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의 실장석 -전편-

겨울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가을이라 하기에는 추운 날이 많아진 11월 초순의 어느날 밤.
인기척 없는 심야의 길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작은 생물이 있었다.

‘서두르는 테치. 꾸물거리다가는 닝겐이 따라잡는 테치’
‘오네챠! 기다려주는 테치!’
‘테에에...마마가 죽은 테치....’
‘레히이...눈이....어지러운...레훼에엥’
‘구더기짱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는 레치. 오네챠한테 딱 붙어있는 레치’

테치테치레치레치레후레후 떠드는 실장석. 자실장과 엄지실장 구더기실장들이었다.
보호자여야 할 성체의 모습은 없고 유체들만이 꼬물거리며 바삐 가고 있었다.

친의 보호가 있어도 자연생태계 최하층을 벗어날 수 없는 여린 그녀들이 위험한 밤. 그것도
보금자리도 아닌 밤길을 서두르고 있을까?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이 새끼들은 눈앞까지 성큼 다가온 겨울을 지내기 위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친실장을
성실히 도와 식량과 물자를 모으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녀석들이다. 매일 도토리를 줍고 벌레와
지렁이를 잡아, 건조식으로 만들거나, 버려진 신문지와 비닐, 패트병을 모아왔다.

매일 식사는 잡초를 갈아 으깬 페이스트로 연명하였다. 아직 일을 할 수 없는 엄지실장과 구더기
실장들을 비밀토굴에 숨기고 매일같이 숨죽이는 일상을 보내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월동에 필요한 식량과 물자가 충분히 모였다고 판단한 친실장이 “지금까지
애써서 일하느라 수고한 데스~오늘 저녁은 푸짐하게 대접하는 뎃승♪“라고 칭찬했다.
한껏 행복에 들뜬 일가는 노을이 붉게 물든 태양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학대파 인간이 그녀들의 보금자리를 습격한 것도 바로 그 때였다.

그녀들의 거처는 가족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녀들의 거처는 가족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가녀린 성대가 찢어지도록 비명을 지르는 구더기짱
그런 무력한 동생을 지키려던 언니들의 애원. 단말마. 그리고 인간의 웃음소리.

인간은 울며불며 간청하는 친실장 앞에서, 보란 듯이 새끼들을 천천히 죽였다. 그리고 집과 식량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옷과 머리를 포기할 것인가를 강요하였다. 그리고 결국 모두 불 태웠다.

힘들지만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던 실장석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한순간에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가운데 이 자들은 친실장의 재치와 실장생의 모든 운을 다 쓴 듯 한 행운으로 도주에 성공한
것이다.

‘오마에들은 엄지짱과 구더기짱을 데리고 달아나는 데스! 닝겐이 사라질 때까지 숨어 있는 데스!!‘

그렇게 외친 친실장은, 인간의 눈을 속여 자들을 피난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자신은 모든 자들과
집을 빼앗기고 오열하는 친실장의 연기를 하였다. 자실장들은 그 사이, 비밀 토굴로 달려가 엄지실장과
구더기들과 합류하고, 현장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였다.

덕분에 친실장은 탈출한 자들이 숨어있는 수풀 바로 앞에서 참살당해야 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것은...

‘여기서 조금 쉬는 테치’

가을에 태어난 들실장치고는 지혜롭고 착실한 장녀 자실장.

‘치이잇! 와타시들이 이런 꼴을 당한 건 닝겐 때문인 테치!’

약간 바보에 다혈질인 차녀 자실장.

‘테에에...피곤한 테치. 엄자짱 구더기짱 괜찮은 테치?’

머리는 그저 그렇지만 솔직하고 상냥한 삼녀 자실장.

‘레츄우...레츄우...더는 무리인 레치...’
‘레에...마마...’

숨이 끊어지도록 지친 엄지실장 두 마리.

‘레후~오늘 프니프니는 자극적이었던 레후~’
‘레훼에에...자극이 너무 강해서 구더기짱은 약간 맘에 안 들었던 레후...’
‘레후? 저기 반짝거리는 것은 뭐인 레후?’

자매들이 안고 달아난 구더기 실장 세 마리 등 총 여덟 마리. 그것이 일가의 생존자들이었다.

‘테칫? 다른 엄지짱들은 어떻게 된 테치? 분명 구더기짱들을 챙기겠다고 한 엄지짱들 말인 테치’
‘모르는 레츄우....하지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따라오는 레치’

여덟마리 외에도 엄지실장과 구더기실장이 더 있었지만 낙오한 모양이다. 자실장들이 미처 안지
못했던 구더기 실장을 안고 같이 길을 나선 엄지들은 구더기들의 무게에 지쳐 그만 낙오한 모양이다.

장녀는 자매들의 숨소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 냉정히 입을 열었다.

‘가는 테치’
‘오네챠...아직 엄지짱하고 구더기짱들이...’
‘삼녀짱, 그 녀석들은 포기해야 하는 테치’

장녀는 항의하는 삼녀의 말을 차갑게 막는다.

‘기다리는 동안에 그 학대파 닝겐이 쫒아오면 어쩔 생각인 테치? 이번엔 와타시들은 전멸인 테치’
'테에에……'
'레츄우우……'
'이모우토챠들은 희생된 테치. 집에서 데리고 오지 못한 다른 구더기짱과 마마처럼 희생된 테치‘

가로등도 드물어 어두컴컴한 밤길. 그것도 초행길을 지친 엄지실장과 구더기가 무사히 헤쳐 나올
가능성은 낮다. 자매들이 간 방향으로 제대로 따라간다 해도, 도랑에 떨어지거나 고양이 같은
포식자에서 습격당해 이미 죽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여기서 기다려 봐도 소용없다고 판단한 장녀의 판단은 합리적인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는 테치? 집으로 돌아가는 테치?’
‘차녀짱...이제 다신 집으로 못 돌아가는 테치. 닝겐이 떠난다 해도 마마가 없는 와타시들은
그곳에서 살 수 없는 테치...‘

장녀의 추측은 정확하다. 공원에서 고아들끼리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다른 실장석들의
식량으로 잡아먹히거나 독라가 되어 죽을 때까지 노예로 부려질 것이다.

특히 학대파의 습격으로 인해 공원에 서식하는 다른 실장석들의 월동 보금자리와 식량들도 모조리
불태워졌다. 살아남은 들실장들은 서로 돕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자신들만의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그런 혼란 와중에 보호자가 없는 고아실장들이 돌아온다? 몇 시간도 못 가 식량이 될 것이 뻔하다.

‘와타시들이 살아남으려면 와타시들끼리만 지내야하는 테츄. 지금부터 집을 찾고 밥을 모으는 테치’
‘그건 무리인 테치! 마마가 항상 말한 무시무시한 겨울에 오는 테치!’
‘와타시들도 역시 죽어버리는 테치...그래도 마마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는 테치...’
‘레후? 마마를 만날 수 있는 레후?’
‘마마와 만나는 레후~’

자신들을 지켜주던 친실장은 없다. 추위를 막아주는 집도 없다. 열심히 비축한 식량도 없다.
있는 것은 여기에 있는 8마리의 자매와 절망 뿐.

‘포기하면 안 돼는 테치! 와타시들을 위해 죽은 마마를 위해서로도 와타시들은 살아가는 테치!’
‘....그런 테치! 여기서 포기하면 마마의 죽음은 헛된 테치!’
‘이번엔 와타시들도 식량 모으기를 거드는 렛츄!’
‘그런 레츄! 와타시들도 거드는 레치!’
‘마마는 언제 만나는 레후?’
‘하암...이제 졸리는 레후...’
‘무냐무냐...레후...’

다치고 지친 8마리의 자들은 용기를 회복하고 장녀를 중심으로 뭉쳐 다시 밤길을 걸어 나간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친실장의 애정에 보답하기 위해.

……뭐 그런 친실장의 사랑은 자들만의 착각이지만.

추자를 낳는 실장석들은 크게 두 타입이다.
정말로 키우는 타입과 노동력 및 식량으로 데리고 있는 타입이다.
첫 번째 타입은 가을 동안 열심히 자신과 자들이 먹을 식량을 모으고, 같이 월동을 하는 타입.
나머지 타입은 추자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겨울이 오면 식량으로 삼는 타입.

식량이 부족한 겨울을 나는데 있어, 자들은 짐이다. 먹는 양이 적다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해
소비량 또한 급증한다. 본래 실장석이 모을 수 있는 식량에도 한계가 있다. 식량배분을 약간
이라도 잘못했다간 가족 전체가 아사한다.

하지만 후자의 타입은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들을 먹어버리는 것이다. 봄까지 살아남기만 하면
자들 따윈 얼마든지 또 낳을 수 있다.

이 8마리의 새끼들의 부모도 실은 후자의 타입이다. 장녀에서 삼녀까지는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엄지실장과 구더기실장은 비상식량으로 키운다. 애초 주는 먹이도 먹이로 보존 할 수 없는 잡초를
씹어 뱉은 반죽만 주면 끝이다. 여러모로 남는 장사.

친실장이 오늘 돌아오며 말한 ‘애써서 일하느라 수고했다. 저녁은 푸짐하게 대접한다’의 진의도
자들이 받아들인 것과 매우 달랐다. ‘애써서 일한 것’은 자신이고, ‘푸짐하게 대접’한다는 것도
자실장들을 잡아먹어 자신을 ‘푸짐하게 대접’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그날 저녁, 장녀부터 삼녀는 잡아먹은 후 엄지와 구더기는 겨우내 자신의 똥으로 사육하여
비상식량으로 할 예정이었다. 그 동안 자들이 도망치거나 반항하지 않도록 애정어린 어미를 연기한다.
그것이 친실장의 월동계획이었다.

학대파의 인간들은 그 실장석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었고, 일부러 월동준비가 끝날 무렵을 노려 습격한
것이다. 친실장의 눈앞에서 소중한 집과 음식을 빼앗고 불태우고...무엇보다 오늘 저녁의 특식으로
기대하던 자실장들을 짓밟아버려 절망하는 친실장을 보기 위해 습격한 것이다.

물론 친실장이 8마리의 새끼들을 탈출 시킨 것도, 자신의 특식을 인간 따위가 빼앗아 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함.

이전에도 몇 번의 경험이 있는 친실장은, 인간의 목적은 월동준비를 망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본보기로 몇 마리의 새끼들만 죽일 뿐, 성체들의 목숨을 빼앗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추가적인 비상식량은 골판지 하우스 아래 토굴에 보관하고 있어서 식량은 문제가 없다. 집이
없어지는 것은 맘에 들지 않지만, 이번 파동으로 죽은 동족들의 잔해를 주워 모으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애초 자들에게 도망치라 한 것도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비밀 토굴에서 숨어있으라고 한 뜻이었다.
인간이 지나가면 무사한 자실장들을 꺼내 잡아먹으며 천천히 움직일 계획. 애초 애정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즉, 이 자들은 학대파 인간 덕분에 목숨을 연명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늘어난 생명도, 이대로
가다간 하루도 못 갈 지경이지만...

