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의 실장


여기는 모 역 앞의 광장.
로터리에 둘러싸인 형태로 분수나 벤치가 설치된 이 장소는 평일, 휴일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오늘은 그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눈에 띄는 장소에, 유리로 된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다.

직육면체 상자 안에는 실장석이 몇 마리 들어 있다.

모두 청결한 차림새를 하고 옷감이나 털의 윤기도 좋은데다가 영리해 보이는 예쁜 눈을 하고 있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상자가 설치되기 몇 분전

이 실장들은 역의 옆에 있는 빌딩 안에서 한 남자에게서 설명을 듣고 있다.
굳이 지시받지 않아도 제대로 줄을 맞춰 늘어서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어, 시끄럽게 우는 소리를 내던가, 아첨을 팔던가, 먹이를 조르는 등의 예의 없는 짓을 하는 자는 없다.

사육실장이나 샵의 고급실장 등이 섞여 있지만 여기에 모여있는 것은 전부 확실한 사육용 훈육이 주입되고
거기에 노래나 춤이나 가사일 돕기 등 플러스 알파의 스킬을 몸에 익힌 우수한 개체뿐인 것이다.

[...라는 이유로, 너희들은 엄한 훈육을 견뎌낸 훌륭한 실장쨩들입니다.
 너희들 같은 실장쨩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 실장쨩의 장점을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 이번 기획입니다.
 이제부터 사람이 잔뜩 있는 장소에서 너희들이 노력하여 배운 특기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모두 성실히 듣고 있지만, 그 중 몇 마리는 불안해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경계심이 강한 개체인 모양인지, 인간이 많이 있는 곳에 실장이 있을 때의 위험함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예측한 듯이 남자가 씨익 웃으며 유리상자를 가르킨다.

[실장쨩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 있어도 안전할 수 있도록 이 상자에 들어갈 겁니다.
 이 상자는 튼튼하니까 조금 두둘기거나 돌을 던진 정도로는 부서지지 않습니다.
 안심하고 모두의 귀여움, 영리함을 어필해 주세요.]

[[[예데스!]]], [[[하잇테치]]]

귀엽다라던가 영리하다라던가 등의 평범한 실장석이라면 달까지 날아오를 듯한 말에도 거만해지는 일없이 꾸뻑하고 머리를 숙이고 활발하게 대답하는 우량실장들.

[또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아이에게는 이 트로피를 수여합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실장석의 키 정도 되는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실장 칼라인 녹색으로 만들어진 트로피의 맨 위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의 콘페이토 모양의 장식물이 달려 있다.

[사육되는 아이는 사육주도 기뻐할 것이 틀림 없고, 샵의 아이도 이 트로피를 받은 아이라면 모두들 자기 집 아이로 키우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쁜데스-, 저걸 받는다면 주인님 분명히 기뻐하는데스-]

[대단한테치! 와타치 분발하는테치!]

와타시에 어울리는데스우, 데프프 같은 소리 따위를 지껄이는 자는 없다,
꺅꺅 우후후 하고 어디까지나 소란스럽지 않을 정도로 기품있게 들떠하는 실장석들.
이 우량함에 남자도 흐뭇하다.

[그러면, 모두들 열심히 해 주세요.]

그리고 이야기는 지금으로 돌아온다.
유리상자 안에서, 바깥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압도되면서도 배짱이 있는 개체가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닌겐씨들, 안녕하신데스, 지금부터 노래를 부르는데스, 들어주길 바라는데스.]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소리 높여 노래하기 시작한다.

[저런 것 좋은데스♪ 이런 것 좋은데스♪ 저런 꿈 이런 꿈 잔뜩 있는데스우~♪]
(*원 역주: 도라에몽 주제가)

선곡은 어찌됐든, 실장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비교적 예쁜 소리로 음정도 틀리지 않고 부르고 있다.

[앙앙앙♪ 너무 좋아, 도[저작권검열]~♪데스우♪]

땀을 살짝 띄우며 풀코러스로 열창하고, 인사하는 실장.
그러나 얼굴을 들어보자 통행인들은 누구 하나 노래부른 실장석을 보고 있지않다.

[데데에?!]

자신있게 부른 노래에 박수 하나 정도가 아니라 흘낏 보는 시선 하나 받지 못하자 쇼크를 받는 노래실장.
그래도 역시 푹 고개숙인 노래실장을 테프프하고 비웃는 자는 없지만, 전원 불안과 긴장이 밀려온다.

[저렇게 잘 부른 노래도 안되는테치?]

[저, 정신차리는데스, 보이지 않는 벽이 있으니까 노래가 들리지 않을 뿐일지도 모르는데스.]

[그래도 밖에서 술렁술렁하는 소리도 닌겐상들의 소리는 제대로 들리는테치이...]

[데에...]

자실장 중 한 마리가 말한 것처럼 밖의 소리는 들리고 있다, 자신들의 소리도 사람들에게 들릴 터이다.

모두들 사이에 떠도는 불안한 무드를 떨치려는 듯, 자실장이 한 마리 앞으로 나온다.

