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사양 시대

슬슬 날도 기울어진 시간,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근질근질하고 안타깝다.
학대다... 학대가 하고 싶어.
외출은 귀찮지만 그 이상으로 그 충동은 막기 어렵다.
침대 위에 날린 채로 둔 윗도리를 걸치고 밖에 나가 집 바로 옆의 쓰레기장을 지나가다 보면 흩어진 부스러기 하나없이 정갈하다.

얼마 전까진 상상도 못했을 그런 상태이다.
잠시 터벅터벅 걸어 공원에 도착하니 아이들도 다 집에 갔는지 아무도 없다.
아, 물론 그 녹색 짐승들도.

나로서도 사람들이 없는 편이 좋으니까, 자판기로 향한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주머니에서 초록색 카드를 꺼낸다.
학대용 실장석 구매 카드, 통칭 JISPO.
이것이 없으면 구매불가.
카드를 넣자 윈도의 조명이 켜져 상품에 비춘다.
500ml 생수병을 조금 두텁게 한 정도의 플라스틱 용기에 자실장, 엄지, 구더기...
친숙한 실장들이 캡슐 배양한 외계인 클론들 처럼 들어 있다.

그중에서, 표준적인 자실장 "마일드 테츄-ㅇ 분충 라이트" 를 선택.
분충레벨 3 으로 초보들도 다루기 쉬운 소극적인 똥벌레이지만 학대 경력이 긴 나도 애용하고 있다.
헤비급 똥벌레를 상대로 갖은 수단으로 학대하는 것엔 지쳤다.
그래도 학대 그 자체는 그만두지 않았고…
옆에 나란히 서있는 자판기에서 담배도 사 놓자, 여기에서도 카드가 필요하다... 귀찮다.
가지고 돌아가 쓰레기를 늘리는 것도 귀찮아서 자판기 옆의 학대소로 이동한다.
학대소라는 이름처럼 학대를 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
집 밖에서는 여기 이외의 학대는 금지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이 공원에 걸맞게 명색뿐인 담과 지붕이 붙어있고,
그 안 중앙에 구멍 뚫린 원형 테이블이 하나, 그 주위에 원형 걸상이 3개로 단촐한 만듦새이다.
탁자 위에서 학대를 즐기고, 끝나면 테이블의 구멍에 폐기...라는 구조이다.
테이블 위에 실장병과 담배를 놓고, 우선 실장석을 개봉한다.
병 뚜껑을 열면 푸슉다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진공팩에서 해방된 자실장이 굴러나와 꿈틀거린다.

완전히 소생하고 각성할 때까지 담배를 꺼내고 불을 붙여 물은 채 주머니에서 이쑤시개 케이스를 꺼내 한개 빼낸다.
타인의 물건이나 공공기물을 실장의 피로 더럽히는 것은 비매너.
자기 학대 도구를 휴대하는 것이 학대파의 소양이란다.
그리고 이쑤시개를 뽑을 즈음, 자실장이 눈을 뜨고 이쪽의 존재를 깨닫는다.
딱 좋은 타이밍이군.
몇번이나 반복한 끝에 이 일련의 동작이 리듬이 되어 몸에 배었다.
이 품번의 자실장의 행동 또한 언제나 마찬가지, 이쪽의 얼굴을 보자마자 고개를 갸웃하고 입가에 오른손을 곁들여

"텟츄~ 프슷"

