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파와 빠루와 실장석


빠루.

소위 학대파라 불리는 청년들이 들고 다니는, 크로우바와 매우 흡사하게 생긴 물건들을 칭하는 말이다.

한손으로 이를 들고 공원에서 마음내키는대로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하자면 여러모로 위험해보인다.


수kg의 무거운 쇳덩이를 한손으로 잡고 바람소리를 내며 실장석을 보도블럭째로 내리찍고, 위태위태한 궤도를 그리며 가속운동하는 그 육중한 쇳덩이는 실장석 뿐만 아니라 공원의 통행인에게도 위협이다.

우레탄과 같이 연한 실장석을 성인 남성이 크로우바를 들고 전력으로 내려찍으면 실장석은 순간 고깃조각이 되고 실장석을 찢어버리고도 멈추지 않은 쇳덩이가 보도블럭까지 깨버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졌음을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다.
마치 수십kg의 포탄을 쏘는 대포로 동물을 조준하는 일에 비교할 수 있을만한 오버파워다.
크로우바는 기본적으로 단련되지 않은 손목으로 어설프게 휘두르다가는 그 자신의 손목마저 상하게 할만큼 무겁고 튼튼한 물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크로우바를 마치 나무막대기 다루듯 굴리는 학대파 청년들은 돌같은 손과 나무뿌리처럼 우람한 손목을 가져야 하는데, 보통 공원에 보이는 학대파 청년들은 그렇지 못하더라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슬렌더한 상박과 얇은 손목, 손등에는 굳은살 하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장석을 분명히 빠루로 두들기고 있다.


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가운데, 안경을 쓴 마른 체격의 학대파가 자실장을 안은 친실장의 머리를 빠루로 연타해 멍투성이로 만들고 있다.
주기적으로 친실장의 등과 머리에 노루발의 등이 떨어지고,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퍼진다.
길게 찢어진 두건 사이로 벌겋게 뜬 상처가 보이지만 이는 피부 뿐이고, 어미의 골격과 품 속의 새끼들은 아직 무사한듯 하다.

"데갸아아아아악! 데갹! 덱! 뎋! 데덱! 덱"
피투성이가 된 두상에 빠루의 연타가 떨어지며 실장석의 얼굴이, 머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로 변해간다.

그런 와중에서도, 실장석의 두개골은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깨지고 움푹 파이는 일 없이.
달인의 힘가감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듯한 광경에서 내 궁금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저게 진짜 크로우바라면 저 친실장석의 머리는 첫 타격에 고깃덩이가 되어버렸어야 할텐데?'

커피도 다 마셨고 슬슬 몸에 한기가 들자 학대파 구경을 뒤로 한 채 불운한 실장 일가를 외면하고 공원을 뒤로 한다.

등 뒤의 공원에서 "오로로오오옹!!!"하는 비통한 울음소리가 어느 실장일가의 끝을 알린다.


다시 공원에 도착한 나의 손에는 크로우바가 들려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빌려온 1.5m의 무겁고 튼튼한 크로우바다.

공원의 후미진 화단 안쪽, 누렇게 잎이 떠서 죽어가는 소나무 아래 놓인 골판지 안으로 보이는 동그란 녹색 머리를 겨냥하고, 양손으로 잡은 크로우바를 들어올린 다음 모든 체중을 실어 내리찍는다. 마치 곡괭이나 오함마질의 요령으로.


퍽!


크로우바는 골판지 바닥을 뚫은 걸로는 모자라 3cm 정도 흙을 파고 들어가있었다.

그리고, 실장석이었던 모습을 남긴 무른 고깃덩이가 이그러진 골판지 안쪽으로 널부러져 있다.

생각대로 이건 오버파워다.
이래서야 한두번은 해볼만한 경험일지 몰라도 반응을 보면서 하기는 재미가 없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손이 너무 아프다. 손의 뼈마디 사이사이가 쑤시고 손바닥이 얼얼하다.

덤으로 골판지에서는 "텟튜아!!"라던지 "테에에엥"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이번엔 힘을 최대한 빼보자. 가능한 약하게. 검도의 요령으로 크로우바를 실장석의 머리에 닿을때 멈춰주는 식으로.

마침 찾아다닐 필요 없이 성체실장 몇마리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데프프프프"라던지 "데슥! 데슥"떠들지만 오늘은 링갈은 없다.
다시 크로우바를 양손으로 잡고, 머리치기로 실장석의 정수리를 내려친다.

"데벡!"

두번째도 실패다. 힘가감의 타이밍이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크로우바를 맞은 실장석의 머리가 마치 계란처럼 깨져버렸다.
목 위가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녀석의 몸에서 '부루루루룩'하는 소리와 함께 팬티가 부풀어간다.


이번엔 30cm 위에서 천천히 내려보자.

이쯤 되면 갤러리들이 슬슬 도망갈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여기저기서 몰려왔던 실장석들이 나로부터 거리를 벌린다.
녀석들에게는 뛰는 감각인듯 하지만 내게는 걷는 속도도 안되기에 천천히 따라가면서 그 요령으로 실장석의 머리를 '두들겨' 본다.

머리를 맞은 녀석이 "데걋!"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내뺀다.
건강하게 "데갸아아악!"같은 울음소리를 지르며 나무 뒤로 숨는다.

성공이다.



하지만, 아까 공원에서 본 학대파는 분명 풀스윙은 아니더라도 빠루를 머리 위까지 올리고 있었다.

