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라문답

어느 초여름 저녁. 나는 귀가 전에 캔 주스를 사서 귀갓길에 있는 공원 벤치에서 마시고 있었다.
공원 안에 설치된 방재용 무선 스피커에서 '먼 산에 해는 지고'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여섯 시다.
이것을 들으니 이제 오늘도 끝났구나 하는 감개가 솟아오른다.

주스를 다 마시고 나서도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의 메일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때 수풀 속에서 실장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둘러 링갈 기능을 킨다.


"이제 지친 테치...."

"한 번 더 힘내는 데스. 사육실장이 되려면 이 정도 고생은 당연한 데스."

"혹시 쫓기기라도 하면 도망칠 체력이 없는 데스우...."

키워줄 주인을 찾는 실장석 같다. 내 쪽으로 다가온다.

"실장석이 있는 삶이란 것,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데스?"

어디서 배웠는지 영업석마냥 세일즈 토크를 들이대는 실장석.

"아니 별로."

"이제 틀린 테치. 돌아가는 테치."

"좀 기다리는 데스. 교섭이란 건 대개 NO에서 시작하는 것인 데스. 닝겐상, 실장석에게 뭔가 평소 불만스러운 점은 있는 데스?"

그런 것을 일일이 설명하다간 날짜가 바뀔 것 같다.
성실하게 대답하는 것은 바보 같아서 농담으로 한 마디 해주었다.

"글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머리털과 옷이지."

"데슷?"

"머리털과 옷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독라실장이 좋거든. 독라면 길러도 괜찮은데."

실장석에게 머리털과 옷은 최대의 매력 포인트다.(제 딴에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들실장이 머리털과 옷을 잃으면 열등한 존재로서 금세 다른 실장석의 린치 타깃이 된다.
머리털과 옷은 그야말로 실장석의 목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만큼 중요한 존재이면서 한 번 잃으면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실장석은 모두 머리털과 옷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 머리털과 옷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니 역시 실장석이 동요한다.

"그, 그건 무리한 얘기 데스우."

"그래? 사육실장 중에는 독라도 꽤 있는데. 네가 모를 뿐이고."

"믿을 수 없는 데스."

"가끔 독라 상태로 공원에 버려지는 실장석 있지? 그건 학대로 독라가 된 게 아니야.
 독라 상태로 길러지던 실장석이 뭔가 잘못을 해서 버려진 거다. 착하게 굴면 평생 행복한 독라로 살았을 텐데."

뭐, 실제로는 대부분 학대로 독라가 된 것이겠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소곤소곤 대화하기 시작하는 실장석들. 자신들의 상식이 흔들려서 꽤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녀석들 중 몇 마리는 정말 독라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재미있을 것 같다. 한 번 더 억지를 부려볼까.

"너희는 독라는 흉하다, 인간도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
 금붕어나 거북이, 장수풍뎅이 같은 것을 생각해봐라. 그 녀석들은 머리털도 옷도 없는데 애완동물로서 인간들에게 사랑받잖아. 머리털이나 옷이 뭐가 대단하다고."

약간 억지 주장이지만 그동안 머리털이나 옷을 지키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을 실장석 중에는, 내 말이 복음으로 들린 녀석도 있는 듯하다.
눈이 촉촉해지고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으려고 갑자기 시간제한을 선고하는 나.

"기, 기다리는 데스!"

"응?"

"정말, 알몸이 되면 사육실장 시켜주는 데스?"

여기서 '생각해 본다.'같이 애매한 말을 해버리면 효과가 약하다.

"응, 약속할게."

하루나 이틀이라도 사육실장은 사육실장이니까. 그 정도면 어울려주어도 상관없다.

"알겠는 데스! 옷을 찢고 머리털을 뽑는 데스!"

그렇게 선언하더니 스스로 앞머리를 잡고 뽑으려고 한다. 선구자에 이어 두세 마리의 실장석도 뒤를 따르려 한다.

"좋아좋아."

나는 마음속으로 웃으며 그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막는 자가 나타났다.

"잠깐 데스!"

갑자기 키가 사람 같은 말도 안 되게 큰 실장석이 나타났다.
나는 간이 떨어질 뻔했다. 혹시 이것이 전설의 '실장씨'인가?