언제처럼 아양이 끝나기 전에 곁들인 오른손에 한번 찌른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한박자 늦게 터지는 비명.
소음 대책으로 태어나자마자 처리된 성대에서 나오는 작은 비명.
고통 때문에 튕겨 나가지만 구워 부서트린 총배설구에서는 똥도 나오지 않는다...
과거의 해충을 사람들이 달라붙어 인위적으로 "조정"한 와사비 뺀 초밥 같은 따분한 완구.
언제부턴가 이런 열화 버젼 똥벌레를 돈내고 사야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 지경이 된 이유?
한마디로, 실장석이 본격적으로 인간을 적으로 돌려 버린 것이다!
날마다 증가할 뿐인 실장석 원인의 사건 사고.
언론이 무책임하게 부추긴 실장 애완붐에 의해 증가한, 실장석의 기본 생태도 제대로 모르는 민폐 애오파들.
버려진 들실장의 증가.
또 인간의 생활 사이클이나 도구, 집의 구조를 아는 원사육실장에 따른  실장 범죄.
배설물 공해, 음식물 공해, 기물 파손, 심지어 희생자까지 나오게 되고, 드디어 인간은 실장석에 대해 참을 수가 없게 된다.
나라는 실장석에 대한 법률을 새로 만들고, 사육실장은 그동안의 법에 의한 보호를 박탈당했다.
언론도 올리기보다는 떨어뜨리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걸 알고 철저하게 실장석을 배척했다.
신문에는 실장석과 무서운 학대파, 애오 주인이 일으키는 문제가 매일같이 취급된다.
텔레비전에서도 애호 모드밖에 쓴 적이 없는 집을 방문해 표준 링갈로 사육실장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 "우리집 실장석은" 같은게 방송되고
(분충성 발언은 요란한 자막이 붙어 분충 인정률 90%이상)
실장석의 악행과 이에 따른 피해 영상을 편집한 "실장 열도 24시"등의 특집도 짜여졌다.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탁아로 망쳐진 집안의 재현 영상.
친실장이 눈을 뗀 틈에 자를 덮치는 들실장 무리의 충격 영상.
그중에서도 반향이 컸던 것은 차도로 뛰어나온 실장석을 인간의 아이로 착각해서 사고를 낸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
거기서, 도로로 뛰쳐나온 실장은 길 한가운데 있는 동종의 시체를 군침을 흘리며 먹으려고 하다, 사고가 터진 모습에 한순간 놀라고 인간이 비참한 일을 당한 걸 본 순간에

"데풋풋?"

하고 크게 웃었던 일이 드러났다.
지금도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 못한 피해자와 그것을 개탄하는 가족의 영상.
그런 보도가 연일 계속되어 사회 전체에 실장석이 "가증스러운 해충"이라는 이미지를 뿌렸다.
실장석을 키우기는커녕 공원에서 먹이를 뿌리는 사람도 없어졌다.
나라도 민간도 개인도 실장석을 보면 박멸부터 생각.
애호파들도 그런 흐름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많이 노력하고는 있었지만 헛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우리 학대파도 일찍부터 함께 시류에 영향을 줬었어야했다...
경솔하게 "이제야 겨우 우리의 시대가 왔다" 하며 들떠 있던 당시의 나를 때려 주고 싶다.

스스로를 세상에 군림하는 왕자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실장석.
그들의 가장 큰 실수는 뇌내 폭군인 자신들과 달리 지구상에는 실행 능력을 가지고, 실제 몇가지 종을 전멸시킨 실적도 있는 진정한 폭군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진심으로 철저한 퇴치가 이루어지자 그토록 많던 들실장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사기적 재생능력의 근원인 위석의 구조도 여럿이 달라붙자 금방 해석되고, 실장석이라는 종의 생태, 성질은 모두 밝혀져 버렸다.

이제 세상에 존재를 용인받은 실장석은 두 종류밖에 없다.
실장 산업의 소재로 취급되고 있는 실장과,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학대용 실장.
이대로는 학대용 실장 자체를 조달할 수 없게 됨을 깨달은 우리가 너무 늦은 노력을, 그래도 필사적으로 벌인 끝에 남긴 그 시대의 유산이다.
애호파들보다 지지층이 많았고, 뭐랄까 "수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학대에 중독돼 있는 사람들에게서 실장석을 뺏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부추기기도 했다.