‘테치이....그럼 집부터 찾는 테치?’
‘분수가 있는 멋진 공원이 있다고 들은 레츄!’
‘애호파라고 하는 멋진 닝겐이 먹이를 잔뜩잔뜩 주는 공원이라고 들은 테치!’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도 잔뜩 있다고 들은 레츄!’
‘어디든 좋은 테치. 음식과 숨을 곳만 있다면 어디든 좋은 테치’

그렇게 말하는 장녀. 실제 그녀들의 위치는 원래 살던 집에서 200m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고작해야 10cm 전후인 자실장으로선 멀리 떠나온 고향이다. 돌아가느니 차라리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장녀.

‘테치...한참을 걸어도 딱딱한 벽만 보이고 눈앞은 캄캄한 테츄....닝겐들의 집이 가득한
곳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더 낫지 않는 테츄?‘
‘안돼는 테치. 돌아갈 여유는 없는 테치. 그런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직진하는 테치’

달빛에 의존해, 장녀를 선두로 나아가는 새끼들이지만, 그녀들이 정착할 만한 공원과 비슷한 환경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이 변두리는 싼 지가로 인해 만들어진 신흥 주택가.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주택가엔 기초 기반시설도 모자라는데 공원 같은 것이 더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도시의 실장석들은 초원과 숲에 사는 개체수를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인간의 조금 뒤는 실장석
으로서는 대모험 끝의 신천지. 약간의 조건만 갖추어져도 만족하는 실장석들은 공간을 가리지 않고
비집고 들어가 순식간에 번식한다.

장녀들이 걷고 있는 곳은 포장도 다 안 끝난 인도. 입주도 기준치에서 한참 미달되어 사람은커녕
고양이도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 그나마 그녀들에게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녹초가 되며 간신히 콘크리트의 끝없는 벽이 이어지는 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한 채의 인가였다.

'이 문은 공원인 테츄?'
‘잘 보는 테치. 이건 닝겐의 집인 테치’
‘테에에엣! 닝겐! 닝겐은 무서운 테치이잇!!’
‘안 돼는 테치! 인간들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실장석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테치! 마마의 수업을
잊은 테치??‘

자매들은 아우성친다. 아무리 애정이 없지만, 중요한 노동원인 자실장들을 잃어버리거나, 괜히
인간을 화나게 하면 자신까지 그 화가 미칠 수 있어, 친실장은 늘 인간을 경계하는 교육을 하였다.

애초 인구가 드믄 이런 벽지에 사는 사람들은 별로 실장석에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내려온 학대파들은 조심해야 했다.

'테에에…… 그래도 불쌍한 와타치들을 보면 꼭 도움을 줄 것인 테치'
' 그런 레치. 오네챠, 닝겐상에게 사정을 말하면 반드시 알아주는 레츄'
'레츄ー웅 어쩌면 와타시들은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 레츄~♪’

음...물론 교육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샤아아앗! 닝겐은 와타시같은 벌레들의 얘기는 듣지 않는 테치! 잠자코 계속 가는 테치!’

행복회로를 발동하기 시작한 동생들을 다그친 장녀의 머리위에 차가운 뭔가가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들을 비추고 있던 달빛은 어느새 구름에 덮여 사라졌고, 또옥또옥
하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테에! 비가 오는 테치이!'
'레챠아아, 차가운 레츄우우!'

갑작스런 비에 떠들어대는 자매들. 하지만 무정한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침착하는 테치! 모두 그늘로 피하는 테치!’
‘장녀짱. 닝겐상의 집에서 비를 피하는 테치’
‘테에엣? 삼녀짱! 무슨 말인 테치!’

평소와 다르게 분명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삼녀에 놀라 장녀는 뒤돌아본다. 그리고 쌔근쌔근
잠든 세 마리의 구더기 실장을 끌어안고 있는 삼녀의 시선과 부딪친다.

‘근처에 피할 곳은 닝겐상의 집 외는 없는 테치. 이대로 비가 계속 내리면 구더기짱과 엄지짱은
모두 전멸인 테치!‘
'테에에……’

삼녀말이 옳다. 자실장인 자신들도 몸이 작아 쉽게 저체온증에 걸린다. 거기에 5cm 안팎인
엄지실장과 구더기실장은 말 할 것도 없다.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데, 여기서
빗줄기가 더 굵어지면 죽음은 정해진 운명이다. 과연 자실장 3마리가 엄지짱과 구더기짱을 안고
빗줄기를 헤치며, 눈 앞의 인간의 집 이외 피난처를 찾을 수 있을까?

장녀는 친실장의 말을 떠올린다.

『 엄지짱과 구더기짱은(나의 식량이 되기 전까지는)매우 소중한 가족 데스 』
『 너는 언니인 데스, 여동생들을(나에게 먹히기 전까지) 훌륭하게 지키는 데스 』

'마마....마마의 말이 맞는 테치...모두 닝겐상의 집으로 들어가는 테치! 다른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테치!‘
‘’‘ 텟츄~!’‘’

장녀의 결단으로 그녀들은 인간의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문턱은 완만한 비탈구조인 데다
문도 살짝 열려 있어 엄지실장들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문턱을 지나 그녀들은 마당에 들어선다.

'레츗! 추운 레치~!‘
‘서두르는 테치!’

삼녀는 넘어진 엄지실장을 들어 올려 두 마리 모두 겨드랑이에 안았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레뺘아아아앗!’
‘구더기짱 포대기 질척질척인 레후....하지만 구더기짱은 운치하지 않은 레후’
‘집이 세 개나 있는 테치! 어디로 가는 테치? 서두르지 않으면 구더기짱들이 위험한 테치!’

마당은 문에서 보는 것보다 넓었고, 건물도 1개가 아닌 3개였다.
하나는 문 밖에서도 보였던 큰 집.
둘째는 골판지 하우스처럼 네모나고 첫 째 집보다 작은 집
마지막은 자실장들은 살던 골판지 하우스보다 집
두 번째 집은 문에서 멀리 있고, 첫 번째와 세 번째 집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가장 큰 집으로 가는 테치!‘

심해지는 빗줄기 속에서 급히 가장 큰 집으로 달려가는 자매들. 불빛 하나 없는 현관문을 테시테시
두드리며 외친다.

‘닝겐상! 도와주시는 테치! 적어도 아침까지만 피하게 해주는 테치이~!!’
'닝게엔!! 빨리 나오는 테치이잇! 엄지짱과 구더기짱이 죽는 테치!‘
‘삼녀도 어서 두들기는 테치!’
‘테에에...와타시 손은 구더기짱으로 꽉 찬 테치~’

그러나 그녀들이 아무리 외치고 문을 두드려도 인간은 나타나지 않았다. 애초 사람이 있다 해도
가녀린 자실장들의 노크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제대로 전달 될 리도 없다.

'레에에에, 추운 레후...‘
‘구더기 죽는 레후...그리고 아까부터 구더기짱은 프니프니가 필요한데 아무도 안 해주는 레후...’
‘배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레후...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 레후우우...’
‘테에에에엣?? 구더기짱들 떨림이 안 멈추는 테치!’

태풍이라도 상륙한 모양인지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바람까지 가세한다. 빗줄기는 현관에
몰려있는 자매들에게 가차 없이 물줄기를 쏟아 붓고, 차가운 바람은 사정없이 체온을 앗아간다.
엄지들은 무기력하게 뭉쳐 ‘치이....’하고 중얼거릴 뿐이고, 구더기들의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린다.

좁은 현관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약한 구더기들은 금세 저체온증과 경련으로 죽을 것이고
엄지들도 천천히 서로 껴안은 자세로 굳어갈 것이다. 지금 인간이 도와주지 않으면 모두
여기서 죽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테치! 제일 작은 집으로 가는 테치!’
'모두 힘내는 테치! 조금만 버티면 되는 테치!‘
‘치베베베베...여기만 비가 심한 레치...’
‘레보보보보...치이..치이...죽을 뻔한 레치’

자실장들은 홈통의 배출구의 옆을 지날 때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고, 거기에 구더기가 휩쓸려
익사할 뻔 한 위기를 겪으며 간신히 3m를 이동하여 가장 작은 세 번째 집에 다다른다.

‘문이 열려있는 테치! 닝겐상! 실례하는 테치!’
‘얼른 들어가는 테치!’

다행히 문을 합성고무를 천조각처럼 조각내 발처럼 드리운 것이이서, 작은 자실장의 힘으로도
열리는 간단하고 가벼운 것이었다. 덕분에 새끼 실장들은 서둘러 안으로 뛰어들었다.

'테휴우, 안심 테치~‘
'닝겐상은 어디에 있는 레츄?'
'아무도 없는 레치'

플라스틱으로 만든 집 안은 텅 비고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은커녕, 몸을 닦는 신문지 한장 없다.

'그런 것 보다 추운 레후~'
'구더기에 한 바퀴 도니깐 춥운게 사라진 레후. 마마가 보이는 렛후~웅 ♪'
'젖은 옷을 벗는 테칫! 벗고 나서 모이는 테치! 모여서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는 텟츄우!'

가을비에 온 몸이 흠뻑 젖은 8마리 자매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따뜻하게 몸을 덥힌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거나 서로를 격려하거나 그리고 내일 일을 논의하며 아침을 기다렸다.

'닝겐이 큰 집에서 나온다면 어쩌는 테치?'
'……닝겐에게 들키기 전에 달아나는 테치'
'레에? 사육실장이 되는 게 아닌 레치?'
'이 집의 닝겐이 학대파 일수도 있는 테치'
'애호파라면 어쩌는 레치?'
'애호파라면...사정을 말해서 도움을 받는 테치‘

장녀는, 본 적도 없는 애호파를 과대평가했다. 그저 학대파의 반대로, 모든 실장석에게 무조건적으로
상냥하고 헌신적인 존재라 생각하고 있다. 비교적 현명한 장녀도 결국엔 들실장 태생의 한계는 넘지
못하는 모양일까.

애호파라 할지라도 자신의 정원에 멋대로 들어와 도움을 요구하는 들실장을 미소로 맞아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은 굉장히 극소수라는 것을 그녀들은 모른다.

자매들은 좁은 집을 한 번 더 둘러보고, 확실하게 비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주린 배를 물로 달래고
실장석 자매들은 곯아떨어진다. 일단 안전하단 것에 긴장이 풀리고, 그간의 피로가 몰려온 것이다.
다행히 비는 소나기였고, 다시 기온이 올라가 자실장들이 동사하는 일은 없었다.