[그러면 와타치는 춤을 추는테치! 닌겐씨들, 봐주시는테치!]

그렇게 말하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아까 정도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실장으로서는 꽤 높은 레벨이다.
보통이라면 간지러운 곳에 손도 닿지 않아서 버둥버둥대는 것처럼밖에 보이지 않는 실장댄스지만 스텝을 가볍게 밟으며, 빙글빙글하고 산뜻하게 스핀하고, 다리도 높이 올라 간다.
무엇보다 얼굴에 [와타치는 귀여운테치] 같은 천박함이 없고, 마음으로 즐기는 듯한 웃는 얼굴로 춤추고 있는 것이 빼어나다.
마지막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졈프해서, 산뜻하게 착지한 후 [텟테레-♪] 하고 만세부르는 포즈로 예쁜 피니쉬로 마무리한다.
[텟츄-웅] 하는 아첨포즈로 마무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실장과는 비교할 바가 아닐 정도로 높은 레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길가는 사람들은 역시 반응이 없고, 건너편의 벤치에 앉아 있는 아저씨은 심지어 몸을 젖히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테에...]

만세한 채로 굳어버리는 자실장, 굳어버린 채로 웃는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데에에! 여기 닌겐씨들은 너무 엄격한데스우.]

[좌, 좌절하면 안되는데스! 다음은 와타시데스! 닌겐씨에게 쓸모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데스!]

성체실장이 한 마리 앞으로 나와서 인사하고, 큰 소리로 어필한다.

[닌겐씨들, 와타시는 옷을 개거나 세탁을 도울 수가 있는데스! 봐 주시는데스!]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해서, 벗은 옷을 바닥에 내려놓고 평평하게 다듬은 뒤
양 소매를 안쪽으로 접고, 몸통부분을 반으로 접는다.
예쁘게 사각으로 접힌 실장복을 스윽 하고 앞으로 내밀고 정좌하여 머리를 숙인다.

[보시는 대로데스! 닌겐씨의 옷도 갤 수 있는데스!
 긴 소매도, 짧은 소매도, 바지도 스커트도 무엇이든 개어 보이는데스! 닌겐씨에게 도움이 되는데스!]

세탁물을 개는 작업을 맡기는 것이 가능한 실장석.
화장실 이외에는 똥을 싸지 않는다, 밤에는 울지 않는다, 아첨하지 않고 조르지 않는다 같은
사육실장으로서 최저한의 훈육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한계 또는 근본적으로 무리라고 하는 개체가 절반 이상인 실장석에게 있어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우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시를 먹는다.

[뎃...]

알몸으로 정좌한 자세 그대로 멍해진 옷개는실장.

그 뒤로도 갖가지 재주를 보이는 우량실장들.

개인플레이가 안되면 연계로, 하고 자실장이 3 마리 늘어서서 칼같이 동작을 맞추어 춤추고
그 양쪽에서는 성체 2 마리가 노래를 부르거나 (그것도 파트를 나누어서) 피라미드 쌓기 같이 온몸을 이용한 복합 퍼포먼스.

마침내는 매스게임 비슷하게 전원이 달려들어 연극까지 했지만.

무정하게도 반응은 제로.

서두르며 지나가는 샐러리맨 등은 물론 상자 바로 옆에서 즐거운 듯이 담소하는 여고생 그룹,
상자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행실 나쁜 젊은이,
때때로 시선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 시선은 사람의 눈 높이 정도, 실장이 없는 머리 위의 공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누구도 칭찬해주지 않는다, 그 정도가 아니라 비웃거나 욕하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
완전한 무관심.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실장들은 서서히 망가져 갔다.

몇 시간 후.

상자 안은 이미 아비규환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청결한 우량실장이었다는 흔적이 남아있는 자는 한 마리도 없고 전원 눈에는 핏발이 서고, 얼굴은 주름투성이로 일그러지고 옷은 침, 콧물, 비지땀, 혈액 등 이런저런 체액으로 더러워져 결코 해서는 안될 터인 빵콘을 해 버린 자마저 있다.

그토록 빛나던 지성의 광채는 광기에 흐려져, 주저앉아서 데-데- 하고 멍하게 우는 자.

[테쟈아아! 테지이이!] 하고 메마른 목에서 피가 섞인 가래와 함께 의미를 이루지 못하는 울음소리를 토하는 자.

[덱그! 덱기이!] 하고 오로지 유리벽에 대고 머리를 박아대는 자

[테테텟치- 테테- 테테] 하고 쓸데 없이 활기차게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달려대는 자


모두 정신이 망가져 있다.

때때로 상자 바로 옆을 지나는 인간이 있으면, 먹이를 뿌리러 오는 인간에게 몰려드는 들실장처럼 [데스우-!] [텟치이이! 테챠아!] 하고 필사적으로 거기로 밀려가서,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는 찰싹찰싹하고 가녀린 손에 피가 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벽을 두들기던가 하며 구원을 원하는 아귀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무관심이라는 반응에 쑤셔져서 마음이 망가져간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된다.


