도 계속해서 공원에서 탈출하는 실장석이 있었던 것이 출근중의 주민들에 의해 다수 확인되어있다.
오전 11시 15분, 보건소의 조사계는 「공원 안에 뭔가 큰 사건이 발생하여 겁먹은 실장석이 일제히 탈주했다」라고 판단하여 경찰과 시청에 보고했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어디까지나 공원내로 한정된 보고였으며, 인근의 피해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보가 정리되지 않았다.
오후 2시 넘어, 공원 북서부에 있는 다목적 커뮤니티센터에서 그때까지 발견되지않은 대량의 실장석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커뮤니티센터는 인간 전용의 철근구조 시설이었고, 각종 이벤트에 사용될 때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폐쇄되어있었기 때문에, 실장석이 들어가지 않도록 바닥을 지상 1.2미터 정도 높게하여 입구 앞에 계단을 놓았으며 툇마루 아래에 숨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촘촘한 철망을 펼쳐두었다.
이 철망의 구멍에 무수한 자실장 이하의 개체가 쑤셔박혀있었다. 자실장들은 머리와 다리부터 억지로 구멍에 쑤셔넣어졌기에 그 대부분이 철망에 몸을 긁혀 신체손괴를 일으키고 있었다.
자실장에 있어 높은 곳에 매달려있었기 때문인지, 대부분이 쇠약사 또는 아사, 자괴한 모양이고, 머리를 확인할 수 있는 사체의 대부분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또한 철망을 세게 강타했다고 생각되는 안면부가 부서진 성체실장석의 사체도 십 수 마리 발견되었다.
후일담이지만, 이 사건에 의해 커뮤니티센터의 철망이 교체되게 되었는데, 그 툇마루 아래의 안쪽에는 무수한 저실장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이 상황에서 커뮤니티센터의 아래가 실장석들의 사설처형장같은 취급이 아니었을까 하는 가설을 내놓았다.
오후 3시경, 남서부에 설치된 재해피난설비의 하나, 지진대책용 비품창고에서도 실장석의 사체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이것은 후타바공원이 참고한 히비야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설비로, 대규모의 재해발생시에 이용하기 위한 보존식과 취사도구, 모포와 휴대용 화장실, 공구 등이 담겨있는 24 입방미터 정도의 강철제 상자(외견은 창고로도 보인다)이고, 공원 바깥에 놓여있었던데다 앞에 많은 나무와 풀이 자라있었기에 발견이 늦어졌다.
실장석들은 이 상자의 천정에 오른 후, 그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전멸해있었다.
당초에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의문이었으나, 바로 옆에 줄기가 기울어 걸쳐있는 거목이 있었기에 이것을 타고 오른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12평방미터 정도의 좁은 천정면에는 성체・자실장 이하 개체를 포함하여 무려 300마리 이상의 실장석이 올라있었고, 태반은 다른 개체에 짓밟히고 몸의 일부 또는 대부분이 뜯어먹혀있었다.
또한 상자 주위에는 낙하했다고 판단되는 개체의 사체도 다수 발견되었고, 그 수도 포함하면 500을 한참 넘는 개체가 밀집되어 있었다는 것이 된다.
또한 낙하한 사체도 부분적으로 먹힌 것이 많았고, 그 시점에서 커뮤니티 안에서는 엄히 금지되던 동족식이 빈발했다는 것이 확정되었다.
오후 4시 55분, 공원 부지내에 확인된 실장석의 사체는 사고조사를 위해 현장에서 확인작업이 행해졌고, 40cm 이상의 성체개체가 18,253마리, 중실장 이하의 개체가 29,888마리로 발표되었다.
다만 이 수는 찢겨나간 파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의 개체수와 맞지는 않았다.
무더위에서 행해진 확인작업은 극히 곤란한 것이었고, 서서히 부패해가는 사체에서 발생하는 악취는 공원주위에도 퍼져 주민으로부터 많은 클레임이 제기되었다.(※2)
공원에서 탈주한 실장석은, 신장 40cm 이상의 개체(※3)만으로도 4,800마리 이상이었고, 이들이 데리고 간 자실장 이하의 개체와 도주처에서 출산한 개체수를 모두 포함하면 1만 마리를 넘을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오후 6시를 넘은 시점에서, 후타바 공원 및 그 주변은 일단 평정을 되찾았지만 무더위의 영향으로 각지에 흩어진 실장석의 사체가 급속도로 부패하여 심한 악취가 흘러나왔기에 다시금 보건소가 출동하게 되었다.
동시각, 인접한 민가와 그 벽의 사이 약 20cm의 틈에 숨어든 30마리 넘는 자실장이 질식 및 압사하여 발생한 부패가스로 자택내에서 자고있던 80세 남성이 호흡곤란 끝에 사망했다는 가슴아픈 사고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인간이 구제곤란한 좁은 틈새에 숨어든 작은 체격의 실장석에 의한 부차적 피해가 발생하였고, 21일 오전 9시부터 14시간 이상에 걸쳐 보건소에 의해 행해진 살수세척이 완료될때까지 마을은 악취에 의한 피해를 받았다.
이로 인해 12명 이상의 주민이 병원에 실려갔고, 2명이 중상으로 판단되어 장기입원을 해야했으며 그 중에 1명은 며칠 후 사망했다.
오후 8시 12분, 후타바 공원 부근의 어느 민가에서 경찰에 110 신고가 들어왔다.
귀가한 가족이 어질러진 자택의 모습을 보고 빈집털이라고 판단하였지만, 그것은 나중에 가옥내에 침입한 후타바 공원의 실장석이라고 판명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다수의 신고・피해접수가 속출하였고, 경찰과 보건소는 대응하는데 급급했다. 19일 오전 1시경, 니지우라마을 2번지의 민가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인접주택에 차례차례 번져가면서 피해를 냈다.
화재장소의 입지조건이 나빴기에 소화활동이 지연되었고, 완전진화까지는 약 6시간이 소요되었다.
이 화재로 인해 화재지점 및 옆 가옥들에서 남녀노소 합하여 총 8명이 희생되었다.
또한 중경상자는 7명, 행방불명자는 3명이 되었다.
전소된 가옥에서 발화원인이라 생각되는 일회용 라이터(소위 가스점화기라 불리는 착화구가 긴 타입)가 발견되었지만, 당시 발화장소의 가족은 전원 외출해있었다.
또한 현장에서는 실장석 및 실장석이라 생각되는 흔적은 일절 발견되지 않았기에 발화과정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사고조사위원회가 실장석의 소각실험(※4)을 행하여 일반가옥을 연소시키는 온도 약 1200도에서는 거의 완전히 연소된다고 입증되었다.
이로 인해 실장석이 라이터를 가지고 논 것이 원인이라고 결론지어졌다.