결과가 이것.
담배와 마찬가지로 잔뜩 세금을 붙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토록 성대와 총배설구의 처리, 생식 기능 제거, 개봉 후의 수명은 불과 며칠로 위석별 "조정" "가공"된 상품으로서의 모습.
공원에 가면 얼마든지 싱싱한 것을 공짜로 조달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난 것이다.
회상할 때마다 불쾌해져서, 그 부담을 연기와 함께 뒹구는 자실장에게 몰아친다.
너희들의 마음먹기 따라, 개나 고양이처럼 사랑스런 반려동물이라는 지위를 얻었는지도 모르는데.
헉-헉-하고 숨막혀 하는 자실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너희에게 주어진 건 지금의 그 지위다.
지금 네 숨을 막는 그 연기와 마찬가지인 혐오성 기호품, 그게 바로 너희들이야.

또 이쑤시개를 박지만, 살을 뚫는 감촉과 터지는 작은 비명...
과거 때의 흥분을 느끼는 일은 이제 없다.
다만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놈들이 비참하게 웅얼거리며 시달리는 모습을 정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아무래도 불안하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실장캔의 경고문.

"학대는 당신의 정신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데스, 예절을 지켜 적당한 학대를 "

옆의 담배갑과 비슷한 글이 쓰여 있지만 나에겐 이미 눈에 익어버린 무늬에 지나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고, 말의 의미도 아는데 뇌에는 닿지 않는, 그런 흡연 경고문과 같다.
이제 타성이 된 움직임으로 이쑤시개를 박고 한바탕 통증에 몸부림치자 안정된 곳에 다시 박았다.

원래도 단성 생식으로 클론 같았던 이 녀석들이 이제 위석 자체에서 복제 생산된다.
반응도 언제나 똑같다.

"테-챠! 테샤아아!" (반복) - 처음엔 화를 내고 항의하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반복) - 그래도 계속되는 통증에 울음을 터뜨린다.
"테츄, 테치-테치이!" (반복) - 점차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용서를 빌다가,
"테에...테.." (반복) 구멍 투성이의 몸에서 절망의 신음밖에 못내게 된다.

죽을 때까지 몇분 동안 그냥 찌르고, 박고, 찌른다.
그것뿐이야.
너무 단순, 단조, .... 완전한 타성
그만두지 못하니까 하는 거야. 그것 뿐이다.

끝난 후엔 절명한 자실장의 몸에 담배를 문질러 끄면서 정리해 테이블의 구멍에 폐기한다.
당장은 몸을 못 일으키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이 때는 항상 오로지 공허뿐.
잠시 그러다 겨우 학대소를 나오니 어느새 하늘의 색이 청색에서 적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내가 담배도 학대도 다 하는 것을 아는 놈들은 대체로

"둘다 그만두는 편이 좋다"

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어느 한쪽이라도 그만두면 어떠냐?"

라고 묻는다.
나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건 아니다.
실제로 지갑에 가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 며칠 후에 다시 하는게 1년에 몇 번은 반복되는 것이다.
아마 평생 못 그만두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하면서 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다.
카드 없이도 담배를 샀고, 실장석은 마치 주변에 나있는 풀처럼 쉽게 손에 들어왔었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좋았던 시대의 추억에 젖어있다.

이제 나는 사람으로서 어딘가 고장 났는지도 모른다.
체념과 후회인지 그런 답답한 감정에 항상 얇게 쫓겨다니고, 점점 마음인지 뇌인지가 닳아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원인은 역시 그 똥벌레들일까?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야 학대파로서 자신의 본질을 깨달았다.
세상의 흐름이 애호이든 학대이든 아무래도 좋다.
나라에 인정 받거나 칭찬할 수 있는 일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
음지이겠지만, 학대 중독 환자 취급 받겠지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될지는 전혀 문제 따위가 아니다.

나는 그저 그 놈들을 학대하고 싶을 뿐이다.

간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늦었다.
가라앉기 시작한 해는 멈추지 않는다.

빨갛게 물든 귀가길의 하늘이 유난히도 눈에 사무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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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린 그마저도 없잖아.

댓글 5개:

  1. 저렇게라도 좋으니까 좀 팔았으면 좋겠네요. 스트레스 풀고싶을때 사서 찢1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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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이를 찢으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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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종이를 찢으라니...
      자원을 아낍시다.
      스트레스는 낙동강 뉴트리아에게 풀도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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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글쓴이는 흡연자임이 분명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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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마츄 라이트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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