[풉... 푸하하하!]

[우햐, 드디어 똥던지기까지 하기 시작했네 저녀석, 우하하.]

장소를 바꾸어, 역 옆의 빌딩 안에서 모니터를 보고 웃으며 굴러대는 남자 두 명.

한 명은 실장들에게 기획을 설명하던 남자였다.
웃다 지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다른 남자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돈 좀 들었겠네, 이번 기획. 저거 전부 몇 십만 클래스인 고급실장이지?]

[뭐... 오프 모임을 계기로 이래저래 잘 맞아들어서 말이지, 사이트 3주년 치고는 좋은 기획이 됐지.]

그렇게 대답한 남자는 기획의 입안자, 실장의 학대, 관찰, 실험들 갖가지 영상을 게제하는 실장동영상사이트의 운영자이다.

수개월전 있었던 사이트의 오프라인 모임에 모인 멤버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아이디어가 정리되어 기획으로 실현된 것이 이번 사건의 경위인 것이다.

그 내용은 실장석들을 완전히 무관심하게 다루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

유리상자, 저것은 모든 면이 전부 매직미러로 되어 있어서 안에 있는 실장들은 밖을 볼 수 있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울로 된 직육면체 장식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방음처리도 되어 있어서 안에서 무슨 짓을 하던 밖에는 들리지 않지만, 밖에 달아 놓은 집음 마이크로부터 입력된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안에 전달되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있어 완벽한 일방통행 커뮤니케이션이 되어버린 상황은 상자 내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눈 앞의 모니터에 비춰지는 것이다.

[촬영기재는 내 거지만, 상자를 준비해 준 것은 대학에서 실장연구로 교수를 하는 사람.
 본능레벨에서 관심병종자인 실장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고통보다도 무시라는 내용으로 논문을 써서 말이지,  이렇게 거하게 실험하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좋은 자료가 되겠다고 기뻐하며 협력해 주었지.]

[실장쨩들을 준비해 준 건?]

[실장샵 점장을 하고 있는 사람과 브리더 분들.
 우리들 전원이 돈을 모아서 어느 정도 비용을 대기도 했지만 거의 이 사람들이 준비해준 거라고 보면 돼.
 안그랬으면 이 기획 자체가 성립하지 못했지.]

[오- 배포가 크시네, 저걸 전부말이야?]

[2 마리 정도는 다른 데서 구해왔지만.
 세레브 기분내던 아줌씨한테 길러지고 있었지만 사업이 기울어서 맨 먼저 쫓겨나게 된 것하고, 말 그대로 진짜 세레브한테 길러졌지만 성체가 되어서 귀엽지 않게 되자 새로운 자와 교체되어 내팽개쳐진 녀석.
 본인들은 모르지만 말이야.]

[우와, 행복한 사육생활도 장난이 아니네, 실장쨩뿐만 아니라 사육주가 분충이어도 잘 안풀리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몸을 젖히고 웃는 남자,
흥분한 나머지 흔든 다리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던 트로피에 부딛혀 트로피는 한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앗, 이런, 부숴버렸네.]

[괜찮아, 어차피 받을 놈도 없는데.]

[그것도 그렇네.
 도대체 어째서 이런 허접한 걸 갖고 싶어하는 지 모르겠어.
 휴지 심을 녹색으로 칠해서 적당히 쌓았을 뿐인 쓰레기인데.
 위에 있는 콘페이토도 은박지 가지고 둥글게 말아놓은 것 뿐이고 말이지.
 내가 자작한 트로피, 실장쨩들에게 엄청 인기였다고]

두 사람은 다시 뿜어댄다,
모니터에는 상자 옆에서 즐거운 듯이 노닥거리는 커플과 그 두 사람에게 닿지 않는 절규를 질러대는 망가진 실장들의 무리.

[아하하하하! 마침내 전원 빵콘입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이 우량실장들은!]

[우햐-, 대단한데 이거, 같은 시간 동안 학대해도 이 정도까지 망가지지는 못할 걸.
 비포애프터의 비포 영상 쪽도 듬뿍 넣어서 편집하고 싶구만 이거.]

아직도 아직도 계속되는 실장붕괴극장.
모조리 전부 파킨하기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매직미러 상자가 그대로 실장석들의 관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테기이이이이!] [테쥬우우지이이이!]

단말마를 들어주는 것도 모니터 너머의 두 사람 뿐이다.
실장들에게 반응해주는 것은 이제 아무도 없다. 죽을 때까지.


-끝

댓글 5개:

  1. 꺠소금이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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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도[저작권검열]~♪데스우♪
    이거 하나만으로도 센스가 충만한 작품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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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답글
    1. 마음이 따뜻한 닌겐상인 데스.. 이 닌겐상이라면 장녀를 잘 길러줄것인데스!! 가는데스 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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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개념실장이니 양충이니 하는 것들도 결국 한꺼풀 벗으면 실장석의 본성인 분충만 남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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