그 후, 각지에서 민가에 숨어든 실장석에 의한 트러블의 신고가 이어졌지만, 화재나 인명사고로 발전할 정도의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의 개체는 후타바공원에서 2km 이상 떨어진 「니지우라마을 엔젤 상점가」에까지 이르렀고, 20일 오전 11시의 신고에 의해 동일 오후 8시(상점가의 각 점포가 폐점하기 시작하는 시간대)까지, 주로 식료품점을 중심으로 도난이 다수 발생했다.
그 모두가 실장석에 의한 짓이라는 것이 판명되었고, 숨어든 40마리 정도의 개체는 주민회의 용사들에 의해 포획되어 이튿날 가공된 상태로 보건소에 인도되었다.
이상의 시점까지, 경찰 및 보건소, 시청측이 확인한 커뮤니티 소속 실장석의 총 사망수는 추정 약 4만마리 이상에 달했고(※5), 공원 밖에서 포획・처분된 개체수도 계산할 경우 커뮤니티에 소속해있던 2만 마리는 틀림없이 거의 전멸했다고 판단되었다.
또한 이것은 자실장 이하의 개체도 계산되어있기에, 관리사무소 등이 인지하지 못하고있던 성체도 포함되어있다.
커뮤니티 관리부는 공원관리사무소 직원을 소집하여 경찰서 내의 대책본부에 출석시켜 발생원인 및 실장커뮤니티 안의 사정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물적증거에 의해 17일 저녁부터 18일 새벽에 걸쳐 커뮤니티 사이에 무언가 일어났고, 공황에 빠진 실장석들이 모든 규율을 버리고 도주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세워졌다.
이 때의 대책검토회의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선출・결성된 사고조사위원회는 그런 견지에서 사건의 조사를 개시했지만, 어째서 공황에 빠졌는가하는 원인은 오랜기간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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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각주
※1:우연히 사육실장을 키우던 사람이 실장링갈로 회화를 성립시켜서 확인했다.
※2:당초에는 옆마을에 있는 후타바 체육관(현재・후타바 산업회관)을 이용할 예정이었지만, 관리자가 강력히 반발하는데다 그 이외에 방대한 양의 사체를 회수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기에, 고육지책으로 현장에서 확인작업을 행하게 되었다. 이 작업중에 4명의 보건소직원과 12명의 경찰관이 불쾌감의 호소, 구토, 졸도했고 수 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또한 당일의 최고기온은 34도에 이르렀기에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자도 속출했다.
※3:이것은 사고후에 회수된 성체실장석의 개체수를 계산한 것으로, 정확한 수는 22일 새벽에 사태가 진정화 될 때까지 회수한 것 만으로 4,879마리에 이른다. 다만 이것은 사건발생중에 공원밖에서 침입한 것과 일반가정의 사육실장도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모두가 공원거주의 개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4:실험에는 성체실장석 10마리와 자실장 40마리가 사용되었으며, 그 중의 절반은 조건의 변화에 의한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살아있는 채로 실험에 사용되었다.
※5:중실장・자실장・엄지실장까지 카운트되어있기 때문에, 공표된 총 2만마리보다 훨씬 수가 늘어나있다. 또한 절단된 사체를 기준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대략의 숫자이고 정확하다고는 말할수 없다.
[편집] 6.커뮤니티의 현실
본 사건 「후타바 애호공원 괴멸사건」은 오랫동안 그 발생원인을 찾지못했고, 많은 경찰관계자와 사건연구담당자를 고민하게 했다.
하지만 사건으로부터 10년 후, 한때 후타바 공원 근처에서 살고있었다고 자칭하는 일반인이 사건원인규명이 난항을 겪는다는 뉴스를 보고 연락을 해와, 어느 실장석의 짖는소리를 보존한 방대한 양의 카세트테이프를 사건조사위원회에 제공했다.
이것은 원래는 사육실장과의 추억을 기록할 목적으로 보존한 것이었지만, 나중에 사육주가 그 음성을 실장링갈소프트로 해석하다보니 몇 군데에서 기묘한 발언내용이 확인되었기에 제공을 결단했다.
총합 약 280시간에 이르는 카세트테이프의 해석결과에는 지금까지 인간측에서는 눈치채지못한 「실장석 시점의 문제점」이 다수 발견되었고, 이것이 사건개요 판명의 실마리가 되었다.
또한 이 기록은 그 외에도 존재하던 「공원탈주실장석을 보호한 사람들」과 지역주민들의 발언과도 부합하는 점이 많았고, 실장석 커뮤니티의 진실이 떠오르게 되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이러한 정보를 1년간에 걸쳐 통합분석하여 「실장석 커뮤니티에는 인간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극한의 긴장감”이 항상 차있는 상태였다」라고 결론, 이것이 본 사건의 근원적 원인의 하나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한 카세트테이프를 제공한 인물은 탈주한 실장석의 태도와 발언내용에서 공원에 대해 커다란 위기감을 느끼고 이사를 했기 때문에 다행히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넘겼지만, 그때까지 살던 가옥은 화재로 전소되었다.
[편집] 7.테이프 내용
공원내의 실장석들은 커뮤니티를 불문하고, 인간측・리더 실장석과 그 부하개체, 풍기실장들의 존재를 과도하게 두려워하고있었다.
원래 정신력이 약한 실장석은 자신이 보지못한 부분에서 발생한 변화를 자신에 있어 위험요소라고 받아들이는 성질이 있고, 이것에 대한 심리적방어를 행하게된다.
이것이 문제가되어, 리더 실장석들에 의해 처벌되는 동족의 모습과, 어느날 갑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동료의 상황따위는 모두 안좋은 방향으로 간주되었고, 나쁜짓을 하지 않는 온화하고 선량한 개체들도 「언젠가는 자신도 똑같은 꼴이 되어 죽임당한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정신적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로 정신이 이상해진 개체도 있었고, 이것이 포획・처분되는 일이 점점 동족의 의심을 부채질하는 결과가 되어 커뮤니티 안에 「불신감」이 팽배해있었다.
공원밖에서의 동족침입이 금지된것과 마찬가지로 공원안에서의 탈주도 엄히 처벌되었기에, 실장석들은 완전히 갈 곳을 잃은 모양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엄중한 관리하에 있으면서도 일부의 인근주민은 실장석을 학대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고, 극히 일부였지만 희생자도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이 실장석들의 스트레스를 점차 크게 만들었고, 사건발생 1개월 전 즈음에는 그야말로 절정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탈주실장석의 카세트테이프에 의하면 탈주에 성공한 실장석이 출현하기 시작할 때는 마침 이 시기와 일치한다.