8마리의 실장석 자매들은 학대파의 습격으로부터 탈출하고, 무사히 이동하여 안전한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침.

'……레에……?'

세 마리의 구더기 실장 중 한 마리가 눈을 떳다. 삼녀의 품에서 기어 나온 구더기 실장은 따듯한
기온에 몸을 떨며 만족해한다.

‘레후~닝겐상은 아직도 안 나온 레후? 오네챠들은 전부 자고 있는 레후...구더기짱 배도 고프고
프니프니도 고픈 레후...‘

구더기 실장의 몸 구조상 스스로 프니프니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자고 있는 언니들 옆에서 스스로
이리저리 뒹굴어 배를 자극하는 ‘셀프 프니프니’를 한다. 좁은 플라스틱 집 안을 이리저리 구른다.

'레후웃! 멋진 레후~'

그리고 집의 입구 근처에 굴렀을 때, 문 틈새로 아침햇살을 반사하는 물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골판지 하우스를 떠나 본 적이 없었던 구더기에게 그 물방울은 보석처럼 보였다.

'레훗, 레훗'

자벌레처럼 몸을 비비꼬며 입구의 틈을 기어서 통과한다. 골판지 하우스에 있을 때는 함부로 밖에
나오지 못 하도록 항상 입구를 작은 종이 상자로 막아두지만, 지금 구더기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짝반짝한 레후~♪'

입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방울에 정신을 빼앗기는 구더기 실장. 참으로 감동적인 아름다움.

'렛!?'

구더기는 그 반짝반짝 빛나는 물방울이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그것을 향해 집에서 뛰쳐나온다.
당장 달려가 저것을 손에 넣고 싶다. 이리저리 굴리며 갖고 놀고 싶다.

'렛후~레...게보보복!?'

구더기는 입구에서 불과 2cm 정도를 점프하여, 무사히 착지……하지 못했다. 찰싹하고 물이 튀기는
소리가 났다. 물에 빠진 구더기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벗어나려했지만 몇 번인가 참방거리는 소리만
내곤 잠시 후...조용해졌다.

장녀들이 깨어난 것은 해가 뜨고 잠시 후였다.

'테치~좋은 아침인 테치'
'모두 살아 있는 테치?'
'물론인 테치! 여덟마리 전부....테에?! 구더기 짱이 한 마리 없는 테챠앗!?'
'레후? 구더기짱은 여기 있는 레후~‘
‘구더기와 다른 구더기인 레후. 그리고 구더기하고 또 구더기도 있는 레후’
'우지챠아아아아! 어디에 있는 레츄우우우~!'
'엄지챠 뛰면 다메테치! 구더기짱이 발 밑에 있으면 밟을 수도 있는 테치!‘

황급히 사라진 구더기를 찾는 자매들. 그러나 자실장들이 피신한 집은 공원에서 지내던 골판지
하우스보다 작고, 아무것도 없는 집이다. 실장석이라 해도 구더기실장이 집 안에 없는 것 정돈
금세 알아챈다.

'설마 밖으로 나간 테치!?'
'빨리 찾는 테치!'
'괜찮은 테치. 괜찮은 테치. 구더기짱은 단지 와타시들보다 조금 먼저 닝겐상에게 보살펴지고 있을
것인 테치.‘

싫은 예감이 들며, 장녀는 문을 열고 밖을 살핀다. 그리고 구더기 실장을 발견한다.
축 쳐진 채 웅덩이에 거꾸로 쳐 박혀있는 구더기짱을.

‘’‘우지챠아아아앙!’‘’

자매들의 비통한 외침이 싱그러운 아침에 울린다.
간밤에 내린 비로, 집 바로 앞에 생긴, 깊이 1cm도 안 되는 얕은 웅덩이. 엄지 실장조차 혼자
건널 수 있는 그 곳에서 구더기 실장은 익사했다.

밖을 확인하지 않고 뛰어나간 구더기실장은 물웅덩이에 잠겼다. 몸에 비하여 머리가 큰 구더기실장은
어딘가 빠지기 쉽다. 깊이 1cm정도의 웅덩이라도 구더기는 완전히 잠길 수 있다.

그래도 차분히 대처했다면, 질식하기 전에 몸을 들어 머리를 수면 위에 내놓고 호흡을 확보하고
도움을 요청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물에 빠진 구더기는 순간 패닉상태에 빠져, 죽을 때까지
소중한 산소와 에너지를 헛되어 버둥거리는 일로 낭비해버렸다.

'구더기짱이...마마가 소중히 하라했던 구더기짱이 죽은 테치이이~!‘
‘테히이...죄송한 테치 마마! 구더기짱 지키지 못한 테치이~~!’
‘오마에가 꼭 끌어안고 안 자서 그런 테치! 오마에 때문에 구더기짱이 죽어버린 테챠아아!!’
‘치벳! 테에...테에에엥....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레에에...삼녀 오네챠 울면 슬픈 레츄우...’
‘레훼에엥....구더기짱하고 친한 구더기짱이 죽은 레후? 언니 구더기 말고 동생 구더기가 죽은 레후?’
‘어느쪽이든 슬픈 레후. 레훼에에에엥!’

슬픔에 눈물짓는 자매들. 차녀는 울고 불며 삼녀를 때리고 삼녀는 웅덩이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만
터트린다. 엄지실장과 남은 두 마리의 구더기 실장도 삼녀 주변으로 몰려와 서럽게 운다. 항상
굳건했던 장녀마저도 서럽게 흐느낀다.

『 구더기에는 아주 중요한 (식량인) 데스 』

항상 그렇게 말 하던 친실장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다. 장녀는 구더기 실장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도 그친다. 구더기 실장이 무심코 집에서 튀어나온 이유...물방울보다
훨씬 감동적인 물건을 발견했다.

‘장녀 오네챠! 차녀 오네챠! 저길 보는 테치!’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삼녀.
집 근처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 것. 어제는 어둡고 정신이 없어 미처 발견하지 못 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모든 들실장들의 환상이자 꿈인 사육실장의 징표...

'목걸이인 테치!'
'정말인 테치! 목걸이가 있는 테치!!'

거기에는 붉은 가죽 목걸이가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장녀들은 그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목걸이가 있다 → 이 집의 닝겐상은 실장석을 키운다 → 즉 여기의 닝겐상은 애호파
→ 애호파라면 자신들을 길러줄 것이다

'해낸 테치! 이 걸로 와타시들은 사육실장이 될 수 있는 테챠아아!!‘
‘만세 테치이! 이것으로 학대파 같은 건 한 방인 테치!’
‘레츄~우우웅~♪’
'텟츄~♪'

기쁨에 들뜬 자매들. 이 집의 인간은 애호파라고 확신한 장녀는 조그마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말한다.

‘이 집의 닝겐상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길러지는 테츄!’
‘’‘텟츄~우우!’‘’

한 마리의 구더기 실장의 죽음 이후, 희망을 찾았다. 한 마리가 줄어든 일곱 자매.
그녀들의 희망의 원천, 목걸이를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낡은 티가 있고, 무엇보다 ‘포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자매들은 깨닫지 못 했다.
이 집의 인간이 애호파라고 확신한 자매들은 한 바탕 환호하다, 문득 웅덩이에서 익사한 구더기의
일을 떠올린다.

'테에에, 구더기짱……'
'편히 잠들었으면 하는 레츄……’

웅덩이에서 건저낸 싸늘한 구더기 실장을 에워싸고 명복을 빌어 주는 자매들. 그대로 잠시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하는 레츄?'
'그대로 두는 레후?'

겨울에 쓸 비상식량이었던 추자들답게, 친실장으로부터 착실한 교육을 받지 않아, 죽은 동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전에는 마마가 먹는 것을 본 테치'

뭔가 기억을 짜낸 장녀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이전, 작은 사고가 나서 구더기 실장 중 한 마리가
죽어버렸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친실장은 구더기 실장을 덥석 집어먹으며 말했다.

『 이렇게 하면 이 자는 마마의 안에 돌아가는 데스. 그리고 봄에 다시 마마의 속에서 나오는 뎃승 』

어차피 비상식량 예정이었던 구더기다. 방금 죽어 싱싱할 때 먹는 것은 친실장에게 있어 당연한 것.
그러나 다른 자들이 괜히 동요되지 않도록 그럴싸한 말로 둘러댄 것이었다.

‘하지만 마마는 이제 없는 테츄’
‘그럼 와타시들이 먹는 테치’
'레에에? 구더기짱을 먹어 버리는 레츄!?'
'틀린 테치! 이건 구더기짱을 마마 대신 와타시들의 속으로 되돌리는 테치! 봄이 된다면
살아남은 와타시들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테치!‘

뭔가 구미가 당기는 지 유난히 큰 소리로 역설하는 차녀. 마마와 같은 억지를 늘어놨지만
순진한 삼녀는 물론 다른 장녀까지 거기에 휩쓸린다.

‘레츄! 와타시들이 살아남아 구더기짱의 몫까지 행복해지는 레치!’
구더기짱은 죽은 구더기짱과 하나 되고 프니프니인 레후~‘

단순한 엄지실장과 구더기실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군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자 자매들은 서로 도와 구더기실장의 시신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매였던 것을 생으로 뜯어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엄지와 구더기의 약한 치악력이 조금
문제가 되었다. 장녀는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구더기의 포대기를 일단 벗기고, 근처에 나 있는
잡초와 함께 자갈로 으깨 고기죽으로 만들었다. 자매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구더기 죽을 손으로
말아 경단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다.

'구더기짱~봄에 다시 만나는 테치……텟츄~웅 ♪'
'절대로 잊지 않는 테치 구더기짱! 모구모구……텟츄~웅 ♪'
'레츄~웅 ♪ 매우 우마우마 레치~♪'
'이런 맛있는 거 처음 먹은 레츄웅 ♪ 구더기짱 잘 가는 레치~'

'레~훙 ♪ 슬픔도 잊을 정도로 별미인 레후~‘
'레후레훙 ♪ 그런데 뭐가 슬픈 레후?‘
‘레후? 구더기짱 그런거 모르는 레후’

구더기짱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먹는 구더기 경단은 굉장히 맛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잡초
페이스트 밖에 먹지 않은 자매들에게 있어, 구더기 경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별미였다.

거기에 어제 저녁부터 빗물 외는 전혀 먹지 못했던 것도 한몫 하였다. 자실장들은 날름 먹어
치우고, ‘테후~’하고 만족스러운 숨을 토해낸다.

