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과 라인

내 집에서는 자묘와 자실장을 기르고 있다.
일주일 전쯤을 전후로 우리 집 뜰에 헤메 들어와서 그대로 눌러앉아 버렸다.
자묘 쪽은 털이 길어서 사자 같기에 '라인', 자실장 쪽은 어느 유명 화가의 이름을 따서 '프론'이라 지었다.

흔히들 고양이는 실장석의 천적이라 하지만, 프론과 라인은 무척 사이가 좋다.
골판지 상자 안에서 두 마리가 붙어 자는 모습이 너무 흐뭇하다.

분명 두 마리는 영리한 고양이와 실장석일 것이다.

그런 두 마리가 오늘은 뭔가 상태가 이상하다.
라인은 자꾸만 뒷다리로 턱 밑을 긁거나 몸 곳곳을 깨물거나 한다.
프론은 자기 뒷머리나 등을 긁으려 하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팔이 짧아서 닿지 않는다.

"테챠- 테챠챠-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결국 인간 아이가 투정을 부릴 때처럼 위를 보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모근이 가려운 것 같다. 빗으로 빗겨주니 빗살 틈에 깨알 같은 것이 끼어 있었다. 다음 순간 그 깨알은 튀어서 달아났다.

"벼룩!?"

그러고 보니 라인은 어제 밖에서 놀았지. 들고양이에게 옮기라도 한 건가....
앞으로 기후도 따뜻해질 것이다. 방치하면 온 집안이 벼룩 투성이다.

나는 근처의 애완동물 샵에 뛰어들어 점원이 추천하는, '카토키 하지메가 디자인한 관장약'처럼 생긴 용기에 담긴 벼룩 구제약을 사 왔다.




그 약은 점성 약한 기름 같은 느낌으로, 두세 방울 뒷덜미나 목덜미에 흘려 문질러주면 된다는 것 같다. 바로 프론과 라인의 목덜미에 문질렀다.




다음 날. 둘 다 가려움은 나은 것 같은데 프론의 상태가 어제보다 배로 이상하다.

"텟츄, 텟햐! 텟츄, 텟햐! 텟츄, 텟햐! 텟츄우---!"

콧김도 거칠고 온 방을 굴러다닌다. 아무튼 하이 텐션이다.

"텟츄, 텟햐텟츄, 텟햣호---------!!"

평소 두 마리가 장난칠 때는 라인이 걸고 프론이 받아주는 느낌인데,
오늘은 프론의 텐션이 높아서 라인도 쩔쩔맨다.

"텟츄폭폭, 텟츄폭폭, 텟츄폭폭, 텟츄----------------!!!"

이번에는 기차 흉내인가? 양손을 휘두르며 실장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뛰어다닌다.

너무 소란스러워서 불쌍해도 골판지 상자 안에 가둬놓기로 했다.
좀 더 상태를 보고 낫지 않으면 동물병원에서 진찰받자....





그날 저녁. 프론은 골판지 상자 안에서 차가워져 있었다.

"냥, 냥."

라인이 발톱 끝으로 프론을 찌르지만 경직된 몸이 인형처럼 흔들릴 뿐.

"냐아~앙?"

어떻게 이런 일이... 혹시... 나는 어제 산 벼룩 구제약의 설명서를 다시 읽었다.


"...주성분인 피프로닐은 벼룩이나 진드기의 신경세포에 있는 GABA 수용체 내에 단단히 결합, 염소 이온의 유입을 저해합니다.
 신경 접합부에서의 신경 정보 전달에서 염소 이온이 유입하여 막전위가 저하함으로써 흥분이 가라앉습니다.
 염소 이온의 유입을 저해하여 흥분 억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해충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개나 고양이, 인간 등의 포유동물은 GABA 수용체의 구조가 벼룩이나 진드기 등과 다르기에 염소 이온의 유입을 막지 않습니다...."


실장석... 아무리 영리한 개체여도 생물로서 '똥벌레'의 한계를 넘지는 못하는 건가... 합장.



-끝

댓글 2개:

  1. 제품 사용 전 사용설명서 확인을 생활화합시다. 오남용은 위험할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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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데..꽤나 영리한 양충개체였던것 같은데 아까운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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