현재에는 어째서 이들이 공원에서 무사히 탈출할수 있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부에서는 애호파 주민이 몰래 탈출을 도운게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전혀 존재하지 않기에 지금은 불명이다.
이상과 같이 후타바 공원의 실장석은 극한의 긴장상태를 유지한 채, 인간의 앞에서는 온화하고 우호적, 무해하고 건전한 동물이라는 스타일을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스트레스를 충분히 해소할 수단도 없었기에 실장석들은 괴로운 생활을 계속해야했다.
말하자면 「일촉즉발」같은 상태로, 실장석들은 뭔가의 계기로 억압을 폭발시키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실장석들의 상태를 당시부터 이미 이해하고 이용하려고 꾀한 악의가 있는 인간이 있었다는 것이 나중에 판명되었다.
그리고 그 인물이, 본 사건 발생의 방아쇠를 당겼다.
[편집]8.사건의 원인
이 사건은 실장석이 원인으로 발생한 사건 중에서도 2007년 현재까지 최대규모의 피해를 낸 것이지만, 그 근원적 원인은 사후 10년 이상 불명이었고, 한때는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카세트테이프에 의한 탈주실장석의 발언과, 그를 뒷받침하는 다수의 증언과 물적증거로부터, 2001년 9월에 사고조사위원회는 이 사건이 「악의를 가진 자에 의한 인재」라고 발표하고, 그 발생경위의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것으로, 현재에도 진위를 두고 논의가 벌어지고 있지만, 후타바시 및 동 경찰서는 이것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실이라고 단정하고 진범을 추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2005년에 공소시효가 성립되었다.
또한 본 사건의 발생경위는 복잡하기 때문에 이하에서는 상황과 요인을 구분해서 해설한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이하의 발표내용에 많은 「억측」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편집]9.공원 내의 상황
공원관리사무소를 포함하여 후타바 공원 안을 아는 사람들의 실장석에 대한 평가는 꽤나 양호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실장석과 노는 것을 목적으로 공원에 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커뮤니티 확립으로부터 사건발생까지, 실장석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일반시민은 없었다(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고가 없었다는 것이고 완전히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옷이 더러워졌다든가 하는 가벼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실장석들도 인간과의 공존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커뮤니티 리더 실장석 등은 빈번하게 관리사무소의 직원과 대화를 하면서 각각이 강한 윤리관과 통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2만 마리를 넘는 실장석 모두가 통일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고, 실제로는 상당한 억압이 있었다.
본래 자아가 강하고 욕망이 큰 실장석은 누군가로부터 억압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성질이 있지만, 리더 실장석들은 그것을 알고있는 만큼 인간 이상으로 가혹한 업압을 하고있었다.
리더 실장석과 그 부하인 풍기실장들은 커뮤니티에 있어 「왕과 병졸」에 해당했고, 조금이라도 인간과의 공존에 어울리지 않는 요소가 발견되면 과도하게 그 배제를 행했다.
특히, 낮은 확률로 태어나는 마라실장(남성기와 흡사한 기관을 가진 돌연변이종)은 그 외관이 일반 이용객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지능의 고저와 관계없이 도태되었고, 또한 마라가 붙은 새끼를 은닉한 가족도 발견 되는대로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커뮤니티 안에서는 단죄에 의한 처형행위는 엄금되어있었기에 마라실장은 성기와 사지를 절단한 상태로 보건소에 보내졌다.
또한 저실장(탄생시의 트러블이나 모체의 신체이상으로 발생하는 미숙아)이나 엄지실장(저실장과 같음)은 커뮤니티 안의 엄격한 심사를 받아, 분충이거나 충분한 기초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어미의 의향과 관계없이 처분대상이 되었다.
사건 후, 공원 각지에서 발견된 유류품 중에 저실장과 엄지실장으로 가득찬 페트병이 다수 발견되어 자주적인 처분이 실행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하였다.
풍기실장은 당초 관리사무소측이 예상한 수의 몇 배에 이르렀고, 교대로 커뮤니티 구역 안을 순찰했다.
이것은 인간의 예를 들자면 경찰의 순찰보다는 「마녀사냥」에 가까운 것이었고, 조금이라도 규칙위반을 한 개체는 어느때라도 용서없이 끌어내어져 가혹한 고문을 받은 끝에 두 번 다시 주거로 돌아오지 않았다.
풍기실장의 일부는 자실장 이하의 개체의 교육도 행하였고, 실장석의 생태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지식과 윤리관을 심어주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욕과 우월감을 채우는 행위의 연장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교육이라기보다는 「벌칙행위의 전수(바꿔말하면 처벌을 내릴 구실의 나열)」에 가까웠다.
일부의 커뮤니티에서는 본래 금지되어있는 실장석간 처형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지고있었다.
또한 벌의 종류 안에는 새끼를 내놓으라는 내용의 것도 있었고, 규율에 따라 친실장은 두 번 다시 새끼를 만나지 못했다.
또한 몸이 약한 개체와 문제를 일으켜 동료들로부터 규탄을 받은 개체의 두발과 의복을 빼앗고 노예처럼 다루는 구역도 존재했고, 심한 경우에는 구멍 안에 분변을 떨어뜨려 그것을 먹이로 노예를 키우는 그룹까지 존재했다.
이 구멍은 채소재배용 거름구덩이로 보이도록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후타바시가 기대했던 「악질 성격의 개체 완전배제」가 실제로는 실패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또한 영역의식의 발전에 따라 커뮤니티간의 교류・왕래는 금지되었고, 각각의 커뮤니티에 속한 실장석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는 격렬히 반목했다.
미아가 발생하는 경우, 각 커뮤니티는 그 개체의 소속이 판명되는 경우에는 처분하고, 명확하지 않은 경우 자신의 커뮤니티의 개체로 키웠다.
그 결과, 나중에 다른 커뮤니티의 어미가 나타난다 해도 아이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들은 각 커뮤니티간에 평균적으로 보이는 문제점이었지만, 북서부 커뮤니티는 특히 대립의식이 강했고, 리더・풍기・일반실장의 거의 모두가 같은 의식을 가지고 다른 커뮤니티를 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은 그 북서부 커뮤니티가 일으킨 「혁명」에 의해 발생했다.
[편집]10.학대파의 존재
후타바 공원이 실장석의 낙원이라는 소문은 일본 전국에 퍼졌고, 이것이 소위 「학대파(실장석에 과격한 학대를 가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하며 기뻐하는 기호를 가진 범죄자)」의 주목으로 이어졌다.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기관이 없었던 당시에는, 언더그라운드에서 간행되는 학대파 전문잡지의 투고란과 일반 애완동물서적에 은어로 「후타바 공원의 실장석을 학대하자」라는 의미의 선동이 빈번하게 행해졌다.