‘구더기짱의 장례식도 끝난 테치. 큰 집 앞에서 닝겐상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테츄웅~’

테츄테츄레후레후거리며 재잘거리는 자매들. 긴박했던 어제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낙천적인
분위기로 자매들은 현관 문 앞으로 향했다.

아침 밭일을 끝내고 귀가하던 야마기시 씨는 문득 테치테치거리는 울음소리를 듣고 멈춰 섰다.

'응, 저건 실장석 아닌가?'

보면, 야마다 씨의 집 마당에 실장석이 침투한 모양이다. 대문에서 내려다보면 손바닥에 올려
놔도 될 정도의 크기의 자실장들이 무슨 일인지 현관 문 앞 모여 가만히 붙어있다.

'드문 일도 다 있군'

이 동네는 인구 과소화가 진행되고 있는 터라, 실장석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학대하는
학대파는 없지만, 반대로 실장석에게 식량과 물자를 공급하는 애호파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민의 상당수는 실장석에 무관심으로, 별로 관계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반인들이다.

이 동네에서 실장석이 살아가기엔, 음식물 쓰레기나 골판지를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다. 밭에는
멧돼지를 막기 위해 설치해놓은 함정들이 실장석들의 접근 또한 막고 있으며, 유기견과 야생
고양이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여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실장석들은
완전히 산 속에 정착한 산실장을 제외하곤 거리에 사는 녀석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설마 산에서 내려 온 것 같진 않고....가만 어제 그 소동에서 달아난 녀석들인가?’

모리타 씨 댁에는 철부지 아들이 있는데, 간혹 소란스런 일을 벌이고 다닌다. 역시나 어제 그 일
때문에 도망친 녀석들이 맞는 모양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한숨이 나온다.

그 위 실장석 주요 서식 장소 공원도 없고 필요로 하는 음식물 쓰레기나 골판지를 손에 넣는 장소도
제대로 없다. 밭에는 멧돼지 가리개 함정이 실장석 가리개 덫도 겸하고 있고, 경비견, 애완 고양이
등을 많이 기르고 있어 놓고 돌아다닐 수 없다.

결국 이 지역의 실장석들은 들판이나 숲에서 살되, 간혹 인간의 쓰레기를 주워 쓰는 반-산실장처럼
살고 있는 개체가 대다수다.

그 모리타 철부지 아들이 난처한 일을 저질렀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 야마기시 씨는 야마다
씨에게 알리려 한다. 마당에 들실장들이 멋대로 들어와 있지 않은가??

'앗차...까먹었다‘

야마다 씨에게 알리기 위해 입을 반 쯤 연 때,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야마다 씨는 지난해
돌아가셨고, 저 집은 이후 빈집이 된 것을. 야마다 씨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 집은 먼 친척이
상속했다고 들었는데, 얼굴도 연락처도 모르는, 도시의 어느 청년이라고만 알고 있다.

‘이런 걸로 하나하나 뒤져 연락하는 것도 번거롭고, 그렇다고 안에 들어가서 멋대로 쫒아내다가
불법침입으로 오해받으면 그것대로 곤란해지겠지. 에라...내 알 바가 뭐람?‘

문 바로 밖에서 야마기시 씨가 지나갔는데도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자실장들은 닫혀 있는 현관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린다. 안에서 애호파 인간이 나와 자신들을 환영해주기를.

'테에에……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테츄'

당연하겠지만 그녀들이 몇 시간을 기다려도 인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닝겐상, 아직도 자는 레츄?'
'이제 점심인 테치! 정말 게으름뱅이가 틀림없는 테치!'

처음엔 기대에 부풀어 기다리고 있던 장녀들이었지만, 그것이 삼십분, 한 시간으로 갈수록
안달을 하기 시작한다. 삼녀는 구더기짱의 배를 쓰다듬어 주며 차분히 기다리지만 나머지
자매들은 발을 굴리며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낸다.

'테치~.....어쩌면 이런 것인 지도 모르는 테츄'
'뭐가 어떤 것인 테치 장녀짱!?'
‘이는 닝겐상이 [출장]을 나간 건지도 모른 테치'
‘’‘[출장]이 뭐인 테치(레치)?’‘’

장녀는 자실장이 겨울 간 골판지 하우스의 방수방습에 필수인 비닐봉지를 찾으러 나갈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와타시는 앞으로 공터의 반대쪽까지 출장을 가는 데스. 당분간 돌아오지 못 할 수도 있는 데스.
그 동안 집을 잘 지키고 있는 데스.‘

확실히 친실장은 다음 날에나 돌아온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럼 오늘은 닝겐상이 돌아오지 않는 테치?'
'레훗? 오네챠, 프니프니를 멈추지 마는 레후'
'더 프니프니를 해주지 않으면 이야 레피이잇!'
'테에에에! 그럼 와타치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테치?'
'일단 저쪽 집까지 가서 보는 테치. 이 집에 없는 것이 있을 수도 모르는 테츄’

그렇게 말하고 장녀가 가리킨 곳은 부지 구석에 보이는 네모난 큰 집. 인간이 봤다면 이런 것이다.
‘창고’라고.

‘와타시랑 차녀, 삼녀가 갔다 오는 테치. 엄지쨩과 구더기짱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테치.
어쩌면 그 사이에 닝겐상이 나올 지도 모른 테치‘
‘알겠는 레치~오네챠들은 걱정 마는 레치’
‘다녀오는 레후~’
‘점점 멀어져 가는 레츄...’

출발하는 일행. 현관에서 창고까지의 거리는 20m정도. 시골집들의 넓은 마당은 도시의 작은 공원과
맞먹는 크기와 생태계를 자랑한다. 10cm도 안 되는 자실장들에겐 상당한 거리다.

게다가 마당에는 초원처럼 불이 자라고 있다. 현관이나 개집 주변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어서
별로 문제가 없었으나, 창고로 가는 길은 빽빽한 풀을 헤치며 지나가야만 했다.

‘괜찮은 테치, 어제는 이것의 열배도 넘는 거리도 이겨낸 와타시들인 테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테치!'
'그런 테치! 천국에 있는 구더기짱도 와타시들을 응원하고 있는 테치. 힘내는 테치!‘

‘치잇!’라고 소리를 모아 외치고, 장녀를 선두로 한 일행은 풀 속을 힘차게 가로지르며 창고로
항한다.

'차녀짱, 삼녀짱. 벌레를 조심하는 테치‘
'테에? 사마귀는 이제 없는 테치'
'사마귀 이외에 뭔가 있을지도 모르는 테츄. 여기는 처음 가는 곳인 테츄, 닝겐상의 집 근처에도
위험한 건 있을 수 있는 ― ― 테챠아!?'

앞서가던 장녀는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른다. 동시에 뭔가 물소리도 들린다.

'장녀짱!?'
'괜찮은 테치. 연못이 있었을 뿐인 테치'

거기에는 연못이 있었다. 키가 큰 풀에 가려져 있어서 자실장들이 보지 못했지만, 이 정원에는
지름 2m정도의 작은 연못이 있다.

'여울은 얕아서 좋은 테치. 하지만 깊은 곳은 위험한 테치‘

실장석들은 수영을 절망적으로 못 한다. 애초 신체구조상 수영에 적합하지 않다. 무게중심이
머리에 쏠려 있어 선헤엄이 어렵고, 손발도 짧고 손가락도 없어 물살을 가를 수도 없다. 그래서
물에 빠진 실장석들은 거의 대부분 100%로 익사한다.

'물가가 가까운 것은 편리한 테치, 물을 여기서 기를 수 있는 테츄'
' 따뜻한 날은 빨래도 할 수 있는 테츄~♪'

분수와 음수대, 공중화장실은, 물이 부족한 공터에서 사는 실장석들의 입지조건에서 필수적으로
따지는 요소이다. 실장석에겐 물이 필수적으로 요한다. 약수터라고하면 길바닥에 고여 있는
더러운 웅덩이 밖에 모르는 차녀와 삼녀도 연못에 대한 경계심은커녕 커다란 수원지가 가까이에
있음이 기뻤다. 구더기를 데려올 땐 조심해야겠다고만 생각한 정도다.

장녀는 다소 경계했지만 이정도 여울에서는 별로 위험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엄지실장
에게도 별로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다.

'지금은 닝겐상을 찾는 것이 선결인 테치'

그렇게 말하고, 연못을 지나 길을 재촉한다. 높은 풀과 바위에 몇 번 씩 길을 헤맨 끝에 창고에
도착한 것은 한 시간 쯤 지난 무렵.

‘해낸 테치~♪ 마마가 보면 칭찬했을 것인 텟츄~♪’
‘빨간색에 예쁜 잎인 테치. 갖고 가는 테치!’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은 장애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실장들의 집중력의 부재였지만 여튼
도착하였다.

마침내 당도한 창고의 문을 콩콩 손으로 노크하곤, '닝겐상, 나오시는 테치!!'라고 호소해도 당연히
안에서 집주인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테에에……닝겐상 어디에 있는 테치. 역시 출장인 테치?'
'테샤아아아! 적당히 하는 테치!! 빨리 나와서 와타치들을 기르는 텟챠아아!‘

삼녀는 푹 쓰러져 무릎을 짚고 OTL, 차녀는 성미를 못 이기고 양손을 쳐들고 창고문을 연타하면서
고함을 지른다. 물론 자실장의 힘으로 두들기는 충격은 먼지도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이 창고는 잠겨있지도 않다.

'다메 테치, 잠겨있는 테치'

그러나 자실장들의 힘으로는 문을 열 수 없었다.

'…… 어쩔 수 없는 테치, 엄지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오늘 먹을 밥을 구하는 테치‘
'밥은 뭐인 테치?'
'닝겐상에게 밥을 받지 못한 이상, 와타시들이 모으는 수밖에 없는 테치이....‘

꿈에도 그리던 사육실장의 생활을 기대하던 세 자매는 어깨를 떨어뜨리고 여동생들에게 돌아간다.
그런 자실장들의 위로 한 마리의 까마귀가 지나간다.

이미 11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날씨는 화창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받은 현관은 따끈따끈하게 덥혀져, 마치 봄날의 나른함을 다시 연상케 할 정도.

'구더기짱 만족인 레후~'
'레~……레~……'

구더기 실장들은 기분 좋게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장녀들을 기다리는 동안, 엄지실장들에게
프니프니를 잔뜩 받아 만족스러웠다.

'구더기짱은 똥도 예쁘게 생긴 레치'
'이 정도로 예쁜 건 닝겐상도 칭찬해주실 것인 레치‘

구더기 실장의 포동포동한 배를 쓰다듬어 주면 기쁨으로 ‘레뺘레뺘’의 탄성을 지르며 총배설구에서
물똥을 흘린다. 그러면 엄지들은 옆에 있는 낙엽으로 구더기들의 총구 주변을 깔끔하게 닦아준다.
하지만 엄지들의 눈에나 예뻐 보이지, 인간의 관점에선 그저 기분 나쁘게 생긴 벌레가 액변을 길게
늘리는 것일 뿐.

