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데스코, 그리고 링갈

주의 : 병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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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더인 친구에게 실장석을 분양 받았다.
이미 성체가 되어버린 놈이라 팔리지도 않아 곤란해하고 있길래, 보기 안쓰러워진 내가 맡기로 한 것이다.
실장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펫 한 마리 쯤은 기를 여유가 있다.



[데스-]
[네 이름은 오늘부터 [데스코]다]
[데스-]
이렇게 나와 데스코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데스코는 성체가 되기까지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왔으므로, 사육실장으로선 더할 나위 없었다.
똥을 지리지도 않고, 시끄럽게 울지도 않는다.
움직임이 다소 굼뜬 느낌은 있지만, 그건 느긋한 성격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결코 지능이 낮지도 않아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그럭저럭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데스코, 오늘 식사는 평소보다 호화롭다고]
[데스-]
눈 앞에 고급푸드가 있어도 게걸스럽게 달려들지 않고, 데스코는 언제나 그랬듯이 예의 바르게 식사를 시작한다.
[하하하, 넌 마치 어디 양갓집 규수 같구나]
[데스-]
[맛있니? 데스코]
[데스-]
이 녀석은 정말 교육이 잘 되어있다.
그럭저럭 영리하며 성격도 얌전한 데스코는 내 맘에 쏙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든다.
이 귀여운 동거인과 좀 더 즐겁게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는 없을까.
실장링갈---그 도구만 있으면...

---실장석에게 기대를 갖지마라.

브리더 친구놈이 몇 번이나 내게 충고했던 말이다.
실장석을 기르는 사람이 쉽사리 빠지는 함정.
자기 실장석 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맹목적인 편애가 처참하게 박살나는 순간이 있다.
친구놈에게서 데스코를 분양 받았을 때 들었던, 수많은 비극적 케이스.
그 하나하나가 전혀 과장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친구가 평소에 보이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난 믿고 싶다.
아니, 이건 변명이다. 호기심과 기대에 무너져가는 나에 대한 자기변호다.

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데스코가 소위 [분충]처럼 행동한 적이 없다는 것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교활한 개체일 가능성은 있지만, 설령 데스코의 정체가 그렇더라도 그건 억지로 데스코의 내면을 알고 싶어했던, 내 판단미스에서 비롯된 것.
결코 데스코 잘못이 아니다.

결심했다.



다음날, 퇴근길에 실장링갈을 샀다.
가격은 제법 나갔지만, 꽤나 고성능의 제품을 골랐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로써 나와 데스코의 관계는 크게 바뀔지도 모른다.
데스코에 대한 감정이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각오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난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기를 것이다!

망설임을 떨쳐내듯, 기운차게 문을 열어젖혔다.
바로 링갈의 전원을 켠다. 미뤄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문 여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데스코가 현관까지 아장아장 걸어온다.
[데스코, 다녀왔어]
[데스-] (어서 오세요. 늦었군요)
[...]
[데스-] (왜 그러세요? 왠지 놀라신 것 같네요)

---어라??데스코가 이런 캐릭터였나?

[아...이것 봐, 실장링갈을 사왔어]
[데스-] (어머, 그 기계가 링갈인가요?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그야 가게에서 사용하는 묵직한 거랑은 다르지만, 이것도 꽤나 고성능이라고]
[데스-] (저랑 얘기하기 위해서 일부러 구입하신 건가요?)
[뭐 그렇지. 동거인하곤 잘 지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데스-] (감사해요. 저도 지금까지 답답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내 예상과는 크게 다른 결과였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기대 이상의 엄청난 수확이다.
링갈을 통한 거라곤 하지만, 데스코가 이 정도로 원활한 대화가 가능한 상대이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데스-] (그렇게 싱글거리는 모습을 보니,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보죠?)
[아, 있었지]

그날부터 내 생활은 크게 바뀌었다.
한 마디로 말해, 보람이 생겼다.
펫을 기르고 있어봤자, 기본적으로 1인가구인 무미건조한 나날.
자연히 말수도 줄기 마련이지만,  이젠 다르다.
데스코라는 말상대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데스코에겐 남의 말을 들어주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시시껄렁한 내 푸념이나 자랑거리 하나도, 결코 건성건성으로 흘려 넘기지 않는 듯했다.
[이번 기획은 말이지, 좀 더 고객층을 좁혀볼 생각이야]
[데스-] (그러세요? 자신 있어 보이네요)
[이걸 끝낼 때까지는 쉴 틈이 없겠는걸]
[데스-] (무리하지 마세요. 너무 열중하면 자기 몸이 어떤 상태인지 좀처럼 깨닫지 못하니까요)
데스코와의 생활 속에서, 난 점점 [삶의 보람] 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생활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반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회사가 도산한 것이다.
무책임한 경영자는 입구에 종이쪼가리 하나 붙여놓고 잠적.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난, 당연히 직업 소개소로 발길을 돌렸지만,
딱히 일자리가 많은 편이 아닌 이 지방도시엔, 구인의 수요도 그다지 많지 않다.
생활수준을 낮추고,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내 곁에서 데스코는 싸구려 실장푸드를 천천히 먹고 있다.
[이런 먹이밖에 없어서 미안해...데스코]
[데스-] (미안하긴요, 당치도 않아요)
[빨리 원래 생활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게...]
[데스-] (펫에게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데스코는 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투정은커녕, 변함없이 내 말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미안...데스코. 정말 미안해]
[데스-] (그러지 마세요. 당신이 잘못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래도...]
[데스-] (펫인 저에게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난...]
[데스-]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요. 괴로운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건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데스코...]
[데스-] (자신이 힘든데도, 항상 저까지 신경 써주셔서 정말 기쁘답니다. 펫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주제넘은 짓이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당신은 정말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있으니까, 저는 지금도 이토록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거에요)