하지만 학대파의 난입을 예견한 커뮤니티 관리부와 공원관리사무소에 의해 학대행위를 한 자는 대다수가 체포 또는 구속되었고, 감시체제도 다른 공원을 훨씬 능가하는 규모였기 때문에 후타바 공원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취급되고있었다.
사건발생의 수개월 전에는 후타바 공원은 손을 댈수 없는 성역처럼 이야기되었고, 대부분의 학대파는 공략을 포기했다. [출처 필요]
하지만 나중에, 실장석 전문지 「실과 장実と装」 1990년 6월호의 독자투고란에 「난공불락의 탑에도 틈은 있다」라는 의미심장한 서술이 있었던 것이 판명되었고, 이것이 후술할 진범인에 의한 범행예고였던게 아닌가 생각된다.
덧붙이자면 이 투고는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소인의 무기명 엽서에 의한 것이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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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각주
※1:「실과 장」편집부가 어째서 이 투고를 개재했는지는 불명.
[편집]11.진범(용의자)
(이하는 카세트테이프 안에 남은 실장석의 발언을 근거로 한 것으로, 부분적으로 불명료한 정보가 포함되어있다)
2001년 9월, 사고조사위원회는 「북서부의 실장석 커뮤니티가 일으킨 폭동에 인간이 관여되어있다」라고 발표하고, 그 근거와 논리를 설명했다.
사건발생 얼마 전, 북서부의 실장석과 평화적으로 접촉한 남성이 실장석들에게 「어떤 것」을 주었다.
실장석은 그 「어떤 것」에 매료되어버렸고, 남성으로부터 「이것과 같은 것을 다른 커뮤니티는 잔뜩 받았다」라는 의미의 정보를 주었다.
이 말을 믿은 실장석들은 며칠 후 다른 커뮤니티에 야간습격을 걸어 「어떤 것」을 찾았다.
그 후, 공격을 받은 쪽에서 살아남은 실장석들도 「어떤 것」의 정보가 전파되었고, 최종적으로는 공원의 거의 모든 실장석이 공원 안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이 난동은 비호전적이고 평화적 성질의 개체에게 공포를 주었고, 이것이 공원탈주를 행하고 인근 주택으로 피난, 보호를 요청했다.
공원 안의 실장석은 「어떤 것」을 구하는 쪽과 탈주하는 쪽으로 양분되었고, 각각이 다른 모양으로 피해를 확대시켰다.
또한 공원 안에 남은 쪽도 이 난동을 계기로 「전쟁」과 비슷한 상태에 돌입하여 치열한 살육으로 발전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사건 직후에 공원 안에서 발견된 잔해・상황・유류품을 재검사하여, 남성이 준 「어떤 것」이 “간장”이라고 결론지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그때까지 일반이용객이 버렸다고 생각되던 쓰레기류에서 비어있는 복수의 간장 페트병이 남동부에, 대량의 간장주머니(테이크아웃 초밥 등에 들어가는 물고기모양의 소형 용기)가 북서부에만 떨어져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당시 독물 관련의 의혹으로 행해진 「실장석이 먹었다고 생각되는 잔류물」의 분석결과에 간장과 흡사한 성분이 대량으로 부착되어있었다는 점, 조사해부된 일부의 실장석의 소화기관 안에서 고농도의 염분반응이 나왔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여기에 카세트테이프의 발언내용을 조합하여 판단했다.
또한 간장에 관계된 유류품은 다른 구역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간장을 뿌렸다고 생각되는 각종 잔류물도 남동부와 북서부 이외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남동부에서는 간장과 비슷한 액체를 뿌린 풀, 모래, 돌과 곤충의 사체도 발견되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카세트테이프의 발언내용에서 실장석들이 식량에 큰 불만을 품고있었다는 점, 그리고 누군가가 그점을 파고들어 「조미료의 존재」를 가르쳐줬다는 것이, 사건의 근본원인이라고 하였다.
이하는 사고조사위원회가 「추측이지만」이라는 전제 하에 「후타바 공원 실장석사고 정밀해석」(메이소우 출판)에서 발표・보고된 보고서이다.
폐기가축의 고기는 일절 조미료가 사용되지 않았고, 실장석들은 날고기인 채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남성이 가져온 간장을 뿌린 고기가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는 것이 테이프 안의 발언에 확실히 나타나있었다.
남성은 이것으로 실장석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심었고, 어떤 식량이든 간장을 뿌리게 되었지만 압도적으로 양이 적었기에 커뮤니티 안에서는 더욱 큰 불만이 생겼다.
남성은 거기에 대고 다른 커뮤니티가 간장을 가지고있다는 거짓정보를 불어넣어, 원래부터 다른 커뮤니티에 적대의식을 갖고있던 실장석들을 부채질했다.
남성이이 커뮤니티의 성질을 간파했던 것인지는 불명이지만, 실장석들은 실제로 폭동을 일으켜 다른 커뮤니티를 습격했다.
남성은 별도로 준비한 페트병에 넣은 간장을 남동부 구역에 숨기고, 이것이 발견되게 하는 것으로 더욱 큰 혼란을 일으켜 공원 안에서 키운 규율과 모랄을 파괴했다.
하지만 피해는 공원 밖에까지 확산되었고 사망자까지 나와버렸다.
공원을 탈출하여 민가에 숨어들려고 한 개체도, 당초에는 단순히 피난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간장을 나눠받거나 탈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침입한게 아닌가 하는 설도 떠올랐다.
실제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실장석의 음성내용에서, 이 개체도 간장의 매력에 눈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실제로 간장으로 맛을 낸 닭튀김을 사육주에게 집요하게 요구하는 회화가 십 수 군데에 걸쳐 담겨있었다.
간장을 뿌리거나, 간장에 절였다고 생각되는 저실장과 엄지실장의 사체도 다수 발견되었다.
또한 실장석이 어지른 빈집에서 「검은 액체(우스터 소스 등)」가 노려졌다는 케이스도 다수 보고되었기에, 공원 내의 실장석이 간장에 깊이 매료되어있었다는 것은 이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밝혀졌다.
물론, 간장같은 고염분 조미료를 실장석이 좋아할 리가 없다는 반론도 각 방면에서 제기되었기에, 사고조사위원회는 다른 장소에서 모아들인 실장석 20마리에게 「간장으로 맛을 낸 스테이크 조각」을 주는 실험을 행하고, 한 마리의 예외없이 환희・섭취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여 반론을 침묵시켰다.