지금 이 장면을 집주인이 본다면 자신의 현관을 더럽힌 것에 대해 호통을 쳐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이미 집의 주인은 불분명한지 1년 이상. 엄지와 구더기들이 현관을 아무리 더럽혀도 그녀들이 오늘
혼 날 일은 없다.

‘한숨 자고 나니 똥이 하고 싶어 진 레치’
‘화장실이 없는 레츄. 어떻게 하는 레치?’

친실장과 살 때는 하우스 안에 엄지와 구더기 전용 화장실이 있었고 그녀들은 거기에서 볼일을
봤다. 엄지와 구더기가 밖의 화장실에 가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이다.

'저기 숲에서 운치하고 오는 레치. 그 동안 구더기짱들을 부탁하는 레치'
'맡겨주는 레치’

엄지실장 중 한 마리는 현관 바로 옆 잡초로 우거진 수풀로 '렛치, 렛치'하고 뛰어간다. 이것도
집주인이 보고 있으면 격노할 만한 행동이다. 그러나 똥이 급한 엄지 실장에겐 생리현상일 뿐.

'레에!?'

엄지실장이 수풀 속에 막 들어선 그 때, 검은색 불길한 그림자가 현관을 덮친다.

'레챠아아아앗! 까마귀인 레치이이!'

까마귀는 성체실장과 먹이를 두고 다투는 강적. 자실장과 엄지에겐 하늘의 저승사자.
남겨져 있던 엄지실장은 순간적으로 구더기 실장을 데리고 그늘에 숨으려 했지만,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일년 이상 방치된 현관. 마당과 달리 몸을 감출만한 엄폐물은 없었다.

'레, 레, 레,……레츄~웅 ♪'

패닉이 된 엄지실장이 본능적으로 아첨을 하지만, 그 누가 녀석을 비웃을 수 있을까. 그래도
제대로 서있는 상태고, 구더기실장을 버리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엄지실장 주제 이정도면
훌륭한 배짱이다. 다만 그 배짱이 아무짝 쓸모도 없는 것에 불과하지만.

'레치이이이잇!!'

까마귀는 바닥에서 꼬물거리는 구더기 실장보다는 살이 통통히 오른 엄지실장을 부리로 잡는다.

'레히이이이잇!! 와타시의 자매를 놓는 레츄우우우우!!'

긴급 사태에 깨달은 다른 엄지실장이 황급히, 그리고 무모하게 까마귀의 꼬리를 향해 돌격하지만,
슬프도다. 어차피 엄지실장. 전속력으로 뛰어도 너무 늦었다.

'까악'

엄지실장을 낚아챈 까마귀는 짧게 한 번 울고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레츄우웃!'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에 넘어진 엄지실장의 귀에 자매의 마지막 말이 들렸다.

'구더기쨩들을 부탁하는 레치이이이!'

장녀들이 막 돌아온 것은 이때. 그녀들도 이 비극을 깨닫고 열심히 달려오지만 너무 늦었다.

'레에에에엥...구하지 못한 레치...오네챠를 돕지 못한 레치, 레에에에에엥, 레에에에엥!!'
'엄지짱이 잘못한 게 아닌 테치, 까마귀가 나쁜 것인 테치.…… 좋은 자였는데 왜 이런 일에
일어난 테치...'
'테쟈아아!! 왜 까마귀 따위도 못 쫒아내는 테치!! 다 바보 닝겐탓인 테치이이이!!'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생존 엄지실장과, 그것을 위로하면서도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삼녀.
그리고 차녀는 까마귀의 침입을 허용한 인간에게 분노하며 날카로운 고함을 지른다.

'테에에……방심했던 테치...닝겐상의 집이니까 까마귀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던 테치'

장녀는 자신의 방심을 뉘우친다. 인간의 집인 이곳은 웅덩이나 벌레만 조심하면 안전지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 인간의 집 마당은 장녀들이 살던 공터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다. 확실히, 자실장 이하의
개체들로만 이루어진 구성으로도 하루 이상 생존했으니까.

다른 성체실장에게 먹힐 우려도 없고, 들개도 없다. 지금 당장은 고양이도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인간이 관리하는 안전한 케이지나 수조가 아니다. 자칫 방심하면 하늘에서 까마귀가 덮친다.

'……여기는 위험한 테치, 작은 집으로 돌아가는 테치. 오늘은 닝겐상을 기다리는 건 포기하고
밥을 찾는 테치'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자매는 8마리에서 6마리로 줄어들었다. 일행은 우울한 무드로 개집으로
돌아간다.

자실장 세 마리와 엄지실장 한 마리만 음식을 찾는 것 치고는 나름대로 잘 풀렸다. 연못의 물로
목을 축이고, 서로 협력하여 풀의 열매를 따고, 깔개로 사용하기 위해서 모은 낙엽 밑에 숨어있던
작은 벌레도 잡았다.

자신들 이외 경쟁상대가 없는 자매들은 하루를 지내기에 충분한 식량을 모을 수 있었다.

'테후우, 배부른 테치'
'작은 벌레씨는 처음으로 먹었는데 맛있었던 테치~♪'
'풀의 열매도 달콤했던 레치, 우마우마 레치'

마른 낙엽을 깔다, 매우 기분이 좋아진 개집에서 다섯마리는 식후의 휴식 시간을 보냈다. 까마귀에
휩쓸고 간 엄지 실장의 일은 슬프지만, 하루빨리 잊지 않으면 남은 이들의 생존도 보장할 수 없다.

'구더기짱, 식후 프니프니의 시간인 레츄'
'레~후웅 ♪'
'레후? 왜 구더기짱은 기다려야 하는 레후? 다른 엄지 오네챠는 어디 간 레후?'
'그 녀석은……마마에게 간 레치'
(구더기짱에겐 미안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레치. 구더기짱이 오네챠의 죽음을 알면
파킨해버리는 레치. 그러면 결국 오네챠의 죽음은 의미가 없어지는 레치...)

한 마리만 남은 엄지는 갸륵한 결의를 가슴에 품고 구더기 실장을 돌본다.
슬픈 일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평화로운 한 때. 그러나 장녀의 한마디로 공기가 바뀌었다.

'모두 내일 아침까지 닝겐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마냥 닝겐상만 기다리진 않는 테치'
'테에? 닝겐상이 왜 내일 안 돌아오는 테치? ‘출장’은 언젠가 반드시 다음 날 돌아오는 테치!‘

애호파 인간이 돌아오면 자신들은 사육실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월동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당황하는 자매들에게 장녀는 무겁게 말했다.

'어쩌면 인간은 장기 출장을 간 건지도 모르는 테치'
‘‘그게 뭐인 ー테치(레치)!?’‘
'레후? 먹는 거인 레후?'
'오네챠들이 기뻐하지 않으니깐, 분명 못생긴 것인 레후'

구더기 실장들은 무시하고, 장녀는 장기출장에 대해서 설명한다. 마마조차도 장기출장에 나서면
몇 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고.

'그, 그렇지만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꼭 돌아오는 테치!'
'……봄이 올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 테치? 하나도 준비를 안 하고 겨울을
맞으면 닝겐상이 돌아올 때 까지 살아남을 수 없는 테치'
'테에에에, 또 월동준비인 테치?'
'게다가 마마도 이제 없는 테치, 그런 건 무리인 테치'

오늘 작업은 하루치 식량만 구해온 것이다. 자실장과 엄지실장이 힘을 합쳐 간신히 하루치 식량과
잠자리를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월동이라 하면, 대량의 식량과 물자를 모아야 한다. 그건 자실장
세 마리와 엄지 한 마리가 준비하기에는 무모한 시도다.

다른 실장석과 먹이 쟁탈전이 없는 것은 약간 유리하게 작용하겠지만, 성체 실장의 친이 있고
없고에 따라 노동력이 너무 다르다.

예컨대 도토리 모으기만 해도 신장10cm의 자실장 한 마리가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양손에
하나씩, 두 개 정도이다. 그러나 60cm의 성체 실장은 실장옷의 치마를 봉투로 대신하여 수십 개
이상을 가볍게 옮길 수 있다.

하지만 별 다른 수가 없다. 자매들은 항의의 말은 쏟아내지만 딱히 대안을 제시하진 못한다.

‘그러면 결정된 테치’
‘테에....또 월동준비는 싫은 테치...’
‘치이....’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자매들은 구석에 모여, 서로 웅크려 안고 잠에 든다.

다음날

'또 도토리 모아온 테치'
'여기에 도토리가 가득한 테치. 곧 많이 모을 수 있는 테츄웅'

삼녀의 말대로, 정원에는 대량의 도토리가 떨어져있다. 정원을 모두 내려다보는 위치에 심어진
나무에서 열리는 도토리 열매는 제법 양이 풍족하였다. 뜰에는 온통 도토리 열매 투성이다.

그리고 마당을 청소하는 사람도 없어서, 그 양은 비닐봉지로 서너개는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다.
그 정도는 자실장과 엄지, 구더기 실장이 한겨울을 넉넉하게 나고도 남을 양이다.

'도토리는 나중인 테치'

그러나 왠지 장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인 테치? 도토리는 소중한 음식이라고 마마도 말했던 테치'

보존이 가능하고, 영양이 풍부한 도토리는 실장석에 있어서 중요한 겨울의 보존 식품이다.
장녀도 그건 알고 있다.

'장녀짱, 주운 도토리를 먹어보는 테치'

장녀가 가리킨 것은, 차녀가 가져온 도토리였다. 차녀는 '치프프프'하고 웃으며 아까 전 구더기
실장을 다를 때 사용했던 자갈을 집는다.

'왠지 모르지만, 맛만 좋으면 되는 테치~ 도토리는 와타시의 것인 텟츄~웅 ♪‘

그리고 쳐든 자갈을 도토리에 내리찍는다. 톡하는 소리가 났고, 그것뿐이었다.

'테, 손이 좀 미끄러진 것인 테치'

마음을 다잡고 다시 조약돌을 치켜들고, 도토리에 내리찍었지만, 역시 흠집도 안 난다.

'테……테치! 테치! 깨지는 테치!‘

콩..콩...콩...차녀는 몇 번이고 조약돌을 내리찍는다. 간신히 껍질이 얕은 흠집이 나긴
했지만 전혀 껍질이 열릴 기색은 없다.

'테챠아아아!?'