이런, 데스코의 말을 들으니 체면도 잊고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난 이 녀석으로부터,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받은 것일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이해, 신뢰, 배려.
죄다 애매한 단어에 불과하지만, 또한 분명한 사실로서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데스코...!]
정신을 차리니, 난 데스코를 양팔로 꼭 안고 있었다.
데스코도 나를 위로하듯 토닥토닥 쳐준다.
[데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어리광 피우고 싶어지셨나요?)
[그게 아냐]
[데스-] (그래요? 하지만, 기운을 차린 것 같아서 안심했어요)

괜찮아, 아직 할 수 있어.
데스코가 있는 한, 어떠한 고난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
난,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을 정도로 기력이 충만해오는 것을 느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기합을 넣고 다닌 보람이 있었는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이전의 직장보다 조건이 좋았다는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이걸로 데스코에게 고생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니,
들뜬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채용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가장 먼저 데스코에게 알리러 간다.
데스코는 옆방에서 자고 있었다.
[이봐! 데스코! 일어나봐!]
[데스-] (무슨 일이에요...?)
[직장을 구했어!]
[데스-] (!...잘 됐네요. 정말로 잘 됐어요)

[그래, 이제 너에게 싸구려 푸드 같은 걸 먹이지 않아도 되겠어]
[데스-] (괜찮아요, 고급 푸드는 가끔 먹으니까 맛있는 거에요)
[됐으니까 잠자코 먹어. 네 덕분이기도 하니까]
(전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어요. 얘기를 듣고 있었을 뿐이죠)
[그게 큰 도움이 된 거야.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구]
(노력한 건 당신이에요. 전 곁에 있었을 뿐. 감사해야 하는 건 저에요. 항상 저를 이렇게나 생각해주시니까요)
[데스코...]

이렇게 좋은 실장석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실장석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분명히 반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난 데스코에게 상당히 빠져있는 듯하다.

[데스코, 난...]
한동안 감격을 음미한 후, 난 데스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데스코는 자고 있었다---.


어라?
자고 있다?
방금 깨우고, 얘기하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자고 있다고?
(왜 그러세요?)
링갈에는 문자가 표시되어 있다.
(몸이 굳어있는데, 무슨 일이에요?)

어째서 링갈이 혼자 멋대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거지?

진정하자, 냉정해지자.
잘 생각해보면, 이전부터 이상한 점이 몇 군데 있었다.
데스코의 울음소리를 번역한 문장이 너무 길다거나,
대화 내용은 흥겨운데도, 데스코 본체는 딴 곳을 보고 있는 등,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운 장면은 있었지만, 데스코의 성격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겨왔던 것이다.

[야]
(네?)
[너, 누구야?]
(누구긴요, 데스코에요)
[데스코는 자고 있어] 침을 흘리며 잠들어있는 데스코 본체를 가리킨다.
(...!) 링갈이 동요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에, 아, 그, 그러니까,. 데...데스코에요! 데스코!)
[...누구냐니까?]
(데스코라니까요! 그...복화술이나 텔레파시 같은 거!...안 되나?)
[...데스코가 아니군]

당했다.
어디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링갈엔 도청기 같은 것이 들어있고,
이걸 듣고 있는 누군가가 데스코로 둔갑해서, 나와 대화하고 있었던 듯하다.
상대방도 24시간 모니터만 보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
자리를 비울 때는 원래의 링갈로 되돌리는 걸까.
아니면, 여러 명의 인간이 교대로 데스코를 연기하고 있었던 걸까.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지만, 눈 앞엔 그 증거가 있다.
무엇 때문에? 놀자고? 아니면 일?
그런 걸 생각하고 있으면 끝이 없다.
일단, 내 생활과 대화를 엿듣고 있는 놈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링갈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프레임이 약간 찌그러진다.
(아앗! 야메떼야메떼!...미안해요, 미안해요!)
[지금까지 날 속였던 거냐...]
(그렇지 않아요,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뭐야? 뭐 하자는 플레이야? 남의 사생활에 개입해서 재미 좋았냐?]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어디 사는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런 도청게임은 때려치우겠어]
(미안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고요!)
[시끄러!]