또한 범인이 실장석과 간장을 어떻게 연결지었는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86년에 출판사가 검거되어 폐간된 학대파 전용잡지(언더그라운드의 물건이기에 현재는 금서가 되어있다)「실을 장実を葬」 85년12월호에는 갖가지 조미료를 준 실장석의 반응을 확인하고, 가장 호평이었던 것을 장기간 주다가 갑자기 섭취를 금지하여 강한 스트레스를 준다는 학대법이 소개되어있었다. 범인은 이 기사를 참조했거나 또는 집필자 본인이었던게 아닌가 하는 억측이 있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사건발생전에 공원에 방문한 수상한 인물의 탐색과, 사건전후에 후타바시 내지는 니지우라마을에서 이사한 인물의 정보를 모으고, 범인 탐색을 서둘렀지만 확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또한 범인의 것으로 생각되는 지문과 모발 등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범인상은 사건 후 17년이 지난 현재에 있어서는 전혀 불명이며, 그 존재를 과시하는듯한 행동도 전혀 없었기에 고도의 범죄경험자설, 사망설 등이 인터넷을 시작한 각 방면에서 논의되었다.
경찰은 범행의 수법에서 범인을 「상당히 지능적이고, 또한 고도의 관찰능력과 분석력, 계획성을 가진 지능범」이라고 분석하고 오랫동안 실장석육성(또는 학대) 경험을 가진 추정연령 20〜30대의 인물이라고 판단했지만, 확정은 하지 못했다.
[편집]12.또 하나의 문제점
본 사건이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학대파로 생각되는 범인의 계획적 행동이 아니라. 그때까지 실질적으로 무해하다고 생각되던 실장석에 의해 주민 가운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최초의 희생자가 나온 공원관리사무소 조립식건물의 붕괴원인은 사건 직후 최대의 수수께끼였다.
무너진 조립식건물은 15.4평방미터, 2층구조로 높이 6미터인 입방체형으로, 서쪽에는 계단이 붙어있고 공원 남동부의 인공연못 근처에 건설되어있었다.
공원 개설시에 이용되던 공사사무소의 조립식건물을 그대로 전용한 것이었기에, 소위 「가건물」이라고 불리는 오두막 수준에 불과했고, 또한 2층인 것 치고는 높이도 낮았기에 시설이라고 부를 정도로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이 시설은 개원 당시부터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정도로 커다란 공원의 관리라는 큰 일을 하는 사무소시설이 간소한 조립식건물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의문시되어왔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로부터도 불만이 있었지만 사건발생까지 환경개선은 일절 행해지지 않았다.
시설 내에는 공조설비조차 없었기에 여름은 온도가 40도 이상에 이를때도 있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렇기에 여름은 모든 창을 활짝 열고 통기를 시키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이로 인해 사무소 안에는 인간이 상주한다는 것이 실장석에게 알려졌고, 평소에도 먹이나 간식, 또는 놀아달라고 방문하는 개체가 다수 있었다.
건물이 넘어짐은 남측방향에서 북측방향으로 밀어 쓰러뜨리는 모양으로 발생했고, 2층부분의 대부분은 인공연못 안에 침하, 1층부분은 2층부분에 바로 위에서 짓누른 모양으로 압괴왼 후 2층부분의 무게에 끌려가는 모양으로 연못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건 당시는 강한 바람도 불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도 풍압에 의한 넘어짐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했다.
관리사무소직원 1명과 경관 2명은 1층 압괴시에 즉사,또 한명의 직원은 2층과 함께 연못에 떨어져 자재에 몸이 끼어 그대로 익사했다.
1층의 3명은 각각 서측과 남측의 벽 부근에 있었고, 붕괴시에 뒤로 넘어지고 그대로 얼굴에 낙하한 2층의 마루부분을 받았기에 안면부 및 두부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시설 내의 4명은 어째서 조립식건물에서 탈출하려 하지않고 붕괴에 휩쓸렸는가, 또는 어째서 붕괴직전에 2층과 벽쪽으로 이동했는가 등, 수많은 의문점이 제기되었다.
동시설은 사건전부터 「계단을 오르면 진동으로 건물 전체가 흔들린다」 「1층의 창이 갑자기 멋대로 깨졌다」 따위의 문제점이 직원들로부터 들어와있었고, 근본적인 구조적 결함이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설도 나중에 제기되었다.
96년, 사고발생위원회는 이 공원관리사무소 시설이 구조적인 문제에 의해 극단적으로 붕괴하기쉬운 상태였고, 거기에 예측하지 못한 힘이 걸렸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게 아닌가 하는 추론을 세우고, 같은 장소에 같은 규모의 조립식건물을 세우고 반년에 걸쳐 검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조립식건물의 설계・보강이 명확했더라면 어지간히 큰 태풍의 직격이 아니라면 붕괴는 있을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사고조사위원회는 조립식건물이 장기간 사용될 경우의 영향・변화의 가능성, 또한 계단 이용시에 건물이 흔들린다는 보고에 주목했다.
컴퓨터에 의한 측정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공원괄니사무소 시설은 조립식건물의 크기와 형상에 비해 서측의 계단의 중량이 과도했으며, 항상 전체가 서쪽으로 끌려가는 상태였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상태에서 2층에 올린 옷장과 테이블, 대형냉장고, TV 등의 배치가 중량 밸런스를 한층 무너뜨렸고, 서측을 중심으로 한 각 지지부분에 미묘한 부담을 주고있을 가능성도 지적되었다.
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사고조사위원회는 서측의 벽과 지주를 일부러 일그러진 것으로 교환하고, 또한 2층의 옷장과 냉장고 등의 가구를 충실히 배치하고나니 2주간 정도 후에 1층 북쪽의 유리창이 자연적으로 파손되는 이상현상이 발생했다.
1개월 후에는 계단이용시에 과도한 흔들림이 발생했고, 또한 1층 입구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이전에 시설을 이용하던 직원도 확인하고 「그때와 거의 같은 상태」라고 증언했다.
이 상태의 조립식건물은 성인이 몇 명 벽을 밀면 2층에서는 가벼운 지진과 같은 정도의 흔들림이 느껴질 정도였고, 직원이 장기간 머물며 근무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다음으로 붕괴의 근원적 원인의 규명에 착수한 사고조사위원회는 붕괴현장에서 다수의 실장석의 사체가 발견된 점에 다시 주목했다.
붕괴의 원인은 대량의 실장석에 의해 시설이 밀려서가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웠지만, 체격에 비해 힘이 없는 실장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많았기에 다시금 시뮬레이션이 행해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실장석의 사체로부터 평균체격 40cm 이상의 성체를 가정하고, 이와 같은 정도로 육성된 실장석의 체력테스트를 2000회 이상 행하여 평균적인 운동능력을 검출했다.
이에 따라 실장석은 자신의 신체손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경우 3.21kg중m까지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밝혀졌다.