더구나 손이 미끄러져서 도토리를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때려. 애꿎은 손만 시뻘겋게 부어오른
차녀는 비명을 지른다.

‘그런 테치. 와타시의 힘으로는 도토리는 못 깨는 테치’

자실장은 무력하다. 사마귀에 잡아먹히는 일도 있고, 같은 크기의 쥐에게는 수십 마리가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다. 그런 자실장이 내리찍는 자갈에 딱딱한 도토리가 깨질 리가 없다.
모두 협력하여 오랜 시간 노력하면 하나쯤 깨질지도 모르지만 전혀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

만약 중실장만 하더라도 더 큰 돌을 써서 쉽게 도토리를 깨트릴 수 있다.

10월 초에 태어난 자실장들은, 이론적으로는 지금쯤 중실장에 근접할 정도로 성장했어야한다.
하지만 장녀들은 생후 한 달 이상이 되어도, 태어난 직후와 다름없는 사이즈다.

그것은 친실장이 겨울을 보내기 위한 비상식량인 장녀들에게 변변한 먹이를 주지 않았기 때문.
영양 부족이 된 장녀들의 출생 직후 크기에서 성장이 멈춘 그 상태다.

본래대로라면 20cm이상으로 성장했어야 할 자실장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10cm 언저리, 엄지는
5cm, 구더기는 3cm 정도다. 앞으로 자신들이 모은 먹이를 온전히 섭취해 영양을 공급받기
시작하면 성장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조건이 완벽하다 해도 봄이나 돼서야 가능한 일이다.

'와타시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겨울은 빨리 오는 테치. 도토리 모으기는 잠시 접어두고, 바로
먹을 수 있는 먹이를 찾는 테치‘
'테에에에, 아픈 테치...아픈 테챠아아……'
'장녀 오네챠, 힘내는 테치, 기운내는 테치'
'레츄우, 오네챠가 울면 슬픈 레츄‘
'아픈 테치...테치'
'구더기에도 끼워주는 레후~'

돌로 자신의 손을 찍어 아픔을 호소하는 차녀. 그런 차녀 주변으로 자매들이 몰려와 차녀의 손을
빨아준다. 자매 사랑 넘치는 광경이지만, 장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먹이 뿐 만 아니라 다른 집도 필요한 테치. 이 집으로는 겨울을 보낼 수 없는 테치. 게다가 먹이
이외에도 다른 것들이 많이 필요한 테치'

맨몸으로 공터에서 도망 친 딸들이 지금껏 운 좋게 도망 왔다. 집에서 챙겨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 필요한 집기나 살림살이들을 들고 왔을 리는 없다.
게다가, 현재 실장석 자매들이 머무르고 있는 개집은, 비로부터 몸을 피하긴 충분하지만,
다섯으로 줄어든 자실장들이 겨울을 나기엔 미흡하다.

우선, 개집은 방한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 개집은 개를 위해 지어진 것. 개는 추위가 강하고
더위에 약하다. 그야말로 지붕만 얹혀 있는 벽 세 개짜리 간이피난처에 불과하다. 게다가
플라스틱 재질로, 단열성도 크게 떨어진다.

개였다면, 온몸의 털이 체온을 유지해주고, 그래도 못 버틸 정도의 추위라면 주인이 배려해주어
이불을 깔아주거나 추가로 바람막이를 설치해줄 것이다. 하지만 실장석들이 지닌 것은 머리카락과
추자의 유일한 장점인 약간 두꺼운 실장옷이 전부다. 거기에 보살펴야할 엄지와 구더기까지
딸려있다.

방한을 제외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있는 데, 그것은 개집이 좁다는 것이다. 여섯 마리의
새끼 실장석들이 당장 몇 일 밤을 지내기엔 타협할 만한 크기이나, 장기적인 월동을 위해선
필요한 식량과 물자를 잔뜩 비축해둬야 한다. 그것을 감안하면 개집의 공간은 턱 없이 좁다.

친실장이 있다면, 신문지, 스티로폼 등을 개집의 틈새에 넣어 보온성을 높이고, 근처에서 보존식을
모아두기 위한 구멍을 파든지 해서 적당히 해결하겠지만, 자실장 이하로만 이루어진 일행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

자실장들이 빈 집에 이른지 사흘째. 집주인은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테치. 오늘은 밥 찾는 테치, 닝겐상의 집 주위에 쓸 만한 것이 없는지 찾는 테치'
『텟치!』

여섯 마리로 줄어든 자매들은 탐색에 나선다. 어제의 엄지실장의 죽음을 교훈삼아, 이번에는
엄지 실장과 구더기 실장도 데려간다. 개집의 입구는 크게 뻥 뚫려 있어, 다른 포식자들이 쉽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풀 속으로 지나가는 테치, 숨을 곳이 없는 장소에서 이동할 때는 까마귀가 없는지 조심하는 테치'
'레후~, 산책 즐거운 레후'

삼녀와 엄지에게 안긴 구더기 실장들은 분위기파악도 하지 못하고 마냥 신날뿐이다.
도로를 끼고 있는 집의 남쪽은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 잡초가 특히나 무성히 자라고 있다.
어쩌면 근처에 가정 채소밭이 있을 지도 모른다.

'붉고 아름다운 잎인 테치'
'노란 색도 있는 테치, 그래도 못 먹는 테치'
'장녀 오네챠 이 열매는 어떤 레츄? 먹을 수 있는 레치?'

위를 올려다보고 단풍과 은행을 구경하는 차녀와 삼녀. 장녀는 엄지가 찾아낸 은행나무열매를
들오 쿤쿤 냄새를 맡고, 식용가능여부를 고민한다.

‘처음 보는 열매인 테치. 어쩌면 도토리보다 먹기 쉬울지도 모르는 테치. 시험 삼아 먹어보는 테치’

전에 살던 공원에는 없었던 은행열매. 11월부터 12월 초순이 제철인 이 열매의 발견은 장녀들의
생존확률을 대폭 올려줄 것이다. 장녀 일행은 동쪽을 지나 북쪽에 있는 창고까지 간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도토리를 잔뜩 발견하지만, 괜한 짐이 되어 오늘은 줍지 않는다.

도중에 있는 연못에서 목을 축이고, 창고 근처에서 은행열매의 껍질을 깨본다. 역시나 조금
힘겹긴 하지만 도토리보단 훨씬 쉽게 열리는 은행열매. 일가는 저마다 들고 있던 은행열매를
깨고 나누어 먹는다.

'도토리 정도는 아닌 테치'
'와타치한테 걸리면 이 정도는 가벼운 테치~'
'레츄! 우마우마 레츄~♪'

껍질을 깨는데 좀 고생했지만 역시 도토리 정도가 없다. 처음 먹는 은행나무열매는 미각적으로도
자실장들을 만족시켰다. 그러나 창고 주변에서 새로운 발견은 없었다. 들어갈 만한 틈이나 구멍도
찾지 못했고, 신문지나 스티로폼 같은 물자도 전혀 볼 수 없었다.

'구더기짱 슬슬 졸리는 레후~'
'아직도 산책인 레후?'

잡초의 그림자에 숨어, 볼일을 마치면, 칭얼거리는 구더기 실장을 달래며 자장가를 부르는
자실장들은 개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북쪽을 지나 뒤뜰로 계속 탐색을 진행한다.

'테에……페트병도 신문지도 비닐봉지도 없는 테치'
'스티로폼도 없는 테치...닝겐상의 집은 쓰레기가 아무것도 없는 테치'

인구 과소화 때문인지, 빈집이라 그런지, 이 집에는 쓰레기가 전혀 나와있지도 않고, 투기된 것도
없다. 그저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자실장들에게 필요한 자원인 쓰레기가 없다는 일은 큰 문제.
빠른 시일 안에 구할 수 없으면 이 집을 떠나는 대단한 위험을 감수해 물자를 구해야 한다.

'또 벽인 테치'
'그 막대기는 뭐인 테치?'

뒤뜰에 이어지는 벽은 성체실장은커녕 성인 남성도 한 번에 뛰어넘지 못할 정도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비탈에 집이 위치하고 있어, 토사를 막기 위함이다. 사용하지 않는 빨랫줄과 에어컨
실외기의 주변에 뭔가 떨어져 있는 것을 찾아보지만, 쓸만한 것은 역시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자실장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맛있는 붉은 열매인 테치!‘
'한개 더 떨어져 있는 테에~츄웅 ♪'
'오네챠, 저기를 보는 레치! 위에 한개 더 있는 레츄~웅 ♪’

그 곳에는 빨갛고, 자실장들도 쉽게 닿을 수 있는 가지에, 작을 과실이 풍성하게 열려있었다.
이미 가지에서 떨어진 것도 있고, 아직 가지에 붙어있는 것도 부지기수다.
물렁물렁하여 보존식으론 적당하지 않지만, 쉽게 먹을 수 있고, 양이 많아, 자실장들이 도토리와
은행나무 열매를 쉽게 깰수 있을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맛보는 테치'

땅에 떨어진 열매 하나를 주워, 한 입 갉아 본다.

'텟츄~……보기보다 아마 아마아마하진 않는 테치. 하지만 먹을만 한 테치‘

보기보다 달콤한 맛은 아니지만, 맛없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먹을 만하다. 귀찮은 껍질을
깰 필요 없는 식량이 손에 들어온 것은 상당한 소득이다.

'와타시도 한 입 먹고 싶은...테갸아!?'
'레히이, 뭐인 레후~'
'삼녀짱, 어떻게 된 테치!?'

장녀에 이어, 가지에 열린 열매를 잡으려던 삼녀가 비명을 지른다. 그녀의 막대모양 팔에는
피가 배어나오고 있다.

'가시가 걸린 테치이...아픈 테치~'

열매가 달려있는 채 떨어진 가지들. 자세히 보면 거기엔 날카로운 가시도 몇 개 나 있던 것이다.

'이 가지는 붉은 열매를 얻는 나뭇가지인 테치!'

빨간 열매는 피라칸사스의 과실이었다. 이 계절에 열매를 맺는 피라칸사스는 관상용으로 정원과
공원에 심어져, 새와 실장석에게 귀중한 식량을 공급해준다. 그러나 날카로운 못과 같은 가시도
품고 있다. (주 : 산수유랑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다만 열매는 훨씬 더 많이 열립니다)

목장갑을 껴도 사람 손에 박힐 정도의 피라칸사스 가시는, 연약하디 연약한 실장석들에게 큰 위협.

'테에에, 이건 덫인 테치~'
'레후에에에엥, 이런 무서운 곳은 갈 수 없는 레치이이'
'진정하는 테치, 주의해서 가지에서 떼면, 열매를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는 테치!'

