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미식가 -2-

이 공원의 고참 실장석인 그녀의 두 눈은 녹색으로 바뀐 상태였다. 며칠 전 겨울나기 준비를 거의 끝내고 나서,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꽃을 집어 수분한 것이다.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지는데스."

늦가을을 맞은 공원을 걷는다. 그녀는 차츰 커지는 배를 안고서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먹을 것을 찾는 매일을 보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뭐든 먹는다. 맛있고 없고를 따져서는 안된다. 그것이 동면 전의 실장석이다. 임신한 실장석이라면 더욱 그렇다. 힘겨운 겨울을 넘기기 위해서는, 지금 미리 마구 먹어서 피하지방층을 만들어 둬야한다.
고참 실장석인 그녀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도 움직일 수 있는 동안에는 뭐든지 먹는다. 하지만 다짜고짜 아무거나 집어삼키는 다른 실장석과는 명백하게 달랐다. 먹을 것을 손에 들고, 냄새를 맡고, 식재료를 평가한다. 음식에 대한 그 감식안은 엄격하다.

"냠... 냠... 이 맛데스."

지금, 그녀는 공원에서 자라는 얼마 없는 땅두릅, 해당화 등 맛좋은 들풀만 골라서 먹고 있다.

"그리운 맛인데스. 마마랑 같이 자주 먹었던데스."

그렇다. 그녀는 미식가인 것이다.

***
임신한 몸은 남들보다 배로 양분을 요구한다. 먹어도 먹어도 위가 바로 공복을 호소한다.

"데~ ...배고픈데수~"

지금, 그녀는 겨울 준비를 위해, 공원 서쪽 구역에 낡은 신문지를 가지러 왔다. 노리고 있던 타블로이드판 신문도 손에 넣었다. 이걸 가지고 동쪽 구역에 있는 자신의 둥지에 돌아가면, 겨울을 대비해 쌓아놓은 식량도 있다.

"데~ ...먹이터가 이쪽 맞는데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여기서 공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둥지에 돌아가면 확실하게 식사를 할 수 있지만, 그런 건 그녀의 긍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고참이라고는 해도, 그녀는 주로 동쪽 구역을 중심으로 서식하는 실장석이다. 작년 봄, 갑자기 실행된 행정 구제 후, 이 공원에 사는 실장석의 절대수가 확 줄었다. 얄궂게도, 덕분에 살아남은 실장석들이 안정적인 주거지역과 먹이 공급을 보장받게 되었고, 지금 이 공원은 어느 정도의 치안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실장석 수가 적다고는 해도 구역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녀의 먹이터는 동쪽 구역 부근. 서쪽 구역의 먹이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가지 않는다.

"아마 이 골목이 먹이터가 맞을 것인데스."

때는 바야흐로 첫 출산을 마치고 새끼와 함께 처음으로 맞이한 봄. 동쪽 음식물 쓰레기장에서 도저히 먹이를 얻을 수 없어서 떠돌듯이 찾아간 공원 서쪽 외곽에, 그것이 있었다. 작은 목조 아파트 앞에 있던 플라스틱 통. 넘어진 통 안에 기어가듯 들어가, 오물 투성이가 되면서 주운 물고기 모양의 간장 용기. 굶주린 새끼와 번갈아 빨아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리운데스."

그녀는 뺨을 붉히고 군침을 삼키며, 기억을 되짚어가면서 그 장소로 향한다.

"이상한데스. 여기 있었을텐데스."

기억을 따라 도달한 장소는, 20층 짜리 고층 맨션 앞이었다.

"데?"

밝은 햇살에 눈을 깜빡이면서, 분명히 목조 아파트가 있었던 장소를 올려다본다.

"...데."

고층 맨션의 베란다에는, 이불 모포 등이 널려있었다.

"...같은 색데스."

제일 구석에 있는 방의 베란다에 널린 핑크색 타올이 눈에 들어와, 무심코 중얼거린다.

"......"

품에서 소중히 여기는 핑크색 손수건을 꺼내서, 한번 더 그 베란다를 보았다.

"같은 색인데스."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핑크색 손수건을 몇번씩이나 쳐다보았다.

***
"...여기도 변한데스."

고층 맨션 주위를 한바퀴 뱅 둘러보고, 중얼거린다.
맨션 앞 쓰레기 집하장은 단단하게 잠긴 문으로 막혀있어서, 그녀를 포함한 실장석들은 그 문 앞에서 데-하고 작게 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배는 이미 식사 모드로 바뀌었다.

"...데스. 분한데스."

고집이 생긴 그녀가 주위를 돌아다니지만, 그럴싸한 쓰레기통들은 이미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간 다음인지, 눈에 띄는 먹이를 얻을 수 없었다.

"데에에..."

신문을 들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걷는 그녀. 어쩔 수 없이 공복을 참고 공원으로 돌아가는 도중이었다.

"데...?"

그것은 공원으로 돌아가는 도중, 길가에 버려진 골판지 상자에서 들려왔다.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엥!!"
"데?"