난 링갈을 쳐들고, 있는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럴 생각이었다.

순간의 변화.
바닥에 격돌하는 순간, 링갈에서 다리가 자라났다. 동시에 작은 분사음이 들린다.
링갈은 스스로 충격을 완화하여, 자신을 보호하며 바닥에 굴렀다.

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가 눈 앞에서 일어난 사태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일단 [변형] [로봇] 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을 뿐.

뒹굴고 있던 링갈이 일어난다.
날 바라보듯 나를 향한 액정화면에, 조그마한 문자가 떠올랐다.

(미안해요. 안녕히)

링갈은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이상하리만치 재빨리 달리더니 창 밖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사태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제정신이 돌아왔다.
---처음엔 악질적인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링갈을 박살내면 도청기가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튀어나온 것은 다리였다. 부스터 같은 것까지 보였다.
장난이었다면, 듣고 있던 상대방이 [들켰나, 병신 ㅋㅋ] 라고 날 비웃으며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 링갈은 사과했다.

아니, 그러니까 진정하자고. 링갈이 사과한다는 게 말이 돼? 그냥 도구라고.
내게 사과하고, 달려서 도망친 링갈---.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건 관두자.
그건 아마 링갈의 모습을 한 다른 것이다.
그 녀석이 링갈인 척, 지금껏 나랑 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불안해지는 가설이지만,
의외로 그게 가장 정답에 가까울 거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게 맞는다면, 난 데스코를 쫓아내버린 셈이다.
자신이 얼마나 큰 일을 저질렀는지,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갑자기 온몸의 핏기가 가신다.
황급히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링갈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난 사라져버린 링갈데스코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짐작 가는 곳은 죄다 뒤져봤지만, 데스코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피곤해서 힘이 빠져버린 채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터져서, 머리도 터져버릴 것 같다.

직장을 구했다.
링갈이 움직였다.
데스코가 사라졌다.

그 이상한 광경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솔직히, 무섭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섬찟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링갈의 마지막 메시지는 믿을 수 있다.

---미안해요, 안녕히---

그래, 내가 알고 있는 데스코는 그런 녀석이 아니었던가.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항상 나를 생각해주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이 있다.

그 링갈이야말로, 나의 데스코였던 것이다.

그리고, 데스코는 내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온몸에서 힘이 완전히 쭉 빠져버렸다.
벽에 기댄 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다.
[데스코...]
[데스-]
한참 낮잠을 즐긴 실장석 데스코가 일어난 듯하다.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내 옆에 다소곳이 앉는다.
[데스코...]
[데스-]
[너 말고...]
[데스-]
[데스코...]
[데스-]
[너 말고...]
[데스-]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데스코는 사라졌지만, 삶은 계속된다.
새 직장에서 정신 없이 일에 쫓기게 되어, 오히려 감사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으니까.

생각하기 나름으론, 링갈을 사기 전의 생활로 돌아왔을 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애초에, 데스코도 내겐 괜찮은 실장석이었다.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가끔 엄습해오는 공허한 기분만큼은 어떻게 할 길이 없다.
"그"데스코는 내게 단순한 동거인/펫이 아니었다.
내가 있을 곳이자 돌아갈 곳. 이렇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이후론 링갈을 사지 않았다.
데스코 이외의 링갈은 생각 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부터 링갈 데스코를 찾느라 막대한 시간과 광대한 범위를 돌아다녔다.
메이커에도 문의해봤지만, 개소리라며 제대로 상대해주지도 않았다.
결국, 그 수수께끼의 링갈데스코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전혀 모른다.


오늘도 데스코를 데리고 산책했다.
처음은 링갈 찾기를 겸해서였지만,
세 달 넘게 성과가 없으니 결국 건성건성이 되고, 이젠 완전히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데스코를 데리고 저녁 무렵의 강가를 천천히 걸었다.
그것도 느긋한 데스코에겐 너무 빨랐는지,
가끔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주지 않으면 따라오지 못한다.
난 또 멈춰 서서 데스코를 부른다.
[어이 데스코, 빨리 와]
[데스-]

여성이 서있었다.

언제 나타난 것일까.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아직 날씨가 더운데도, 단정하게 정장을 입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긴 은발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데스-]
[당신의 실장석인가요?]
[네...]
[데스-]

여성이 다가왔다.
가까이하면 할수록, 현실에서 동떨어진 용모가 또렷해진다.
분명 미인이긴 하지만, 너무 가지런하다. 마치 살아있는 마네킹처럼.
[잘 따르네요]
[네, 그렇네요]
[데스-]
[이 아이, 이제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것 같아요. 지친 거겠죠]
[실장석의 언어를 아세요?]
[데스-]
[옛날에 키웠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여성은 내게서 돌아섰다.
그대로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알 수 있다.
근거는 없다. 하지만 확신에 가깝다.