동요하는 자매들을 질타하는 장녀의 말대로, 떨어진 가지들은 모두 가늘어서 자실장의 힘으로도
충분히 들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오히려 자실장들의 작은 사이즈는 피라칸사스 가지를 제거
하는 데엔 성체나 인간보다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치만 집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테치’
‘테에에...역시나 밖에 나가서 골판지 상자를 찾아야 하는 테치?....테에? 장녀 오네챠 저기 창문
열려 있는 테치‘
'테에?'

위를 올려다보며 하소연하던 차녀가 가리킨 곳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살짝 열려있는 것이 자실장
들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틈이다.
그 창문은 다른 창문들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었고, 크기도 작았다. 성체실장도 기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크기. 자실장들은 쉽게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매들에게 있어,
눈부신 희망. 인간의 집에는 푹신푹신한 이불, 따끈따끈한 거품목욕, 몽글몽글의 실장푸드,
아마아마한 콘페이토, 각양각색의 장난감....들실장의 실장생에서는 죽을 때 까지 볼 수 없는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들에서의 생활보다 훨씬 편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은 물론 다르다. 멋대로 인간의 집에 들어갔다간 높은 확률로 일단 독라행. 그리고
온갖 응징이 이어진다. 운이 좋다면 금방 죽을 것이고, 나쁘다면 죽기 전까지 고문 받다 공원에
버려질 것이다. 하지만 장녀 일행은 뜰에 버려져 있던 낡은 개목걸이를 사육실장의 목걸이라
오해한 이후, 이 집의 인간은 애호파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저 창문으로 닝겐상의 집에 들어가는 테치!'

이런 결론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 인간이 있으면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부탁하고, 없다면 안에서 기다린다. 적어도 자신들을 해코지하진 않을 것이라 믿으며.

‘진정하는 테치. 차녀짱 와타시들은 저기까지 손이 닿지 않는 테치’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실장들의 유난히 작은 체구가 걸림돌이 됐다. 아무리 낮은 위치에 있다해도
10cm의 그녀들에겐 전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기엔 이르다.

‘앞에 나있는 나뭇가지들을 치우고, 아래에 타고 오를만한 발판을 놓는 테치!’

눈앞에 당근을 늘어뜨린 말처럼, 자매들은 애를 썼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피라칸사스 가지를
신중하게 들어 올려 옮기고, 발판으로 하기 위해서 자갈을 모아, 쌓아간다.

'자갈이 자꾸 무너지는 테치이'
'차녀짱...균형을 잘 잡는 테치'
'오네챠, 와타시들도 거드는 레치'
'구더기짱도 열심히 하는 레후웅~'
'레후~……조금 쉬는 레후'
'자갈을 잡는데 가지가 방해되는 테치, 가지의 운반을 도와주는 텟치~'

여섯 마리는 힘을 합쳤다. 엄지와 구더기 실장까지 자갈을 나른다. 엄지 실장이나 구더기 실장은
새끼손톱 만도 못한 조약돌을 물고, 하나 옮긴 것 뿐 이었지만 정신적인 도움이 되었다.

어찌어찌 발판의 형태를 갖추었을 무렵, 해는 기울어,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자실장
세 마리와 엄지 한 마리, 구더기 2마리의 작업치곤 상당한 속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테치, 빨간 열매를 주워서 작은 집으로 돌아가는 테치'
'내일이야말로 닝겐상의 집으로 들어가서 사육실장이 되는 테치!'
'기대되는 테치~♪'
'레후~, 닝겐상의 프니프니 기다려지는 레후~'

여섯마리는 오늘 밤에 먹을 피라칸사스 열매를 주우면서 개집에 돌아갔다.

장녀들이 빈 집에 들어온 지 나흘째. 이 날은 아침부터, 뒤뜰로 가 발판 마련에 전념했다.
그 진행은 공원의 모래밭에서 아이가 만드는 모래언덕 정도 크기였지만 발판은 창문에 닿을
만큼에 쌓아졌다.

'완성 테치!'
'그럼 우선 화장실부터 하는 테치. 닝겐상의 집에 똥을 싸면 분충인 테치, 닝겐상에게 와타시들은
분충이 아닌 좋은 자들이란 것을 어필하는 텟츄‘
'렛후~'
'구더기쨩! 아직 싸면 안 되는 레치!‘

여섯 자매는 받침대에 쓸 자갈을 캐느라 파인 곳을 화장실로 삼아 똥을 눈다. 사실 따로 파서 똥을
싸고 싶었지만 뒤뜰의 땅은 딱딱해서 사실상 힘들었다.

그리고 초록색으로 수분 많은 똥 위엔 낙엽과 흙을 가볍게 덮고 화장실은 종료. 물론 낙엽으로
가랑이를 닦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예쁘게 된 테치!’
‘이것으로 안심인 테치. 닝겐상의 집을 더럽힐 걱정도 없는 테치’

그렇게 기뻐하며 장녀들이지만 그것은 들실장 기준으로 '예쁘다'이다. 보통이라면 마당에 대변을
보는 시점에서 분충 결정이지만, 원래 그녀들은 들에서 살아오며, 목욕 따윈 한 적이 없다. 간혹
내린 빗물을 모아, 목욕겸 세탁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것도 비누같은 것이 있을 리도
없었고, 그저 둥근 손으로 퐁퐁 두드리는 정도다.

장녀들은 '며칠 전 비로 젖었으니까, 그것이 목욕 대신인 테치~와타치들은 깨끗한 텟츄웅 ♪’
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서 보면 충분히 '더러운'의 범주이다.

'텟지이이이이! 열리는 테치!'

그 큰 기준의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차녀가 혼신의 힘으로 창문을 열자. 자실장이 들어갈
정도의 틈새를 만들고, 장녀들은 차례로 빈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 년 이상 방치되고 있는 가옥의 바닥에는 먼지가 얇게 쌓여있었고,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다. 자실장들이 좀 적신 정도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대로 똥만 싸지 않는다면 '더럽힘'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가 닝겐상의 댁인 테치, 엄청 넓은 테츄~♪'
'텟츄~웅 ♪ 닝겐상! 나오는 테치~♪'
'구더기짱을 귀여워 해주는 레후~‘
'인간님, 사육엄지가 되고 싶은 레츄~웅 ♪'

제각기 아첨하며 인간을 부르는 장녀들이었지만 대답은 없다.

'……역시 인간은 없는 테치. 모두 쓸 것이 없는지 찾아보는 테치'

인간이 없다고 판단이 서자, 장녀는 교태와 아양을 깨끗이 지우고 물자의 탐색을 시작한다.

'테에에……'
'다시 원점인 레치'
'레후에에에, 닝겐상은 구더기짱들을 너무 기다리게 하는 레후...‘

차녀도 장녀를 따라 어깨를 떨어뜨린다. 이대로 개집에 돌아가면 기껏 힘들여 발판을 마련한
고생이 보답되지 않는다. 뭔가 쓸 만한 것이 있나하며 그녀들은 이리저리 탐색한다.

자매들이 들어간 창은 벽장 아래 수납공간 안에 나있던 것이다. 왜 그런 곳에 창문이 있는지는
불명이지만, 아마 채광이나 환기 혹은 장식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납공간을 벗어나면 그곳은 다다미8장 정도의 방이었다. 두꺼운 책들이 늘어선 책장이나,
반대로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선반이 있다. 벽장 속에는 이불과 각로가 수납되는 모양이다.

'신문지가 잔뜩 있는 테찻!'
'굉장한 테치, 마마의 키 정도 되는 테치!'

장녀, 삼녀가 주목한 것은 비닐 끈으로 정리된 신문이었다. 주민들이 모아 그대로 쓰레기에
내기 전에 방치된 것이다. 그런 신문지나 휴지뭉치가 여럿 있다.

'화장지나 이불은 걱정 없는 테칫!'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텟츄웅 ♪'
'그것보다 대접은 어디인 테치이! 푸드나 콘페이토는 왜 없는 테치!! 스테이크와 스시는 참아
준다 해도 그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한 테치!!‘

이방엔 차녀가 기대했던 산해진미는 전혀 없었다.

'꼭 다른 방에 있는 테치, 찾아보는 테치'

호통을 치는 차녀를 달래는 장녀. 신문지와 화장지의 위치를 기억하고, 문으로 향한다.
다행히 문은 제대로 잠기지 않아 자실장이 힘으로도 열릴 수 있었다. 방 밖은 널복도로 이어졌다.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보면서 얕게 덮인 먼지의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자매들. 복도에는
몇 개의 문이 더 있었다. 그리고 훨씬 큰 문이 눈이 띄었는데, 특이하게 그 곳만 판자가 아닌 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쪽 문은 열리지 않는 테치'
'이쪽도인 테치, 밀어도 당겨도 끄떡없는 테챠아'
'구더기짱도 못 들어갈 정도로 좁은 레후...'
'구더기짱은 무리하면 안 되는 레치'

그러나 돌로 된 방문 외에는 대부분 열려있는 문들이었다. 열지 못한 문들은 대부분 손잡이에
닿지 않다던가, 문의 균형이 안 좋아 자실장의 힘으로는 미닫이를 움직이지 못할 뿐이었다.


그 커다란 철제문은 현관문이다. 안쪽에서 열쇠로 열 수 있지만 자실장들의 힘으로는 전원이
협력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움직인다 해도 다른 공간이 아닌 밖으로 나올 뿐이다.
하지만 현관 주위에는 기쁜 발견이 몇 개 있었다.

'이는 무기가 될 수 있는 테치'
'멋진 테치...‘

바닥에 떨어지던 녹슨 못. 자실장에게 적당한 도구로 신문지를 찢는데 쓸 수도 있다.
둘째가 자랑스럽게 못을 쥐고 '명검인 테치테치 대단한 텟츄 ♪'하며 이리저리 휘두른다

'비닐봉지가 한 가득인 레치 ♪'
'테에에! 굉장히 큰 테치, 테에? 열린 곳은 어디인 테치?'

엄지와 삼녀가 찾아낸 것은 50리터 들이 비닐 봉투. 다만 실장석들이 흔히들 들고 다니는 편의점
봉투와 다르게 손잡이가 없어, 그 편리성과 활용성은 떨어진다.

이 외에도 현관 근처에 놓인 선반에는 회중전등과 신발이 든 상자, 비닐끈, 접이식 우산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 자매들이 사용법을 모르는 것뿐이었다.

선반 위에는 더 쓸 만한 물건, 예를 들면 보존식과 비상물품이 들어있는 재난배낭 등이 있었지만
자실장들은 거기까지 살펴볼 순 없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저것은 수조인 테치!'