그데 대해, 실험에 사용된 조립식건물은 서쪽과 남쪽에서 각각 평균 약 82kg중m의 힘으로 밀면 사고시와 거의 같은 상황으로 붕괴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여기에 따라 계산을 하여「조립식건물을 붕괴시키는데 필요한 실장석의 수」는 접촉위치의 높이와 힘의 분산도 등을 고려할 경우, 한 방향이 50마리 전후로 충분하다는 놀랄만한 결과가 도출되었다.(※1)
또한 60cm 클래스의 개체는 4kg중m을 넘는 일을 할수있다는 것, 힘을 가하는 포인트가 40cm 클래스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이것이 섞일 경우 필요수가 한 층 더 줄어들어 40마리 미만으로도 조건을 만족한다는 계산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2개월 후, 추가시험에 의해 「공황상태에 빠진 개체의 작업량」이 통상의 1.5배 이상에 달한다는 것이 판명되었고, 만약 실장석이 모두 공황상태였다고 가정하면 총합 60마리 전후만 있으면 충분히 붕괴시킬수 있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었다.(※2)
다만 이 실험결과에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상당히 있으며, 80마리 이상이나 되는 실장석이 조립식건물을 붕괴시킨다는 통일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어째서 붕괴를 노릴 필요성이 있었는가 따위의 문제점이 실험결과 발표후에도 각종 미디어 위에서 제시되었다.
여기에 대해 사고조사위원회는 추론으로 「비전투적 실장석이 인간에게 구해달라며 쇄도했다」 「시설안에 간장이 있다고 생각한 개체가 밀집했다」 등의 가능성을 내놓았지만, 어느것도 가설에는 무리가 있고,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고는 하기 힘든 반론도 많다.
하지만 이 시뮬레이션 및 사고재현실험의 결과는 사고상황을 충실히 재현하는 데에는 성공했기에, 불가해한 점이 많았던 가운데, 2007년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고원인해석이라는 평가가 많다.
「어째서 직원과 경관은 탈출하지 않았는가」 「밖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점에 있어서는, 붕괴실험시에 이야기된 한 설이 유력한 견해가 되었다.
벽을 밀어 쓰러뜨릴 정도로 많은 실장석이 시설주위를 둘러싸고있었기에, 문이 닫히지않는 벽 때문에 개폐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희생자들은 탈출 또는 통신불능에 빠진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2층에 있던 직원은 시설에 모여드는 실장석들의 무리를 살펴보려다 그대로 내려오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다만, 이 견해도 의문시되는 부분이 많기에 지금도 의논은 끊이질 않는다.
시설의 전화회선은 붕괴시에 절단되어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이것이 붕괴 전에 발생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당시는 휴대전화가 없었고 현재같은 통신설비가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 화를 키웠다.
두 명의 경관이 소지하고있던 무전기는 마지막 통신 이외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현장의 과도한 혼란상황이 예상된다는 견해도 있지만 지금도 구체적인 분석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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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각주
※1:조립식건물의 토대의 높이는 병균체격 실장석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실장석은 벽만을 미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벽의 아래쪽에만 과도한 힘을 주는 경우의 시뮬레이션도 행해졌다.
※2:다만 이 결과는 모든 실장석의 힘이 균등하고 연속적으로 주어진다는 경우로 한정된 것으로, 어디까지나 이론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위원회는 강조했다.
[편집]13.후에 지적된 맹점
커뮤니티 관리부는 사건발생전인 6월 12일 후타바 공원 북서부 구역에서 화재소동이 있었고, 관리사무소직원에 의해 진화되었다는 보고를 했다.
이는 피해가 나지 않고 금방 수습되었지만, 발화원인과 범인은 아직까지 특정되지 않고 있다.
당시에는 일반 이용객이 장난으로 피운 모닥불로 생각되었지만, 태워진 물건 중에 폐기가축 고기로 생각되는 탄화된 살점이 포함되어있었던 점, 그 후에 각지에서 소규모의 모닥불을 끈 흔적이 발견된 점에서, 사고조사위원회는 「공원 내의 실장석은 불을 써서 물건을 태우는 지식과 기술, 소화의 지혜를 익힌게 아닌가」하는 가설을 세우고 조사를 계속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실장석은 특히 불을 무서워하는 동물이기에, 당초 이것은 절대로 있을수 없는 견해라고 이야기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현장증거와 이 사건의 화재사건요인의 고찰결과를 비교할 경우,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분석이라고 평가되었다.
사건후의 현장에서 여러개의 일회용 라이터가 발견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회수한 시점에서도 아직 쓸 수 있는 가스점화기도 포함되어있어, 사고조사위원회는 「일부의 실장석은 이것을 써서 안전하게 불을 쓸 수있다는 것을 이해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공원탈주 후 민가침입에 성공한 실장석이 주방에서 가스점화기를 사용했기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판단가능한 상황이 확인된 점, 사건후 북서부 커뮤니티 거주구역 한편의 흙 아래에서 「부패한 “탄 흔적이 있는” 닭고기의 일부」가 발견된 점, 공원 전체에서 여러 점의 「소각된 실장석의 사체」가 발견된 점에서 사고조사위원회의 판단을 한층 뒷받침하였다.
사고조사위원회는 이러한 물적증거로부터 「식량가공」「공격수단」「장난질」을 목적으로 한 「불의 이용」이 실장석에 의해 상당한 빈도로 행해진 것 같다고 주장했고, 동시에 어째서 이러한 사태를 관리사무소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하였다.(※1)
또한 이 라이터가 어떤 경위로 실장석들의 손에, 또는 생활권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반 이용자에 의한 단순한 투기였을 경우에는 실장석들의 자주적인 청소에 의해 회수되었을것이고, 실제로 그런 형태로 폐기처분된 100엔 라이터등도 다수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어있다.
이상의 점으로 보아, 누군가가 고의로 라이터를 주고, 그 사용법과 이점을 가르쳤다는 데에 생각이 정리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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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각주
※1:그 후, 커뮤니티 관리부와 공원관리사무소에서는 「발견된 위치는 모두 감시카메라와 직원의 감시루트의 사각에 있는 위치였다」라는 보고가 제출되었다. 하지만 실장석이 감시카메라의 존재와 그 위치를 파악・의식한다는 것은 생각할수 없고, 조사위원회는 이것을 운영측으로부터의 반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편집] 14.사건 후의 영향
이 사건은 다수의 들실장석을 보호육성하여 인간과의 이상적 공존을 성립하고자하는 동물애호정신적인 주관에 의거하여 행해진 대책이 문제를 키운 점에서, 여러곳에서 커다란 주목을 모았다.
