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눈 앞에

작은 실장석이 작은 손으로 작게 손을 흔든다.
"인간씨, 우리는 여기있는테치, 그러니 안되는테치, 여기오면 안되는테치."

그는 그런 목소리에 신경쓰지 않고 짓밟는다. 실장석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안전화의 딱딱한 고무 바닥아래, 팍 하고 부딪혔다.

피와 살과 내장과 똥 등 진흙처럼 뒤섞인 그것은 번지르르 윤기있는 짙은 녹색, 실장석이 죽을 때 피우는 꽃의 색.


"테챠, 오네챠 짓밟혀버린테치."
피웅덩이 옆에서 동생 자실장은 끊어진 언니의 팔을 들고 중얼거렸다.

그냥 본 그대로를 기계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의 빛도 없다. 그것은 냉담보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실장의 낮은 지능을 말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언니의 죽음에 자실장은 무엇을 하지도 못하고, 선 채로는 피곤했기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체의 유일하게 남은 부위인 언니의 팔을 휘둘러보고, 공중에 던지고 받아보거나 한다.

그럼에도 그것도 질리고, 피웅덩이에 들어가 진흙처럼 되어버린 육편을 퍼올리거나 경단을 빚기도 하고, 진흙 놀이같은 짓을 시작한다.

이윽고 자신의 발자국이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땅바닥에 찍혀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이번에는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 퍼올린 진흙을 펴서 바닥에 선을 그어야하지만, 딱딱한 아스팔트에 스쳐 곧 뭉툭한 손끝은 아프게 된다. 뭔가 대신 붓으로 쓸만한 게 없을까 돌아보니 방치된 언니의 팔이 있는 것을 깨닫는다.

"텟테레~엣 텟테레~엣"

자실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붓을 그었다. 강모는 거친 땅바닥에 끝이 날카롭게 갈리고, 그대로 녹색 선이 된다. 선과 곡선이 교차되며 하나의 풍경을 그린다.


피웅덩이는 태양, 그 아래에 두 마리의 자실장과 조금 더 큰 친실장.
모두 웃는 얼굴로 손을 잡고있다.
그리고 저실장은 삼녀인 동생, 친실장의 옷자락을 잡고있다. 머리에는 윤곽이 없이 웃는 얼굴만 그려져 있다.

"테치, 더 사이좋게 지내고싶은테치, 그렇지만 손이 아픈테치."
자실장은 아쉬운듯 스스로 그린 풍경을 바라본다. 더 그리고 싶은 것이 많았던 것이다.

그것은 맛있는 음식이나 상냥한 주인님이나 깨끗하고 큰 집이나 그 밖에도 많았다. 구더기의 동생들이나 공원 친구들이나 그 밖에도, 그 밖에도 더 많이...

문득 자신이 커다란 그늘 아래 있다는 것을 자실장은 깨달았다. 고개를 드니 숨가쁘게 새끼를 내려다보는 친의 모습이 있었다.

"데에, 데에, 데에... 엄청나게 찾고 있었던데스요."
그렇게 말하고 친실장은 자실장을 끌어안고 있었다.

"오네챠는 어디간데스까... 혹시 그 녹색의 끈적끈적한 것이 그거인데스까?
밖은 위험하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한데스. 아깝지만 어쩔 수 없는데스.
이제 남은 것은 오마에뿐인데스. 소중히 소중히 자라주는데스.
다시는 위험한 곳에 두지 않는데스. 너는 오네챠와 달리 솔직하고 좋은 아이인데스."
친실장은 가족이었다. 시체를 뒤로 하고 집에 돌아간다.

길에서 친실장의 따뜻한 체온으로 감싸인 자실장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낸다.

꿈꾸는 것은 계속해서 그림 그리기.
가족과 주인님과 친구들 모두 행복하게 웃고, 먹어도 먹어도 끝이없는 잔치, 넓고 큰 집, 푹신하고 깨끗한 침대, 화려한 드레스, 수많은 놀이기구, 알록달록한 크레용.

"테치테치. 더이상 필요없는테치."
작은 실장석의 잠꼬대에 친실장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기우뚱한다.

돌아오는 길에 좁은 골목 건너편에서 과속으로 트럭이 달려온다.
친실장은 황급히 전신주 그늘로 숨는다. 작게 뭔가를 중얼중얼거리며, 원래 있던 공원으로 빠른 걸음으로 돌아간다.

운전자는 욕을 하며 실장석을 치어버리려 했는데, 잘도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차를 돌릴 정도의 틈은 없다.
전면 유리를 통해 보이는 노면에 녹색 얼룩같은 것이 보이는 광경은 처참하지만, 좁은 길에서 비켜갈 수는 없다.

타이어는 두 마리의 자매를 그림에서 지워버렸다.

남아있는 것은 큰 태양과 실장석뿐.
한 마리 까마귀가 내려와 부리로 태양을 찌른다.
이윽고 태양도 작아지고, 친실장만이 남았다.
그런 친실장의 그림도 비바람에 노출되어 사라져가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올해도 겨울이 온다.


-끝

댓글 1개:

  1. 너는 오네챠와 달리 솔직하고 착한, 에서 솔직하다보단 말 잘 듣는, 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알맞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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