현관의 큰 신발 상자 위에 설치되어 있던 큰 수조를 발견한 장녀들은 '텟츄~♪'하고 기쁨의 탄성을
일제히 지른다. 목걸이를 발견했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달아올랐다. 왜냐하면, 수조는 케이지와
함께 실장석을 키우는 때 많이 쓰는 때문이다.

특히 자실장 이하의 실장석만 키우는 경우에 잘 쓴다. 수조 속에 자실장도 엄지실장도 구더기도
없지만 수조가 있다는 것은 역시 이 집의 인간은 애호파가 틀림없음이라.

……실제로 집주인이 그 수조에서 키우던 것은 실장석이 아닌 열대어였지만.

텐션의 오른 장녀들은 더욱 더 탐색을 계속했다. 이런 기세라면 실장푸드나, 어쩌면 콘페이토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하고.

'여기로 들어가는 테치!'

그리고 삼녀가 발견한 문 너머는 나무로 된 마루였다.

'뭔가 잔뜩 있는 테치~♪'
'아마아마한 예감인 테치!'

'레츄~♪'

거실과 부엌에는 방안과는 달리 많은 가구나 쓰레기가 방치되고 있었다. 선반, 수납에는 물건이
실려있고 카펫 위에는 쿠션이나 방석, 슬리퍼가 난잡하게 흩어져있다.

부엌은 그것에 비하면 약간 물건은 적게 보였다. 식재료 등은, 대부분은 주인이 없어진 전후에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녀들이 주목한 것은 거실 벽에 놓인 케이지였다.

'저건 케이지인 테치! 역시 사육실장의 집인 테치!‘
'감동인 테치~♪'
'오네챠, 와타시들도 넣어주는 레치'
'잔뜩잔뜩 행복해지는 레후~♪'
'엄지짱, 구더기짱 조심하는 테치. 바닥에 틈이 있는 테치'

엄지와 구더기실장는 빠질 수도 있을 정도의 간격의 쇠격자 바닥으로 된 케이지에는 스테인레스
로 된 먹이접시와 음수기가 붙어있었고, 하늘색의 화장실 같은 플라스틱 상자, 자실장들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는 나무집, 그리고 골판지 상자가 놓여있었다.

(주 : 쇠격자 바닥의 케이지 : 토끼 사육장. 똥이나 오줌 잘 빠지라고 쇠격자로 되어있는 그거
구멍난 나무집 : 비둘기집 생각하면 됨. 토끼들 들어갈 수 있게 구멍 뚫어놓은 집)

'접시가 깔끔깔끔 테치, 밖에 집하고는 차원이 다른 테츄!'
'이 나무 상자가 침실인 테치?'
'레후~♪'
'밑에는 뭐가 있는 레후?'
'떨어지면 위험한 레치~'

장녀들이 다음에 발견한 것은 나무상자 옆에 놓인 봉투였다.

'뭐가 들어있는 테치'
'실장푸드가 틀림없는 테치! 바삭바삭 뭉글뭉글 달콤달콤한 푸드인 테~츙♪'

그렇게 외친 차녀는 먹이접시를 뒤집어, 발판으로 삼아 올라탄다. 그리고 막 손에 넣은 못으로
비닐봉지에 구멍을 내고 밑으로 죽 찢어 틈을 벌린다.

'테치, 테칫, 끈질긴 놈인 테치!'

못을 사용해도 비닐이 질겨 제법 힘들었지만, 결국 작은 틈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봉투 속에 손을 넣어본다.

'역시 푸트인 테치이!'
'정말 테치!'

차녀가 내보인 것은 작은 원기둥 모양을 한 녹색의 동물사료였다. 실장푸드라고 믿으며, 그것을
접시로 가져와 눈을 빛내며 들여다본다. 차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갉아먹는다.

'잘 먹겠습니다 테치, 테엠……푸석푸석 테치'

그러나 웃음은 금방 사그라들고 표정은 굳어간다.

'푸석푸석? 안은 어떻게 테치? 몽글몽글 테치?'
'……안에도 푸석푸석 테치. 게다가 아무 맛이 없는 테치'

축 늘어진 작은딸이,'다들 먹어 보는 테치'하며 푸드를 내민다. 장녀는 차녀가 방금 갉아먹은
자국이 있는 푸드를 살핀다.

약간 까슬까슬하게 생겼고, 연두색인 데다 군대군데 마른 풀이 박혀있는 게 보인다. 촉감으로
봐선 바싹 건조되어있다. 냄새도 마른 풀 냄새가 난다.

'테에……정말인 테치, 푸석푸석 맛이 없는 테치'

그것을 확인하고 푸드를 삼녀에게, 삼녀는 엄지에게 엄지는 구더기들에게 차례로 돌린다.

'……딱딱하고 푸석푸석한 테치‘
'왜 풀이 들어있는 레치?'
'레후...딱딱해서 구더기짱 못 먹는 레후'
'물에 불려서 주는 레후~'

애호파도 전혀 오지 않는 오지의 공원에서 살아온 실장석의 먹어본 적도 없는 실장푸드에
대한 기대는 순식간에 시들어든다.

'……이 후드는 꼭 싸구려인 테치'
'테에에……사육실장이 되면 이것이 밥인 테치? 이걸 먹을 바엔 벌레 쪽이 맛있는 테치'
'밥을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테치. 주인님은 추위와 학대파들에게서 지켜주는 테치‘
'길러져서 집에 있으면 까마귀도 못 들어오는 레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레츄‘

이 집의 인간에게 길러진다면 고급푸드는 바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맛없는 푸드를 그래도
어떻게든 먹어보기 위해 혀를 할짝거리는 구더기실장을 바라보면서 서로 상담하는 자실장과 엄지.

그러나 그녀들은 또 착각하고 있다. 그녀들이 방금 본 사육실장을 위한 애호용품들은, 사실
토끼들을 길렀던 케이지였다. 방금 전 풀맛이 난다며 불평한 푸드도 토끼사료.

이 집의 주인은 개를 앞마당에선 개집에서 기르고, 현관의 수조엔 열대어를, 거실에 케이지에선
토끼를 길렀던 것이다. 수조에 있던 열대어는 뭔가 잘못을 한 모양인지 금방 죽어 더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용품이 방치되고 있던 것이고, 토끼도 다 크기도 전에 죽어버려서 사료가
잔뜩 남아버린 것이다. 장녀들은 미처 못 봤지만, 사료봉지를 자세히 보면 토끼가 그려져 있다.

자실장들에게 토끼사료는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토끼사료는 초식동물인 토끼를 위해
만들어진 사료로서, 잡식성인 실장석의 입맛에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실장에게 토끼사료의 맛은
그간 친실장 밑에서 먹어온 잡초 페이스트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뭐...실제로 이 토끼사료도 대량
할인할 때 업어온 싸구려지만.

‘그래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테치. 게다가 보존이 가능해보이니, 보존식으로 하는테치’

장녀의 결정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토끼사료는 그녀들의 푸드드림을 그렇게까지 배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딸들은 케이지에서 나와 탐색작업을 재개한다. 탐색결과, 그녀들이 발견할 수
있던 것은 꽤 많았다.

집 주인이 없이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이 집은 실장석들에게 있어선 보물의 산이었다.
그저 실장옷만 입고, 흙바닥에서 지낸 자실장에겐 방석과 이불은 그야말로 극상의 푹신함이었다.
슬리퍼는 엄지와 구더기들의 시선에선 천개가 덮인 고급침대나 다름없었다. 이 외에도 집주인의
헌 옷과 걸레로 쓰기 위해 잘라놓은 천조각 등...

' 예쁜 이불인 테치이! 낙엽보다 따뜻한 테치!'
'옷 속에 넣으면 밖에서도 춥지 않은 텟츄웅!!'

장녀와 차녀가 천조각을 이리저리 옷 안에 덧대며 방한대책을 강구할 무렵, 삼녀는 슬리퍼에
부드러운 천조각을 잘 깔아넣고, 엄지와 구더기가 쓸수 있는 침대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집주인이 미처 치우지 못한채 방치되고 있던 건조 국수는...

'이거 먹을 수 있는 테치?'
'바삭바삭 레츄, 부러지려고 하는 레치'
'……그리 맛있지 않는 테치, 그래도 먹을 수는 있는 테치. 이것도 보존식인 테치'

가늘고 바로 휘어지는 탓에 물에 불린다는 것은 생각 못한 장녀들. 토끼사료와 함께 보존식행.
같이 주민이 먹지 못한 채 방치된 페트병에 세분된 쌀은……

'이 페트병 안에 흰 멍울이 많이 들어있는 테치'
'테에~!테에~! 무거워서 움직이지 않는 테치~'
' 어쩔 수 없는 테치, 이건 뒷전 테치. 속이 차 있지 않은 물병을 찾아보는 테치'

무거운 것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외에도 바닥에는 사용한 종이그릇과 종이컵, 나무젓가락 뭉치. 크고 작은 패트병과 술병,
비닐 봉투 다발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리 병은 무거웠지만 페트병은 물을 보관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비닐봉지는 슈퍼의 것보다
작고 얇은 것 같지만 자실장에는 이쪽이 편리하다.

외에도 여러가지 있을 텐데, 선반 위 등은 자실장에겐 높은 곳에 있어서 손이 닿지 않았다.
단 것이나 고급 푸드는 없었지만 대수확.

'깜깜한 테치, 닝겐상이 없는 탓 테치'
'닝겐상의 집에는 반짝이는 게 있어서, 물이 언제나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을 것인 테치'
'어디 있는 레츄?'
'꼭지가 없는 테치...와타시가 닝겐상이라면 더 찾기 쉬운 곳에 두고 싶은 테치~'
'닝겐상의 집인데 그렇게 따뜻하지 않는 테치~'

'목욕은 없는 레후~?'

그러나 주민없이 방치되고 있는 이 빈집은 들실장들이 상상해왔던 환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인간이 집이라면 모름지기 언제나 물이 콸콸 쏟아지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끈따끈
하며 깨끗한 화장실과 따뜻한 목욕이 있는 꿈의 보금자리다.

사는 사람이 없어 전기, 수도, 가스가 모두 끊어져 있고, 당연히 난방도 될 리가 없다. 집 자체도
건축된 지 30년이 넘는다. 차가운 겨울 하늘 아래, 입구가 뻥 뚫린 개집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따뜻하고 폭신한 겨울을 보내기는 좀 어려워 보인다.

‘오늘부터 이곳에서 지내는 테치. 오늘은 연못의 물을 길어오고, 붉은 열매로 식사를 하는 테치’

할 수 없이 인간이 돌아올 때까지의 참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차녀들은 장녀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장녀는 빈 페트병 중에서 가장 작은 250CC짜리 용기를 들고, 연못까지 물을 길러온다.
오늘로서 장녀일행의 빈집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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