"당신은 옷이나 머리털이 있는 실장석은 싫은 것인 데스네?"

나는 그렇다고 동의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옷을 입고 머리털을 기르고 있는 데스까?"

"나는 나, 실장석은 실장석이야."

"닝겐이나 실장석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데스. 실장석의 옷과 머리털이 안 된다면, 똑똑하고 총명한 닝겐상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기 바라는 데스!"

"아니, 내 취향 문제니까. 나는 키 작은 여자가 취향이지만 나 자신이 지금보다 키가 작아졌으면 하는 마음은 없어."

"들실장의 옷이나 머리털이 더러워서 싫은 것인 데스까? 머리털이나 옷은 깨끗하게 씻으면 그만인 데스!
 설마 닝겐상씩이나 되어서 빨래를 모를 리가 없는 데스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독라가 좋은 것뿐이라니까. 내 취향에 맞출 수 없으면 안 맞춰도 상관없어. 나도 길러주지 않을 거니까.
 상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자기 요구만 밀어붙이다니 어설퍼."

"대머리나 알몸은 와타시들에게 있어서는 흉한 데스! 아가씨에게 그런 부끄러운 모습을 시키는 것은 학대 데스우!"

"독라가 흉하다는 것은 선입견도 제법 있다고 봐. 나는 흉하다고 생각 안 하거든. 게다가 저 녀석들 스스로 독라가 되고 싶어졌다면 학대가 아니지."
 나는 실장석이 모두 독라가 되어야 한다고 한 게 아니야. 되고 싶지 않으면 물론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단지 세상에는 나처럼 독라가 좋은 인간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손해는 없다고 생각해.
 사지 멀쩡한 들실장 독라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인간에게 사육실장 시켜달라는 어필을 하기 위해, 독라라는 점은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거야.
 들실장으로서 위험한 데다 불안정하고 마음 편할 일 없는 일생을 보낼 바에는, 독라의 가능성에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한 번 독라가 되면 사육실장으로서 살아가는 것 외에 달리 살아갈 방법이 없어지고 마는 데스. 닝겐은 책임지고 계속 기를 수 있는 데스까?"

이건 좀 아픈 곳을 찔려버렸나. 바로 지금 독라를 하루 이틀만 기르고 버리려고 계획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두렵지 않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야."

"데슷?"

"독라를 린치 대상으로 해버리는 실장석의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거야. 린치만 안 일어나면 들실장이 독라로 살아가도 아무 문제 없어.
 여름에는 옷을 입지 않는 게 더 시원하고, 겨울에는 신문지라도 두르면 그만. 꼭 옷을 입어야겠다면 죽은 실장석 것을 벗겨서 쓰면 되잖아.
 죽는 들실장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대머리에 관해서는, 애초에 건강이나 목숨이 관련된 것은 아니야.
 독라여도 야생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 그걸 못 살아가게 만들고 있는 원인이 뭐지? 너희 자신이잖아.
 겉모습의 사소한 차이를 일일이 차별 이유 삼아 가차 없이 박해하는 너희의 썩은 정신이 문제야.
 인간을 비판하기 전에 실장석 스스로의 의식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독라를 보면 린치하고 싶어지는 건, 실장석의 본능 데스! 본능을 비판해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인 데스!"

"실장석 중에서도 생명과 같이 소중한 옷과 머리털을 버리고 스스로 독라가 되려는 녀석도 있으니까, 실장석도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지.
 방금, 인간도 실장석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한 건 누군데.
 너는 실장석치곤 지혜가 있는 것 같으니까 네가 다른 실장석들을 선도해주라고."


어느샌가 실장석들은 모습을 감췄고, 벤치에 있는 것은 나와 실장씨뿐이었다.
해도 꽤 저물었다.

"저기예요!"

근처의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경찰에게 손짓한다. 경찰관은 잰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공원에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연락이 들어와서 와봤더니 또 당신인가. 잠깐 파출소까지 와라."

"싫은 데스. 놓는 데스우."

"뭐가 데스우야, 아주 그냥 실장석이 되어가지고 원."

경찰관에게 연행되어 가는 실장씨. 잘 보니 등에는 지퍼가 있었다.

"그쪽도 와요."

"엣?"

결국, 함께 조사를 받게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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