실장석전문 연구가 오야유비 시모키(拇志茂樹)씨는 후에 이 사건에 있어 후타바시가 실수한 포인트로
・실장석의 개체수 증가율을 낮게 책정한것
・똑똑한 실장석의 응용・대응능력을 과소평가한것
・실장석의 형편좋은 부분만 다른 동물과 동일해석하고, 인간에 대한 영향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은 점
・문제를 일으키는 개체가 반드시 성격에 문제있는 개체라고 한정할 수 없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점
・실장석의 대응을 고려하는 측이,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태만히 한 점
・실장석이 직・간접적으로 인간을 상처입히는게 불가능하다고 근거없이 믿고있었던 점
등을 들며 각각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다.
실제로, 사건발생까지의 후타바시 측, 토리츠키 시장과 스레케시 보좌관으로부터는 「실장석은 훈육만 된다면 무해하다」「인간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환경이 주어지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상당히 편향된 발언이 있었고, 현실을 충분히 직시・인식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방법원은 시에 대해서 「후타바시 측이 사전에 충분한 연구를 하지않고 본래 공원에 요구되어야할 용도를 극단적으로 비틀어서까지 실장석을 보호관리하고자 한 것이 원인이다」라고 판단했다.
(※1)
피해자 및 유족은 피해자단체를 결성하여 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였고, 「」지방법원은 후타바시에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건 후, 토리츠케 시장과 스레케시 보좌관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를 계기로 후타바시는 실장석 애호적인 입장을 크게 변화시키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실장석구제에 힘쓰는 후타바시는, 이 사건의 영향으로 실장석에 대한 생각과 취급을 재고했고, 9월 초순에는 회수한 실장석 전부의 일제처분을 보건소에 명하여 실행시켰다.
이로 인해 공원 안에서 커뮤니티에 들어있던 실장석의 거의 전부가 전멸했고(일부, 인근주민에게 보호된 개체는 제외하고), 특히 리더 실장석을 포함한 커뮤니티 중추에 위치하는 개체의 처분은 꼼꼼히 진행되었다. 해당 개체만이 아닌 그 자식이라고 판단되는 개체까지 철저하게 처분되었다.
이 강행수단은 당연히 동물애호단체를 시작으로 하는 실장석 애호를 취지로하는 각 방면으로부터의 맹렬한 반발과 빈축을 샀지만, 일부에서는 적확한 판단이었다는 의견도 강했고, 지금도 각지에서 그 정당성을 둘러싼 의논이 전개되고 있다. [출처 필요]
동시에 후타바시는 공원 안뿐이 아니라 바깥의 들실장석의 구제처분에도 힘을 기울여, 90년도의 구제수 약 12만 마리에 비해 91년도에는 배 이상인 약 26만 마리를 구제처분했다.
이 갑작스런 대응의 변화는 시내에 사는 실장석사육자들을 곤혹・전율시켰고, 애완동물로 등록하지 않은 개체는 사유지에 있어도 발견 되는대로 잡아 구제한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90년 가을 이후의 실장석 등록신청수는 그때까지의 약 7배로 뛰어올랐다.
다만, 실제로는 사육주에게 무단으로 사육실장을 구제한다든가 하는 일은 일절 행해지지 않았고, 동년 12월에는 보건소직원을 사칭하여 민가 사유지에서 사육실장을 납치하려 한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한편 후타바공원은 실장석의 침입이 완전금지되었고, 애완용 등록의 유무에 관계없이 발견되자마자 사육주와 함께 강제퇴거되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회부에서 침입해오는 떠돌이 들실장과, 막 이사해와서 공원의 실정을 모르기에 사육실장을 산책시키러 데려오는 일반이용자도 끊이지않는다.
공원 내의 실장석은 표면적으로는 공원관리사무소 직원이나 보건소 직원 만이 대응하도록 되어있지만, 실제는 발견되자마자 누군가가 배제한다 해도 처벌되는 일은 없었다.
이것을 이용해서 타인의 사육실장을 납치해서 공원에 방치, 합법적으로(물론 실제로는 위법이지만) 학대하는 자도 많아서 또다른 문제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흘러들어온 들실장의 대응에 있어서는 거의 방치된 상태로, 90년대 중기 이후는 공원에서 당당히 학대목적으로 들어오는 자도 있었고, 일반이용자가 보는 앞에서 과도한 학대행위를 벌인다는 이상한 광경이 빈번히 보이게 되었다.
・상세:「후타바 공원 실장석 학대파 난입문제」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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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각주
※1:상술한 진범에 대해서는 별도 추궁이 있었다.
[편집] 15.사회적 영향
실장석에 의한 사건과 트러블은 꾸준히 각지에서 빈발하지만, 본 사건은 그 가운데에서도 최대피해규모였기에 다양한 방면에 큰 충격과 영향을 주었다.
후타바시와 마찬가지로, 호칸코산에 인접해있는 이모케芋毛 시와 노부野奉 시도 실장석 보호 및 구제문제를 겪고있었지만, 본 사건을 계기로 재평가가 이루어져, 후타바시와 마찬가지로 구제에 힘을 쏟도록 체계가 변했다.
실장석 발생률이 높다고 알려진 긴키지방近畿地方 서쪽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양으로 실장석을 위험시하는 풍조가 생겨났고, 보호대상인 개체와 구제대상인 개체의 구별철저화 및 대책・대응의 재검토가 각 방면에서 행해졌다.
고도의 지능과 위험인지력・생존능력을 가졌다고 아려진 산실장도, 환경변화에 따라 일반적인 들실장과 별 차이없는 성질로 변화해버린다는 것이 확인되었기에, 동북부에서는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지켜지고있던 산실장의 영역의 침해를 자숙하는 경향이 깨지고, 일부에서는 대규모 도태수렵이 행해졌다. [출처 필요]
실장석 관련상품을 취급하는 업자도 본 사건의 영향으로 큰 손해・손실을 입었고, 특히 애완동물 업계는 그때까지의 약 3분의 1 이하의 매출로 떨어졌으며, 관련회사의 주가도 저하되었다.
실장석 애완용품의 명가인 로젠사 일본지점에서도 신제품의 기획개발중지와 상품생산수 삭감을 행하고, 그로 인해 많은 하청업자에 악영향을 주었다.
90년대 말에 발해되어 큰 인기를 얻은 「노이즈 제거식 발성형 실장링갈」은 실은 이 시기에 거의 완성형에 가까운 시작기가 완성되어있었지만, 발매자숙에 의해 창고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실장석의 개체인식기술로 이름높은 국내 대기업인 메이든사는, 본 사건 후 3년간 자사기술의 일부를 봉인하고, 로젠사 등과 마찬가지로 애완실장용 기구의 개발과 판매에 착수했지만,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가 빈약하였기에 다른 회사에 크게 뒤처졌고, 91년도는 6억7천만엔이라는 역대 최저의 연매출을 기록했다.