서둘러 다가가자, 커다란 소리 속에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하고 우는 작은 자실장의 소리도 섞여서 들린다.

"데데?"

딱 눈높이 정도 되는 골판지 상자 안에서, 프릴이 달린 실장두건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주워주세요]

골판지 상자 옆에 적힌 문자를 알아볼 리는 없지만, 똑똑한 그녀는 사육실장을 여기에 버려놓은 것이리라고 짐작했다. 공원의 고참인 그녀는 그런 경우를 몇번이나 마주쳤다. 사육실장이었던 것을 잊지못하고, 얄팍한 자존심을 고집한 끝에, 공원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동족들도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녀의 모친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환경에 순응하여 새끼를 친 실장석도 존재한다는 것 역시,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들실장의 사회성이라는 관점으로는, 약자에게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행위는 괜한 참견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몸을 바쳐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를 생각하면, 남일처럼 볼 수 없는 것이다.

"데에에에엥!! 데엑... 덱... 주인님, 어딘데수우우~!!"
"버림받은데수?"

그녀는 골판지 너머로, 원 사육실장에게 말을 건다.

"뎃!! 너!! 와타시의 주인님 모르는데수~?"

상자 안에 있던 원 사육실장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필사적으로 되물었다.

"데... 모르는데스."
"테에에엥! 테에에엥! 버림받은테치---!! 버림받은테치---!"
"뎃!! 무슨 소리하는데스!! 이건 '숨바꼭질'데스!! 주인님은 분명 가까이 있는데스!!"

상자 속에서는, 필사적으로 새끼를 야단치는 원 사육실장의 비통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와타시를 여기서 꺼내는데스! 빨리 와타시들을 여기서 꺼내는데스!!"

건방진 말투지만, 원 사육실장이 세상 물정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시키는대로, 체중을 골판지에 실어서, 상자를 넘어뜨리려고 했다. 안에서 날뛰어댄 것도 좋게 작용했으리라. 균형이 무너져, 골판지 상자가 깔끔하게 옆으로 넘어가면서, 안에서 프릴이 달린 실장복을 입은 실장석 모녀가 넘어지듯이 아스팔트로 튀어나왔다.
원 사육실장 중 친실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주인님~!! 패트리시아는 여기데수우우~~!!"

라고 하면서 공원 안을 향해 뛰어갔다.

"테에!! 마마! 마마!" "테츄우우---!?" "테엣! 테에!"

남은 자실장 세마리도 친실장의 뒤를 쫓아간다. 친실장이 뛰어가는 와중에 뭔가가 아스팔트로 떨어졌다.

"데. 떨어뜨린데스."

그녀가 그것을 들고 친실장에게 말을 건다.

"데쟈아아아! 그런 거 필요없는데수! 주인님~! 주인님~!"
"...데."

그녀는 어이없어하면서, 공원 안쪽으로 뛰어가는 원 사육실장 모녀를 쳐다보았다. 잠시 한눈을 팔고 그쪽을 보고 있었지만, 문득 손에 든 물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식이 풍부한 그녀는, 이 비닐 포장지에 들어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데... 실장푸드데스."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사육실장이었던 시기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따끈한 물이 나오는 마법의 분수.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이불.
그리고, 굉장히 맛있는 실장푸드.
그것은 둥글고 까무잡잡한 물건. 보기에는 구미가 당기는 물건이 아니지만, 입에 넣으면 너무너무 맛있는 것. 지식으로서는 알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의 범위 안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연히도 그녀의 손안에 있다. 솔직히, 그것을 본 그녀의 감상은...

"똥같은데스."

손에 든 실장푸드는, 확실히 둥글고 까무잡잡했다.

***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배고픈데스."

손에 든 실장푸드를 먹을까 말까.
그녀에게도, 들실장으로서 다부지게 살아남고, 새끼를 키우고, 독립을 시켰다는 자부심이 있다. 골판지 하우스는 따뜻하고, 공원에서 싹트는 들풀들은 맛있고, 음식물 쓰레기도 주울 수 있다. 솔직히 지금 야생 생활에도 만족하고 있고, 들실장으로서 프라이드도 갖고 있었다.
실장푸드가 뭐란 말이더냐.

(꼬르륵)

하지만, 그것이 실장석. 게다가 임신중인 그녀의 위는, 솔직하게 공복을 호소하고 있다.

"데... 조금만 먹어보는데스."

그녀는 근처 화단의 막음돌에 걸터앉아, 실장푸드 봉지를 꺼냈다. 두근두근거리면서 밀봉을 뜯고, 몇 알 집어서 입에 넣어 보았다.

"우걱... 우걱... 데!?"

무의식 중에 두입째, 세입째 집어먹고 있었다.

"우걱... 우걱... 분하지만... 냠... 맛있데스."

넋을 놓고 실장푸드를 집어먹는 그녀.

"이게, 마마가 말했던 맛데스? 냠... 냠..."