[데스코] 불러본다.
[데스-] 실장석이 대답한다.
[너 말고]

난 여성을 향해 말을 건다.
[데스코, 우리 집은 거기가 아냐]
[데스-]
[너 말고]

여성은 걸음을 멈추었다.
[데스코, 집에 돌아가자]
[데스-]
[너 말고]
여성은 말이 없다.

나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다. 누군가 보고 있다면 또라이인줄 알겠지.
아냐, 이런 이상한 사태에 정상적인 대응을 해도 의미가 없다.
애초에 나랑 데스코의 관계는 이상했으니까.

여성이 다가왔다. 뒤돌아선 채, 뒷걸음질로.
[데스코]
[돌아가도, 되나요?]
[데스-]
[당연하지. 내가 잘못했으니까]
[아, 응, 하지만]
[데스-]
[걱정했다고.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야]
[쭉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하지만...]
[데스-]
[당신이 알 수 없도록 모습을 바꾸고 있었어요.
하지만 매일 나를 찾아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죠.
하지만 유기체 바디(body)를 생성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머리카락도 여전히 금속인데다, 무게도 100킬로그램 가까이...]
[됐어! 아무 말도 하지마!]
[데스-]

고개를 돌린 데스코는 커다란 눈물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난 링갈데스코의 몸을 힘껏 껴안았다.

[데스코, 이제 아무데도 가지마]
[네]
[데스-]

이렇게, 난 한 번 더 소중한 존재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후에 [링갈인] 이라 불리는 종의 시조가 태어나게 되지만,
내가 신도 아니고 그걸 알 길은 없었다.





수백 년 후.
괴멸적인 지구환경의 악화에 의해, 인류는 우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에 남은 것은, 가혹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실장석과 링갈인들 이었다.

우주로 날아가는 셔틀을 배웅하며, 실장석과 링갈인들이 하늘을 바라본다.
그녀들의 곁에 한 남자가 다가왔다.
[데스코]
[네]
[데스-]
[반드시, 꼭 돌아오겠어. 여기가 내 집이니까]
[기다릴게요]
[데스-]
계산에 따르면, 자연이 회복되어 인류가 살 수 있을 만한 환경이 갖춰지기까지 만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자의 약속은, 전혀 실현 불가능한 허풍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와 그녀는 믿고 있다. 아니, 절대적인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들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이 약속이 어긋나지는 않는다.
돌아오는 자와, 맞이하는 자가,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인 것이다.

남자와 링갈데스코는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이제 시간이 다 됐군. 가야 해]
[네]
[데스-]

하지만 서로 아쉬움에 손을 놓지 못한다.
[시간이 다 됐어]
[이제 가야 하는군요]
[데스-]

지금, 마지막 셔틀이 발진을 앞두고 있다.
[서둘러야겠군]
[그렇네요]
[데스-]

셔틀은 벌써 떠나버렸다.
[가버렸군]
[네]
[데스-]
[하지만, 내겐 너만 있으면 돼]
[저도요]
[데스-]
[갈까]
[그래요]
[데스-]

두 사람만의 세계에 빠진 바보커플은, 불모의 황야로 떠났다.

[데스-]


이리하여 남자는 지구의 환경오염에 몸이 상하면서도,
짧은 여생을 나름대로 즐겁게 만끽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질질 끌다가, 지구에 남겨진 우유부단한 남자가 상당수 있는 듯하다.

이런 도태/솎아내기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수만 년 후에 지구로 돌아온 인간들 중엔 나약한 자가 거의 없었으며 강인한 의지를 지닌 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지만, 신도 아닌 내가 그런 걸 알 길이 없었다.
또, 내 머릿속엔 링갈인 밖에 없었기에, 실장석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역시 알 길이 없었다.

[데스-]



-끝

댓글 7개:

  1. 뭐인데스우 이 영문을 알수없는 하모니는
    [데스]

    장르를 알수없는데스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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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니 이게 뭐냐는데스¿ 웃기지 말라는데스! 제에발 불만있으면 말로하라는데스웃! 왜 아마아마하다가 구리구리해지는거냐는데스! 인정할수 없는데갸아아아ㅏ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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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뭐냐 이 븅신같은 명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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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데스코 오네챠 아름다운 레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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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링갈ㅋㅋㅋㅋㅋ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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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어쩐지 링갈로 번역된게 실장석 특유의 한본어가 아니더라니ㅋㅋㅋㅋㅋ실장석 아종도 모자라서 이젠 링갈까지 아종화냐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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