잡은 부분으로부터 1m을 꽤 넘어보이는 긴 빠루, 양손으로 잡고 내리치는 긴 금속제 막대기가 실장석의 머리에 떨어지며 시원한 마찰음을 내고, 빠루는 다시 머리 위로 들려올라갔다가 똑같은 과정을 한 세트로 반복했던 것이다.

길이 1.5m 무게 3.5kg의 육중한 크로우바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작고 마른 체격이라면 더더욱.
분명 내가 알고, 가지고 있는 크로우바와는 차이가 있으리라. 학대파 전용의 크로우바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지.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해서 돌아가려고 공원 입구를 돌아보자 아까의 그 안경 쓴 학대파가 있었다.
몇 시간 전에 들고 있던 그 빠루를 들고 한손에는 접힌 마대자루를 들고 있다.
마침 잘된 일이다. 궁금증이 있다면 특이한 크로우바를 쓰는 본인에게 물어보는 편이 빠를 것이다.

"저기요...그 크로우바...빠루 좀 봐도 될까요."

"네...아 네. 뭐, 안될건 없죠. 보세요."

역시 가볍다. 양손에 들고 비교해보니 내가 가져온 쪽이 거의 네배는 무거운 것 같다.

"그쪽도 공원에 똥벌레 잡으러 오셨나봐요."

공원 바깥에는 4인승 트럭이 한대. 문에 시청의 마크가 찍혀있다. 평범한 학대파가 아니었던건가.

"아...네 뭐 그렇죠. 원래 관찰하는게 보통인데 그쪽분들이 빠루 쓰시는 거 보고 궁금증이 생겨서요."

"어떤...?"

"보통 크로우바가 통쇠라 무거울텐데 너무 쉽게 휘두르시니까. 궁금했는데 역시 가볍네요."

"실장 크로우바라고 실장석 구제용으로 나온 물건이라서요. 가운데가 빈 파이프에요."

잘 보니 빠루에도 시청의 마크가 찍혀있다. '청소행정과 실장대책팀'이라 쓰여있는 글자도 보인다.

가벼운 크로우바를 청년에게 돌려준다. 크로우바를 돌려받은 청년이 마대자루를 펼친다.

"그런데 그 마대자루는 왜 들고 나오신 거에요?"

"오늘은 실장석이 모자라서요..."

학대파 청년, 청소과의 공무원은 "그럼 안녕히 가세요"하는 인사를 흘리고 공원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근무시간에 농땡이 치다가 급한 일이 생겼던 것이리라. 실장석이 필요한 급한 일이라니?
오후 7시가 가까워가는 지금 내일로 미루지 못하는 일, 그것도 실장석이 필요한게 대체 뭘까.

궁금증이 하나 더 생겼지만 쫒아가서 물어보기도 뭣하니 오늘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후 9시. 데스크탑으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시 확인해본다.

실장 과 빠루를 조합해 검색하자마자 수십 종류의 물건들이 결과에 나타났다.
중공제의 금속 파이프 끝에 뾰족한 노루발이 달린, 정말로 크로우바처럼 생긴 빠루들이 품질과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으로 판매가 진행중이었다.

티타늄제 500g, 두랄루민제 700g, 스테인레스 스파이크 등등...

본래는 실장석을 찍어올려 회수하는 도구인듯 하다.
허리 아프게 몸을 숙여 실장석을 줍지 않아도 되고 집게와 다르게 수kg의 실장석을 한번에 찍어올려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수 있다.

이렇게 가벼우니 한손으로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 원래부터가 한손으로 휘두르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니까.


그리고, 빠루와 실장석 두 키워드로 검색된 영상들은 정말로 놀라운 것들 뿐이었다.

30cm급의 빠루를 던져서 도망가는 실장석의 머리통에 하나씩 꼽아넣는 영상에서부터 빠루로 자실장을 공중에 띄운 다음 다시 후려쳐 도망가는 친실장의 뒤통수에 야구처럼 맞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내 이목을 끈 영상은 따로 있었다. 실장용의 가벼운 빠루가 아닌 통쇠 크로우바였다. 그것도 사람 키만한.
무겁고 긴 통쇠 크로우바로 실장석의 머리를 때리고, 노루발을 절묘한 타이밍에 다리에 걸어 실장석을 넘어뜨린다.
일어나려는 실장석의 팔에 노루발을 걸어 잡아당기자 실장석이 한바퀴를 빙글 돌아 직립보행자세로 돌아온다.

"뎃!""덱!"하는 울음소리를 울리지만 크로우바는 사정없이 실장석의 전신을 두들기고 마침내 걸을 힘도 없어진 실장석을 크로우바의 미묘한 두들기기로 걷게 만들다가 마지막에는 크로우바에 실장석의 전신을 싣고는 1m 높이로 던져져서 골판지집에 골인.

줌인되는 골판지집의 내부에는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찢어진 성체 실장석. 몇 분 전에는 옷과 머리가 멀쩡한 개체였음이 놀랍다.
걸레가 되어버린 실장석이 "데히..."하는 희미한 신음소리를 울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상이 끝난다.


이런 기묘한 묘기를 두 눈으로 직접 관찰할 기회가 있다면 관찰파로서는 나름 진귀한 경험이리라.
그 공무원 청년도 빠루에 조예가 있던 것 같은데 운이 좋다면 그의 빠루질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서랍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있던 캠코더를 꺼냈던 것이다.


-끝


댓글 3개:

  1. 실제 유통되는 빠루 중에 쇠파이프에 빠루 머리만을 만들어서 용접해붙인 경량 빠루가 있는데스! 경량 빠루 중에서도 고급형은 이중 파이프 구조로 만들어져 강도도 분충 구제는 물론 인테리어 작업에도 모자라지 않은 데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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