'마마'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놓은 순간, 그녀의 입이 멈췄다.

"데... 마마랑 같이 먹고 싶었던데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손에 든 실장푸드를 쳐다본다.

"데?"

잠깐 멍하게 있자, 공원 안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엥! 주인님~~!!"

낯익은 목소리. 그것은 조금 전, 그 실장푸드를 포기했던 원 사육실장이었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프릴이 달린 실장복은 어디로 갔는지. 프릴은 무참하게 뜯겨나가고, 두건도 옷도 군데군데 찢어져서 거의 독라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있었다.

"데엑! 데엑! 저녀석들 주인님한테 부탁해서... 데엑! 죽여달라고 하는데스!!"

그 실장석의 뒤를, 역시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쫓아가는 자실장 두마리.
세마리 중 남은 한마리는 친실장의 품 안에서, 혀를 쭉 내민 채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데에... 데에에에에......"

친실장이 그 자리에서 딱 멈춰선다.

"데에에에엥! 새 옷 가지고 오는데수~!"
"목욕하는데수~!! 아와아와 하고 싶은 데수~!!"
"데에에에에엥! 배고픈데수~!!"

그 자리에 드러누운 채 손발을 버둥거리면서, 뿌직뿌직하고 속옷을 부풀리는 친실장. 옆에서 넋을 놓은 듯이 테- 하고 중얼거리면서 어머니의 모습을 쳐다보는 자실장.
신참 실장석. 그것도 버림받은 원 사육실장에 대한 처우로서, 이 공원에서도 자주 보는 광경이다. 그녀는 이미 익숙해졌을 그 광경을 보고, 다시 손에 든 실장푸드를 보고, 데 하고 중얼거린다.

"배고픈데수~!! 배고픈데수~!!"

몹시 우울해하면서 어머니를 쳐다보는 자실장들의 머리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테?"
"떨어뜨렸데스."
"...치이."
"마마한테 주는데스."

그녀였다.

"테에!! 마마! 마마! 아줌마한테 받은테치-♪"
"푸드테치~!! 푸드테치~!!"

그녀에게서 받은 푸드 봉지를 양손으로 들고, 친실장에게 뛰어가는 자실장.

"뎃! 푸드데스! 내놓는데스!"

푸드주머니에 달린 지퍼를 쥐어 뜯더니, 양손에 움켜쥔 실장푸드를 입에 쑤셔넣는 친실장.

"마마-! 와타치도 먹고싶은테치~!!"
"푸드! 푸드! 먹는테치~!!"

자실장들도, 친실장의 입에서 흘러떨어진 푸드에 달려든다.

"데..."

어떤 이유이든간에,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모녀의 만찬이었다. 푸드를 먹어치운 후, 모녀에게 찾아올 운명은 더욱 가혹할 것이다. 그것을 아는 그녀이기 때문에, 모녀가 누리는 한 순간의 행복도 덧없어보였다. 하지만,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부모에게 매달리는 자실장의 얼굴은, 지금의 자신에게는 없는 특별한 것으로 비추어졌다.

"...데."

그 광경과 자신의 배를 번갈아 보고는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
타블로이드 신문지는, 둥지 바닥에 굉장히 잘 맞았다.
그것을 2중 3중으로 깔아주면 보온력을 높일 수 있다.

"데... 끝난데스."

신문지를 다 깔아놓은 골판지 하우스 바닥에 털썩 앉는 그녀.

"데-..."

오늘은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처음 먹어본 실장푸드. 분하지만, 아직 입안에 여운이 남을 정도로 풍미가 있는 맛이었다. 그녀의 모친이 말했던 맛이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에, 가볍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데... 오늘은 이것저것 있었던데스..."

공원 입구에서 만난 버림받은 사육실장 모녀도 생각난다. 그 모녀는, 이 팍팍한 공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남 일이지만, 그 친실장 옆에 달라붙던 무구한 눈동자를 가진 자실장들이 떠오른다.

"데..."

그녀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빨리 태어나는데스~♪ 뎃데로게~♪
마마랑 같이 맛있는 걸, 잔뜩 먹는데스~♪
뎃데로게~♪

"..."

뭔가 떠오른 듯,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역시, 같은 색인데스."

-끝

댓글 6개:

  1. 테프프프... 저 분충은 이제 실장푸드의 맛을 알아버린테치! 이제 쓰레기나 잡초는 먹지 못하는 테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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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데에...굉장히 잘 쓴 문학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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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떵같은데스에서 빵터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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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나저나 주운 실장푸드를 다시 돌려주다니 진짜 개념실장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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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그러니깐 저 미식실장의 어미는 원래 사육실장이였고,
    지금 들고있는 그 분홍색 손수건의 색이 저 버려진 사육실장들과 같은 색이라는것은
    저 버려진 사육실장들의 전 주인이
    미식실장의 어미의 전 주인이였단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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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육실장의 옷은 분홍색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아닐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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