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출장

나는 사육실장을 기르고 있다. 이름은 알리사.
알리사는 몹시 똑똑해서 혼자서도 집을 봐준다.
독신으로 실장석을 기르고 있는 나로선, 이런 손이 덜 가는 아이가 좋다.
그런데 나는 업무 관계상, 반드시 1주일동안의 장기 출장을 가야하게 되었다.

"괜찮은데스우. 마마는 일 열심하 하시는데스우♪"



기특하게도, 이런 말을 해주는 착하고 귀여운 딸.
나는 지인이나 애완동물 호텔 등에 맡기는 방법도 생각을 해봤지만, 이 아이의 총명함을 믿고 약간 도박같긴 하지만 알리사 혼자 집을 보게 부탁하기로 했다.

출장 전날.
먹이로 쓸 실장푸드와 음료수. 그리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연락용으로, 꽤나 돈 좀 들인 최신형 실장폰을 알리사에게 건냈다.

"벨이 울려도 나갈 필요는 없어. 문단속은 철저히 해야 해."
"알은데스우."
"무슨 일이 있거든 실장 폰을 써라."
"실장폰인 데스~♪ 이거, 갖고 싶었던데스우~♪"

실장폰을 양손에 들고 깡총거리는 알리사. 기뻐하는 알리사를 보고 있으니, 지금까지 품었던 불안감도 조금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집을 나가자 바로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알리사다.

"아. 바로 쓸 줄 알게 됐구나. 여보세요."
"뎃!! 마마 목소리데스~♪ 꼭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스~♪"
"하하하. 사용법은 확실하네."

우리는 전화기 너머로 웃으며, 긴 일주일 후의 재회를 확인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출장 첫날---

"책임자는 어디에 있어!! 너 같은 말단이랑은 말이 안돼!!"

첫날부터 고객을 화나게 해버렸다. 출장 첫날에 이래서야, 앞날이 뻔하다.
마음속으로만 욕하면서, 나는 죽어라 사과하고, 후배가 만든 실수 투성이 기획서를 살폈다.
그때, 내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린다. 이런. 매너모드로 하는 걸 까먹고 있었다.

"자네. 회의 도중에는 전원을 꺼두게."
"죄, 죄송합니다."

휴대전화 발신자를 보았다. 알리사다.
나는 마음속으로 알리사에게 사과하면서, 휴대전화를 매너모드로 설정하고 전화 거부 버튼을 눌렀다.

"그러니까... 자네. 이 기획서 금액말인데~"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르...)
내 주머니 안에서는, 진동모드로 설정된 휴대폰이 계속 진동했다.

'미안... 알리사...'

회의가 끝날 때까지 한시간이 흐르는 동안, 알리사에게서 온 착신 이력은 30번이 넘었다. 우울한 회의가 끝나고, 나는 복도에서 서둘러 알리사에게 전화했다.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찰칵)
"어, 알리사냐. 미안해, 방금은 회의 때문에..."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전화가 연결되자 처음으로 들린 것은, 알리사가 목놓아 우는 소리였다.

"뎃엣!! 데엣!! 마마! 실장폰!! 안 받는데스으!! 데에에에엥!!"
"미, 미안해, 알리사. 중요한 회의였거든."

나는 어찌어찌 전화 너머로 알리사를 달래면서 힘겹게 조금 전의 오해를 풀었다.

"알았다. 다음엔 제대로 받을게. 괜찮아. 어. 집 잘 보고 있어."
"데엑... 데엑... 알겠는데스..."

알리사를 달래는데 성공하고, 원래 용건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알리사. 무슨 일 있었냐."
"데... 생각난데스. 들어줬으면 하는데스~♪"

알리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한 옥타브 높아진다.

"굉장한 똥이 나온 데스♪ 사진문자 보낼테니까 나중에 봤으면 좋겠는데스♪"

알리사가 그러면서 전화를 끊고, 사진을 보냈다.

"..."

휴대폰 화면에 비친 알리사의 똥은, 멋진 똥덩어리였다.


출장 2일째---
이 날도 회의 투성이였다.
무조건적으로 혼나는 건 당연하고, 재떨이가 날아오는 등 수라장을 겪었다. 이것도 후배가 만든 어설픈 견적을 쓴 기획서 때문이다. 숫자 체크를 하지 않은 내 책임이기도 하지만, 본사의 검증을 거친 견적서이기도 할 텐데, 현장에서 질책당하는 내 처지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와중에 또 휴대전화가 울린다. 발신자는 또 알리사였다. 어제처럼 또 무시하면, 알리사가 또 울음을 터뜨릴 것이 분명하다.
나는 본사에서 전화가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마마!! 마마!!"
"알리사냐! 무슨 일이야?" (작은 목소리로)
"바퀴벌레!! 바퀴벌레데스!! 검은 악마가 나온데스!!"
"..."

나는 가벼운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마! 마마! 어떻게 하면 되는데스!?"

나는 대충 신문지로 후려치라고 조언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자네. 이 기획서 말인데..."

하루종일 회의 때문에 악전고투하면서, 고립무원으로 싸우는 나.
그런 회의 요소 요소마다 걸려오는 알리사의 전화.

실장푸드가 맛있었다느니.
재밌는 TV 방송이 있었다느니.
마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느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유로 전화를 건다. 온화한 나지만, 참을성이 바닥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신경질내고 있을 때, 또다시 알리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알리사. 너. 적당히 좀 해라."
"마마! 마마! 큰일데스으!!"
"네가 큰일난 건 알았다. 나도 일하느라 바빠. 좀 스스로 해결..."
"임신해버린데스!! 임신해버린데스!!"

전화기 건너편의 알리사는 잔뜩 흥분한 채 소리치고 있었다.

"태어나버리는데스~!! 뎃데로게~~!! 뎃데로게~~!!"
"야. 알리... 너! 잠깐! 진정..."
(뚜- 뚜- 뚜- 뚜-)

비정하게도 통화가 끊어진다. 나는 황급히 알리사에게 거듭 전화를 걸었지만,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장폰의 배터리가 나가 그렇게 됐고, 알리사는 충전할 줄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안절부절하면서도, 장기 출장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미친듯이 눈 앞의 일을 정리했다. 하지만, 비정한 프로젝트는 내 장기 출장 일정을 2주로 연장시키게 되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걸리지 않는 실장폰으로 연락을 넣었을까.
실장석은 임신하고 약 2주만에 출산하게 된다.

나는 지금, 귀가길에 올라, 우리 집 현관 앞에 서 있다.
이 문 너머에서, 알리사가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나는, 이 문을 열 용기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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