반면, 실장석 구제기술은 이 해에 비약적인 진보를 보였다. 일반적인 제품으로는 눈에 띄지않았지만 업자용으로 치사성이 높고 인체무해한 코로리가스, 체내 수분을 순간적으로 응혈시켜 토사물・탈분을 흩뿌리지않고 즉사시키는 지소카겔 화합물, 등록후 일정시간 이상 재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실장석의 동맥을 자동적으로 막아 죽음에 이르게하는 실장관리목걸이・목줄, 실장석이 20cm 이상 성장하지 않게하는 실장성장억제제(딸기맛) 등, 그 후에 각 방면에서 활용되는 제품이 다수 발표・판매되었다.
실장석이 인간을 죽인 것 만이 아니라 막대한 피해를 연속으로 발생시켰다는 사실은, 일반사회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실장석이 조립식건물을 밀어 넘어뜨린다는 일견 믿기힘든 보고는 오랫동안 오보로 취급되었지만, 98년에 다이갸쿠大虐건설이 자사의 조립식건물 건축상품의 판매에 내구성실험을 겸하여 행한 추가시험으로 현실로 있을수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일은 지금까지 상식으로 되어있던 실장석의 운동능력・위험성의 인식은 어디까지나 단독개체에 대한 것이고, 수가 많아질 경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심리적 맹점이 떠올랐다.
동시에 인간에 한없이 가까운 신체구조와 사고능력, 응용력, 지능의 발전성은, 설령 실장석이 인간에 우호적이라 하더라도 위험한 요소가 될수있다는 점, 또한 공황 발생에 따른 집단망상의 확대규모가 극단적으로 큰 점, 이상행동의 불규칙성이 충분한 경악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다시 고려되기 시작하였고, 보건소 등의 전문시설 이외에는 일정 수 이상의 개체를 모으는 것이 금지되어야한다는 견해가 각 방면에서 제기되었다.
80년대부터 서서히 넓어진 실장석 애호붐은 사건 직전까지 절정에 달했지만, 이 사건으로 급격히 식었고, 다음해에는 각종 미디어에서 손바닥을 뒤집듯이 실장석의 위험성 어필과 사육의 비판, 펫숍과 동물원, 동물병원으로부터의 퇴출을 주장하는 과격한 의견도 자주 보였다.
실장석을 키우는 사람들에의 비난도 과격해졌고, 특히 후타바시 안의 애호가는 굉장한 심리적 피해를 입었다. 그 중에는 주위의 반응에 신경써서, 오랫동안 키워온 실장석을 버리는 사람도 나타났다.
게다가 사육주 자신을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는 목적의 악질적인 장난도 각지에서 발생하여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
또한 「주간해체」92년34호의 특집기사에, 실장석애호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간이라는 글이 개재되어, 발행・편집을 맡은 스미純서점이 강한 비판을 받는 사건도 발생했다.
・상세:「주간해체 실장석애호가 규탄사건」을 참조.
실장석 전문지 「실과 장」도 이 시기의 판매부수가 격감했다. 최성기였던 82년에 비교하면 약 1/6까지 감소하였고, 이것이 95년 가을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학대파의 활동도 눈에 띄기 시작하고, 지방공원과 산림부 등에서 실장석을 괴롭혀 죽이는 사람과 들실장을 대량으로 포획하여 잔혹한 위해를 가하는 사람 등이 자신의 활동을 당당히 어필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상행위였지만, 학대・학살의 행동이 비난받는 일은 있어도, 그들에 의해 죽임당하는 실장석이 동정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출처 필요]
93년 여름에는 타인의 사육실장을 합계 62마리나 학대・살해하고 그 사체를 유기한 고등학생이 체포되었는데, 동물애호법의 문제로 기물파손 정도의 경범죄로 처리되어버린 「사육실장 연속학살사건」도 발생하여, 실장석 살해라는 물리적 피해를 중시해야하는지, 피해자의 사육주가 받는 심리적 손상을 중시해야하는지, 다양한 의논이 각지에서 전개되었다.
(염보인쇄소塩保印刷 간행 「사육실장은 정말로 우리의 친구인가」)
・상세:「사육실장 연속학살사건」을 참조.
이상, 본 사건은 다양한 부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 이후 이런 규모의 대사건은 발생하지 않았고, 사고조사위원회가 남긴 방대한 양의 연구자료와 보고서는 여러 방면에서 다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에 있어 실장석을 대하는 목적으로 하는 각종활동의 중요자료로 취급되고 있다.
또한. 사고조사위원회의 보고서의 일부는 후에 메이소우 출판에서 「후타바 공원 실장석사고 정밀해석」이라는 타이틀로 한정출판되었다.
여담으로, 이 서적은 실장석을 테마로 한 일반서적 가운데에서는 유수의 실용적 연구서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현재에는 정가의 10배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어있다.
[편집] 16.관련항목
・실장석
・로젠사
・메이든사
・다이갸쿠 건설大虐建設
・스미 서점純書店
・실장링갈
・실과 장
・실장석 학대파
・후타바 공원 실장석학대파 난입문제
・주간해체 실장석애호가 규탄사건
・사육실장 연속학살사건
[편집] 17.참고문헌
・히야하 갸쿠스케「후타바시의 비극은 어째서 일어났는가」(메이소우 출판)1998年
・후타바공원 사고조사위원회「후타바공원 실장석사고 정밀해석」(메이소우 출판)2005年
・오나카 후니오「사육실장은 정말로 우리의 친구인가」(염보인쇄)1995年
・실장석애호연구회「실장석 그 놀라운 능력」(구보 주식회사)2000年
・코우키나・와타시니「충격!! 실장석은 유태인의 첨병이었다!」부장사 1995年
・「실장석해부신서」(콘페이토인쇄)1982年
・「실과 장 2007년 5월호」(실장사)2007年
・멜티스・산고「실장석의 올바른 괴롭히는법 사랑하는법」(자비출판)2006年
카테고리: 출처를 필요로 하는 기사 | 실장석을 둘러싼 문제 | 1990년 | 8월
-끝
http://jissou.pgw.jp/upload_ss/j/view/0_1151.html
역주 : 개인적으론 「실을 장実を葬」에서 뿜었는데 번역을 해보니 영 맛이 안 살아나네요...
굉장히 밀도 높고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번역 감사드리고, 잘 읽었습니다.
답글삭제이렇게까지 목숨 걸고 설정짜는 이유가 뭐냨ㅋㅋ
답글삭제인터넷 팬캐릭터갖고 이런걸 써내다니
답글삭제똥이 길다
답글삭제와 진짜 있었던 사건처럼 글 잘썼다..개인적으로 실장석 개체수 조절(몇몇 개체만 남기고 대규모 중성화 작업을 한다던지)만 했어도 방지됐을 문제인것 같아보이는데 (뭐 중성화에 돈을 쓰느니 차라리 그 수만큼 죽여버리는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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